비룽가 화산지대와 마운틴 고릴라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세 나라의 국경이 접한 곳에 '비룽가 화산지대'가 있다. 삼천에서 사천미터급의 화산 봉우리 5개가 솟아 있는 곳, 최고봉은 르완다에 있는 4500미터의 '카리심비'다. 이 지역은 등반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유명하다. 비룽가 화산지대는 지구상에서 마운틴 고릴라의 마지막 서식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동물들의 서식지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아프리카 전역에 살던 동물들은 이제 몇몇 종은 국립공원에서만 볼 수 있다. 마운틴 고릴라도 마찬가지다. 한때 200여 마리까지 개체 수가 줄었다가 보존 노력으로 지금은 800여 마리 정도라고 한다. 우간다 쪽은 브윈디 국립공원, 콩고 쪽은 비룽가 국립공원, 르완다 쪽은 볼케이노 국립공원이 있어 고릴라를 보호한다.
르완다에 머물면서 늉웨 국립공원은 아직 보지 못했고, 아카게라 국립공원, 볼케이노 국립공원, 기세니에서 키부예까지 키부 호수 일대를 둘러보았다. 그중 가장 특별한 풍광은 역시 볼케이노 국립공원이 있는 비룽가 화산지대였다. 삼사천미터급 산들이 주는 위엄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비로움을 주었고 그 아래에 잠시 머무는 것으로도 눈과 마음이 쾌청해졌다.
이 일대를 보려면 르완다의 북서부 지역인 '무산제' 로 가야 한다. 수도 키갈리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데 고산 지대로 들어가는 길이다. 우리나라 한계령을 넘어가는 것 같다. 다행히 이 길은 포장이 되어 있어 그리 힘들지는 않다. 80년대에 중국이 놓아준 도로라 하는데 이후 다시 포장을 했는지 노면 상태가 좋은 편이다. 무산제는 화산 지대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 호텔 등 숙박시설이 모여 있다(옛이름이 루헹게리여서 지도에는 아직 루헹게리로 나온다).
산들이 가장 잘 조망되는 곳은 무산제에서 한 시간 쯤 더 가야 하는 비롱가 롯지이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올라가야 하는데 화산 건너편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전망이 좋다. 비룽가 화산지대의 산 3개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반대 편으로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1박에 600-700불이라 숙박하기엔 너무 비싸지만 전망을 보기 위해 들르는 것도 괜찮았다. 여기에는 '다이안 포시 map room'도 있는데 이 지역을 탐사한 탐험가 수십 명의 사진 자료가 있다. 독일인이 많았고 나머지는 영국인과 미국인이었다.
다이안 포시는 마운틴 고릴라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여성 과학자다. 내가 다이안 포시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서른 살이 되기 직전 무렵에 읽은 <유인원과의 산책>이라는 책에서였다. 침팬지와 제인 구달, 마운틴 고릴라와 다이안 포시, 오랑우탄과 비루테 골디카스, 세 영장류를 연구한 세 명의 여성 과학자에 관한 책이다. 연구자로서의 그녀들의 삶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녀들이 오랜 시간 관계 맺은 영장류, 그들이 보여주는 '인간성'(고귀함과 잔인함 모두)이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마침 그 무렵 인도네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서 그 책은 나를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 있는 탄중푸팅 국립공원으로 이끌어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오랑우탄을 만나보았고, 그 여행은 내게 자연과 인간, 환경과 보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선물해주었다. 르완다의 마운틴 고릴라, 탄지니아 곰베의 침팬지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먼 아프리카 르완다에 오리라고는 당시엔 생각하지 못했다.
무산제 초입에 다이안 포시 재단이 있다. 작은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는데, 전시 자료는 소략했지만 이 지역의 유일한 박물관이라 들를 만한 가치가 있다. 고릴라는 4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 마운틴 고릴라는 이 지역에만 남아 있다. 2층에는 다이안 포시와 관련된 자료가 있다. 그녀만큼 고릴라를 사랑한 이는 없었다고 한다. <유인원과의 산책> 중 지금도 기억나는 부분은 다이안 포시가 고릴라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했다는 사실이다. 다이안은 1985년에 결국 밀렵꾼의 총에 희생되고 말지만 그녀의 노력으로 마운틴 고릴라 보존이 시작될 수 있었다. 다이안 포시 재단은 미국쪽 기금으로 운영된다고 들었다.
D와 나는 마운틴 고릴라 투어는 신청하지 않았다. 가이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서 고릴라 무리를 한 시간 정도 보는 투어인데, 입장료가 자그마치 1500불이다. 2년 전에는 700불이었는데 그새 두 배로 올랐다. 우간다 쪽 투어는 600불이어서 우간다에 가서 고릴라를 보는 여행자도 많다고 들었다. 르완다 쪽 볼케이노 국립공원에서는 투어 가능 인원을 하루에 몇 십명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고릴라 무리가 몇 개로 나뉘어 있는데, 고릴라가 놀라지 않도록 여행자들을 약 열 명씩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서로 다른 무리를 관찰하게 된다고 했다.
한 시간 보는데 160만원이 넘으니, 세상에서 가장 비싼 투어일 것이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한다면 많은 인원이 여기를 찾는 것보다, 비싸게 받고 적은 수의 사람들만 허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서 고가 정책 자체에는 찬성하게 되지만, 그래도 너무 비싼 투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 때문에 D와 나는 투어를 섣불리 결정하지 못했고, 꼭 보고 싶으면 다음에 보기로 하고 이 일대를 그냥 둘러보았다.
한 시간에 1500불이 비싸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건 무산제를 다녀오고나서 찾아본 <비룽가>라는 다큐 때문이었다. 1500만원을 받아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마운틴 고릴라였다. <비룽가>는 2014년에 제작된 영국 다큐멘터리다. 나는 넷플릭스에서 보았지만, 알고보니 EBS 국제 다큐멘터리 축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었다. 다큐 <비룽가>는 르완다는 아니고 콩고 쪽 '비룽가 국립공원' 일대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을 다룬 다큐다.
마운틴 고릴라를 지키기 위해 콩고 쪽 국립공원 관리인이 자그마치 130명이나 희생되었다. 1994년 르완다 내전은 르완다에서는 종식되었지만 콩코 내전에 불씨를 보탠다(콩고 내전은 600만이 희생된 아프리카 최악의 내전이다). 르완다 학살의 주범들이 국경을 넘어 콩고 쪽으로 피신해서 또 다른 내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군벌들이 국경을 장악하면서 이 지역에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정부군과의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반군이 장악한 지역이 늘어나면서 비룽가 국립공원도 반군의 수중에 떨어진다. 게다가 국리공원 일대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다국적 기업까지 이 지역에 들어오고, 정부군, 반군, 다국적기업, 국립공원 관리인, 지역주민, 난민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가운데 국립공원 관리인들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고릴라와 자연을 지키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국적기업과 반군의 유착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그 위험지역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 대포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고 죽어가는 고릴라...... 석유는 다 캐고 나면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이 지역의 동식물과 고릴라는 영원하므로 반드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관리인들의 사명감...... 고릴라가 그냥 고릴라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비룽가의 마운틴 고릴라는 수백만 년 생물종 진화의 산 증거일 뿐 아니라 인류의 가장 가까운 사촌으로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존재였다.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존재일 뿐 아니라 우리 인류가 앞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보여주는 존재였다. 우리의 과거를 보여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지구에서 마운틴 고릴라를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 역시 지키지 못할 것이었다. 환경, 자연, 생명, 동식물, 이 소중한 유산을 돈보다 하찮게 여기는 '문명'이라면 그 문명이 종국에 나아갈 길은 분명해 보였다.
마운틴 고릴라는 단지 한 생물종이 아니라 이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가치의 상징'이었다. 피라미드 같은 어떤 문화 유산보다도 더욱 지킬 가치가 있는 지구의 유산이었고 우리 역사의 일부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가 이 자연과 우주의 역사의 일부일 것이다. 그 커다란 역사 안에서 마운틴 고릴라와 우리는 친구이자 형제이다.
*2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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