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 2 ㅡ 생명의 반짝임
잠시 잠깐 에덴동산에 다녀온 느낌. 세렝게티에서 보낸 24시간에 대한 내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멀리서 보면 단조롭고 다소 황량해 보이는 사바나의 풍경이 한 발 안으로 들어서니 밤하늘의 별빛처럼 생명의 반짝거림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자, 코끼리, 임팔라, 기린, 타조, 표범, 버팔로, 얼룩말, 하마, 하이에나..... 수많은 동물을 만났지만 가장 경이롭고 충격적인 만남은 초원을 가득 메운 와일드비스트(누)와 얼룩말 무리다.
나비게이트를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우리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시야가 닿는 모든 들판 위로 거대한 동물의 무리가 풀을 뜯거나 지나가고 있었다. 수만 마리는 족히 본 것 같다. 세렝게티에 와일드비스트가 백만 마리 이상, 얼룩말이 이십만 마리 이상 산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길에서 딱 하고 마주치는 행운이 올 줄은 몰랐다.
현지여행사 사장이 지금 동물이 많다고 세렝게티 하루 더 머물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을 껄 하고 후회했다. 세렝게티는 우기에 동물이 많지만 비가 오면 사파리 차량이 갈 수 있는 길이 제한되고 동물을 보기도 어려워서 우기인 지금이 비수기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기후로 날도 덥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많다고 했다. 우리가 갔을 때도 날은 좋았다. 우기면서 비가 오지 않는 날, 최적의 날에 세렝게티에 도착한 거다.
세렝게티는 아프리카에서 동물의 대이동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와일드비스트와 얼룩말 무리는 매달 조금씩 이동해서 세렝게티에 건기가 시작되는 여름이면 물을 찾아 케냐의 마사이마라로 넘어간다(세렝게티 국립공원과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은 붙어 있다). 7월, 백만 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한꺼번에 강을 건너 마사이마라로 가는 모습은 이 일대의 제일 장관으로 이때 케냐 쪽엔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마사이마라로 갔던 동물들은 11월부터 남하하여 다시 세렝게티에 내려온다.
우리가 아무리 환호성을 질러도 운전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어서 가야 한다며 우리를 재촉했다. 숙소 멜리아 세렝게티 롯지는 세렝게티 중심부에서 1시간 정도 더 들어가야 해서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가이드 겸 운전사는 여기 수백 번도 넘게 온 숙련된 분이었다. 세렝게티 대평원을 질주하면서도 귀신 같이 동물이 있는 곳을 잘 찾아내어 우리는 볼 것을 다 보면서 달렸다. 동물들은 제각기 자기 영역이 있었다.
그 많던 동물이 갑자기 싹 사라지고 정적이 감도는 곳, 그곳이 바로 사자의 영역이다. 처음 사자를 만났을 때, 함께 간 D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사파리 차량 윗문을 닫으려 했다. 공포에 질린 그 모습이 내겐 사자보다 더 큰 웃음을 주었다. 운전사가 괜찮다고 말리는 데도 D는 계속 문을 닫으려 했고, 사자가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자 그제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세렝게티에서 사자를 총 여섯 번 만났다. 모두 늘어지게 낮잠 자는 사자거나 막 잠에서 깬 사자다. 여기 삼천 마리 산다고 하는데 초식동물이 이렇게 많으니 사자 개체 수도 많은 듯했다. 먹이가 풍부해서인지 사자는 사람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그에게 우리는 그저 배경일 뿐인 듯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잘 때도 한 마리는 보초로 세워두긴 했으나 사자는 역시 동물의 왕이었다. 배를 하늘에 향한 채 누워서 세렝게티에서 그 어느 동물보다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했다. 하이에나는 세 번, 표범은 멀리 있어 쌍안경으로 한 번 보았다.
롯지 도착 전 마지막 30~40분은 체제파리가 달려드는 구간이었다. 사파리 차량 윗문을 닫고 앉아서 우리도 그제서야 휴식을 취했다. 몇 시간째 달리는 차에 서서 바람을 맞았지만 초원을 별빛처럼 수놓은 수많은 동물과의 만남에 감동해 피곤한 줄도 몰랐다. 우리는 숙련된 운전사 덕분에 어둡기 전에 멜리아 롯지에 도착했다. 저녁 6시 반쯤 되었다. 롯지에서 웰컴드링크보다 더 큰 선물은 롯지 바로 앞 연못에 물을 마시러 온 네 마리 코끼리 가족이었다. 코끼리들을 구경하고 로비로 돌아오니 금새 주위가 깜깜해졌다.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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