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이야기/탄자니아

세렝게티 3 ㅡ 우리가 잊고 있던 지구, 세렝게티 국립공원

릴라~ 2019. 6. 22. 02:28

먼 길을 힘들게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세렝게티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더 들어와야 하는 멜리아 세렝게티 롯지는 그만큼 더 고요하고 장엄한 장소에 있었다. 대평원 한가운데 언덕 위에 자리잡아 주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주위에 다른 인공물은 아무 것도 없어서 아침에 눈을 뜨니 마치 캠핑을 하는 것처럼 대자연 속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비수기라 다른 숙박객이 없어서 더욱 한적한 느낌이었다. 덕분에 성수기의 3분의 1 가격에 묵을 수 있었다. 
 
세렝게티의 풍광은 물론 특별하다. 하지만 지구엔 이보다 훨씬 장대하고 다이나믹한 풍경이 많다. 세렝게티의 특별함은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무수한 존재들, 그 생명의 깜박거림 때문이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도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있겠지만, 내 눈에 비친 이 생령들의 몸짓은 다만 아름다웠다. 이 지상에서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겠지만 그 잠깐 동안 빛을 내고 있었다. 생명이란 잠깐의 빛이었다. 
 
오전 사파리는 인근 물가에서 시작되었다. 어제 봤던 수많은 얼룩말과 와이드비스트 한 무리가 연못 주위에 모여 물을 마시고 있었다. 더위가 힘들기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나무마다 여러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햇살을 피하고 있었다. 다정하게 사랑을 나누는 녀석들도 있고 드러누워 흙에 몸을 비비는 녀석도 있고 각양각색이었다. 녀석들에게는 즐거운 한 때로 보였다. 
 
호숫가를 떠나 작은 물줄기를 따라 가며 하마와 임팔라 무리를 보았다. 어제 주로 초원을 보았다면 오늘은 작은 덤불숲이 곳곳에 있었다. 물이 있어 그런 듯했다.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대지 위의 동물들은 마치 천지창조의 그 순간처럼 생기를 띠고 있었다. 자연이 살아있어 피부에 닿는 모든 촉감이 생생했다. 순간순간 공기와 빛과 온도가 달랐고 그 감각이 전해질 때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몸을 떨었다. 우리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진짜 지구별의 모습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와일드비스트는 한 줄로 서서 저 지평선 너머로 뛰어가고 있었다. 줄이 얼마나 긴 지 끝이 없었다. 중간중간에 새끼도 있었다. 뒤에서는 천천히 걷다가 간격을 맞추기 위해 중반부부터는 다들 달리고 있었다. 줄 맞춰 이동하는 것도 신기했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와일드비스트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비로웠다. 
 
어느새 시간은 점심 때에 이르렀다. 나비게이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운전사는 다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날이 점점 흐려져서 하늘엔 점차 구름이 덮였다. 곧 비가 올 듯 싶었다. 흐린 하늘 아래 노랗게 빛나는 초원의 풍경은 어제와 또 달랐다. 우수가 깃든 그런 아름다움이랄까. 나는 차량에 서서 내가 본 모든 풍경을 마음에 꼭꼭 눌러 담았다. 돌아가는 길은 세렝게티 주 도로로 어제 왔던 길보다 나비게이트까지 더 빠른 길이다. 가면서 세로네라 공항의 모습도 보았다. 세로네라는 활주로가 따로 없어서 말 그대로 대지 위에 그냥 착륙한다고 한다. 
 
정확하게 오후 3시 5분 전, 우리는 나비게이트에 도착했다. 운전사가 사무소에 체크하는 동안 늦은 점심을 먹었다. 멜리아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이었다. 마치 잠깐 꿈을 꾼 듯이 세렝게티에서의 24시간이 끝이 났다. 응고롱고로 심바 캠핑장까지 여기서 다시 세 시간쯤 더 달려가야 한다.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사이에 유명한 올두바이 계곡이 있다. 무식하게도 몰라서 놓쳤다. 올두바이 계곡은 꼭 가고 싶었던 곳인데 사진을 보니 사막지대처럼 보여서 세렝게티 인근에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이런 바보같은!!!). 탄자니아가 워낙 큰 나라여서 어디 다른 지역이거니 했다가 놓쳤다. 위치를 검색해보지 않은 내 실수다. 올두바이 계곡은 초기 인류 화석이 대량 발굴된 곳으로 루이스 리키 박사가 발굴 작업을 지휘했다. 제인 구달도 다이안 포시도 모두 그의 제자이다. 최초의 인류 '루시' 화석은 에티오피아에 있다. 
 
세렝게티가 속한 동아프리카 일대는 인류의 발상지기도 하다. 내겐 이곳이 로마나 예루살렘, 혹은 메카보다 더 의미 있었다. 생명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곳이 인류의 진정한 성지 같았다. 인간도 인간의 마음도 모두 이 생물권의 자장으로부터 태어났으므로. 세렝게티는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신성하고 경이로운 장소이다. 세렝게티의 숱한 동물들은 내게 단 하나의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었으며 앞으로도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고. 
 
 
**2019년 4월 여행

https://youtu.be/NdUptTr3vfg


 

 

 


https://sheshe.tistory.com/m/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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