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 (2) ㅡ 노예무역의 어제와 오늘
아프리카에 오기 전엔 노예무역이라고 하면 그저 백인들이 흑인들을 많이 잡아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의 절반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16세기 이후 대서양 노예무역이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그 이전 시대에도 아프리카 사람들은 북아프리카, 중동, 인도 등지로 노예로 팔려갔다. 그리고 이 노예무역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은 아프리카 사람들이었다.
노예무역은 아프리카 노예사냥꾼들과 유럽 혹은 아랍 노예상인들 상호간의 이익이 맞아떨어져서 이루어졌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전쟁에 진 다른 부족 사람들을 이들 백인 노예상인들에게 팔아 이익을 챙겼다. 노예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노예사냥꾼들에게 총기를 지급한 건 유럽인이었으므로 이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의 협조 없이 노예무역이 지탱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몇 백 년 이상 지속된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의 발전을 정체시켰다. 18세기에 다른 대륙에서 인구가 크게 증가하는 동안에도 아프리카는 인구가 정체되었으며 이것이 아프리카의 건강한 사회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주장도 있다. 워낙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예사냥은 일부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수십 세대에 걸쳐 아프리카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 잡혀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의 정상적인 발전과 통합을 가로막았다. 지금도 계속되는 아프리가 부족간 불신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잔지바의 노예무역은 잔지바가 영국령이 되던 1890년 종식되었다. 옛 노예시장터에는 성공회성당이 들어섰다. 성당 안에는 노예제 폐지를 위해 애쓴 탐험가 리빙스턴을 기리는 푯말도 있다. EU가 지원해 만든 기념관에서 노예무역의 대략적 역사를 보았다. 그 지하에는 잡혀온 노예들을 말 그대로 '보관'해온 장소가 있다. 좁은 공간에 수백 명의 노예들이 갇혔던 그곳은 지금 봐도 처참해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흔히들 기계문명을 비인간적으로 묘사하지만, 기계가 등장하기 전, 노예노동에 의지했던 시절의 잔혹함은 그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
기념관의 마지막 전시물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 잔존하는 노예노동의 현실에 대한 내용이었다. 최소한 삼천 만 정도의 인구가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Top 10 국가는 인도, 중국,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나이지리아, 콩고,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태국이었다.
오늘날 노예노동은 이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온세상에 저임금 노동자들을 양산했다. 문화의 자연스러운 교류는 물론 필요하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단지 '돈' 때문에 자신이 살던 곳에서 뿌리뽑혀 전세계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현실은 다문화의 긍정적인 요소와 아무 관련이 없다. 사람을 아무데서나 가져와서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시스템일 뿐이다. 세상은 한편으로 보면 굉장히 진보한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과거의 모든 문제가 약간 버전을 달리하여 무한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다.
**2019년 4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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