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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시와 소설

사라의 열쇠 - 티티아나 드 로즈네

by 릴라~ 2012. 3. 11.

'최고'라는 감탄사가 아깝지 않다. 읽는이로 하여금 '사라'라는 한 여인을, 그가 겪은 아픔을, 밸디브 사건을 결코 잊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기억할지어다. 결코 잊지 말지어다." 

홀로코스트의 만행은 나찌만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비쉬 정부하에 프랑스 경찰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프랑스인이라면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학살이 자행되었다. 수만이 넘는 사람이 희생되었는데, 그 가운데 절반이 어린아이였다.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나찌가 요구하지도 않은 어린아이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990년대가 되어서야 시라크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했던 밸디브 사건이다. 이 소설은 밸디브 사건을 배경으로 '사라'라는 프랑스 국적의 유대인 소녀의 삶을 추적하는 소설이다. '안네의 일기'에서 안네는 십대에 목숨을 잃지만 이 소설은 기적적으로 탈출한 사라의 이후 삶의 여정을 그렸다.

이 소설의 탁월한 점은 사라의 이야기와 함께 60년 후 그 비밀을 파헤치는 여기자 줄리아의 오늘의 삶의 이야기(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가 나란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과거와 현재의 이와 같은 교차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사건이 우리의 오늘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오늘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에 대한 보다 깊고 풍부한 의미를 전달한다. '진실'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변화시키는 건 바로 그 진실이다. 줄리아는 사라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신의 삶의 거짓을 꿰뚫어보게 되고 남편과 헤어져 자신의 길을 간다. 사라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녀의 용기는 그녀와 마주친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양심을 시험하는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선물로 받아들인 이들은 인간이 짐승으로 변해버린 시대에도 지극히 아름다운 '인간의 길'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아무리 애써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의 악행은 결코 지워지지 않으며, 평생 그로 인한 고통을 짊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고통이 있음을 작가는 유대인 소녀 사라의 삶을 통해 아프게 전해주었다. 줄리아를 비롯하여 줄리아의 시아버지와 시할아버지, 사라를 구해준 노부부, 사라의 아들 등 그 고통에 응답한 이들은 사라가 자기 삶을 변화시켰음을 안다. 우리가 타인의 아픔을 알아야 하고 그것에 다가가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아프지만 아름답다. 그것은 우리를 이 세상 속에 보다 굳건히 서 있게 하고 이 세상 다른 것들과 보다 깊게 연결되도록 하는 변화이다. 그래서 줄리아는 남편의 반대를 물리치고 딸을 낳기로 결심하며 십오년간 줄리아를 형식적으로 대했던 줄리아의 시아버지는 줄리아와 깊은 우정을 맺게 된다. 사라의 아픔에 공감한 이들은 과거와 절연되지 않고 오늘의 자신들을 있게 한 모든 것과 더불어 참되게 살아가는 길을 배운다.

이 소설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비극을 전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 비극에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고자 하는 이들의 용기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겪은 내적 변화를 한데 버무려 보여주는 역작이다. 사라의 삶과 줄리아의 삶이 겹쳐지고,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자잘한 일상사가 겹쳐져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미국인이면서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 줄리아의 프랑스를 바라보는 이방인의 시선과 밸디브를 불편해하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프랑스인들의 시선이 교차하고, 사라를 둘러싼 다양한 이들의 시각이 교차하면서 우리 삶을 한층 깊은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대목, 줄리아와 윌리엄(사라의 아들)의 만남과 이들이 나눈 대화는 울컥하면서도 한없이 따스했다.



사라의열쇠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타티아나 드 로즈네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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