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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발리 2. 올드 발리, 아메드 누군가 제게 발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묻는다면, 아메드(Amed)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발리섬 동쪽 끝에 위치한 조용한 어촌마을, 아메드. 올드 발리라 불릴 만큼 토착 주민들의 삶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지요. 하얀 백사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메드의 바다에는 호텔 전용 비치에 없는 자연스러움과 활기가 있답니다. 아메드에선 대부분의 시간을 마을 꼬마들, 청년들과 함께 어울려 장난치고 수영하며 보냈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아메드의 바다는 제게 파이브 스타 호텔 비치에서 보냈던 그 어떤 시간보다 훨씬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한낮의 햇살을 피해 수영은 주로 새벽이나 밤에 했어요. 새벽, 린자니 산 위로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좋았고, 깜깜한 밤중에 바닷물에 얼굴을 담그고 플랑크톤을 .. 2003. 11. 2.
[인도네시아] 발리 1. 발리에 가신다면 여행을 하면서 갔던 곳을 다시 찾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팍팍한 도시 속에서 열대의 자연은 그리움으로 남았나 봅니다. 발리엔 두 번의 발걸음이 미쳤습니다. 때묻지 않은 자연을 원하는 이라면 발리에서 실망을 안고 떠날지도 모른답니다. 특급 호텔이 백 팔십여 개나 될 만큼 발리는 개발된 섬이니까요. 또한 바다만이 목적이라면 발리보다 더 좋은 곳이 많을 거예요. 발리의 바다는 평범하거든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리는 여전히 매력적인 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바 섬에서 출발해 칼리만탄을 거쳐 술라웨시의 내륙 또라자 마을로 이어지는 지친 여정 끝에 만난 곳이 발리. 그래서 그런지 발리의 첫인상은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면서 발리의 분위기에 서서히 동화되어갔고 그래서 열흘을 내리 쉬게 .. 2003. 11. 1.
[인도네시아] 마하깜 2. 혼자서 관람한 다약 마을의 전통 춤 보르네오, 마하깜 강, 다약족 (2) : 혼자서 관람한 다약 마을의 전통춤 (▲롱하우스) 강을 따라 길은 계속되어 저녁 무렵에 드디어 다약족 마을 탄중이수이(Tanjung Isuy)에 닿았다. 칼리만탄의 원주민인 그들은 말레이계 사람들이 해안 지대를 차지하면서 내륙의 고원이나 강으로 이동했다. 토착 종교는 애니미즘이지만 기독교로 많이 개종했다고 한다.숙소에 여장을 풀고 마을의 롱하우스를 둘러보았다. 원래 다약 사람들은 롱하우스에서 함께 살았지만 그건 이미 옛날 이야기다. 가이드북의 설명에 의하면 현재 이 일대에 있는 롱하우스들은 관광객을 위해서 70년대부터 지방 정부에서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독특한 조각이며 군상들이 무척 매력 있었다. 일부 다약족은 마을에 살지 않고 정글 속에 흩어져 살아가.. 2003. 10. 6.
[인도네시아] 마하깜 1. 거대한 강 마하깜을 따라서 보르네오, 마하깜 강, 다약족 (1) 거대한 강 마하깜을 따라서 ▲ 마하깜 기회 닿는 대로 이곳 저곳을 많이 돌아다녔지만 칼리만탄(보르네오의 인도네시아 영토) 여행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쉽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탄중푸팅 다음의 목적지 마하깜(Mahakam) 여행은 특히 힘들었다. 마하깜, 보르네오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 'River life'를 빼놓고 칼리만탄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강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터전이자 곧 길이다. 도로 대신에 강을 통해서 칼리만탄 내륙 구석구석까지 연결된다. 탄중푸팅에서 다시 반자르마신으로 돌아와 마하깜 여행의 출발지 사마린다(Samarinda)로 떠날 채비를 했다. 내가 묵었던 보르네오 홈스테이 주변 지리는 이미 눈에 훤했고, 동네 사람들도 마주칠 때마.. 2003. 9. 30.
도시민 유혹하는 산골마을 예술성당 여름축제 도시민 유혹하는 산골마을 예술성당 여름축제 올 여름엔 평창 대화로 오세요 ▲ 대화성당 전경 ⓒ 대화성당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들에게 힘을 곁들여 주는 것이다. - 시몬느 베이유 강원도 산골 마을에 이렇게 예쁜 성당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대화성당은 예술성당이라는 별칭만큼이나 구석구석 섬세한 손길이 미치지 않은 데 없는 하나의 완벽한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힘이고 생기입니다. 불교 신자가 아니지만 명산 자락에 조화롭게 들어앉은 우리네 절집들은 늘 내게 평온과 위안을 안겨 줍니다. 그에 반해 20세기 사람들이 돈으로 새단장한 무술 영화 세트장 같은 사찰들, 첨탑이 그저 눈을 아프게만 하는 국적 불명의 교회 건물들은 우리에.. 2003. 8. 7.
천 년의 숲으로 우리 꽃을 보러 오세요 - 평창 한국자생식물원 천 년의 숲으로 우리 꽃을 보러 오세요 평창 한국자생식물원 ▲ 재배 단지 오대산을 몇 번이나 지나가면서도 이곳을 알지 못했어요. 지난 주말 평창에 들렀다가 야생화 집산지라는 그 지역 분의 소개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발걸음이 미쳤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자락에 위치한 한국자생식물원, 특별히 우리 고유의 꽃들만 모아 놓은 곳이랍니다. 우리 엄마 어렸을 적에는 도랑 가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야생화였다지요. 계절마다 온갖 꽃들이 피고 지고, 가을에는 갈대가 무성하고, 습지마다 풀꽃이 가득했다 하는데, 패랭이 같은 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는데, 그 모습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세요. 산에 가도 외래종들에 밀려 우리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하세요. 그래서 그런지 식물원에서 엄마는 내내 옛 추억에 빠져들.. 2003. 7. 20.
[인도네시아] 탄중푸팅 2. 오랑우탄 보호 센터에서 리키 캠프까지 탄중푸팅에서 만난 숲의 사람 (2) 오랑우탄 보호센터에서 리키캠프까지 ▲ 탄중하라판의 오랑우탄 탄중푸팅(Tanjung Puting)에서의 첫 아침, 천지를 진동하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잠을 깨었다.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신선하다. 운좋게도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커다란 ‘혼빌’을 볼 수 있었다. 날이 밝아 첫 번째 캠프 탄중하라판(Tanjung Harapan)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이곳 주민인 다약족은 오랑우탄 사냥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루테의 설득과 요청으로 마을은 공원 밖으로 이주하였고 이 지역은 1982년 이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현재 탄중하라판에는 오랑우탄 보호 센터가 있으며 네 살에서 다섯 살 정도의 새끼 오랑우탄들이 산다. 모두 어미를 잃은 고아들이다. 캐나다 출신의.. 2002. 12. 30.
[인도네시아] 탄중푸팅 1. 보르네오 오지의 탄중푸팅 국립공원을 찾아서 탄중푸팅에서 만난 숲의 사람 (1) 보르네오 오지의 탄중푸팅 국립공원을 찾아서 '제인 구달'을 기억하는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곰베에서 무려 30년 동안 침팬지를 연구하며 침팬지의 출생에서 사망까지를 전부 지켜본 여성 인류학자이다. 관찰 대상에 감정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기존 과학의 통념을 뒤엎고, 야생 침팬지와 관계 맺음을 통해 동물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펼쳐보였다. 행동 과학의 아인슈타인이라고까지 불린다. 제인의 뒤를 이어 같은 길을 걸어간 '다이안 포시'와 '비루테 골디카스'도 있다. 다이안은 르완다에서 18년간 마운틴고릴라를 연구하며 그들을 멸종 위기에서 구하려고 노력하다가 밀렵꾼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비루테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의 밀림에서 오랑우탄 연구에 몰두했다. ▲ 표지 을 읽으.. 2002. 12. 23.
대구 동성로 유세장을 다녀와서 대구 동성로 유세장을 다녀와서 지난 토요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의 유세장에 갔습니다. 제가 그를 직접 보러 갈 만큼 이번 선거 과정은 의미 있고 신선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 속에 네 시 반 쯤 대구 백화점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곳에는 미선이 효순이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전시된 사진을 보고 있으며, 서명에 참가하는 이도 많습니다. 그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맥도날드와 버거킹 건물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유세 예정 시간인 다섯 시가 되자 미군 부대까지 갔던 촛불 시위 행렬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위는 무척 혼잡했습니다. 집회 신고서를 제출했으니, 선거 차량은 나가 달라는 시위 주최측의 방송이 들렸습니다. 민주당, 민노당, .. 2002. 12. 9.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아이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아이 아이들이 입학한 지 채 며칠이 되지 않은 어느 날, 벌써부터 우리 반 녀석 하나가 교무실에서 무릎꿇고 벌을 서고 있었다. 체육 선생님이 다가 와서 카드 놀이하는 것을 보고 빼앗아 왔다며 혼이 단단이 나야겠다는 말을 전했다.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눈치만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눈에 띄는 아이였다. 서른 셋 중에서 유난히 까불고 장난을 많이 쳤을 뿐 아니라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아이였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도 특이했다. @@이. 다른 학생 같았으면 따끔하게 야단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이 얼굴을 보니 가슴 한켠이 아렸다. 게다가 처음이니 너그럽게 봐주자 싶었다. 일으켜세우며 집에서 하고 학교엔 가져오지 말라고 부드럽게 이른 다음.. 2002. 11. 3.
[인도] 델리에서 간디를 생각하며 '01 델리는 인도 여행의 종착지였다. 그간 인도에서의 익숙치 않은 경험을 가슴에 담고, 네팔 히말라야의 설산을 뒤로 하고 드디어 델리에 왔다. 델리는 수도답게 번화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뉴델리의 거리는 무척 화려해서 서구의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갑자기 대로에 등장하곤 하는 코끼리나 우마차 등이 이곳이 인도임을 때때로 확인시켜 주었다. 델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연, 우리는 회사 파견으로 델리에 머물고 있는 한 친절한 한국분을 만났다. 마침 귀국 날짜가 다가오니 한국이 더 그립다면서 우리를 그의 집에 초대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덕택에 '바산트 비하르'에서 며칠 머물렀다. 서울로 치면 압구정동 같은 곳이다. 거기는 또다른 인도였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수없이 마주친 가난과 비참함하고는 담 쌓.. 2001. 2. 28.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걷다 '01 바라나시에서 국경 도시 소나울리까지 덜컹거리는 버스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밤이 되어서야 소나울리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두웠다. 두 발로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어둠 속에서 관문을 지날 때 무척 감격했다. 드디어 네팔, 히말라야에 한 걸음 다가온 것이다. 북인도 도시의 매연에 지쳐 있었기에 산이 더욱 그리웠다. 국경 사무소에서 비자를 발급받고 그날은 그곳에서 묵었다. 날이 밝자 포카라행 버스에 올랐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마주치는 시골 풍경은 인도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버스에 속속 올라타는 이들의 얼굴은 한결 친숙했다. 꼭 한국 사람같은 몽골리안들도 더러 있었다. 포카라의 레이크 사이드는 이름난 관광지임을 실감케 했다. 서구풍의 건물과 레스토랑들이 빼곡이 들어차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2001. 2. 28.
[인도] 체념이 흐르는 강, 갠지스 '01 바라나시에서 우리가 느낀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바라나시는 혼돈 그 자체였다. 우리가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거기엔 없었다. 갠지스 강을 따라서 어쩌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버린 것인지도... 릭샤를 타고 힌두교 사원을 몇 군데 돌면서 나는 내 느낌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내세가 현세를 완전히 뒤덮은 곳, 인도. 마음을 다해 신께 기도하는 누추한 사람들의 눈빛에서 내가 본 건 체념이었다. 거기엔 어떤 희망의 자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삶은 고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을 목격하는 것이 내게 고통이었다. 어서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다. 갠지스강을 인도 사람들은 강가라고 부른다. 강을 따라 계단으로 된 가트가 죽 이어져 있다. 우리는 릭샤꾼의 안.. 2001. 2. 27.
[인도] 바라나시 가는 길 '01 바라나시 가는 길은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어머니의 강 갠지스는 쉽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제는 붓다가야에서 기차가 아니라 버스를 택한데서 시작되었다. 관광 안내소에 문의하니 버스도 기차처럼 네 시간이면 간다고 했다. 그래서 여정에 지친 우리는 새벽 기차 대신 낮에 여유있게 버스 정류장으로 간 것이다. 정류장에서부터 황당한 일이 펼쳐졌다. 시골이라 아무도 영어를 못한다. 다들 우리를 에워싼 채 인도인 특유의 표정으로 재미었어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서로 자기 버스에 타라고 난리였다. 우리는 바라나시만을 외쳤고 몇 번이나 맞다고 다짐을 받은 끝에 한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갔다. 버스엔 시골 사람들이 계속 오르고 내렸다. 영어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사에게 .. 2001. 2. 27.
[인도] 붓다가야, 부처님이 열반하신 곳 '01 인도의 안개, 오전 10시까지 짙게 내리깔리는 그 안개를 처음 본 게 붓다가야지 싶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내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게 하던 안개. 캘커타를 떠나 밤새도록 달린 기차는 어스름한 새벽녘, 가야에 닿았다. 가야 역에서 내려 붓다가야까지 오토 릭샤를 타고 가면서 우리는 안개 속에서 북인도의 농촌 풍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초가집들, 소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벽이며 담벼락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소똥, 그리고 아이들의 천진한 눈동자. 강변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 안개 자욱한 아침의 표정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부처님이 도를 닦을 만한 곳이란 느낌도 얼핏 들었다. 마을 옆으로 강이 흐르며 몽실몽실한 산도 저 멀리 보인다. 한 시간 쯤 후 작은 마을 붓다가야에 도.. 2001.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