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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교육 관련

학교를 칭찬하라 - 요아힘 바우어

by 릴라~ 2009. 12. 20.
학교를 칭찬하라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요아힘 바우어 (궁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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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사회에서라면 학교는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학교의 역기능은 다녀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테니. 공동체에서, 삶 속에서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학교 없는 사회'를 주장한 일리히가 구상한 대로 가르치고 싶은 사람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자발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그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때로 헛갈린다. 학교를 뜯어고쳐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공교육 시스템이 시효를 만료했다고 보고 밖에서 배움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우리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한다면 당연히 후자겠지만, 대중의 현실을 생각하면 전자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튼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현대 사회, 매스컴과 소비 문화가 지배적인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을 그냥 풀어놓으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저질 상업 문화 속에 또다시 갇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모든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청소년들을 구해내기 위해 학교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교사들이 이 구조에서 어떻게 자신의 영혼을 지키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이야기한다.

교실붕괴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세계적인 것 같다. 독일의 경우 80년대까지만 해도 교사들은 교실을 장악했지만, 90년대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68혁명 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자유주의 교육을 선호했는데,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규율을 익히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한다. 저자는 사람보다 규칙과 규율을 우선시하는 과거의 방법에 단호하게 반대하면서도, 학생들이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힘’으로서의 규율을 이야기한다. 삶의 동기, 기쁨,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자세는 저절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규율은 학교를 ‘미래를 위한 안전한 배움의 장소’로 만들기 위한 규율, 예술가가 지니고 있는 규율이다. 현재 우리 나라 학교는 천하 쓸데없는 두발 단속 같은 것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정한 힘은 길러주지 않는다. 온갖 불필요한 규제는 많으면서, 민주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규율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는 청소년들에게 소외되고 배척당한다는 감정을 강화시켜줘서는 안 된다."(pp39)
"아동과 청소년들은 이해심과 지도, 두 가지를 원한다."(pp69)


그리고 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압력'과 '유연'이라는 조정 방법보다 '공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압력만 가하는 것은 병든 아이들을 양산해내고, 연습에 의해서 교육받은 사람들을 형성하는 '유연'의 방법은 연습 도중의 궁핍의 기간 동안 아이들이 지칠 염려가 있다. 이 때는 주변 관계를 통해 자극과 용기를 얻어야 배움을 지속할 수 있다. 저자가 추천하는 방법은 '공명 체험'이다. 교육자들이 스스로 특정문제와 목표에 열광할 때, 그 불꽃이 아이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

이는 신경생물학적 바탕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거울신경세포'가 있어서 뇌에서 행동만이 아니라 느낌과 감정까지 복제하는데, 이러한 체계를 통해 함께 있거나 친밀한 사람들의 '상'이 지속적으로 아이들의 머릿속에 복사된다는 것이다. 거울세포를 통해 공명이 일어나면 교사들의 호기심과 열광이 아이들에게 고스란이 전달될 수 있고, 이것이 때로 기적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저자는 교사들에게 자신의 본모습대로 존재해도 좋다고, 아니 본모습대로 존재하라고 말한다. ‘고유한 성격이 있는 사람’, ‘특징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개인적 정체성이 없는 '중립적인 기계'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없다고. 아이들은 완벽한 인간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어른으로서 빛을 발휘하고 본보기의 기능을 충족시키려면 생명력 넘치고, 삶을 사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목표를 위해 열정을 바칠 수 있고, 옳다고 믿는 삶의 양식과 가치들을 위해 나설 줄 알아야 한다. 이때 어른들은 인간적이어야 하며, 결코 폭력을 동원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자신의 약점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와 같은 특성을 가진 부모와 교육자들은 인간적인 '실수'를 많이 해도 되는데, 왜냐하면 완벽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독특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pp35)


학교를 즐거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음악과 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에도 공감했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도 즐겁게 다닐 수 있는 학교는, 오후 시간에 음악과 춤, 운동에 맘껏 빠져들 수 있는 곳일 게다. 그리고 이러한 감성적 공간이 지적인 면에 치우친 배움에 조화와 균형을 부여해 줄 수 있다. 우리가 삶의 기쁨과 재미를 느끼는 것은, 많은 부분, 우리 몸이 다른 리듬에 젖어들 수 있는 춤과 음악, 운동을 통해서다. 춤과 음악이 없는 교육, 메마른 교육, 그것이 한국의 중등학교다.

얇지만 학교교육을 둘러싼 제반 문제들을 두루 짚어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좋은 책이다. 모든 교사들에게 권하고 싶다.

"교육은 삶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바로 삶이다." (존 듀이)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영원한 낙관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필립 비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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