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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시와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최인호

by 릴라~ 2011. 8. 1.



왠지 하루키의 1Q84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3권은 보지 못했지만). 인물들이 출구 없이 막다른 상황에 놓인 것도 그렇고, 이방인처럼 겉돌며 살아가는 것도 그렇고, 분열증-정신 질환이라기보다는 정체성의 분열-을 겪고 있는 것도 그렇고. 인물들이 느끼는 세계가 조화롭고 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파편화된 부스러기들의 모음과 그 부스러기들의 우연하면서도 필연적인 마주침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성적 묘사가 주인공의 심리를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점도 그렇고. (스포일러 있음)


더없이 질서정연하고 익숙했던 세계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붕괴하면서 주인공 K는 혼란에 빠진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고, 주변 사람들조차 아주 낯설게 다가오거나, 낯선 타인의 얼굴이 익숙한 얼굴로 다가온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K는 자신이 자신임을 믿을 수 있는 단서를 하나씩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그는 예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고 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던,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마구 침범해 들어오는 세계의 다른 조각들과 마주치기 시작한다. 

K의 추적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 아닌 남과 소통이 가능한 것인지를. 나 자신과는 소통이 가능한 것인지를. 우리는 타인의 풍경도, 자신의 풍경도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를... 주인공 K가 만나는 아내의 두 모습엔 그의 아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없다. K1과 K2 사이에도 공통점이 없다. 동일 인물임은 확실하지만 전혀 다른 곳을 살고 다른 곳을 본다. 우리는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도, 자신의 내면을 이해할 수도 없다. 다만 K는 누이를 비롯하여 자신에게 소중했던 것들을 추적하면서 자신이 분열된 존재임을, 우리가 결코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각자의 내면이 이 세계에 병존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구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하철에 뛰어든 세일러문 소녀에게 몸을 던졌을 때 비로소 K1과 K2는 하나가 된다. 죽음을 통한 해방이라고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K는 가족을 포함한 일상의 익숙한 모든 것이 본질을 감추고 한 조각만을 자신에게 드러냈음을 알아가는데, 일탈 행위로 키스방에서 만난 세일러문 소녀에게서도 그와 같은 부조화를 느낀다. 그 모든 관계는 서로 겹쳐지지 않고 미끄러지기만 하고, 그래서 K에게 '악취'를 남긴다. 그래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다. 그 도시에서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없이 이니셜로만 존재한다. (거기 나오는 단 하나의 이름은 '올렝카'이다. P교수가 여자로 변신했을 때의 이름. 그것이 교수 내면의 한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었기에 이름을 썼는지도.)

K가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 타자에게로 기꺼이 몸을 던졌을 때, 그 투신과 결단의 행위 속에서 K는 자신이 온전하다고 느낀 것이 아닐지. 우리 밖의 타자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지만, 그가 철로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기꺼이 몸을 날려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 위험을 무릅쓴, 모르는 너를 향한 나의 투신이 우리로 하여금 분열된 자신을 넘어선 곳에, 자신과 타인이 실존적 의미에서 함께 삶을 영위하는 세계에 이르게 하는 건 아닌지.



덧붙임)
모든 게 낯설고 혼란스러웠던 3일이 어쩌면 K가 시간을 시간답게 쓴, 가장 삶다운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작가가 암 투병을 하는 두 달 동안 썼다고 한다. 작가는 그 시간을 축복이라고 말했는데-암을 신의 은총이라 하는 건 오해의 소지가 커서 결코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굉장히 조심해서 쓸 말인데-  주인공 K가 겪은 것처럼 평소엔 보지 못하는 뫼비우스 띠의 반대쪽 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에서라면 공감할 수 있다. 



낯익은타인들의도시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최인호 (여백미디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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