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책 이야기/소설, 시

낭만과 현실 사이... (모순 / 양귀자)

by 릴라~ 2026. 5. 4.

서점 갈 때마다 의아했다.

아니 양귀자 소설이 베스트셀러? 그것도 1위?

20년이나 지난 소설이?

 

왜냐면 양귀자 소설이 내가 대학 다닐 때 베스트셀러였으니깐.

지금은 누래져서 버리고 없지만,

당시 '나는 내게 금지된 것을 소망한다' 이게 대인기였다. 

그런데 그때 소설이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라고?

'모순'은 못 읽었는데 읽어야지 벼르다가 이제야 읽었다.

그리고 소감은... 오 이 소설 상당히 괜찮은데?

역주행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국 버전이자 좀 더 세속적인 버전이랄까... 

이 책이 가벼움과 무거움을 화두로 삶을 논했다면

양귀자의 '모순'은 '낭만'과 '현실'을 화두로 존재를 논한다. 

주인공 안진진이 두 남자에게 양다리 걸치는 내용이라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상당히 철학적인 화두를 담고 있다. 

다 읽고 나면 진짜 인생엔 정답이 없고, 삶은 모순 그 자체구나를 느끼게 한다. 

 

일단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캐릭터가 분명하다. 

이랬다 저랬다 하거나 오락가락 하는 게 없다.

낭만파와 현실파, 딱 둘로 나뉜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이 분명한 캐릭터들이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갔을 때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가이다.

 

주인공 스물다섯 안진진은 낭만파와 현실파 이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물이다. 

시장에서 양말을 파는 엄마는 현실형 그 자체. 생활력 강한 인물이다.

안진진의 아빠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낭만형.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한 인물로 등장한다. 알콜중독자다.

조폭 흉내를 내는 안진진의 동생도 어설픈 낭만형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안진진의 이모(엄마와 쌍둥이)는 따뜻하고 순수한 낭만형 인물이다.

다만 이모의 낭만은 일상을 벗어난 순수한 감정의 영역에서만 존재한다.

이모부는 현실형인데 체제에 안착한 인물이다. 

기득권에 만족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틀 안에서 처리하는 인물. 

 

우리의 주인공 안진진은 이모를 동경하고 아빠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면은 낭만형이지만 엄마의 고생을 알기에

현실적으로 자기 단도리를 잘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안진진에겐 두 명의 애인이 있다. 

낭만형 김장우, 현실형 나영규. 

안진진은 순수하고 감성 풍부한 사진작가 김장우에게 끌리지만

동시에 안정적 기반을 갖춘 나영규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나영규는 이모부처럼 꽉 막힌 인물은 아니지만 

데이트는 물론 모든 것을 계획에 맞춰 하는 스타일이라

안진진이 새로움과 열정을 느끼지는 못하는 상대다. 

 

안진진은 감장우를 선택했다가 소설 말미에 그 결정을 뒤집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안진진이 현실에 기울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진진은 낭만이 유지될 수 없는 구조를 읽은 것 뿐이다.

김장우는 아빠처럼 무책임한 인물은 아니지만 너무 순수했기에

그 순수가 사회 속에서 좌절될 때 어떤 인물로 변할지 모른다고 안진진은 느꼈다.

안진진이 김장우에게서 아빠의 얼굴을 얼핏 느낀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이야기의 결론과 상관 없이

'낭만'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낭만형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읽고 나이 오십에 처음 깨닫게 되었다.

사회적 명예나 승진 같은 것 전혀 관심 없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지속하고자 하는 것 등이 모두

낭만에 더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무원이기에 이 낭만이 유지될 수 있는 기본 구조는 갖추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뭔가를 계속 추구해온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좀 더 낭만을 실현해야겠다 싶기도 했다. 

낭만이 순간으로 흩어지지 않고 삶 속에서 유지되려면 구조가 필요한데

낭만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는 갖춰졌다고 보기에. 

 

겉보기엔 모든 것이 완벽했던 이모의 삶은

낭만이 길을 찾지 못했기에 파국으로 치닫는다.

현실을 추구하다보면 낭만을 상실하고

낭만만 추구하다보면 현실에 발 디딜 수 없는 모순.

고생고생하며 살아온 엄마는 생의 활력이 넘치고

안락한 삶을 살아온 이모는 공허에 시달리는 모순... 

삶의 갖가지 모순들을 이토록 재미있게 그려낸 소설이 있었던가.

 

삶의 본질적인 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을 읽었다.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