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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99

[소설의 기술 / 밀란 쿤데라] __ 소설가는 실존의 탐구자 소설의 본질이 무엇인가. 소설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소설가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대부분 소설가는 작품으로만 이야기한다. 문학론은 평론가들의 관심사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보기 드문 소설론이다. 그 어떤 평론가보다도 소설의 본질을 명징하게 꿰뚫고 있다. 밀란 쿤데라는 세르반테스에서 카프카까지, 자신의 작품도 포함하여 근대를 관통해온 다양한 작품을 경유하면서 소설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목은 '소설의 기술'이지만 이 '기술'은 'art'의 번역이다. 예술로서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단 한 장도 버릴 게 없는 소설에 대한 훌륭한 철학적 고찰. ## 소설가 각자의 작품에는 소설의 역사에 대한 어떤 함축적인 통찰이, '소설이란 무엇인가'.. 2025. 3. 19.
[작은 파티 드레스 / 크리스티앙 보뱅] __ 독서에 대한 명상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누군가 책갈피에 꽂아두고 잊은 듯한 낙엽 하나에 눈길이 간다. 가을 어느 날, 낙엽 지는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은 걸까...  이 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시적이고 독창적이며 함축적인 에세이다. 독서에 대한 일종의 명상이라고나 할까. 독서를 명상의 경지로 끌어올린 내적 증언이자 가장 성스러운 예찬이다.  ## 그런데 때론 어떤 사람들에게, 더 적은 수의,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름 아닌 독자들이다. 가던 길을 남들이 포기하는 여덟 살 혹은 아홉 살 무렵에 이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독서의 길로 뛰어드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그 길이 끝이 없음을 알고 기뻐한다.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그들.. 2025. 1. 3.
[어떤 동사의 멸종 / 한승태] __ 2024년 최고의 에세이 올해 읽은 최고의 에세이가 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많이, 아주 많이 놀랐다. 첫째는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신춘문예 ?? 등에 백 번 넘게 떨어지고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는 것, 둘째는 그가 원재료에 유머와 역설을 섞어 맛깔스럽게 전해준 그 일터의 풍경이 너무 심란해서... 작가의 유머 덕에 읽을 때 때로 폭소를 터트리면서도 마음은 울고 있었다. 아 우리 노동 현장이 이렇구나... 직업 현장에 대한 르포나 객관적 기사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일하며 겪은 온갖 애환들이 펼쳐져 있기에 너무 재미있게,  혹은 저걸 어쩌나 하면서 읽었다.  가장 비인간적인 일터는 콜센터였다. 진상들이 존재함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AI가 등장해서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 2024. 11. 29.
[죽으면 못 놀아 / 페리도나] __ 슬픔을 해학으로 녹여낸 요양원 일기 이런 책을 읽으면우리 사회가 아직 건재하다는 생각이 든다.언론엔 온갖 절망적인 뉴스가 가득하지만사회 곳곳엔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구나 하는생각이 들게 하는 책. 이 책은 요양원에서 미술치료?를 맡은사회복지사의 요양원 일기이다.저자가 요양원에서 일하며 마주친 많은 순간들은그것이 잠깐이든 좀 더 긴 시간이든저자의 마음에 파문을 남기고 사색의 여지를 준다.치매 환자가 반 이상인 그곳이 어찌 보면우울의 집합체로 보이기도 하련만저자 특유의 명랑성은 그 속에서햇살 같은 유머의 지점을 포착하고읽는이를 웃고 울게 만든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다 재밌다.그리고 저자가 치매 어르신들과 진행한다양한 미술수업의 사진들은그 따스한 색감으로 우리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준다. 다 .. 2024. 8. 9.
[고미숙의 인생 특강 / 고미숙] __ 쾌락 중독 사회에서 길 찾기 아주 오래 전, 내가 삼십대 초반일 때 종묘 근처에 있던 수유-너머에서 고미숙쌤을 뵌 날이 생각난다. 개성 넘치는 분이었는데도 초면이지만 편안했다. 아마 이야기를 편하고 자유롭게, 권위 없이 하셔서 그랬던 것 같다. 이후 이분 책을 계속 읽어왔는데, 요새 책이 제일 좋다. 한 길을 꾸준히 가다보니 사회 전반을 통찰하는 눈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진짜 기여하는 분이고, 제대로 된 지식인이다. 고미숙의 인생 특강, 요 얇은 책은 강연을 다시 책으로 엮은 모양인데, 이분이 원래 입말 문제를 쓰지만, 이 책은 더 술술 잘 읽힌다. 이 쉬운 문장 속에 담긴 통찰은 절대 가볍지 않다. 지식을 기술지, 문명지, 자연지로 나누면서 이 풍요의 시대에 우리에게 무엇이 절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 2024. 5. 25.
[인간의 시간 / 이강산] __ 2023년 최고의 에세이 우리나라 절대 빈곤층이 사는 재개발지역, 그 재개발지역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몰리는 여인숙의 0.8평 짜리 달방.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고, 부엌도 없고, 좁고 불편한 공동 세면장과 공용 화장실이 딸린 집. 모기장을 치지 않으면 잠을 못 잘 만큼 바퀴벌레가 들끓고 폭우라도 오는 날이면 하수구가 넘쳐 오수가 방을 덮치는 집. 11가구가 모여 사는 그 대덕여인숙에 저자는 365일을 입주한다. 시대의 기록, 다큐 사진을 찍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사진보다 그들의 일상을 도와주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을. 작가는 사진은 잠시 잊고 그분들을 도와주면서 여인숙의 진짜 식구가 되고 친구가 된다. 그렇게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작가는 비로소 사진을 찍게 되고, 365일이 다 끝나고 .. 2023. 12. 21.
[다다다 / 김영하] __ 소설, 가장 깊은 소통 다다다, 가 뭔가 했더니 '보다, 읽다, 말하다' 세 권을 합본한 책이다. 작가는 소설이 가장 깊은 수준의 소통이라 말한다. 대화는 깊은 소통에는 한참 이르지 못한다고. 들뢰즈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의, 그리고 타인의 본질에 다다르는 순간은 예술만으로 가능하다고.가볍게 책장을 넘기며 이런저런 사색을 하기 좋은 책이었다. 2023. 12. 13.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 향봉] __ 지나간 모든 게 전생이고 다가올 모든 게 내생이다 어느 젊은 부부가 있었다. 일곱 살 외아들이 귀신이 보인다며 헛소리하고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병원도 가고 귀신 쫓는 굿을 해도 소용 없었다. 다른 무당을 찾아가니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는 사주라고 했단다.  향봉 스님은 그 아이 부모에게 큰 절을 한다. 이 아이는 자라서 나라의 큰 일꾼이 될 아이라서 그런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절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 어머니는 당황하여 이 아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냐고 묻는다. 스님은 답한다. 백새에 이를 만큼 장수를 타고난 아이라고.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스물 두 살인 지금 의대에 다니고 있다 한다.  한 시간이면 후루룩 다 읽는 가벼운 에세이지만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잔뜩 박혀 있다. 도력이 높은 큰스님의 책이라곤 믿기.. 2023. 11. 20.
[헤아려본 슬픔 / C. S. 루이스] __ 슬픔을 헤아리면 헤아리다, 이 단어를 생각케 한 책이다. 슬픔을 헤아리다… 우린 대개 슬픔에 압도되거나 눌릴 때가 많지 슬픔을 곰곰 헤아리기란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엄청난 슬픔과 상실 속에서도 그 슬픔을 헤아리고 기록한다. 그래서 작가겠거니 했다. 문학은 인간을, 인생을 탐구하는 과정이므로.  슬픔을 헤아릴 때, 슬픔 속에서도 희미한 빛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 책은 슬픔에 대한 이야기면서 슬픔의 후면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가녀린 빛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2023. 11. 17.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 신이현] __ 농사 지으러 한국에 온 프랑스 농부 여기, "땅이 노래하게 하라"를 외치는 농부가 있다.  농사를 너무 짓고 싶어서 엔지니어를 때려치고 한국 충주에서 와인을 만드는 프랑스 남자. 왜 한국이냐고? 파리에서 생활하는 것도 향수병으로 힘들었는데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프랑스 농촌에서 늙어갈 게 두려운 한국인 아내가 한국을 택했다. "농부만 되면 되는 거지?" 하면서.  대책 없이 프랑스 생활을 다 정리하고 한국에 와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다가 직접 땅을 사고 와인을 만들기까지 고군분투한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꿈 하나만을 믿고 모두가 만류하는 농사를 짓기까지 그들은 많고 많은 산을 넘었는데, 어찌어찌 지금도 생존에 성공해 있다. 프랑스 농부의 아내 신이현 씨는 전직이 작가다. 글솜씨가 뛰어난 이라 이야기 하나하나가 유머러스하고 실감나.. 2023. 10. 6.
[결혼, 여름 / 알베르 까뮈] __ 까뮈의 젊은 날을 엿보다 우리 문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정서가 있다. 다름 아닌 '세계에 대한 찬미'다.  식민지 이후 지금까지 근대가 고통으로 점철되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신의 축복이라 할 만한 태양이 사시사철 내리쬐는 풍요로운 지중해의 환경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날씨 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색깔도 형형색색으로 다채로운 땅이니까.  그 알제(알제리)의 자연에 대한 순수한 경탄과 찬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내게 그 곁에 있는 듯 묘사는 생생하고 감성은 풍요롭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거장의 필력을 아낌없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초반 에세이들은 까뮈가 20대 청춘에 쓴 글들이라 문장 곳곳에서 젊음의 열정이 짙게 배어 있다. 그곳에서 첫결혼을 했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알제의 바다와 바람, 언덕과 페허,  생에 대.. 2023. 10. 4.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다 / 홍소영] __ 싱글맘의 유쾌한 홀로서기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에 대해 가리워져 있던 속마음 한 가지씩을 보여준다. 이 작가가 그랬다.  두 번의 유산 끝에 결혼 7년만에 어렵게 아이를 가졌는데 출산 전에 남편은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져 이혼을 요구한다. 작가는 남편을 보내주고 홀로 아이를 기르기로 결심한다. 싱글맘이 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눈물 나는 일까지 당차게, 태생적인 유머 감각을 갖고 긍정 끝판왕으로 활기차게 풀어낸 글이 이 책이다.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내 친구들은(대부분 공무원, 공기업, 전문직이다) 그닥 부럽지 않은데 난 홍소영 작가 같은 싱글맘이, 아니 싱글맘을 용감하게 택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부럽다. 그러고보니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항상 싱글맘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그 이유가 뭘까 곰곰 생.. 2023. 8. 27.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 우치다 타츠루] __ 가장 중요한 건 읽는 쾌락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이분은 '선생'이란 호칭을 들을 만하다. 아무리 가벼운 글에도 이분만의 혜안이 번득이고 재미나게 읽을 거리가 꼭 들어있다.  우치다 선생의 책은 다 읽어보는 편인데 이 책은 개중에서는 가장 가벼운 책이었다. 선생이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 내가 모르는 책도 많지만 그게 독서에 전혀 방해가 되진 않는다. 모든 이야기가 우치다 선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훑어보았다.  요 말은 넘 반가웠다. "글을 쓰는 쾌락, 읽는 쾌락을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 그 이외의 것은 쾌락을 증진시키는 데 얼만큼 효과적인가와 같은 척도에 기초해서 계량되어야 한다."  내가 수업시간에 중시하는 것과 꼭 같다.    ###################### 2023. 8. 25.
[문학이 필요한 시간 / 정여울] __ 더 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권리 마음에 남는 몇몇 문장과..읽고 싶은 한 권의 책, 니콜 크라우스 ..다시 찬찬히 뜯어보고 싶은 책, 미하엘 엔데의 ... ## 우리에게는 더 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햇살이나 공기처럼 저절로 흡수할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문학이나 음악이나 그림처럼 반드시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여 찾아다녀야 할 세상의 아름다움도 있다. 무언가를 사랑할 권리를 회복하자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마저 즐기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출간을 기다리고, 기갈 들린 사람처럼 출간 첫날에 책을 사서 한 문장 한 문장 아껴 읽다가 다 읽고 나면 벌써 다음 책을 기다리기 시작하는 마음. 이 소설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빨리 다음 소설을 .. 2023. 8. 22.
[나는 괴산의 시골버스 기사입니다 / 한귀영] __ 읽는 내내 힐링이 되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 내가 시골버스를 타본 기억은 손에 꼽는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2008년 무렵, 제주올레를 걸을 때였다. 공항에서 성산까지 2시간 가까이 버스로 이동했는데 제주 할머니들이 쉴새 없이 오르셨다 내리는 그 버스 안에서 들리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지리산둘레길과 지리산 백무동 주등산로를 찾아갈 때의 기억이 몇 있다. 그 노선은 정말 손님 몇 명밖에 없는 할랑한 버스였다. 전세 낸 듯한 텅 빈 버스에서 시골 풍경을 즐긴 기억이 있다.  이 책 는 시골버스 운행을 하며 겪은 소소하고 재미있고 웃프기도 한 에피소드들을 어찌나 맛깔나게 풀어내셨는지, 마치 내가 기사님과 함께 버스에 동행한 기분이었다. 기사님과 내내 그 옆에서 함께 풍경을 바라본 것처럼 사람 하나하.. 2023.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