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에세이95 죽으면 못 놀아 / 페리도나 이런 책을 읽으면 우리 사회가 아직 건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엔 온갖 절망적인 뉴스가 가득하지만 사회 곳곳엔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 이 책은 요양원에서 미술치료?를 맡은 사회복지사의 요양원 일기이다. 저자가 요양원에서 일하며 마주친 많은 순간들은 그것이 잠깐이든 좀 더 긴 시간이든 저자의 마음에 파문을 남기고 사색의 여지를 준다. 치매 환자가 반 이상인 그곳이 어찌 보면 우울의 집합체로 보이기도 하련만 저자 특유의 명랑성은 그 속에서 햇살 같은 유머의 지점을 포착하고 읽는이를 웃고 울게 만든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다 재밌다. 그리고 저자가 치매 어르신들과 진행한 다양한 미술수업의 사진들은 그 따스한 색감으로 우리 마음.. 2024. 8. 9. 고미숙의 인생 특강 / 고미숙 아주 오래 전, 내가 삼십대 초반일 때 종묘 근처에 있던 수유-너머에서 고미숙쌤을 뵌 날이 생각난다. 개성 넘치는 분이었는데도 초면이지만 편안했다. 아마 이야기를 편하고 자유롭게, 권위 없이 하셔서 그랬던 것 같다. 이후 이분 책을 계속 읽어왔는데, 요새 책이 제일 좋다. 한 길을 꾸준히 가다보니 사회 전반을 통찰하는 눈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진짜 기여하는 분이고, 제대로 된 지식인이다. 고미숙의 인생 특강, 요 얇은 책은 강연을 다시 책으로 엮은 모양인데, 이분이 원래 입말 문제를 쓰지만, 이 책은 더 술술 잘 읽힌다. 이 쉬운 문장 속에 담긴 통찰은 절대 가볍지 않다. 지식을 기술지, 문명지, 자연지로 나누면서 이 풍요의 시대에 우리에게 무엇이 절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 2024. 5. 25. 인간의 시간 / 이강산 _ 올해 읽은 최고의 에세이 우리나라 절대 빈곤층이 사는 재개발지역, 그 재개발지역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몰리는 여인숙의 0.8평 짜리 달방.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고, 부엌도 없고, 좁고 불편한 공동 세면장과 공용 화장실이 딸린 집. 모기장을 치지 않으면 잠을 못 잘 만큼 바퀴벌레가 들끓고 폭우라도 오는 날이면 하수구가 넘쳐 오수가 방을 덮치는 집. 11가구가 모여 사는 그 대덕여인숙에 저자는 365일을 입주한다. 시대의 기록, 다큐 사진을 찍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사진보다 그들의 일상을 도와주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을. 작가는 사진은 잠시 잊고 그분들을 도와주면서 여인숙의 진짜 식구가 되고 친구가 된다. 그렇게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작가는 비로소 사진을 찍게 되고, 365일이 다 끝나고 나.. 2023. 12. 21. 소설, 가장 깊은 소통 __ 다다다 / 김영하 다다다, 가 뭔가 했더니 보다, 읽다, 말하다, 세 권을 합본한 책이다. 작가는 소설이 가장 깊은 수준의 소통이라 말한다. 대화는 깊은 소통에는 한참 이르지 못한다고. 들뢰즈도 같은 말을 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의, 그리고 타인의 본질에 다다르는 순간은 예술만으로 가능하다고. 가볍게 책장을 넘기며 이런저런 사색을 하기 좋은 책이었다. 2023. 12. 13.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 향봉 어느 젊은 부부가 있었다. 일곱 살 외아들이 귀신이 보인다며 헛소리하고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병원도 가고 귀신 쫓는 굿을 해도 소용 없었다. 다른 무당을 찾아가니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단명하는 사주라고 했단다. 향봉 스님은 그 아이 부모에게 큰 절을 한다. 이 아이는 자라서 나라의 큰 일꾼이 될 아이라서 그런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절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 어머니는 당황하여 이 아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냐고 묻는다. 스님은 답한다. 백새에 이를 만큼 장수를 타고난 아이라고.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스물 두 살인 지금 의대에 다니고 있다 한다. 한 시간이면 후루룩 다 읽는 가벼운 에세이지만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잔뜩 박혀 있다. 도력이 높은 큰스님의 책이라곤 믿기지 않.. 2023. 11. 20. 헤아려본 슬픔 / C. S. 루이스 헤아리다, 이 단어를 생각케 한 책이다. 슬픔을 헤아리다… 슬픔에 압도되거나 눌릴 때가 많지 슬픔을 곰곰 헤아리기란 어렵다 저자는 엄청난 슬픔과 상실 속에서도 그 슬픔을 헤아리고 기록한다. 그래서 작가겠거니 했다. 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이므로. 2023. 11. 17.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 신이현 __ 농사 지으러 한국에 온 프랑스 농부 여기, "땅이 노래하게 하라"를 외치는 농부가 있다. 농사를 너무 짓고 싶어서 엔지니어를 때려치고 한국 충주에서 와인을 만드는 프랑스 남자. 왜 한국이냐고? 파리에서 생활하는 것도 향수병으로 힘들었는데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프랑스 농촌에서 늙어갈 게 두려운 한국인 아내가 한국을 택했다. "농부만 되면 되는 거지?" 하면서. 대책 없이 프랑스 생활을 다 정리하고 한국에 와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다가 직접 땅을 사고 와인을 만들기까지 고군분투한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꿈 하나만을 믿고 모두가 만류하는 농사를 짓기까지 그들은 많고 많은 산을 넘었는데, 어찌어찌 지금도 생존에 성공해 있다. 프랑스 농부의 아내 신이현 씨는 전직이 작가다. 글솜씨가 뛰어난 이라 이야기 하나하나가 유머러스하고 실감나게 .. 2023. 10. 6. 결혼, 여름 / 알베르 까뮈 __ 까뮈의 젊은 날을 엿보다 우리 문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정서는 '세계에 대한 찬미'이다. 식민지 이후 지금까지 근대가 고통으로 점철되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신의 축복이라 할 만한 태양이 사시사철 내리쬐는 풍요로운 지중해의 환경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날씨 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색깔도 형형색색으로 다채로운 땅이니까. 그 알제(알제리)의 자연에 대한 순수한 경탄과 찬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내게 그 곁에 있는 듯 묘사는 생생하고 감성은 풍요롭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거장의 필력을 아낌없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초반 에세이들은 까뮈가 20대 청춘에 쓴 글들이라 문장 곳곳에서 젊음의 열정이 짙게 배어 있다. 그곳에서 첫결혼을 했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알제의 바다와 바람, 언덕과 페허, 생에 대한 사랑. 그 모든 것.. 2023. 10. 4. [책]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다 / 홍소영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에 대해 가리워져 있던 속마음 한 가지씩을 보여준다. 이 작가가 그랬다. 두 번의 유산 끝에 결혼 7년만에 어렵게 아이를 가졌는데 출산 전에 남편은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져 이혼을 요구한다. 작가는 남편을 보내주고 홀로 아이를 기르기로 결심한다. 싱글맘이 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눈물 나는 일까지 당차게, 태생적인 유머 감각을 갖고 긍정 끝판왕으로 활기차게 풀어낸 글이 이 책이다.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내 친구들은 (대부분 공무원, 공기업, 전문직이다) 그닥 부럽지 않은데 난 홍소영 작가 같은 싱글맘이, 아니 싱글맘을 용감하게 택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부럽다. 그러고보니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항상 싱글맘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그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 2023. 8. 27. [책]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 우치다 타츠루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이분은 '선생'이란 호칭을 들을 만하다. 아무리 가벼운 글에도 이분만의 혜안이 번득이고 재미나게 읽을 거리가 꼭 들어있다. 우치다 선생의 책은 다 읽어보는 편인데 이 책은 개중에서는 가장 가벼운 책이었다. 선생이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 내가 모르는 책도 많지만 그게 독서에 전혀 방해가 되진 않는다. 모든 이야기가 우치다 선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훑어보았다. 요 말은 넘 반가웠다. "글을 쓰는 쾌락, 읽는 쾌락을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한다. 그 이외의 것은 쾌락을 증진시키는 데 얼만큼 효과적인가와 같은 척도에 기초해서 계량되어야 한다." 내가 수업시간에 중시하는 것과 꼭 같다. ## ## ## ## ## ## ## ## ## ## ## 2023. 8. 25. [책] 문학이 필요한 시간 / 정여울 마음에 남는 몇몇 문장과 읽고 싶은 한 권의 책, 니콜 크라우스 다시 찬찬히 뜯어보고 싶은 책, 미하엘 엔데의 . ## 우리에게는 더 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햇살이나 공기처럼 저절로 흡수할 수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문학이나 음악이나 그림처럼 반드시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여 찾아다녀야 할 세상의 아름다움도 있다. 무언가를 사랑할 권리를 회복하자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마저 즐기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출간을 기다리고, 기갈 들린 사람처럼 출간 첫날에 책을 사서 한 문장 한 문장 아껴 읽다가 다 읽고 나면 벌써 다음 책을 기다리기 시작하는 마음. 이 소설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과 빨리 다음 소설을 읽고 싶은 .. 2023. 8. 22. [책] 나는 괴산의 시골버스 기사입니다 / 한귀영 내가 시골버스를 타본 기억은 손에 꼽는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2008년 무렵, 제주올레를 걸을 때였다. 공항에서 성산까지 2시간 가까이 버스로 이동했는데 제주 할머니들이 쉴새 없이 오르셨다 내리는 그 버스 안에서 들리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지리산둘레길과 지리산 백무동 주등산로를 찾아갈 때의 기억이 몇 개 있는데, 그 노선은 정말 손님 몇 명밖에 없는 할랑한 버스였다. 전세 낸 듯한 텅 빈 버스에서 시골 풍경을 즐긴 기억이 있다. 이 책 는 시골버스 운행을 하며 겪은 소소하고 재미있고 웃프기도 한 에피소드들을 어찌나 맛깔나게 풀어내셨는지, 마치 내가 기사님과 함께 버스에 동행한 기분이었다. 기사님과 내내 그 옆에서 함께 풍경을 바라본 것처럼 사람 하나.. 2023. 7. 29. [책] 형사 박미옥 / 박미옥 누군가의 30년의 현장 분투의 기록을 이렇게 편안히 앉아서 읽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황송했다. 한 꼭지 한 꼭지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영화보다 더 긴박하고 뜨겁고 힘든 싸움의 기록이다. 하나하나 무겁지 않은 이야기가 없지만 그 이야기들이 담담하면서도 편안하고 술술 읽히는 이유는 저자가 자신과의 싸움과 세상과의 싸움을 거침없이 당당하게 헤쳐나갔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언론에 오르내린 수많은 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하고 여경 최초의 강력계 형사,,, 등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우리나라 경찰 역사를 새롭게 쓴 사람이 바로 저자, 형사 박미옥이다. 평생을 살인 사건 등 강력범죄의 현장에서 보내자면 보통 사람 같으면 정신이 온전해지지 못하거나 아니면 세상에 대해 .. 2023. 7. 28. [책] 슬픔의 방문 / 장일호 단 한 편도 버릴 게 없는 내용이 꽉찬 에세이집. 저자의 필력에 놀랐다. 짧고 경쾌하고 우아하면서도 대담한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막힘 없이 주르륵 읽게 만드는, 그 깊고 막막한 슬픔을 그 폐부까지 느끼게 만들면서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문장들. 이렇게 글 잘 쓰는 기자가 있구나 했다. 시사인 기자 장일호의 에세이다. 소설처럼 한 번 집어들면 그녀의 문장에서 그녀의 삶의 이야기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그 삶의 이야기들을 그녀가 사랑한 책들과 나란히 병치시키는 솜씨도 놀랍다. 그녀가 책에서 고른 모든 말들은 그저 말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저자의 삶을 통해 다시금 생생한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삶과 책을 함께 읽어나가는 저자의 내공이 대단하다 싶다. 물론 저자의 모든.. 2023. 6. 29.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첫 장면이 강렬하다. 갑작스런 지진으로 자신이 수집한 모든 물고기 표본들이 잔해로 돌아가려는 그때, 침착하게 그 잔해들 틈에서 남아있는 것들을 추려서 다시 자기 일을 시작했던 과학자. 이 첫 챕터를 읽었을 때는 한 위대한 과학자의 삶을 다루는가 했었다. 주인공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의 팀과 함께 전세계 물고기의 5분의 1에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주변 세계와 자연의 경이에 매혹되었던 소년이 꿈꾸었던 과학자의 길로 접어들었고 놀라운 인내심과 열정으로 드넓은 세계를 탐험하며 자신의 업적을 쌓아올려가지만 그가 말년에 몰두했던 것이 '우생학'이라니. 그의 스승 아가시와 마찬가지로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이 창조주의 .. 2023. 5. 6.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