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최고의 에세이가 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많이, 아주 많이 놀랐다. 첫째는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신춘문예 ?? 등에 백 번 넘게 떨어지고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는 것, 둘째는 그가 원재료에 유머와 역설을 섞어 맛깔스럽게 전해준 그 일터의 풍경이 너무 심란해서... 작가의 유머 덕에 읽을 때 때로 폭소를 터트리면서도 마음은 울고 있었다. 아 우리 노동 현장이 이렇구나... 직업 현장에 대한 르포나 객관적 기사가 아니라 작가 자신이 일하며 겪은 온갖 애환들이 펼쳐져 있기에 너무 재미있게, 혹은 저걸 어쩌나 하면서 읽었다.
가장 비인간적인 일터는 콜센터였다. 진상들이 존재함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AI가 등장해서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이런 일자리는 사라져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 AI 때문에 200여 명이 해고되었을 때, 사람들은 일을 돌려달라고 시위에 나섰다. 그만큼 생계가 위중한 문제였던 거다.
화물창고는 여간 힘든 노동이 아니다. 먼지 가득한 창고에서 종일 각종 짐을 화물차에 부려놓는데, 여름이면 마스크가 얼굴에 달라붙어 질식사할 것 같다. 하지만 콜센터 같은 정신적 피폐함은 없기에 사업에 실패한 누군가는 그렇게 몸 쓰는 일을 하며 절망을 이겨낸다.
뷔페 식당 요리사. 그곳도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요리도 정신 없지만, 그 뒤에 청소하는 일이 훨씬 고달프고 일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뷔페식당의 원재료의 비밀도. 세상에, 찜닭 소스에 콜라가 대량으로 들어가다니... 전복이나 게 종류 비빔밥엔 전부 통조림 소스가 들어가고... 그곳 역시 버티기 만만찮은 곳이지만 저자는 말한다. 그래도 자신이 만든 음식을 누군가 먹는다는 것이 굉장한 심리적 보람과 의미를 주었다고. 그 정도의 보람은 요리와 글쓰기가 유일하다고.
그 모든 일터에서 어딜 가나 상종 못할 양아치 혹은 빌런이 꼭 있었는데, 빌딩 청소부 세계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일터 분위기가 좀 달라보였다. 험한 일이긴 하지만 위에 열거한 다른 일들처럼 생명의 위협처럼 다가오진 않는다고나 할까. 작가가 묘사한 어르신 동료들이 살아가는 모습 또한 읽으며 내내 연민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글쓰기. 그는 AI로 대본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며 인공지능이 자신이 쓴 소설보다 훨씬 나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격한다. 앞으로 모두에게 굉장히 힘든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하면서. 그래서 책의 제목이 '어떤 동사의 멸종'이다. 멸종되는 동사들은 전화받다, 청소하다, 요리하다, 글쓰다... 같은 것들... 글쓰다, 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그리고 작가는 알게 된다. 인공지능이 쓰지 못하는 글은 여태 누구도 쓰지 않은 소재에 대한 글이라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사라져가는 직업들을 고찰한 저자의 글은, 인공지능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살아있는 인간의' 글이 된다. 진짜 좋은 글을 읽었다. 이 책이 노동 에세이 3권인데, 1권과 2권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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