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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에세이

고미숙의 인생 특강 / 고미숙

by 릴라~ 2024. 5. 25.

아주 오래 전, 내가 삼십대 초반일 때 종묘 근처에 있던 수유-너머에서 고미숙쌤을 뵌 날이 생각난다. 개성 넘치는 분이었는데도 초면이지만 편안했다. 아마 이야기를 편하고 자유롭게, 권위 없이 하셔서 그랬던 것 같다. 이후 이분 책을 계속 읽어왔는데, 요새 책이 제일 좋다. 한 길을 꾸준히 가다보니 사회 전반을 통찰하는 눈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진짜 기여하는 분이고, 제대로 된 지식인이다.
 
고미숙의 인생 특강, 요 얇은 책은 강연을 다시 책으로 엮은 모양인데, 이분이 원래 입말 문제를 쓰지만, 이 책은 더 술술 잘 읽힌다. 이 쉬운 문장 속에 담긴 통찰은 절대 가볍지 않다. 지식을 기술지, 문명지, 자연지로 나누면서 이 풍요의 시대에 우리에게 무엇이 절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자아비대증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21세기 사람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만족을 모르고 탐욕스러워졌고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가치 있다는 성공 강박에 빠져있다. '자기와의 완벽한 소외'다. 그것은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진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정점을 지났기에 경제 성장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성장이 가능하지도 않다. 시대적 전환기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비전 탐구, 지혜와 영성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지만 저자는 그 길을 '고전'에서 찾아 왔고, 그 이야기를 이 시대 누구보다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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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의미, 가치, 그런 것들이 삶에 소중하다. 맞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삶보다 더 소중할 수는 없어요. 살고 보니, 살다 보니 꿈을 갖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기도 하고, 또 무엇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거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완전히 전도가 일어난 거예요. 꿈이 있어야 되고, 무언가를 이루어야 된다, 그래야 가치 있는 삶이다. 예컨대 '내 존재의 이유는 가족이다', 이런 식으로... p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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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지성으로만 살면 자아가 아주 비대해집니다. 예컨대, 십대들이 "누구를 사랑하고 싶어요", 이러지 않죠.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싶어요, 이런 거에요. 그리고 "성공하고 싶어요", 이거는 "내가 원하는 노동으로 당당하게 살겠어요"가 아니라 엄청난 거액의 돈을 주무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런 뜻인데 자기의 현실은 너무 아득하게 머니까 추락을 하는 거죠. 스스로 추락을 하는 거죠. 이게 자아, 자의식의 비만이에요. 그래서 이런 궤도를 타게 되면 이건 절대 멈출 수 없어요. 현재 인간의 신체 뇌 구조상으로는 스스로 멈출 수 있는 기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목마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수사학이 아니고, 요즘 많이 대중화되고 있는 뇌과학만 봐도 절대 만족이란 없다는 거죠. 그것만 향해 달려가면.
 
그러고 나서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누린 다음에 오는 건 반드시 허무예요, 이것도 아주 그냥 보편적인 코스입니다. 나는 아닐지도 몰라, 일단 가지고 봐야 되겠어, 대게 이렇게 생각할 텐데 이것이 바로 인간에 대해 잘 모르는 거죠. 누구나 그렇습니다. 공평하게 그렇습니다. 누구도 멈출 수 없고, 더 목마르고, 마지막에는 허무에 몸부림칩니다. 그래서 그 상태에 있는 존재를 의역학적으로 보면 '자기와의 완벽한 소외'라고 할 수 있어요. p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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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3G의 인드라망 속에서 '왜 존재해야 하지?', '삶의 목적과 가치가 뭐지?', '어떻게 살아야 되지?'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자연의 응답은 간단합니다. '삶은 삶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라는 겁니다. 다른 의미를 거기에 더 보탤 필요가 없어요. 사실 우리가 태어나서 무얼 갖고 싶어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열정을 가지고 무얼 합니다. 그런데 봄, 여름까지 그렇게 하는 거고, 가을과 겨울이 되면 이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완전한 죽음, 아름다운 죽음은 삶에 어떤 회한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는 상태, 그냥 이 죽음 자체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인드라망입니다. 
 
그러니까 목적과 가치, 의미 같은 것이 필요 없는 거예요. 우리가 특정 시기에 그것에 탐착할 순 있지만 그 다음 단계가 오면 반드시 하나씩 덜어내야 합니다. (...) 우리는 그동안 기술지와 문명지의 패러다임 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고 굉장한 수준의 물질적 부에 이르고 나니까 각 개인들이 너무 많은 책임과 자의식을 짊어지게 된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삶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제 생각에 앞으로 청년들도 일자리는 안 생길 것 같고요, 중년은 노동에 지쳤고요, 노년은 정년퇴직 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고요. 그래서 백수로 사는 게 21세기의 존재론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p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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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 길에는 도무지 답이 없어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어나지도 않고 경제가 성장할 리도 없어요. 자본주의는 이제 고점을 쳤기 때문에 가을로 접어들었어요. 이건 정말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우주의 기운'이에요. 우주의 기운은 아무도 못 막아요.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도 사실상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제학자는 단 한 명도 없어요. 20세기는 모든 걸 통계와 수치로 예측할 수가 있었어요. 이제 더 이상의 예측은 불가능해요. 그러면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아주 자유롭고 유연하게 살아가면 돼요. 그래서 이제 필요한 건 어떤 어설픈 스펙이 아니에요. 진짜 내 신체의 에너지예요. 이것만 있으면 이 기본기만 있으면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아주 유연하게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신체를 정말로 소중히 여겨야 되는데 청년은 그 무엇보다 에로스적인 활력을 절대로 억압, 봉쇄하지 말고 그 야생성을 꽃 피우라고 꼭 당부하고 싶어요. p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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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대학생들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건 로고스가 없기 때문에 에로스가 살아날 수 없는 거예요. 보통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연애를 하려면 공부를 포기해야 된다고. 공부를 많이 하고 지적 성취가 높아지면 성적 매력이 떨어질 거라고요. 반대입니다. 지성이 없는데 매력이 있을 수가 없어요. 지성만이 에로스를 깨어나게 하는 거예요. 왜? 지성은 새로운 길을 열고자 하는 욕망이거든요. 가치를 생성하는 거예요, 가치.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게 사랑이든 우정이든 사제간의 온정이든 서로에게 삶을 선물하려고 애써야 됩니다. 서로를 소유하고 집착하는데 몰두하면 안 돼요. p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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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소유하지 않아도 사랑이 흘러넘치게 해야 돼요. 사랑은 두 사람의 에로스가 융합이 되어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거예요. 그러면 가장 먼저 뭘 해야 되나? 내 삶을 선물해야 돼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존재를 무한 긍정하게 하려면 사랑하는 대상이 참으로 멋진 사람이어야 돼요. 멋지다는 게 뭐냐면 삶 전체로 멋져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누굴 사랑하면 그때부터 자기 인생을 잘 돌보고 내가 뭔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이게 바로 로고스가 일어나는 순간이에요. 예전에는 연애를  시작하면 남학생들이 다 갑자기 철학자가 돼요. 근본을 알 수도 없는 철학서들을 마구 베껴서 편지에다가 씁니다. 니체, 쇼펜하우어, 헤겔, 칸트. 한 페이지도 못 읽으면서 그런 걸 막 쓰고, 꼭 편지를 쓴 다음에 그 끝에는 시를 또 베껴 씁니다. 갑자기 시집을 읽는 거예요. 그래서 연애를 하는 순간은 철학자가 되고 시인이 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연애는 느닷없이 왔다가 느닷없이 끝나는 거예요. 뜬금없이 왔다가 그냥 후다닥 끝나 버려요. 뭐가 휙 지나갔는데 뭐가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런 게 청춘의 연애입니다. 허무하죠. 그럼 뭘 남기냐면 나에게 철학과 시를 남기죠. 그래서 로고스가 남는 거예요.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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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에로스가 굉장히 다이내믹하고 충동적이고 카오스적인 힘이라면, 이 힘에 리듬을 부여하고 어떤 방향을 부여하는 지평선, 그게 로고스라는 거예요. 지평선은 절대 도달할 수 없어요. 그런데 내 앞에 있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끝없이 달려가는 거예요. 달려가도 달려가도 도달이 안 돼요. 그런데 왜 가느냐고요? 지평선이 있으니까 달려가는 거예요. 그래서 달려간다는 자체가 지평선의 힘이에요. 그러니까 공부는 끝이라는 게 없어요. 목적도 없어요. 목적이 있다면 삶 자체가 목적이에요. 그래서 인생의 모든 순간이 공부여야 됩니다. 그냥 책 보는 시간, 시험 보는 시간, 학점 따는 시간 이거는 공부의 아주 끄트머리에 불과한 거예요. p7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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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있는 모든 순간이 공부인데 그 공부는 사람을 통해서 하는 겁니다. 사랑과 우정, 사제간의 교감, 그런 교감의 능력을 터득하면 이제 청년들이 어른이 됐을 때 비로소 나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에로스와 로고스가 같이 흘러간느 삶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본기를 익히려면 신체가 가장 중요해요. 다른 스펙은 필요 없어요. (...) 그런데 그 뒤에 비전이 있어야죠. 그거를 배울 수 있는 게 대학이고 대학이 아니어도 인터넷에 들어가면 이 세상의 모든 고전이 다 번역되어 있어요.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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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노동, 화폐, 소비 이 사이클 안에 들어가 있잖아요. 그래서 비전 탐구를 안 하는 거죠. 정.기.신에서 신을 쓰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죠. "그냥 좋은 일자리를 얻어서 돈 벌어서 소비하는 것이 내 인생의 방향이야"라고 정해 버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하여튼 심장병 환자가 많아요. 심장을 전혀 주인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재산이 많은 분들도 명퇴나 정년퇴직을 하면 우울해하세요. 재산을 어떻게 재미나게 쓸까, 그동안 못한 공부를 해야겠어, 이렇게 방향을 바꾸지 않는 거죠. 방향을 바꿔야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노동, 화폐, 소비의 사이클을 대면하고, '아, 이렇게 가면 계속 결핍만 느끼겠구나', 이것만 알아채도 이 상황을 조율하고자 하는 힘이 생깁니다.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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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는 왜 그토록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거지?'라고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삶이 고귀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고귀해지는 게 뭐냐면 권력이 주는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거예요. 거기에는 자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어떤 쾌락에 중독돼서도 안 되는 거고요. 두려움과 중독, 이 두 가지가 나를 노예로 만드는 거예요. 두려움은 주로 제도와 국가장치로부터 오는 거예요. 거기서 오는 차별이 있습니다. (...) 그런데 이것만 있는 게 아니죠. 지금 나를 노예처럼 부리는 건 나의 제어되지 않은 욕망에도 원인이 있어요. 쾌락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 쾌락에 중독이 되고 마비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무방비 상태냐는 거죠. 저는 이런 문제를 사회과학적 차원에선 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과학을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유가 이거예요. 과연 자유와 평등, 법과 인권 등이 구현되면 사람들은 자유로워지는가, 생각해보자는 거죠. p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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