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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철학, 심리94

[우울한 마음도 습관입니다 / 박상미] __ 핵심감정 자각하기 도서관에서 낯익은 저자의 이름이 보였다. 박상미. 세바시나 유투브 등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메세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서 어, 괜찮네 하면서 봤던 기억. 그래서 빌려왔다. 뭐, 딱히 새로운 내용이 있을까 반신반의 하면서. 결론은, 이 책 괜찮다. 이분이 굉장히 간결하고 정확하고 깔끔한 문장을 구사한다. 한 번쯤 접해본 내용도 꽤 있지만, 저자의 이야기 솜씨 덕분에 책장을 넘기는 것이 즐거웠다. 1부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종류별로 설명하고 2부에서는 그 감정들로부터 벗어나는 습관을 제안한다. 가독성이 좋아서 후루룩 금세 읽은 책이다. 다양한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 내게 의미 있는 개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핵심감정'. 핵심감정은 나의 삶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감정으로 어릴 때 형성되.. 2025. 1. 30.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__ 노년에 어떤 것을 결정해야 하는가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의사인 저자가 각종 치료로 생의 마지막 시간을 의미 있게 쓰지 못하는 사례들을 경험하면서, 노년의 삶을 전반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책의 중반까지는 자기 집에서 생활하던 노인들이 왜 요양원에 갈 수밖에 없는지 그 과정을 조명했고, 후반부는 척수 종양이 생긴 자기 아버지를 중심으로 노년에 암과 같은 질병이 닥쳤을 때 현대의학에 어느 정도로 의지하면 좋은가에 대한 질문을 담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실례를 들고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혔고, 노년에 우리 앞에 어떤 과제가 닥치는지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기 집에서 활달하게 일상을 영위하던 사람들에게도 노쇠는 다가온다. 자주 넘어지고 넘어져서 다치는 일이 생기면 가족들은 24시간 돌봐.. 2025. 1. 30.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 / 이디스 해밀턴] __ 그리스인들이 인류에 준 선물 그리스 로마 신화의 본질을 이 책보다 더 명확하고 감동적으로 정리해준 책이 있을까 싶다. 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읽지 않아도 좋다(물론 매우 잘 정리돼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서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서문만 읽어도 좋다. 서문이 전부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 작가들은 공포가 가득한 세상을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 물론 그리스인들도 고대 원시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다. 한때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며 비열하게 살기도 했다. 그러나 원시적 타락과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그들이 얼마나 숭고하게 살았는지 신화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야기 속에서 야만 시대를 연상시키는 것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p16 ## 사람들은 '그리스의 기적'을.. 2024. 12. 21.
[감정의 발견 / 마크 브래닛] __ 감정은 기술이다 감정 이해하기는 여행과도 같다. 모험이 될 수도 있다. 여정을 마칠 쯤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곳, 갈 생각조차 하지않았던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보다, 아니 우리의 바람보다 더 현명해질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p132   예일대 교수 마크 브래닛의 이 저서의 핵심은 감정을 다루는 다섯 가지 기술에 대한 것이다. 많은 분들이 추천한 책인데 내겐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책과의 인연도 책을 집어들 때의 개인적인 상황이나 심리 상태와 많이 연관되는 것 같다. 하지만 감정을 다루는 기술보다는 '감정'이란 것이 우리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에 대해서 더 넓은 지평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이웃 주민에 의한 성적 학대, 왕따, .. 2024. 11. 20.
[오늘날 왜 혁명은 불가능한가 / 한병철] __ 디지털 봉건사회 20세기와는 아주 많이 다른, 디지털 사회와 자본주의가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새로운 삶의 양태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개념에는 무엇이 있을까. 철학자 한병철만큼 이 방면에 깊은 이해를 지닌 저자는 잘 없는 것 같다. 자기 착취, 성과 좀비, 투명사회, 긍정사회, 데이터 전체주의, 전시 가치, 포르노, 나르시시즘, 우울과 자해.... 등의 개념들을 경유하면서 우리는 우리 삶이 총체적으로 상업화되었음을 직시하게 된다. 요즘 칭송 받는 공유 경제(에어비앤비 등)는 우리를 자본으로부터 해방하기는커녕 손님에 대한 환대까지 경제화하고, 이렇게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상품으로 판매할 때 자본주의는 더이상 그것에 맞설 적수가 없이 완성되었다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저자는 중세 봉건체제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페이.. 2024. 6. 6.
[죽기 위해 자살하는 게 아니다 / 오진탁] __ 생사관이 없는 한국인 서문의 첫문장이 폐부를 찌른다.  "우리 사회는 정신적 폐허 속에 있다."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까운 자살률와 출생률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이 넘은 지 오래지만 사회 곳곳에 위기의 징후가 뚜렷하다. 저자가 인용한 김우창 교수는 '정신적 불행이 일상화된 사회'라 진단하고 서은국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표현한다. 자살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 병리현상의 결과라는 데서 저자는 논의를 시작한다.  OECD 선진국 중 유일하게 경제적 가치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고, 사랑, 행복 같은 추상적 가치조자 돈으로 환산된다. 높은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삶의 만족도는 130개국 중 중위권이고 기쁨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정도는 하위권이다. 경제 중심의 가치관이 다른 모든 사회적 관계와 .. 2024. 5. 25.
[선불교의 철학 / 한병철] __ 허무주의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최고의 긍정 불교의 무나 공 같은 개념을 이처럼 개념적으로 엄밀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비어 있음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무한한 개방성이자 세계에 대한 최고의 긍정이다. 서양철학과 종교는 존재의 유한성을 영원성과 무한성을 지닌 신에게 귀의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생명의 유한성에 대한 부정의 정신이 깃들 수밖에 없다. 반면 선불교는 유한성 그 자체를 개인의 욕망과 의지가 얽히지 않은 맑은 눈으로 바라본다. 유한하다는 현실을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덧없음과 함께 하고 덧없는 사물들 곁에 머무르며 자기 자신도 덧없이 지나가게 한다. 그 덧없음 속에서 깊은 슬픔을 경험한 이가 지닌 것은 모든 존재자와 세계에 대한 친절이다. 저자는 그것을 '사교적 친절'과.. 2024. 2. 25.
[폭력의 위상학 / 한병철] __ 21세기는 왜 폭력적인가 100페이지 남짓한 저자의 다른 책에 비하면 꽤 두꺼운 책이다. 그래도 200페이지를 넘지 않으니 일반적인 철학서에 비해서는 얇지만. 이 책이 조금 더 두꺼워진 이유는 역사적으로 행해진 폭력의 양상을 시대별로 개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물리적 폭력에 대해 비판적이다. 죄인을 광장에서 참수하고 전시했던 절대권력 시대도 아니고 감옥, 병동, 수용소 등으로 개인에게 규율을 강제했던 산업사회 초반도 아니다. 후기산업사회에서는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는 외적 강제나 규율이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폭력이 줄어든 평화로운 시대인가? 저자의 대답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 어느 시대보다도 폭력이 증가한 시대다. 물리적 폭력보다 더 강하고 전방위적이며 음험한.. 2024. 2. 18.
[정보의 지배 / 한병철] __ 데이터 가축, 소비 가축이 된 인류 한병철의 책을 읽노라면 100페이지의 얇은 책에 늘 간지를 잔뜩 끼워넣게 된다. 그만큼 다시 곱씹고 싶은 함축적인 문장들로 가득하다. 예전 책은 얇고 가벼워 백에 넣고 다니거나 지하철 등에서 보기 참 좋았는데, 요새는 다 하드커버로 나와서 안 사고 빌려본다. 하드커버로 안 나왔으면 하는 바람. 저자는 21세기 인류를 가축에 빗댈 때가 많다. 왜 노예가 아니고 가축인가. 노예는 주인에게 저항하지만 가축은 저항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을 만큼 완전히 체제에 길들여졌기 때문. 저자가 보기에 지금 인류는 데이터 가축, 정보 가축, 소비 가축이 되어 있다. 정보가 과잉 생산되는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자기를 공연하는 데 혈안되어 있고 그 공연의 방식은 소비이다. 인플루언서들은 소비가 자기.. 2024. 2. 18.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 김용옥] __ 번뇌를 끊는 지혜의 책 사람이 선하게 산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일 경우도 많다. 시간이 흐르면 마음에 억울함이 쌓인다. 이 난제를 철학과 종교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칸트는 신을 요청한다. 신이 미래에 보상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도덕의 근거를 확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에 반해 불교가 요청하는 것은 윤회다. 현생보다 더 광대무변한 시간을 요청한다. 나의 행위의 결과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더 멀고 긴 시간 속에서 돌아온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는 전생과 후생을 미신적인 개념으로 잘못 이해했기에 불교의 이 시간관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불교 시간관의 본질은 우리 행위의 인과관계가 우리의 앎을 넘어서서 드넓은 맥락에서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삶의 인과관계에 대한 단선적인 이해를 넘어 .. 2024. 1. 3.
[법구경]을 펼치며, 풍요의 시대에 고통이 많은 이유 를 읽고 넘 감명 받아서 불교 관련 책들을 다시 들쳐보는 참이다. 집에 뭐가 있나 보니 98년 발행된 법구경이 있다. 그때 이후로 읽어본 적이 없었네. 지금은 절판된, 법정 스님 번역이다. 이 작은 책을 가볍게 훑어보고 알았다. 이 풍요로운 현대사회에 왜 고통이 많은가를… 현대에 고통이, 특히 심적 고통이 만연한 이유는 현대 사회에 쾌락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고통과 쾌락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존재한다. 우리를 자극하고 유혹하는 쾌락이 너무 많기에 그만큼 그걸 얻지 못하는 고통도 크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도파민 중독'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크고 작은 쾌락에 중독되어 그것이 계속 공급되지 않으면 우울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법구경에 좋은 문장이 많았지만 요번엔 이게 젤 기억에 남아 옮겨 적.. 2023. 12. 2.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 파울 페르하에어] __ 신자유주의가 바꾼 세상의 기준 저자의 전작, 에 비해서는 가독성이 떨어졌지만, 권위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십분 이해할 만하다.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권위의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권위는 우리가 속한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조율하고 통제하며 사람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끈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경제'를 제외한 모든 전통적인 권위가 힘을 상실했다는 것인데, 저자는 그 전통적인 권위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 권위들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영구히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권위의 상대성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과거의 권위에 무조건적인 향수를 가질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 권위들은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화하고 사회를 안정시켰으나 여성을 비롯하.. 2023. 10. 19.
[사물의 소멸 & 리추얼의 종말 / 한병철] __ 스마트폰은 지배체제의 디지털 성물 에리히 프롬이 우리 시대를 봤다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소유' 대신에 '존재'를 설파했던 철학자가 지금을 봤다면 '소유' 대신 '이상한 존재'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았으리라.  사물 대신에 정보가 우리를 지배하는 시대. 사물은 삶을 안정시키지만 정보는 우리를 정처없이 배회하게 한다. 정보는 사물과 타자에 깃든 시간, 촉감,  불가해성이 없다. 정보가 넘쳐나고 모든 게 명료하지만  세계는 점점 멀어지는 역설의 시대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말을 건다.   리추얼은 또 어떤가. 공동체의 의례 혹은 시간적인 형식으로 번역할 수 있는 리추얼은  흘러가는 시간에 마디를 맺어줌으로써 시간을 우리가 거주할 수 있는 집으로 만들어준다. 리추얼이 사라진 시대에는 개인의 자기 표현과.. 2023. 10. 18.
[고통 없는 사회 / 한병철] __ 우리 앞에 도래한 '좋아요'의 사회 십여 년 전부터 저자의 책을 꾸준히 보고 있다. 투명사회, 시간의 향기, 피로사회, 에로스의 종말, 심리정치, 타자의 추방, 권력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의 구원 등...    100여 쪽 남짓한 얇은 책이지만 다양한 철학적 개념이 촘촘히 박혀 있고,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그 안에 담긴 사유의 깊이도 남다르다. 이분의 관심사는 모두 '현대인' 우리 자신의 현 모습과 우리 자신이 처한 생태계이다.  동일한 문제의식을 조금씩 다른 측면에서 조명하는 책들을 썼다. 철학적 개념을 반복적으로 동원하여 세상을 거울처럼 명료하게 보여준다. 철학자의 글이 왜 가치있는가를 보여주는 시리즈.  최근 출판된 것은 못 읽었는데, '고통 없는 사회'에서 읽기를 시작한다. 리추얼의 종말, 서사의 위기, 폭력의 위상학.. 2023. 10. 7.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파울 페르아에허] __ 걍 최고임 이 책은 단지 심리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에는 반드시 타자 맟 집단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의 서사가 깃들어있다. 뇌의 작용과 신경 호르몬 등 개인적인 성향이 당연히 영향을 미치지만, 정체성의 본질적인 내용은 반드시 외부 세계로부터 온다. 그리고 오늘날, 그 외부 세계가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 인간의 이타심이 아니라 이기심만을 극도로 강조하는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왜 이런 모양과 이런 지향으로 살고 있는지, 특히 젊은이들이 왜 그러한지 이 책보다 더 잘 설명하는 책은 없을 듯하다. 종교는 사라졌지만 이제 성공이 그 자리를 대체했고, 종교적 신념 대신에 외부의 '평가'가 그 권위를 대체했다. 사람들은 과거 종교에서 죄책감을 느꼈듯이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 2023.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