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사회, 과학64 [한 걸음 뒤의 세상 / 우치다 타츠루 외] __ 후퇴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2024년에 출간된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신간이다. 이분은 어쩜 이렇게 거의 매년 좋은 책을 써내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전세계적인 변화의 흐름 안에 있지만 서구 사회와는 사회의 속살도, 변화의 맥락도 조금 다르다. 그래서 일본 사회의 변화를 추적하는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글은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가장 좋은 렌즈 역할을 해준다. 일본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우리 사회를 앞서 예언하는 척도가 된다. 이번에 선생이 내어놓은 책은 일본 학계와 예술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 꼭지씩 맡아서 쓴 공저이다. 주제는 '후퇴하는 사회'다. 인구 감소, 고령화, 신기술 혁신의 부재 등이 맞물려 일본 사회의 후퇴는 피할 수 없다고 선생은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후퇴하는 사회에서 .. 2025. 2. 2.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 데이비드 색스] __ 디지털 교육의 허상 학교 현장에서 그때 그때 몇 년 유행하다 사라진 게 얼마나 많은가. 최근 교육부장관 이주호는 '에듀테크'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교사들은 다 안다. 또 헛짓이라는 걸. 코로나 때 보고도 모르는가. 줌 수업이, 디지털이 교실을 대체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 책 은 회사, 도시 생활, 문화 생활, 쇼핑 각계 각 분야에서 디지털이 만들어 준다고 약속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하나씩 깨트려주는 책이다. 난 다른 챕터는 짐작 가는 내용이라 눈으로 쓱 훑어봤고, 학교 부분만 정독했다. 이미 답은 알고 있지만 그 근거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학교를 마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성인에겐 디지털수업이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하지만, 자라나는 학생들에겐 전혀 효과가 없다. 그들은 제대로 공부.. 2024. 6. 30. [가짜 노동 / 데니스 뇌르마르크 외] __ 우리 시대 노동의 본질 여기 덴마크의 한 의사가 있다. 병원의 새 진료 기록 프로그램 도입으로 환자를 만날 때 자그마치 142개의 설문에 답을 해야 한다. 답을 입력하지 않으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최근에는 손 씻기 과정 연수까지 받았다. 30년간 외과의사로 일해서 손을 제대로 안 씼었다면 자기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그가 자조적으로 말한다. 현대에 들어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은 점점 고역이 되고 있다.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 일이 이해하기 힘든, 어떨 때는 그저 눈에 보이는 과시용에 불과한 온갖 엑셀 표와 서류상에만 의미 있는 보고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난 학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웬걸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 심지어 대학 교수들까지. 저자는 이 모든 것을 '가짜 노동'이라 이름 짓는다. .. 2023. 12. 13. [다큐의 기술 / 김옥영] __ 다큐멘터리는 발견의 예술 저자의 메시지 전달력이 대단하다.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좀 참고하려고 빌린 책인데,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아니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다큐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었고, 다양한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엿보는 재미도 있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불편한 지점에서 문제 의식을 찾아내고 그것을 많은 이가 공감하도록 설득력 있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다큐다. 따라서 다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문제의 발견에서도 그것의 전달에 있어서도 제작자의 '관점'이 가장 중요한 장르다. 그가 바라본 것을 타인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내가.. 2023. 9. 21. [철부지 사회 / 가타다 다마미] __ 진상 민원인들의 심리를 가장 잘 설명한 책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에 사람들은 가장 불만이 많고 참을성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상식적이라면 민원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진상 짓을 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많아진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일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이미 이천년 대 초반부터 그걸 겪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흐름은 전세계적이라는 것, 그중에서 일본과 한국 사회는 특히나 매우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대상 상실'이다. 현대인들이 가장 취약한 것이 대상 상실이다. 이 대상 상실에는 죽음과 같은 큰 상처만 자리하는 게 아니다. 현대인들은 유아기적 만능감, 즉 환상 속에 구축된 자기 이미.. 2023. 9. 17. [새로운 창세기 / 에드워드 윌슨] __ 과학자가 설명하는 인간의 창조 동물행동학자로 우리 언론에 잘 알려진 분이 있다. 이화여대의 최재천 교수다. 쉽고 재미있는 책을 많이 펴낸 분이다. 이분이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그분의 지도교수가 바로 에드워드 윌슨이다. 진화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에드워드 윌슨의 책은 풍부한 과학적 사례를 담고 있어 늘 흥미진진하다. 그 사례들을 통해 논리적으로 도출하는 결론 또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내가 과학 분야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 이분의 책은 챙겨보는 이유는 인문학 책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인간 문명에 대한 드넓은 비전 때문이다. 이 책 는 진화생물학자의 입장에서 인류의 기원과 인간 사회의 기원을 추적한 책이다. 생명의 기원에서 출발하여 사회와 언어의 기원까지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과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2023. 9. 5.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정희원] __ 자본주의의 편안함이 노화를 앞당긴다 50을 지척에 두고 만 나이 사용 덕에 40대가 조금 더 연장되었다. 40 후반이 되니 주위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이제 노화가, 그리고 죽음이 조금씩 두렵게 다가온다고. 본인의 신체적, 정신적 노화가 감지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부모님들이 슬슬 아프기 시작하는 나이고 그런 주변의 변화가 자신의 갱년기 증상과 맞물려 삶에 대해 좀 더 우울한 전망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40 초반은 아직 30대의 분위기가 이어지므로 40 후반과는 생각하고 느끼는 게 하늘과 땅 차이다. 불과 십 년 가까이 더 흘렀는데도 삶의 변화는 마치 수십 년 더 흐른 것 같다. 내 경우 사십 초반에 갑작스런 부친의 죽음을 맞이했기에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그렇지 .. 2023. 8. 5. [상상하지 마라 / 송길영] __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데이터 전문가가 보는 세상은 다르다. 수많은 데이터 속에 사람들의 욕망이 읽힌다. 그리고 그 욕망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가 읽힌다. 낯설고 기이하게 여겨졌던 현상이 어느새 시대의 보편적 흐름이 된다. 그들은 미래를 앞서 보는 사람들이다. 혼술, 혼밥, 반려동물, 무인카페, 이런 낯선 단어들이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왔듯이 지금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 변화는 어느새 시대의 상식이 된다. 그러므로 저자가 말하듯이 "일어날 일은 꼭 일어난다." 저자가 목격한, 반드시 다가올 미래는 "분화하는 사회, 장수하는 인간, 비대면의 확산"이다. 우리는 혼자 살고 좀 더 작은 집단으로 가고 있으며, 과거보다 훨씬 오래 살고, 비대면이 확산된다. 기술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대면을 꺼리기 때문에. 지난 .. 2022. 10. 12.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매슈 워커] __ 커피가 문제로세 대출해놓고 읽지도 못하고 2주 지나 반납 날짜 넘김. ㅠㅠ 카페인 관련 부분만 급하게 읽고 자료로 남겨둔다. 카페인 반감기가 7시간이라 한다. 몸에 남은 카페인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자그마치 7시간. 그럼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2022. 2. 22. [노마드랜드 / 제시카 브루더] __ 주거비가 없어 캠핑카를 택한 사람들 우리나라도 집값 때문에 난리인데, 전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내 한 몸 쉬고 누일 곳이 없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그건 최강대국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 '노마드랜드'는 평생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서 드디어 집을 버리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삶을 추적한다.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있다. 그때 집도 연금도 모두 잃어서 중산층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집을 버린 사람들은 낡은 캠핑카를 개조해서 그곳에서 생활하며 한시적으로 수요가 느는 국립공원 캠프나 아마존 물류센터 등에서 몇 달간 노동을 해서 현금을 융통한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소통하면서 축제를 열어 여름엔 한 곳에 모여 1~2주씩 함께 지내기도 한다. 그들이 자신을 단지 피해자로.. 2021. 7. 26. [부의 주인은 누구인가 / 비키 로빈 외] __ 돈이 아니라 삶에 관한 책 이 책은 다른 자기계발서와는 사뭇 다릅니다. 노력과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부터 바로잡고자 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에 대해 명확하게 개념 정의를 하면, 그 인식의 힘 때문에 실천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는 거예요.이 책의 주제는 모두가 관심 있는 그것, '돈'입니다. 이 책은 돈이 무엇인지 먼저 질문합니다. 교환 수단인가요? 권력인가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줄 힘을 가진 것인가요? 미래에 대한 대비인가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무언가인가요? 그리고 저자는 돈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우리의 삶은 곧 우리가 지닌 시간이고, 돈은 우리가 바로 우리의 시간과 생명력을 팔아서 얻는 것입니다. 그리도 다시 질문합니다. 우리의 생명력을 팔아서 매주 '쇼핑하는 로봇'처럼 구매.. 2021. 5. 18. [공산당 선언 / 마르크스, 엥겔스] __ 그들은 세계를 가질 것이다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는 유명한 첫문장,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더 유명한 마지막 문장은 기억나지만, 그 사이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 맑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대학 시절에나 얼핏 읽어본 이 책이 갑자기 읽고 싶어졌어요. 최근 '노동'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십대 때만 해도 '노동'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학교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는 게 꽤 힘들었지만, 나 자신 임금을 받는 노동자였지만, 그럼에도 제가 '노동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일한 지 몇 년 안 되던 때라 그때그때 눈앞의 일에 적응하느라 바빴을 뿐 '노동'이라는 것이 내 삶의 시간을 얼마만큼 잡아먹고 그 시간의 성격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는지는 생각지 못했던 시절이지요. 결혼도 매.. 2021. 4. 7. [청와대 정부 / 박상훈] __ 최소 정부와 최대 정부 사이 저자의 모든 인식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의 경우 단순히 '묻지마 지지'의 경향이라기보다는 노대통령 서거의 경험, 가짜 뉴스 및 기울어진 언론 환경 등에서 나온 반응이 많다고 본다), 한국의 정치 현실을 민주주의의 본질의 측면에서 해석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저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통령제의 한계를 비롯해서 여러 모로 생각해볼 지점이 많았다. 강추하는 책.##'일상생활의 정치화' 주장과 '정치의 생활화' 주장 사이에 존재하는 매우 큰 차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차이가 아니다. 일상 속에서 변혁적 감수성을 지키고 키우는 '생활의 정치화'와, 좋아하는 정치인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서 삶의 보람을 찾는 '정치의 생활화'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그들이 일상의 새인.. 2019. 9. 22. [바이오필리아 / 에드워드 윌슨] __ 우리는 자연을 이해한 적이 없다 ## 편견을 버리자, 일상적으로 보고 만지던 주변의 자연 세계가 힘들게 일하고 있는 수많은 생물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자연 세계에서는 우리의 열정이 무의미해진다. 자연 세계의 역사에는 인간이 포함되지 않으며, 큰 사건도 기록되거나 평가되지 않는다. 자연은 친숙하지만 깊이 보면 이질적인 세계이다. 내가 사랑하게 된 이 세계에서 나는 한갓 나그네일 뿐이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유로 진화의 수많은 결과물이 자연 세계에 모였다. 기나긴 신생대 역사의 유전 암호를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가라앉았다. 호흡과 심장 박동은 줄어들고 집중력이 강해졌다. 내가 서 있는 곳 아주 가까운 숲속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살고 있고 이제 곧 내가 그것을 발견하게 될 듯했다. p.. 2019. 3. 3. [인간 존재의 의미 / 에드워드 윌슨] __ 호모 사피엔스는 누구인가 ## 이 책에서 나는 우리 종의 두 번째 의미, 즉 더 폭넓은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나는 인류가 오로지 진화하는 동안 일련의 사건이 누적됨으로써 생겨났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 어떤 목표에 도달하도록 예정된 것도,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힘에 부등하도록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신앙심이 아니라 자기 이해에 토대를 둔 지혜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저 위쪽 어딘가에서 속죄를 받거나 두 번째 기회를 얻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이 행성에만 거주하며 이 한 가지 의미만을 지닌다. 우리 여행이 이 단계에 들어서려면, 즉 인간 조건을 이해하려면 관습적으로 쓰는 역사의 정의보다 훨씬 더 폭넓은 정의가 필요하다. pp18 ## 이 기나긴 창조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대목은 200만 년 전 원시적인 호.. 2019. 3. 1.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