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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사회, 과학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 데이비드 색스

by 릴라~ 2024. 6. 30.

학교 현장에서 그때 그때 몇 년 유행하다 사라진 게 얼마나 많은가. 최근 교육부장관 이주호는 '에듀테크'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교사들은 다 안다. 또 헛짓이라는 걸. 코로나 때 보고도 모르는가. 줌 수업이, 디지털이 교실을 대체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 책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은 회사, 도시 생활, 문화 생활, 쇼핑 각계 각 분야에서 디지털이 만들어 준다고 약속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하나씩 깨트려주는 책이다. 난 다른 챕터는 짐작 가는 내용이라 눈으로 쓱 훑어봤고, 학교 부분만 정독했다. 이미 답은 알고 있지만 그 근거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학교를 마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성인에겐 디지털수업이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하지만, 자라나는 학생들에겐 전혀 효과가 없다. 그들은 제대로 공부하는 법을 영영 배우지 못하게 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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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학교는 학생의 수행평가를 위한 거의 모든 기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학생들은 수업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했고 적게 배웠으며 성적도 떨어지고 디지털 수업보다 아날로그 대면 수업을 압도적으로 선호했다. 하지만 디지털학교이 가장 심각한 폐해는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영역에서 나타났다. 전세계의 학생들이 지독히 비참해진 것이다. "학생들은 그냥 그만두기로 결심했어요."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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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디지털 학습은 원래 부유한 학생 및 학교와 가난한 학생 및 학교의 격차를 고르게 다져준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얼마나 많은 학생과 교사가 온라인에 들어갈 수 없는지 드러났어요.""불평등이 가속화됐죠." (...) 부는 항상 교육이나 문맹 수준과 상관관계가 있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들어가는 비용. 돈이 많을수록 장비의 성능과 인터넷 연결이 향상된다. 하지만 디지털 학습의 가장 두드러진 불평등은 기술에 대한 접근성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아이들은 집에 혼자 둘 수 없다. 내 아들과 같은 아이가 온라인으로 학습하려면 누가 옆에서 끊임없이 봐줘야 했다. 아이를 맡길 형편이 되는 부모는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대다수 가정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다. 결국 한쪽 부모가 희생해서 재택근무와 가상 수업 사이를 곡예하듯이 오가거나, 아니면 직업을 지키든 자녀를 공부시키든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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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학교의 화면 너머에는 현실의 아날로그 환경이 펼쳐진다. 집은 학교가 아니고 수업에는 조용하고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많은 아이,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은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친척 집에서 지내거나 공공주택에서 몇 세대가 모여 살며 방 하나를 여럿이 같이 써야 해서 홈오피스도 만들기 어렵고 수업을 들을 공간도 없었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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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학교는 느리게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방식과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사이의 격차가 크다는 생각에서 끊임없이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교육은 음악 파일이나 기계 장치처럼 간단히 디지털화하고 자동화하고 개선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교육은 제도와 개인, 목표, 관계자, 장려책, 목적으로 구성된 방대한 연결망으로서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복잡다단한 측면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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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쿠번은 교육의 디지털 미래를 밀어붙이기 어려운 이유는 사회에서 교육의 지위를 확보하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디지털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학생이 학습하려면 우선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과 개인적이고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관계가 없다면 학생들은 학교가 원하는 만큼 학습하지 못한다." p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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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철학의 선구자 존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이라는 획기적인 저서에서 "사회는 생명체만큼 전승을 통해 존재한다. 이런 전승의 과정을 통해 행동과 생각과 느낌의 습관이 나이 든 사람에게서 어린 사람에게로 전해진다." 듀이는 학교와 같은 기관의 궁극적 가치는 사회화에 있다고 보았다. 학교는 규범을 정립하고 사회의 규칙과 기대를 교육한다. 사회에서 허용되는 언어부터 위생 기준까지, 집단에서 언어적, 신체적으로 말하고 소통하는 방식부터 도시, 주, 국가, 세계에서 집단으로 책임 지는 방식까지 가르친다. 가령 쓰레기 버리는 법을 가르치거나 회의 중에 돌아가며 말하는 법을 가르치거나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가르칠 수 있다.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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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과과정의 사실과 정보만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 배움은 학교의 물리적 공간 전체에서 일어난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학교로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과 답변, 친구와 나누는 대화에서 배움이 일어난다.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나 농구를 하는 시간과 점심시간, 담배를 빌리는 순간, 방과 후에 싸움에 벌어지는 순간, 키스하고 애무하는 시간에도 배움이 일어난다. 복도에서 사회 질서가 명료해지고, 우정과 갈등과 정체성과 자기 몸에 대해 알아가는 사이 배움이 일어난다. 기숙사와 생활관에서, 캠퍼스 안의 바와 파티에서, 하키 경기장과 수영장 탈의실에서, 운동장과 관중석과 무대 뒤에서 배움이 일어난다. 그리고 교실에서 배움이 일어난다. 칠판 앞에서만이 아니라 뒷자리에서도. 책상과 책상 사이에서 쪽지가 오가고 한가하게 낙서를 하는 동안 삶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생긴다.

 

"학교의 물질성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데이비드 라바리가 말했다. 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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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우리의 사회적 연결망과 직업적 인맥을 형성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재 사는 지역에 동질감과 공동체의식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어디서 학교에 다니셨어요?"와 같은 질문이 그렇게 강력한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 당신이 속한 공동체가 드러난다. 반면에 온라인에서는 이런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

 

하버드의 중요한 가치는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에 있다. 그래서 그 눈꼴사나운 하버드 맨투맨을 입는 것이 강의에서 배우는 그 어떤 지식보다 평생 회원의 자격을 더 강렬하게 상징하는 것이다. 어디 가서 당신이 "보스턴에서 온라인학교"에 다녔다고 말하면 그런 이미지는 얻지 못할것이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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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래리 쿠번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오래전부터 학습은 아날로그 학교에서 직접 대면하는 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정서적, 사회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교사가 학생들이 얻지 못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들과의 정서적 관계를 지휘할 수 있고 이것이 학습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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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에서 만난 훌륭한 선생님들을 돌아보면, 그분들이 나를 어떻게 한 인간으로 대해주고 내가 그 과목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주었는지가 떠오른다.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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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리는 전세계 디지털 학교의 전반적인 경험이 "처참한 수준"이라고 단언했을 뿐 아니라 코로나19 상황을 기회 삼아 미래를 위해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쿠마리는 여전히 디지털 기술의 잠재력을 믿지만 교육의 미래는 단순히 최신 발명품을 도입하거나 더 많은 아이에게 디지털 장비를 제공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교육의 미래는 정서와 관계가 학습에 더 깊이 스며들게 하고 이런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달려 있다.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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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의 역할은 창조성과 공감을 장려하고 길러주고 찬양하는 거예요. 이 두 가지는 디지털 세계로 온전히 변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동화하고 프로그램화할 수 없어요. 그리고 저는 창조성과 공감이야말로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의존하거든요."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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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는 정서와 학습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 충분히 입증되었다. 학교의 주요 임무는 학생들이 정서 능력을 기르고 학습에 관심을 갖도록 보살펴주는 것이다. 학교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교육이 표준화된 시험이나 디지털 전달을 위해 정보를 암기하는 수준으로 더 축소된다면 모든 정보가 학생들의 귀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고 또 학생들이 나중에 현실 세계로 나갈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가 될 것이다.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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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술이 주도하는 학교의 미래를 그리지 않습니다." 러킨이 말했다. "기술은 줄어들고 인간의 소통은 늘어나는 미래, 기술 덕분에 소통이 더 풍성해지고 발전하는 미래를 그립니다." (...) "인간 요인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미친 짓이에요.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더 많이 참여하게 하는 식으로 교육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전인교육의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학교를 넘어서 학생의 요구를 해결하고 한 인간으로 길러내는 데 일조해야 합니다."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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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노트북과 태블릿이 널리 보급되면서 많은 학교와 학군이 학생과 전자 장치를 '일대일' 비율로 맞추는 데 주력했다.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도 학생들의 학습 면에서 측정 가능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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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르치는 교과목은 간단히 디지털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공지능을 보면서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곧바로 정서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흔히 소프트 스킬이라고 하지만 잘못된 용어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제 과학이나 수학이 소프트 스킬입니다.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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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능력이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은 용기와 리더십과 공감 같은 정서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있어야 변화무쌍한 세계에서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와서 새로운 난관을 제시하든 잘 적응할 수 있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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