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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동남아시아28

뽀삿에서 보낸 일주일 / 캄보디아 봉사 여행 털털거리는 툭툭을 타고 뽀삿성당을 출발했다. 붉은 흙이 깔린 비포장길을 40여분 달려 도착한 곳은 인근의 작은 시골학교. 육십 여명의 어린이들이 환한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꼬마가 내게 수줍은 태도로 보랏빛 꽃을 내밀었다. 주변에서 막 꺾어온 것 같았다. 잠시 후 또 한 소녀가 꽃을 주었다. 누나 손에 이끌려 온 두세 살 아가도 꽃을 건넸다. 그렇게 다섯 아이로부터 받은 꽃송이들이 내 손 안에 모여 작은 꽃다발이 되었다. 소박하지만 가슴 찡한 환영 인사, 뽀삿 아이들과의 첫만남이었다. 이후 뽀삿에서 내가 받은 선물은 꽃다발만이 아니다. 앙코르왓이 있는 씨엠립에서 합승택시로 다섯 시간 이상을 더 가야 하는 뽀삿. 그곳에서 머문 일주일간 나는 다섯 지역의 학교를 방문했다. 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 2018. 12. 13.
7년 만의 재회 / 캄보디아 씨엠립 밤 12시, 씨엠립 공항에 도착하니 툭툭 아저씨가 미소를 짓고 나를 맞았다. 저가호텔이라 혹시 픽업 안 나오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출국장으로 나오자마자 'Bia Kim'이라는 종이를 든 환한 표정의 아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7년만의 재회였다. 씨엠립에 오기 전에 들었다. 여기 개발붐이 일어서 관광객이 미어터진다고. 그래서 예전과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고. 하지만 열대의 온화한 공기와 함께 캄보디아의 미소도 여전했다. 그 미소가 달라지지 않아 좋았다. 공항에서 툭툭을 타고 30분쯤 달려 도착한 호텔. 직원들의 얼굴에서도 같은 미소를 보았다. 온 얼굴에 활짝 번지는 어여쁜 미소였다. 불교 국가의 특징일까, 날씨 탓일까. 어쨌든 우리가 지니고 있지 못한 온화한 미소였다. 잘은 모르지.. 2018. 12. 13.
타이페이 단상 / 대만 여행 타이페이는 평화로웠다. 오토바이가 때로 소음을 일으키는 것 말고는, 도심은 도시 계획이 잘 되어 있고 공원도 많았다. 이 도시의 특징 중 하나를 꼽자면 빌딩 1층이 필로피 건축처럼 기둥만 세워서 인도로 활용되는 점이었다. 덕택에 도심 대부분의 인도가 두 배로 넓어서 좋았다. 사람들의 표정도 남국의 온화한 날씨만큼 부드러웠다. 아주 부유하진 않지만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무식하게도 여기 오기 전엔 몰랐다. 대만이 일본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일본의 첫 번째 식민지가 대만이었다. 그러나 대만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호의적 감정을 갖고 있었다. 일본이 한국과는 달리 강압적으로 통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첫 번째 식민지라 애지중지한 면이 더 많았다고 한다. 조선 총독이 모두 군인 출신이.. 2018. 9. 6.
만달레이에서 만난 사람들 / 미얀마 여행의 추억 미얀마를 떠올리노라면, 도시나 유적보다는 만달레이에서 만난 사람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제게 미얀마는 사람들의 부드럽고 다정한 얼굴 표정으로 기억되는 나라예요. 미얀마 여행을 계획한 건 동남아 3대 유적의 하나인 ‘바간’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보았기에 바간도 궁금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건 보로부드르였고, 가장 스케일이 대단했던 건 앙코르와트였으며, 가장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이 바간이었어요. 미얀마의 바간은 개개의 탑은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탑 수천 개가 모인 풍경이 장관이었죠. 일출 즈음에 가장 높은 탑에서 일대를 내려다보면 이 지상 너머 딴 세계에 도착한 듯,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 바간이었습니.. 2017. 1. 16.
캄보디아의 오지, 라타나키리 국립공원 캄보디아의 라타나키리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어요. 스텅트렝에서 버스를 타고 붉은 흙이 깔린 도로를 종일 달리자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이 오지에는 라타나키리 국립공원이 있어요. 그래서 이 지역의 주도인 반룽에는 게스트하우스가 꽤 많았습니다. 서양 여행자들은 이 오지까지 많이들 들어오고 있었어요. 여행사에 들러 국립공원 트레킹을 예약했어요. 본격적인 라타나키리의 풍광을 보려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소 이박삼일이 필요하다 합니다. 아쉽지만 내게는 이틀이 여기서 쓸 수 있는 최대치였어요. 그래서 라타나키리 인근 숲을 둘러보는 일박이일 트레킹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중년인지 노년인지 가늠이 안 되는 얼굴, 작고 왜소한 몸집의 가이드를 따라 트레킹을 시작했.. 2016. 10. 9.
여행자의 천국? 바가지의 천국 / 라오스 돈뎃 캄보디아-라오스 국경은 그야말로 여행자들로 넘쳐났다. 서양 여행자들로 가득찬 버스가 매시간 속속 국경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손에는 하나같이 똑같은 가이드북이 들려 있었다. 론리플래닛. 독일 애들만 독일어로 된 노란색 책을 들고 있다. 사람들 말로는 론리플래닛보다 좋다고 했다. 배낭여행이라 하지만 실상 여행자들의 루트는 거진 비슷하다. 론래플래닛이 추천하는 루트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 루트를 따라서 여행자용 숙소가 세워져 있어서 저개발국이라도 큰 불편 없이 여행할 수 있다. 한번 만났던 사람을 여행중 다시 마주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루트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론리플래닛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인도네시아판을 제외하곤 크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2013. 9. 1.
캄보디아 스텅트렝에서의 하룻밤 솔로 여행 중에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일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지방에 그것도 캄캄한 밤에 혼자 도착해서 숙소를 찾는 일이 아닐까? 이럴 때면 하룻밤 몸을 누일 곳을 찾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버거운 일로 다가온다. 그리고 직전에 떠나온 곳, 비록 며칠이지만 정들었던 그곳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이 마음을 점령해 버린다. 프놈펜을 떠나 캄보디아 북부의 국경 도시 스텅트렝에 도착했을 때가 바로 그러했다. 스텅트렝은 캄보디아에서 육로로 라오스로 넘어가는 여행자들이 거쳐 가는 곳이다. 하루 온종일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스텅트렝에 도착했을 때는 날은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하고 낯선 거리에 피곤한 육체를 내려놓는 순간, 여행의 모든 기쁨은 증발되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초.. 2013. 6. 18.
받아들여짐에 대하여 / 프놈펜 수녀님들과 함께 프놈펜의 아침은 돈보스코 기숙학교에서 드리는 매일미사로 시작되었다. 수녀님들과 함께 툭툭을 타고 이른 아침 바람을 맞으며 한 15분 정도 달리면 살레시오회에서 운영하는 돈보스코 기숙학교가 나타난다. 누추한 거리를 지나다가 갑자기 유럽에 온 것 같다. 넓다란 정원이 주는 정갈한 느낌은 여느 수도원과 다르지 않았다. 성당은 학교 건물 안에 있었는데 바닥에 앉는 걸 제외하면 내부는 익숙한 모습이다. 미사는 캄보디아 출신 신부님께서 크메르어로 집전하셨다. 크메르어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평을 듣는 말이다. 나는 외국어 발음을 들으면 그대로 잘 따라하는 편인데 크메르어는 듣고 발음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물론 쉬웠다 해도 뜻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겠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미사 참례를 하는 학.. 2012. 1. 22.
뚤슬랭의 소녀 / 캄보디아 프놈펜 소녀는 거기 그렇게 있었다. 사진 속 수많은 얼굴들 사이에서. 그 많은 얼굴 중에 이 사진이 유독 눈에 띈 건 이 아이의 눈빛과 표정 때문이었다. 다른 얼굴들 속에는 체념과 절망, 깊게 가라앉은 '무표정'이 드리워져 있다면, 이 어린 소녀의 얼굴엔 그가 느낀 공포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원망 그리고 막막함. 그래서 나는 이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뚤슬랭 고등학교는 크메르 루즈 집권시 사람들을 고문하던 장소로 쓰인 곳이다. 이들은 특이하게도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한 명 한 명 찍은 사진을 남겼는데 그 많은 사진 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얼굴이었다. 체념한 듯 무표정한 어른들의 얼굴들 사이에서 이 소녀의 얼굴은 인간 존엄성을 아프게 증명하며 거기 그렇게.. 2011. 11. 24.
킬링필드의 현장, 쯔엉아익 / 캄보디아 프놈펜 산책로를 따라 걷는데 마음이 천 근 만 근 내려앉는다. 길 양 옆으로 연이어 나타난 크기가 조금씩 다른 구덩이들. 자연의 흔적이 아니라 인간 범죄의 잔혹한 흔적이었다. 구덩이 하나하나마다 수백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들이 입었던 옷가지를 담은 함도 길 한 켠에 있다. 그 옷의 주인들은 이유도 모른 채 끌려와서 끔찍하게 살해되었다. 프놈펜 교외에 있는 쯔엉아익(Choeung Ek) 기념관, 킬링필드 당시 학살된 사람들의 시신 8000여구가 발굴된 곳이다. 폴포트가 축출된 후 다음 정권에서(근데 이 넘들도 비슷한 놈들이라더라) 유골을 모아 기념탑을 세웠다. 유골을 연령별로 나누어 층층이 전시했는데 아이들의 작은 유골에 더욱 마음이 아파왔다. 1975년에서 1979년까지 폴포트가 집권하는 동안 800.. 2011. 9. 12.
진정 평범하지 않은 것 / 프놈펜 수녀님들과 함께 털털거리던 버스는 오후 2시 좀 넘어 프놈펜에 도착했다. 친구는 오르싸이 시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 한국에 들렀을 때 잠깐 만났으니 일 년 만이다. 이 친구가 캄보디아에서 살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친구다. 툭툭은 프놈펜 교외 주택가에 멈춰섰다. 친구를 포함해 세 분 수녀님이 빌려서 살고 있는 집. 마당은 없었고 1층에 로비와 부엌, 2층에 자그마한 방 4개가 있었다. 며칠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남는 방이 없어서 수녀님들이 모여 기도하는 방에 침구를 마련해놓았다. 중앙에 작은 고상이 모셔져 있다. 예수님과 같은 방을 쓰자니 사이비 신자인 나로선 무지 황송하다. 핑크빛 모기장을 가져다 놓는 것으로 자리 준비는 끝났다. 손님이 왔다고 삼겹살에.. 2011. 9. 4.
버스 타고 프놈펜 가는 길 / 캄보디아 여행 똔레삽 호수를 못 보고 시엠립을 떠나는 것이 다소 아쉬웠다. 허나 어디 못 본 게 하나 둘인가. 호텔서 만난 일본 친구들은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 된 사원이 있다고 꼭 보라고 했는데 그것도 스킵. 최소한 일주일은 머물러야 웬만큼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프놈펜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고 또 다음 여정이 있는지라 아쉽지만 짐을 챙겼다. 친구들은 방학 때면 어디 가고 없는 내가 무척 많은 곳을 다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번에 한 나라 이상 가는 일이 드물고 그 한 나라도 한 곳에 일주일이나 그 이상씩 머무는 수가 많으므로. 대개 계획은 설렁설렁 짠다. 현지에 도착하면 마음이 바뀔 것을 아니까. 어떨 땐 비행기에 오르고나서야 가이드북을 펼쳐본 적도 있다. 문화 유적지라면 공.. 2011. 9. 2.
프놈바켄의 일몰 / 캄보디아 앙코르왓 해가 지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일찍 가야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있다고 했는데, 사원 입구는 벌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프놈바켄 사원은 앙코르 유적 중에서 일몰 장소로 유명하다. 언덕을 올라가는 엄청난 인파에 놀랐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사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다른 곳 같았으면 그 앞에서 사진이나 찍었을 테지만 여기선 뭐든 가능하다. 유적 관리를 이 따위로 하냐 싶기도 했지만 그 생각은 잠시, 여기 아니면 어디서 사원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나도 무리 중 하나가 되어 기꺼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꼭대기는 이미 다국적의 사람들로 빈틈 없이 가득 찼다. 일몰보다 그 모습이 더 장관이었다. 10대부터 노인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얼굴들. 그들.. 2011. 8. 5.
폐허 위의 아름다움, 캄보디아 앙코르왓의 사원들 사흘권을 끊었지만 앙코르 유적을 다 보진 못했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앙코르왓, 앙코르톰, 바이욘, 타프놈, 프놈바켄, 프레야칸, 네펀..... 어느 순간 이름을 다 기억하기 어려워졌고 내가 소화시킬 수 있는 만큼 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사원들은 배경지식 없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정글 한가운데, 그 어떤 인공적인 덧칠도 없이 폐허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그 신비로움이 더한 것 같다. 사원군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왕국의 게이트라 할 수 있는 웅장한 앙코르톰이 서 있었다. 이 왕국, 이 문명 세계가 자연에 대한 일종의 극복/정복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인간이 만든 새로운 세계, 그것이 문명이었다. 이 거대한 사원군은 12~13세기 동남아 일대를 지배했던 .. 2011. 6. 3.
사랑을 환기시키는 새벽, 앙코르왓의 일출 새벽 5시에 호텔 로비로 나갔다. 약속했던 툭툭 기사는 도착하지 않았다. 호텔 직원이 전화를 걸더니 곧 도착한다고 했는데도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늦잠을 잤던 모양이다. 그때 막 출발하려던 한국 아가씨들이 자기들 툭툭을 같이 타고가자고 한다. 더 늦으면 일출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아서 함께 나섰다. 깜깜한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앙코르왓으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원 안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호수 위에 놓인 거대한 다리를 건널 때는 신들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해가 뜨면 앙코르왓의 모습이 반사되는 왼쪽 연못가에 자리를 잡았다. 전세계에서 몰려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다들 고요히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북소.. 2011.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