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라오스 국경은 그야말로 여행자들로 넘쳐났다. 서양 여행자들로 가득찬 버스가 매시간 속속 국경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손에는 하나같이 똑같은 가이드북이 들려 있었다. 론리플래닛. 독일 애들만 독일어로 된 노란색 책을 들고 있다. 사람들 말로는 론리플래닛보다 좋다고 했다.
배낭여행이라 하지만 실상 여행자들의 루트는 거진 비슷하다. 론래플래닛이 추천하는 루트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 루트를 따라서 여행자용 숙소가 세워져 있어서 저개발국이라도 큰 불편 없이 여행할 수 있다. 한번 만났던 사람을 여행중 다시 마주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루트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론리플래닛에 대한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인도네시아판을 제외하곤 크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풍경을 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론리플래닛은 서양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론리플래닛이 강추하는 곳이 내게는 별로인 경우가 꽤 있었다. 돈뎃이 바로 그러한 곳이었다. 론리플래닛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여행자들의 천국, 돈뎃". 내가 본 돈뎃은 '바가지의 천국'이었다.
돈뎃은 캄보디아에서 라오스 국경을 넘어가서 배를 타고 조금 들어가면 닿을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앙코르와트에서 만났던 한국 아가씨 둘을 여기서 다시 만나 함께 돈뎃에 들어갔다. 도착해서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이 적다면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일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네 시골보다 못한 이 평범한 섬이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숙소는 거의 만원이었고 방이라 하기도 어려운 것을 비싼 값을 불러서 한 바퀴 섬을 돈 끝에 간신히 묵을 만한 방을 구했다. 이 작은 섬은 숙소, 레스토랑, 까페,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로 가득했다. 흡사 여름 캠핑장 같은 분위기였다.
두 아가씨들은 강에 사는 돌고래를 보고 싶어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야생 돌고래떼를 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기에 돌고래 무리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해서 그다지 내키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돌고래를 꼭 보고 싶어해서 같이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한참을 가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에 돌고래가 어딨냐고 물으니 더 가면 있다는 거다. 그럭저럭 배를 타고 도착한 곳엔 돌고래가 단 한 마리 있었다. 하지만 돌고래가 한 자리에 계속 있길래 자세히 살피니 그 돌고래는 갇혀 있었다. 돌고래가 있는 얕은 물 주위로 크게 그물이 쳐져 있었다. 풀어달라 할 수도 없고 그저 한숨만 나왔다.
개방되지 않았을 때는 때묻지 않은 사람들, 그러나 여행자들이 몰려들고 돈맛을 알기 시작하면,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이런 사회에서는 선진국에서보다 훨씬 비인간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사회가 발전하면 그에 맞는 법규와 제도가 정비되어야 하는데 그것들이 갖추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개방의 속도를 비해 제도나 사회 전반의 성숙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회들을 순수가 살아있는 곳이라고 마냥 칭송할 수가 없다.
돈뎃을 떠나 예정대로라면 비엔티엔을 거쳐 루앙프라방까지 죽 북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내 남은 날수를 계산하니 루앙프라방에서 다시 하노이로 나가기엔 일정이 너무 촉박했다. 라오스를 포기하고 캄보디아 국경에서 가까운 라타나키리 국립공원을 보고 프놈펜에서 바로 비행기편으로 하노이에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일정을 변경하고 다시 캄보디아 국경으로 향했다.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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