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를 떠올리노라면, 도시나 유적보다는 만달레이에서 만난 사람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제게 미얀마는 사람들의 부드럽고 다정한 얼굴 표정으로 기억되는 나라예요.
미얀마 여행을 계획한 건 동남아 3대 유적의 하나인 ‘바간’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보았기에 바간도 궁금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건 보로부드르였고, 가장 스케일이 대단했던 건 앙코르와트였으며, 가장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이 바간이었어요. 미얀마의 바간은 개개의 탑은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탑 수천 개가 모인 풍경이 장관이었죠. 일출 즈음에 가장 높은 탑에서 일대를 내려다보면 이 지상 너머 딴 세계에 도착한 듯,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 바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간에서는, 도착하자마자 삐끼를 만났어요. 미얀마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세계 어디서나 공통인 그 삐끼들의 사나운 눈빛을 이곳에서도 발견해서 놀랐습니다. 역시 관광지는 관광지였죠. 그래서 제게 가장 미얀마다운 장소로 기억되는 곳은 바간이나 수도 양곤이 아니라 만달레이입니다. 만달레이는 미얀마 마지막 왕조가 있었던 도시로 미얀마 역사와 문화의 도시기도 하죠. 평소 여행지에서의 스쳐가는 인연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아 왔지만 미얀마는 예외였습니다. 사람이 아름다운 나라였어요.
미얀마의 사원은 도시 한복판에 있습니다. 수도 양곤에 쉐다곤 파고다가 있다면 만달레이의 중심가에는 마하무니 사원이 있어요. 불상에 금박을 붙이며 소원을 비는 곳인데(남자만 가능) 미얀마 대부분 사원이 그러하듯이 불상이 딱히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한국 사찰의 단아하고 정갈한 맛은 없어요. 사원 입구도 대부분 상점가이고요. 우리와는 미학적 감수성이 다릅니다.
하지만 사원이 생활의 중심이고 날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 과연 이런 게 불교국가구나 싶어요. 출근길에, 퇴근길에, 사원을 집처럼 드나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사원에 잠깐 들렀다가 그곳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반해서 한 시간가량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사원을 오가는 미얀마 사람들을 구경하면서요. 아기 엄마도 꼬마도 할머니도 스스럼없이 제 곁에 앉아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었어요. 마치 가족에게 건네는 것 같은, 따스하고 다정한 미소였습니다. 사원은 낯모를 땅에 온 여행자를 마치 제 집인 것처럼 푸근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맞아주었습니다.
만달레이에는 티크나무로 만든 세상에서 제일 긴 ‘우베인 다리’도 있어요. 19세기 중엽에 만들어졌는데 길이가 1.2킬로미터나 됩니다. 세계적인 관광지죠. 우베인다리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지만 그곳에서 바라보는 일몰과 주변 시골 풍경이 독특하게 명상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일몰 무렵이면 갑자기 등장하는 여행자들로 다리가 꽉 차는데요. 저는 오후의 햇살이 뜨거울 때 우베인에 도착했어요. 그 시간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양곤에서 온 한 미얀마 청년과 만달레이에서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 세 명 뿐이었죠.
그 청년과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다리 끝까지 다녀왔어요. 그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크게 좋아하지 않더군요. 제가 만난 사람들은 수치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 어쩔 수 없이 지지한다는 사람이 반이었어요. 헤어질 때 그는 다리 입구 노점에서 열쇠고리를 하나 사더니 갑자기 제게 선물이라고 내밀었어요. 좋은 여행 되시라고. 우베인에서의 저녁 일몰 풍경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지만, 수줍게 열쇠고리를 건넨 미얀마 청년의 친절이 여행이 끝난 지금에 와서는 더 기억에 남아요.
만달레이힐에 오른 날도 생각나네요. 만달레이힐 아래에 있는 백탑사원군에서 만달레이힐로 가는 길을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는데요. 저 말고는 아무도 없던 그 사원에 갑자기 앳된 승려 네 명이 나타났어요. 이 네 명의 스님은 사원에서 공부하는 학승으로 영어가 유창할 뿐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어요. 신라, 고려, 조선 등 시대 구분을 정확히 할 정도였으니까요(한국에 관한 다큐를 봤다고 합니다). 이 분들의 안내로 함께 약 천 개의 계단을 따라 만달레이힐에 올랐습니다. 밝고 유머러스한 이 친구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가다보니 계단이 힘든 줄도 몰랐어요.
만달레이힐은 이백 몇십 미터의 작은 야산이지만 운치 있는 장소였어요. 꼭대기엔 쉐야토 사원이 있는데, 이슬람 사원 느낌이 나면서 화려하면서도 산뜻한 아름다움으로 여행자의 쓸쓸함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일몰을 보기 위해 만달레이힐에는 많은 관광객이 있었는데요. 일몰 풍경은 우베인다리에 비하면 특별할 것 없지만, 만달레이시 전체가 저녁 어둠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어요. 일몰을 보고 이 네 명의 스님과 헤어졌습니다. 절에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더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지요. 페이스북 주소를 받았는데 페이스북에서 그 이름을 찾을 수가 없어 아쉬운 작별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사람은 오토바이 기사예요. 만달레이에 머물 때 제 숙소는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서 날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저기 다녔어요. 중심가의 쇼핑몰 앞에는 늘 오토바이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한국식당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쇼핑몰 앞에서 오토바이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우연히 탔던 오토바이의 인상 좋은 아저씨가 저를 딱 기억하고는, 제가 쇼핑몰 앞에 가기만 하면 손을 들고 환하게 웃었어요. 저보다 그분이 저를 늘 먼저 발견했지요. 그래서 만달레이에 머무는 며칠간 한 번을 제외하고는 그 분이 제 전속기사가 되었습니다. 다른 곳이라면 밤에 오토바이를 탄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위험한 일인데, 만달레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안전했어요. 그 기사분은 늘 안전하게 호텔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소승불교 국가는 유교권인 동북아 지역과는 다른 빛깔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남국의 따스한 날씨만큼이나 온화하고 넉넉하고 느긋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우리가 차갑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와는 좀 다른 문화, 다른 정서라고 느꼈어요.
미얀마는 항공을 통해서만 입국할 수 있어요. 육로 국경은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2014년 현재). 이곳도 개방되고 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어질 지도 몰라요. 자본주의는 그것을 선점한 국가들에게는 많은 번영을 가져다주었지만 뒤따르는 후발주자 국가들에게는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점에서 잔인한 면도 있죠. 어떤 길이 되었건 미얀마가 그들 자신의 길을 걸어갔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2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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