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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547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3 / 도스토옙스키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아니, 도스토옙스키가 이렇게 수다쟁이였나. 말 그대로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다. 인물들에 대한 끝없는 묘사와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의 향연... 작가의 수다는 주연, 조연 가리지 않고 끝이 없어서, 마치 그 시대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서 내가 그 동네 까페에서 이야기를 엿듣는 것 같았다. 대화는 또 왜 그렇게 긴 지... 장광설에 다소 지칠 만하면서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건 정말 다음 장면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작가의 필력이 실감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한 권에 600페이지가 넘는 3권의 책을 끝마칠 무렵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아니고, 엉엉 울고 있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결말이 아님에도...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의 문장들이 그렇게 참신한 내용이 아님에도... 눈물이 그치.. 2024. 11. 27.
감정의 발견 / 마크 브래닛 감정 이해하기는 여행과도 같다. 모험이 될 수도 있다. 여정을 마칠 쯤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곳, 갈 생각조차 하지않았던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보다, 아니 우리의 바람보다 더 현명해질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p132   예일대 교수 마크 브래닛의 이 저서의 핵심은 감정을 다루는 다섯 가지 기술에 대한 것이다. 많은 분들이 추천한 책인데 내겐 그렇게 특별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책과의 인연도 책을 집어들 때의 개인적인 상황이나 심리 상태와 많이 연관되는 것 같다. 하지만 감정을 다루는 기술보다는 '감정'이란 것이 우리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에 대해서 더 넓은 지평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이웃 주민에 의한 성적 학대, 왕따, .. 2024. 11. 20.
제주도우다 1~3 / 현기영 "영미야, 너 방 안의 코끼리란 말 알지? 우리가 자는 어둡고 좁은 방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 너무 크고 너무 어두워서 그 실체를 잘 알 수 없는 것. 그게 4.3이야. 우리를 깔아뭉개버릴 것 같은 압도적인 무게와 거대한 부피. 정말 무섭다!" (3권 p357) 팔순을 넘긴 현기영 선생이 쓴 역작 '제주도우다' 3권을 이제 다 읽었다. 선생의 필력이 없었더라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소설.시작하는데 오래 걸렸을 뿐, 책장을 접어들자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중단할 수가 없었다. 대작가는 다르구나 했다.  이토록 많은 등장인물과 이토록 끔찍한 사건들... 작가는 '안창세'라는 소년과 조천리 마을 사람들을 중심 기둥으로 잡아서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이야기 속에는제주 사람들이 조선 이래 대대로 겪어왔던 거칠고 투박한 .. 2024. 10. 17.
죽으면 못 놀아 / 페리도나 이런 책을 읽으면 우리 사회가 아직 건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엔 온갖 절망적인 뉴스가 가득하지만 사회 곳곳엔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 이 책은 요양원에서 미술치료?를 맡은 사회복지사의 요양원 일기이다. 저자가 요양원에서 일하며 마주친 많은 순간들은 그것이 잠깐이든 좀 더 긴 시간이든 저자의 마음에 파문을 남기고 사색의 여지를 준다. 치매 환자가 반 이상인 그곳이 어찌 보면 우울의 집합체로 보이기도 하련만 저자 특유의 명랑성은 그 속에서 햇살 같은 유머의 지점을 포착하고 읽는이를 웃고 울게 만든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다 재밌다. 그리고 저자가 치매 어르신들과 진행한 다양한 미술수업의 사진들은 그 따스한 색감으로 우리 마음.. 2024. 8. 9.
미래의 교육을 설계한다 / 마크 프렌스키 부제가 인상적이어서 고른 책이다."문제 풀이 수업에서 문제 해결 교육으로, 개인적 성취에서 사회적 실현으로"  저자는 미래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고 문제 해결과 사회적 실천 두 가지를 든다. 우리의 미래교육 담론은? 디지털교과서와 AI 등 기능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 가치는 어디로 실종되고?  교육은 어떤 경우에도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이다.지금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 아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걸 목표로 한다고 하지만'가치'와 '비전'이 없다보니 온갖 잡다한 활동에 매몰되고 있다. 그것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평가에 맞춰 교육활동을 설계해야 한다고평가가 곧 교육목적이자 가치가 되어버렸다. 저자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그러므로 학습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학생들의 일차적 목.. 2024. 8. 7.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 정지아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내가 흠모하는 작가의 일대기를 썼다.얼른 주문할 수밖에... 올해 5월에 출판된 따끈따끈한 새 책이다.  권정생 선생의 일대기를 주요 사건과 함께  10개의 작은 토막으로 풀어가는 이야기. 아이들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고 편안하게 씌어져있고분량도 200쪽이 안 되어 부담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는데 책 말미에 이르러서는 나도 모르게 엉엉 울고 있다.  권정생 선생은 1937년생이다. 식민지, 6,25전쟁, 분단의 비극, 그 한가운데를 통과하며벗어날 수 없는 가난, 가족과의 생이별, 그리고 본인을 덮친 결핵이라는 병마... 아, 힘들어도 어찌 이리 힘들까 싶은 신산한 삶 속에서선생은 마치 눈물로 만든 보석 같은 이야기를 당신 삶 속에서 건져올린다. 그 아픈.. 2024. 8. 2.
디지털이 할 수 없는 것들 / 데이비드 색스 학교 현장에서 그때 그때 몇 년 유행하다 사라진 게 얼마나 많은가. 최근 교육부장관 이주호는 '에듀테크'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교사들은 다 안다. 또 헛짓이라는 걸. 코로나 때 보고도 모르는가. 줌 수업이, 디지털이 교실을 대체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 책 은 회사, 도시 생활, 문화 생활, 쇼핑 각계 각 분야에서 디지털이 만들어 준다고 약속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을 하나씩 깨트려주는 책이다. 난 다른 챕터는 짐작 가는 내용이라 눈으로 쓱 훑어봤고, 학교 부분만 정독했다. 이미 답은 알고 있지만 그 근거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학교를 마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성인에겐 디지털수업이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하지만, 자라나는 학생들에겐 전혀 효과가 없다. 그들은 제대로 공부.. 2024. 6. 30.
오늘날 왜 혁명은 불가능한가 / 한병철 20세기와는 아주 많이 다른, 디지털 사회와 자본주의가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새로운 삶의 양태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개념에는 무엇이 있을까. 철학자 한병철만큼 이 방면에 깊은 이해를 지닌 저자는 잘 없는 것 같다.  자기 착취, 성과 좀비, 투명사회, 긍정사회, 데이터 전체주의, 전시 가치, 포르노, 나르시시즘, 우울과 자해.... 등의 개념들을 경유하면서 우리는 우리 삶이 총체적으로 상업화되었음을 직시하게 된다. 요즘 칭송 받는 공유 경제(에어비앤비 등)는 우리를 자본으로부터 해방하기는커녕 손님에 대한 환대까지 경제화하고, 이렇게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상품으로 판매할 때 자본주의는 더이상 그것에 맞설 적수가 없이 완성되었다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저자는 중세 봉건체제와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다. 페이.. 2024. 6. 6.
죽기 위해 자살하는 게 아니다 / 오진탁 서문의 첫문장이 폐부를 찌른다. "우리 사회는 정신적 폐허 속에 있다."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까운 자살률와 출생률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이 넘은 지 오래지만 사회 곳곳에 위기의 징후가 뚜렷하다. 저자가 인용한 김우창 교수는 '정신적 불행이 일상화된 사회'라 진단하고 서은국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표현한다. 자살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 병리현상의 결과라는 데서 저자는 논의를 시작한다.  OECD 선진국 중 유일하게 경제적 가치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고, 사랑, 행복 같은 추상적 가치조자 돈으로 환산된다. 높은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삶의 만족도는 130개국 중 중위권이고 기쁨과 같은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정도는 하위권이다. 경제 중심의 가치관이 다른 모든 사회적 관계와 개.. 2024. 5. 25.
고미숙의 인생 특강 / 고미숙 아주 오래 전, 내가 삼십대 초반일 때 종묘 근처에 있던 수유-너머에서 고미숙쌤을 뵌 날이 생각난다. 개성 넘치는 분이었는데도 초면이지만 편안했다. 아마 이야기를 편하고 자유롭게, 권위 없이 하셔서 그랬던 것 같다. 이후 이분 책을 계속 읽어왔는데, 요새 책이 제일 좋다. 한 길을 꾸준히 가다보니 사회 전반을 통찰하는 눈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진짜 기여하는 분이고, 제대로 된 지식인이다. 고미숙의 인생 특강, 요 얇은 책은 강연을 다시 책으로 엮은 모양인데, 이분이 원래 입말 문제를 쓰지만, 이 책은 더 술술 잘 읽힌다. 이 쉬운 문장 속에 담긴 통찰은 절대 가볍지 않다. 지식을 기술지, 문명지, 자연지로 나누면서 이 풍요의 시대에 우리에게 무엇이 절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 2024. 5. 25.
철도원 삼대 / 황석영 감탄과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던 작품. 부커상 후보작 '철도원 삼대'를 읽었다. 워낙 두꺼운 책이라 주말 하루가 소요되었는데 그럼에도 꼼꼼히는 못 읽고 조금 속독한 책.  감탄한 부분은 철도, 그리고 영등포를 무대로 우리 근대사를 꿰뚫은 점.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이자 식민 통치의 상징이다. 그 철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6.25 전쟁과 분단, 이산가족, 그리고 현대 고공농성 철탑에 오른 후손까지... 한 마디로 한반도 백년사를 철도를 중심으로 아우른다. 그 천부적인 이야기 솜씨에 감탄했다. 아쉬운 점은 작가가 시도한 '마술적 리얼리즘'이 소설 중심부를 차지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문 것.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캐릭터가 살아있고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는 부분은 죽어서도 문득문득 나타나는 주안댁과 신기 있는 신금.. 2024. 5. 22.
은유란 무엇인가 & 은유가 만드는 삶 / 김용규, 김유림 은유 시리즈로 책을 세 권이나 내다니... 은유 수업 다 끝나고 읽고 있는데, 신세계다. 다음 은유 수업은 훨씬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은유 시리즈는 총 3권이다. 1편 '은유란 무엇인가'는 은유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하는 부분이어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2편 '은유가 만드는 삶'에서는 새롭고 다양한 은유 작품의 예시를 보아서 좋았고, 3편 '은유가 바꾸는 세상'은 제목 위주로 훑어보았으나 사회적으로 천박한 은유가 삶을 어떻게 천박하게 만드는지 확실히 이해하게 됐다.  은유란 무엇인가. 저자들에 따르면 은유는 단지 수사법에 국한되지 않는다. 은유가 없다면 창의가 없고 우리 문명도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은유적 사고는 시와 노래뿐 아니라 회화, 조각, 음악, 무용 등 '비언어적 표현'에.. 2024. 5. 4.
가르침의 재발견 / 거트 비에스트 _ 학습에서 가르침 해방하기 요 몇 년 새 읽은 교육학 관련 책 중 최고다. 이런 책을 만나면 너무너무 행복하다. 오랜만에 한 구절 한 구절 감탄하며 읽은 책. 옆동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비에스타 책은 사서 다시 줄 그으며 봐야지 싶다. 평소 내가 감으로는 느끼지만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밝혀주고, 새로운 개념으로 보충해준 책.  우리는 흔히 교수-학습을 한 쌍으로 놓고 교수를 학습을 위한, 혹은 학습을 촉진하는 활동으로 보지만, 저자는 그것이 현재의 교육적 혼란을 야기한 주범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교수 즉 가르침을 학습과 분리하되 그렇다고 해서 학생을 대상으로만 보았던, 가르침에 대한 전통적 관점으로 회귀하지 않는다. 아렌트, 랑시에르, 레비나스 등 다양한 철학자들을 경유하면서 '세계와의 만남' .. 2024. 4. 28.
사춘기 마음을 통역해 드립니다 / 김현수 왜 외국 영화에 나오는 학생들은 명찰을 달고 있지 않을까. 책에 등장하는 학생은 이렇게 질문한 뒤 답한다. 서로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명찰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요즘 아이들의 심리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금 어른들은 다수 학급에서 익명의 상태로 지내는 게 익숙했지만, 요즘 아이들은 반대다. 잘하는 몇 명과 말썽꾼 몇 명만 알아주는 학교에서 종일 존재감 없이 지내는 게 고역이며 무의미하다 느낀다. 요즘 아이들에겐 '존재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다.  후루룩 읽었지만, 종일 사춘기 아이들과 생활하면서도 내가 놓치고 있었거나, 느낌은 있어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저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방황 또는 반항의 원인을 외로움이.. 2024. 4. 26.
선불교의 철학 / 한병철 __ 허무주의가 아니라 이 세계에 대한 최고의 긍정 불교의 무나 공 같은 개념을 이처럼 개념적으로 엄밀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비어 있음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무한한 개방성이자 세계에 대한 최고의 긍정이다. 서양철학과 종교는 존재의 유한성을 영원성과 무한성을 지닌 신에게 귀의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지만, 여기엔 유한성에 대한 부정의 정신이 깃들 수밖에 없다. 반면 선불교는 유한성 그 자체를 개인의 욕망과 의지가 얽히지 않은 맑은 눈으로 거울처럼 바라보고, 덧없는 사물들 곁에 머무르며 자기 자신도 덧없이 지나가게 한다. 그 덧없음과 함께 하고 덧없음 속에 머무르며 그 속에서 깊은 슬픔을 경험한 이가 지닌 것은 모든 존재자와 세계에 대한 친절이다. 저자는 그것을 사교적 친절과 대비하여 태고의 친절이라 부른다. 두 번 읽었는데, 책 사서.. 2024.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