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에서 <동물농장>으로 넘어왔다.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이 1945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스탈린 체제를 풍자했지만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그린 것이 아니다. 권력의 부패 과정을 속속들이 탐구하면서 부패한 권력 속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왜곡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정치적 통찰을 담고 있다. <1984>와 주제가 일맥상통하지만 <1984>가 체제 속에 갇힌 개인의 비극을 그렸다면 <동물농장>은 특정 체제가 만들어지고 변질되는 좌충우돌의 과정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984>의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함과 달리 비극적 사건 속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소설이기도 하다. 오웰의 정치적 풍자와 해학이 가장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오웰은 다른 에세이에서 원래 자신은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는 성향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자연주의적인 소설을 많이 썼을 거라고. 하지만 세계대전과 파시즘이 유럽을 집어삼킨 현실을 보면서 이를 경고하는 글을 쓰지 않는다면 작가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대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을 작가의 소명으로 본 것이다.
<동물농장>은 이러한 오웰의 시대적 고뇌와 책임감이 반영된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 캐릭터들은 단순한 우화적 도구를 넘어서 권력의 매커니즘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며, 독자에게 권력의 본질과 대중의 역할을 질문한다. 혁명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과정을 명쾌하게 보여주어 시종일관 오웰의 지성에 감탄하며 읽었다.
1.
이야기의 배경은 영국 매너 농장이다. 맑스를 연상케 하는 늙은 수퇘지 올드 메이저는 인간이 동물의 적이며 동물이 단결해 인간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들이 평등하게 살수 있는 세상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이 이야기는 동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동물들은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을 중심으로 무자비한 농장주 존스를 몰아낼 혁명을 준비한다. 기회는 찾아와서 농장주 존스가 술에 빠져 있을 때 동물들은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몰아낸다.
동물들은 7계명을 만들어 평등한 사회를 꿈꿨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혁명을 주도했던 돼지들 사이에서 권력 투쟁이 시작된다. 나폴레옹은 경쟁자 스노볼을 추방하고 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은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축출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후 나폴레옹은 선동과 공포를 무기로 동물들을 지배하며 혁명의 이상을 완전히 배신한 채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다.
소설은 혁명 주도 세력 뿐 아니라 혁명을 겪은 동물들의 다양한 행태를 보여준다. 암말 몰리는 구체제, 즉 농장주 존스가 있던 시절에 누렸던 각설탕과 리본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다른 농장으로 탈출한다. 혁명 이후에도 삶이 더 나아질 것 없자 까마귀 모지스는 동물들에게 죽으면 가는 ‘설탕 사탕 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의 모든 고통이 사라진 곳이다. 이 믿음이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나폴레옹은 모지스를 눈감아준다. 나머지 대다수의 동물들은 지금이 아무리 힘들어도 혁명 이전보다는 낫다고 세뇌되면서 체제에 점차 순응한다.
그 과정을 가장 상징적이고 해학적으로 드러내주는 게 7계명의 변천이다. 1계명 '두 발로 걷는 자는 적이다', 2계명 '네 발로 걷거나 날개 달린 자는 친구다', 3계명 '동물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돼지들이 이 계명을 어기면서 모두 파기된다.
4계명 '동물은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는 '동물은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로, 5계명 '동물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동물은 과도하게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로, 6계명 '동물은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동물은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로 돼지들의 사사로운 욕구에 따라 변경된다. 단 하나 남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약속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로 바뀌어 돼지들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
2.
'만인의 평등'이라는 가장 드높은 이상으로 시작된 러시아 혁명은 왜 가장 폭압적인 스탈린 체제를 낳았는가? 노동자와 농민이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국가 운영에 참여한다는 이상은 왜 실현되지 못했는가? 혁명이 애초의 이상과 달리 무너진 이유를 소설은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나폴레옹의 끝없는 권력욕이다. 그는 처음부터 혁명보다는 권력 쟁취가 목적이었다. 이상주의자 스노볼이 농장을 발전시킬 풍차 계획으로 인기를 끌자 그를 첩자로 몰아 추방한다. 가장 똑똑하고 유력한 경쟁자가 사라지자 그는 노골적인 권력욕을 드러낸다.
둘째, 선동과 공포정치다. 돼지 스퀼러와 양들은 선전대 역할을 하면서 동물들의 의혹을 잠재우고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포장한다. 혁명은 모든 동물들이 힘을 합쳐 이룬 것인데 나폴레옹 혼자 이룬 것인 양 역사가 날조된다. 나폴레옹의 호위대 역할을 하는 개들은 스탈린 체제의 비밀경찰을 연상시킨다. 반기를 드는 동물들은 개들에 의해 제거되고 동물들은 공포정치에 길들여진다.
셋째, 지식인과 대중의 순응이다. 늙은 당나귀 벤자민은 무력한 지식인을 상징한다. 벤자민은 회의주의자로 처음부터 혁명으로 더 좋은 세상이 온다는 걸 믿지 않는다. 그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혁명에 열광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글자를 알면서도 아는 척을 하지 않고 개인적인 의견을 절대 피력하지 않는다. 친구 복서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걸 알아채고 경고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노동자 계급을 상징하는 복서의 비극은 혁명이 실패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지만 "나폴레옹 동지는 항상 옳다"고 믿는다. 비판적 사고가 마비된 대중의 맹목적 신념과 충성심도 체제 유지의 한 축이 된다. 그 결과 혁명의 이상은 완전히 실종되고 과거보다 더 잔혹한 파시즘 체제가 완성된다.
3.
오웰은 이 소설을 통해 아무리 고귀한 이상도 권력자에 의해 악용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권력자는 언제나 자신의 권력욕을 그럴싸한 이념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어떤 이념을 표방하든 상관없이 닫힌 체제, 절대적 권력은 결국 썩기 마련이다. 권력은 스스로를 견제하지 않기에 지식인과 대중이 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이상은 언제든 악몽으로 변질될 수 있다.
오늘날에도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 스퀼러와 양떼는 도처에 있다. 그들의 선전 선동은 지도자의 잘못된 통치 행위를 강화하고 영속화하는 수단이 된다. 그런 종류의 선동에 넘어가서 최근 서부지법을 테러한 폭도들도 있다. 소설에서 나폴레옹을 호위하는 개떼의 역할을 자처한 이들이다. 그들은 계엄을 통해 권력을 독점하려는 윤석열의 의도를 읽지 못하고 그를 애국자라며 지지한다.
다행히 한국은 스퀼러와 양떼에 맞설 수 있는 상식적인 시민이 있기에 계엄은 종식되었고, 탄핵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독재 권력은 언제든 그럴싸한 이념으로 포장하여 대중을 현혹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물농장>은 그 비극의 전개 과정을 정확하고 날카롭게 풍자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역할을 무겁게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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