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해외144 캄팔라에서 손흥민 우간다 체류시 많이 불편했던 세 가지다. 첫째,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아 배불리 먹어도 뭔가 늘 허기졌다. 생채소를 먹을 수 없는 게 특히 아쉬웠다. 여긴 물이 안 좋기 때문에 무조건 익혀 먹어야 한다. 채소 종류도 제한된다. 한국의 쌈채소가 얼마나 그리웠는지..둘째는 물이다. 수돗물을 믿을 수 없어 양치도 생수로 해야 한다. 생수는 루헨게리 산맥에서 오는데 생수 용기가 통이 얇아 미세 플라스틱 범벅일 것 같고 제조과정이 깨끗한지도 믿을 수 없다. 아무튼 철저히 관리하는데도 D는 장티프스에 두 번이나 걸렸다. 외식할 때 감염됐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난 가기 전에 예방접종을 했었다. 마지막으론 산책을 못하는 것. 선진국과 후진국 거리의 가장 큰 차이는 인도의 존재 유무다. 캄팔라엔 도심 아주 일부를 제외하.. 2025. 3. 12. 아프리카의 보름달 밤하늘을 보고 알아차렸다. 오늘이 보름이구나. 적도의 달은 마치 태양을 흉내내듯이 그 밝은 빛이 사방팔방으로 퍼진다. 하늘에 커다란 등불을 걸어둔 것만 같다. 12일에 찍은 사진이다. 달빛에 홀려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밤. 도시 한가운데지만 우주적인 적막이 느껴지는 이 순간을 사랑한다. 고요하고 차가운 흰 빛 속에 눈길이 머무노라면 시공간에 대한 감각이 넓어진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머나먼 고대와 연결된 듯한 느낌. 찰나 같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우주의 드넓은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는 느낌. 고대인들도 그렇게 느꼈을까. 달빛이 내 눈과 뺨에 머무는 사이, 고대와 현대, 순간과 영원, 인간과 우주가 함께 항해를 시작한다. 2025. 2. 15. 희망의 싹, 아프리카 비닐하우스 D가 우간다로 간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사실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농업 어쩌구 지원사업이라길래 걍 그러려니 했었다. 요번 방문 때 D가 관리하는 현장 중 한 곳에 들렀는데, 이제야 무얼 도와주는지 알게 됐다. 우간다는 아직 농작물의 종자가 확보되지 못했다 한다. 예컨대 우린 다양한 작물마다 그 품종의 우수한 종자가 확보되어 있어 그걸 심어 재배한다. 하지만 우간다는 걍 주위에서 대대로 써온 걸 그냥 심는다고 한다. 작물마다 우수한 종자가 선별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사업의 핵심은 종자를 확보하는 것이라 한다. 우간다에서 가장 널리 먹는 대표 작물 6개를 정해서 그 작물에 대해 가장 생산성이 높고 우수한 종자를 확보하는 뭐 그런 거라 한다. 즉.. 2024. 10. 10. 망고나무 주렁주렁 매달린 풍성한 바나나 줄기와 함께 내게 아프리카의 빈곤과 비참을 잊게 하는 게 있다. 바로 나무와 숲이다. 우간다도 경작지 확보를 위해 숲은 계속 잘려나가고 있지만 대부분 도시가 해발 천미터 고지대에 위치해 어느 길모퉁이에서건 고목을 발견한다. 열대우림의 위엄에 걸맞게 나무가 빨리 자라기 때문에 까마득하게 올려다보는 키 큰 나무들이 많다. 첫 번째 사진은 망고나무. 파울로 프레이리가 왜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란 책을 썼는지 알겠다. 드넓은 그늘을 가진 나무. 두 번째 사진은 나무 이름 모르겠음. 엔테베 식물원이다. 세 번째 사진은 빅토리아 호수. 이곳의 원경은 참으로 아름답고 평화롭다. 근경은, 비포장도로에 먼지 풀풀 나는 정말로 심란한 삶의 풍경이지만.. 푸름에 주목하면, 아프리카의 원초적 .. 2024. 10. 7. 아프리카, 두 개의 시간이 흐르는 곳 우간다는 르완다 바로 옆나라지만 동네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르완다에 처음 갔을 땐, 저녁마다 아이고 어른이고 물통에 물을 채우러 공동 수돗가에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마주치는 손바닥만한 꽃들이 눈길을 오래 사로잡았다. 고산지대라는 기후조건은 비슷하지만 여기선 꽃을 많이 못 본다.D는 꽃나무를 애써 심지 않아서일 거라고 말한다.대신에 좀 더 대도시다보니 상권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르완다에서는 노점을 많이 못 보았는데, 여기선 몇 미터마다 카사바나 짜파티 등 간단한 요리를 파는 노점들이 있다.부엌이나 조리 도구를 갖추지 못한 집들도 많아서 거기서 한 끼를 해결한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사진 5장을 골라보았다. 1. 바나나. 이 탐스러운 바나나 가지들은 내게 열대 고목과.. 2024. 10. 4. 두바이공항 환승 아프리카에 갈 땐 항상 카타르항공을 이용했는데 이번엔 아랍에미레이트가 더 싸서 이걸로. 경유 대기 시간이 5시간이라 그게 좀 긴 편인데 귀국길에 두바이 여행도 며칠 할 겸해서 에미레이트를 이용하게 됐다.한밤중에 인천공항을 이륙할 때 뜬금없이 울컥했다. 점점 작아지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인천공항을 보며, 이게 내 조국이구나, 나의 생의 터전이구나 했다. 예고 없이 갑자기 애국심 뿜뿜해서 나도 당황~~ 해하다가 실은 당연한 반응이다 싶었다. 내가 발 딛고 살어가는 땅이 얼마나 소중한가. 뒤따라오는 생각. 이렇게 아름답고 건실한 곳이 내 조국이구나 했다. 물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뭐 아수라장이지만 이 세상에 문제 없는 곳이 이디 있으랴. 비행기에서 수면제 한 알 먹고 잤더니 확실히 피곤이 덜하다. 장기간 비행이.. 2024. 1. 7. [오디오북] 시인 윤동주를 그리며 ㅡ 교토 도시샤대학에서 sheshe.tistory.com/882?category=874955 부크크를 통한 독립출판, "내게 특별한 여행지" 드디어 책을 받았다. 원고 정리에 시간이 좀 걸렸고 인쇄는 일주일만에 되었다. 전에 쓴 글을 정리하는 작업이라 일주일이면 될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글에 비문도 많고 연도 같이 세세한 sheshe.tistory.com 2020. 4. 19.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톡역 / 블라디보스톡 (5)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장장 9288킬로미터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톡역은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역사 건물에서부터 이곳에 스민 시간의 자취가 느껴졌다. 안중근 의사가 1907년 바로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이동했다. 역 안에는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철도공사의 작은 표지판도 있다. 역사 밖에는 철로 옆 한 곳에 개통 당시 운행되었던 증기기관차도 전시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당시는 소비에트 연방 수립 전이라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적대국이 아닐 때다. 유럽 근처에 수도를 두고 있던 러시아 제국이 아시아, 그곳도 극동의 변방까지 세력을 확장한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17세기부터 러시아 탐험가들이 하바롭스크 일대를 샅.. 2019. 12. 1. 신한촌 기념비에서 만난 고려인 3세 / 블라디보스톡 (4) "신한촌".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옛 코리아타운의 이름이다. 1894년 조선을 여행했던 이사벨라 비숍은 블라디보스톡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기록을 남긴다. 부두에 이르자 수백 명의 조선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으며 몇 명은 자신의 짐을 들어주려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고. 1853년 블라디보스톡 남쪽 포시예트만에 13가구가 이주한 이래 1890년대에는 2만 5천 명의 조선인이 블라디보스톡에 살고 있었다. 조선인은 짐꾼 노동자로 일하거나 농산물 유통을 담당했고, 농업 이민으로 성공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밀림을 개발하고 철도를 부설하는데 조선 노동자들을 이용했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뒤에는 수가 급격히 늘어나 1926년에는 19만 명에 달했다 한다. 이들은 백여 세대 중심으로 정착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터를 잡.. 2019. 10. 26. 키갈리를 떠나는 날 키갈리를 떠나기 전, 꼭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마을 수돗가의 터줏대감 ‘비비’다. 다른 꼬마들은 물을 길을 때만 수돗가에 오는데 비비는 또래 몇 명이랑 자주 이곳을 본부 삼아 논다. 아이들 중 비비 이름만 기억하는 이유는 비비가 나를 보고 제일 반갑게 인사하기도 하지만 일단 이름이 쉬워서다. 다른 녀석들은 발음이 웅웅거려 들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키냐르완다어는 스와힐리어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스와힐리어는 발음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키냐르완다어는 몇 번을 들어도 아리송하다. 떠나기 전날, 남은 폴라로이드 필름과 카메라를 들고 수돗가에 갔다. 비비가 있을까 해서였다. 그 날따라 비비는 없고 다른 녀석들만 모여있다. 고 녀석들만 살짝 찍어주고 돌아가야지 했는데 아뿔싸, 저녁이 한참 남았는데도 사람.. 2019. 10. 26. 아르바트 거리에서 떠올린 독립운동가들 / 블라디보스톡 (3) 블라디보스톡의 중심가, 아르바트 거리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유럽풍의 건물이 죽 들어서 있지만, 시골 소도시의 중심가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건물 규모가 크지 않고 소박해서다. 그래서인지 관광객 대부분은 가까운 곳에서 온 한국인과 중국인들이다. 지금 우리는 평화롭게 이 거리를 활보하지만, 백여 년 전만 해도 여기엔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열강들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각 민족들이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하는 무대가 블라디보스톡이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블라디보스톡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을 건설하기 시작한 구한말부터 이 지역에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상설, 최재형, 이동휘, 안중근 선생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했고, 만해 한용운 선생 등 민족의 장래를 고민하던.. 2019. 10. 26. 발해의 흔적,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 / 블라디보스톡 (2) 블라디보스톡이 있는 ‘연해주(프리모르스키)’ 지역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럽이 아니라 '유라시아'다. 유라시아는 지리적인 맥락에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연해주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문화가 혼재되어 있으므로, 문화적인 맥락에서도 유라시아였다. 사학자 이이화 선생에 따르면, 연해주 일대는 원래 이르쿠츠크에서 하바롭스크 이북까지는 코사크족 거주지였고, 하바롭스크 아래 아무르강에서 두만강 상류까지는 말갈족(나나이족) 거주지였다고 한다. 아무르강 아래 남쪽 영역을 8세기 무렵엔 거의 발해가 차지했다. 고구려는 만주 일대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무르강으로는 진출하지 못했고 블라디보스톡 남쪽 동해안까지만 진출했다. 발해가 거란에게 망하자 뒤이어 말갈이 10세기 초에 종족 이름을 여진으로 바꾸어 만주와.. 2019. 10. 26. 이토록 가까운 러시아 / 블라디보스톡 (1) 블라디보스톡행 비행기는 밤 12시에 대구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저가항공이라 출발 시각이 별로였지만 블라디보스톡까지는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한국과 한 시간 시차가 나서 도착 시간은 새벽 3시경. 자동로밍을 신청해서 러시아 여행에 필수라는 막심 택시 어플은 깔지 않았다(러시아 유심이어야 이용 가능). 다행히 그 시간에도 공항 택시 사무소가 운영 중이다. 사무소는 시내까지 가는 택시를 연결해주었고 15분 정도 기다리면 택시가 올 거라고 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한여름인데도 공기가 선선하다. 한국보다 위도가 약간 높은데 날씨 차이가 많이 났다. 공항청사는 새 건물처럼 보였다. 건물 전면에 푸른 불빛의 '블라디보스톡'이라는 글자가 위풍당당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주변 분위기는 시골 버스정류장 같아서 택시정류장을 .. 2019. 10. 26. 르완다의 전통춤과 예술 르완다의 전통춤은 코이카가 지원하는 농촌마을 행사 때 본 게 제일 인상적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행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연습한 것이라 열정과 활기가 있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 예쁜데 보자기 같은 천을 한 쪽 어깨에 둘러 간편하게 멋을 내는 게 전통의상이다. 남자들은 발목에 방울을 달고 락커처럼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춘다. 전통북과 피리도 등장한다. 행사 시작과 끝에 참석자들이 모두 춤을 추는 게 특히 재미있다. 나도 자리에 앉아 있다가 내 손을 잡는 아주머니 댄서들에 이끌려 잠깐 춤을 췄다. 고위직 관료들도 의자에 앉아 점잔을 빼서는 안 된다. 모두가 함께 춤을 춰야 한다. 나는 10분쯤 추니까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는데 공연하는 마을 여성들은 온몸을 강하게 움직이면서도 지친 기색이 없어 대단하다 싶었다... 2019. 8. 23. 하루 한 시간의 천국 천 개의 언덕이 있는 나라. 르완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여서 붙여진 별칭이다. 북서쪽 국경엔 마운틴고릴라가 사는 화산지대(볼케이노 국립공원), 서쪽 국경엔 키부호수, 남서쪽 국경엔 열대우림(늉웨 국립공원), 동쪽 국경엔 사바나와 호수가 있고(아카게라 국립공원), 중앙은 다 산지다. 내륙국가라 바다는 없다. 르완다 커피원두가 단가가 싸지만 항구까지 운송비가 많이 들어 경제성이 높지 않다고 들었다. 해발 1500미터, 우리 같으면 지리산 연봉 쯤 되는 높이의 산에 사람이 다 산다. 우리나라와 달리 바위나 돌이 없고 흙으로만 이루어진 산이다. 사람들은 평지가 아니라 산꼭대기에서부터 집을 짓는다. 물을 얻기는 산 아래가 나은데 날씨가 선선하고 풍토병이 적은 등 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인구밀도는 아.. 2019. 8. 23.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