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갈리를 떠나기 전, 꼭 보고 싶은 얼굴이 있었다. 마을 수돗가의 터줏대감 ‘비비’다. 다른 꼬마들은 물을 길을 때만 수돗가에 오는데 비비는 또래 몇 명이랑 자주 이곳을 본부 삼아 논다. 아이들 중 비비 이름만 기억하는 이유는 비비가 나를 보고 제일 반갑게 인사하기도 하지만 일단 이름이 쉬워서다. 다른 녀석들은 발음이 웅웅거려 들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키냐르완다어는 스와힐리어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스와힐리어는 발음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키냐르완다어는 몇 번을 들어도 아리송하다.
떠나기 전날, 남은 폴라로이드 필름과 카메라를 들고 수돗가에 갔다. 비비가 있을까 해서였다. 그 날따라 비비는 없고 다른 녀석들만 모여있다. 고 녀석들만 살짝 찍어주고 돌아가야지 했는데 아뿔싸, 저녁이 한참 남았는데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결국 필름이 허락하는 만큼만 찍어주고 불만스러운 얼굴들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비비를 못 보고 떠나는구나 싶었다.
출발 당일, 뭐 빠트린 게 없나 싶어 한번 더 살피던 중 색색의 캘리그라피펜 열 자루를 발견했다. 여기서 심심하면 쓰려고 가져왔다가 한 번도 안 쓰고 구석에 고이 모셔두었던 펜이다. 이거라도 꼬맹이들에게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 어쩌면 영영 못 볼 테니. 이것저것 정리하다보니 한낮이 되어서야 잠깐 짬이 났다. 이 시간엔 뜨거워 거리에 사람이 없다.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며 마을 수돗가에 갔다. 뜻밖에도 네 명의 꼬마가 발가벗고 물을 틀어놓고 놀고 있다. 여긴 딱히 유원지도 없으니 물놀이를 예서 하는 거였다. 꼬마들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 몸을 숙인다. 수돗가 콘크리트 벽 뒤에 숨어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웃고 난리가 났다.
가까이 가자니 이 녀석들이 너무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멀찌감치 서서 펜을 흔들었다. 요 녀석들만 있어서 개수가 모자라지 않아 다행이다 하면서. 아이들은 내 손에 든 걸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돗가를 나와 풀밭에 둔 옷을 정신없이 챙겨입고는 내게로 뛰어온다. 그때 알았다. 그 중 한 명이 비비라는 것을. “비비” 라고 부르며 내가 환호하자 비비도 함박웃음이다.
네 꼬마에게 캘리그라피 펜을 두 자루씩 나누어주었다. 녀석들은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며 땡큐를 연발했다. 그렇게나 좋을까. 펜 몇 개에 이토록 행복해하다니... 아이들에겐 폴라로이드 사진보다 필기구가 훨씬 반가운 선물이었던 모양이다. 남은 두 자루는 이 모습을 보고 뛰어오는 아기엄마에게 건네졌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얼른 돌아가야 하는데 마음엔 아쉬움만 가득했다. 작별사진은 찍지 못했다(나중에 후회했다). 이상하게도 폰카메라에 손이 가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에 번진 투명한 기쁨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가만히 서서 그 녀석들을 바라보며 그저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내가 ’비비’만 자꾸 불렀던지 다른 녀석들이 자기 이름을 가르쳐주며 손을 흔든다.
나는 그 어려운 발음을 여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세상에서 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 같은 꼬마들의 밝은 웃음과 그들 뒤로 펼쳐지던 황토색 흙길이 한 장의 사진처럼 마음에 고이 남았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꼬마가 비비. 다른 날 찍은 사진이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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