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이야기/러시아10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톡역 / 블라디보스톡 (5)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장장 9288킬로미터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톡역은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역사 건물에서부터 이곳에 스민 시간의 자취가 느껴졌다. 안중근 의사가 1907년 바로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이동했다. 역 안에는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철도공사의 작은 표지판도 있다. 역사 밖에는 철로 옆 한 곳에 개통 당시 운행되었던 증기기관차도 전시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당시는 소비에트 연방 수립 전이라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적대국이 아닐 때다. 유럽 근처에 수도를 두고 있던 러시아 제국이 아시아, 그곳도 극동의 변방까지 세력을 확장한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17세기부터 러시아 탐험가들이 하바롭스크 일대를 샅.. 2019. 12. 1. 신한촌 기념비에서 만난 고려인 3세 / 블라디보스톡 (4) "신한촌".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옛 코리아타운의 이름이다. 1894년 조선을 여행했던 이사벨라 비숍은 블라디보스톡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기록을 남긴다. 부두에 이르자 수백 명의 조선인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으며 몇 명은 자신의 짐을 들어주려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고. 1853년 블라디보스톡 남쪽 포시예트만에 13가구가 이주한 이래 1890년대에는 2만 5천 명의 조선인이 블라디보스톡에 살고 있었다. 조선인은 짐꾼 노동자로 일하거나 농산물 유통을 담당했고, 농업 이민으로 성공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밀림을 개발하고 철도를 부설하는데 조선 노동자들을 이용했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뒤에는 수가 급격히 늘어나 1926년에는 19만 명에 달했다 한다. 이들은 백여 세대 중심으로 정착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터를 잡.. 2019. 10. 26. 아르바트 거리에서 떠올린 독립운동가들 / 블라디보스톡 (3) 블라디보스톡의 중심가, 아르바트 거리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유럽풍의 건물이 죽 들어서 있지만, 시골 소도시의 중심가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건물 규모가 크지 않고 소박해서다. 그래서인지 관광객 대부분은 가까운 곳에서 온 한국인과 중국인들이다. 지금 우리는 평화롭게 이 거리를 활보하지만, 백여 년 전만 해도 여기엔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열강들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각 민족들이 서로 다른 운명을 맞이하는 무대가 블라디보스톡이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블라디보스톡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을 건설하기 시작한 구한말부터 이 지역에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상설, 최재형, 이동휘, 안중근 선생이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했고, 만해 한용운 선생 등 민족의 장래를 고민하던.. 2019. 10. 26. 발해의 흔적,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 / 블라디보스톡 (2) 블라디보스톡이 있는 ‘연해주(프리모르스키)’ 지역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럽이 아니라 '유라시아'다. 유라시아는 지리적인 맥락에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연해주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문화가 혼재되어 있으므로, 문화적인 맥락에서도 유라시아였다. 사학자 이이화 선생에 따르면, 연해주 일대는 원래 이르쿠츠크에서 하바롭스크 이북까지는 코사크족 거주지였고, 하바롭스크 아래 아무르강에서 두만강 상류까지는 말갈족(나나이족) 거주지였다고 한다. 아무르강 아래 남쪽 영역을 8세기 무렵엔 거의 발해가 차지했다. 고구려는 만주 일대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무르강으로는 진출하지 못했고 블라디보스톡 남쪽 동해안까지만 진출했다. 발해가 거란에게 망하자 뒤이어 말갈이 10세기 초에 종족 이름을 여진으로 바꾸어 만주와.. 2019. 10. 26. 이토록 가까운 러시아 / 블라디보스톡 (1) 블라디보스톡행 비행기는 밤 12시에 대구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저가항공이라 출발 시각이 별로였지만 블라디보스톡까지는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한국과 한 시간 시차가 나서 도착 시간은 새벽 3시경. 자동로밍을 신청해서 러시아 여행에 필수라는 막심 택시 어플은 깔지 않았다(러시아 유심이어야 이용 가능). 다행히 그 시간에도 공항 택시 사무소가 운영 중이다. 사무소는 시내까지 가는 택시를 연결해주었고 15분 정도 기다리면 택시가 올 거라고 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한여름인데도 공기가 선선하다. 한국보다 위도가 약간 높은데 날씨 차이가 많이 났다. 공항청사는 새 건물처럼 보였다. 건물 전면에 푸른 불빛의 '블라디보스톡'이라는 글자가 위풍당당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주변 분위기는 시골 버스정류장 같아서 택시정류장을 .. 2019. 10. 26. 연해주와 제2차 세계대전 /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준비하며 몇몇 가이드북을 보았습니다. 볼거리로 꼭 등장하는 곳이 블라디보스톡의 '잠수함 박물관'이었어요. 검고 둥그스런 물체가 있는 사진을 보면 별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방문 장소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린이들이나 보러 가는 장소겠거니 했어요. 바닷가를 따라 산책을 하며 걷다가 해양공원에 있는 잠수함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일단 그 길이에 깜짝 놀랐습니다. 잠수함이 이렇게 클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안을 들여다보기로 했죠. 안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입구 쪽은 당시 관련 사진과 여러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고, 그 다음 칸부터는 잠수함의 실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각종 기계며 장병들의 침대, 당시 잠수함에 실려 있었던 미사일까지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어요. 러시아의 기술.. 2019. 2. 27. 연해주에서 명멸한 이들을 기억하며 / 하바롭스크 (2) 이번 러시아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인물이 있어요. 뜻밖에도 우리 여정 중에서 계속 마주친 인물, 누구일까요? 블라디보스톡에 새벽에 도착했기에 첫날은 공항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았죠. 공항과 시내 사이에 있는 빌라 아르테 호텔입니다. 다음 날 시내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면서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지금은 폐업한 식당 문 앞에 뜻밖에 한국말 표지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김정일 동지가 여기서 식사했다는 교시문이었어요. 우수리스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9시간을 달려 도착한 하바롭스크. 아무르강 우초스전망대에서 일몰을 바라보다가 전망대 입구에서 또 김정일이 다녀갔다는 표지판을 발견했어요. 또 하바롭스크 북한 식당에는 하바롭스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방문한 장소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어요. 아무튼 이 하바롭스크.. 2019. 1. 20. 아무르강변에서의 소회 / 하바롭스크 (1) 한밤중에 우수리스크를 떠난 시베리아횡단열차는 9시간을 달려 다음 날 하바롭스크에 닿았습니다.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며 먼저 눈에 띈 것은 도심공원이었어요.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톡과 마찬가지로 다소 퇴락한 느낌이었지만 곳곳에 푸른 숲이 있어 낡았으면서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도시였어요. 아무르강으로 가기 위해 지도를 보니 숙소 인근에서 아무르강변까지도 ‘가로수길’이라는 드넓은 공원이 있었습니다.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공원 숲을 통과하며 구소련의 영광을 짐작했어요. 도심 한가운데 이런 대규모의 공원이 자리할 수 있었던 건 사회주의 계획도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우리는 중간에 공원을 빠져나와 레닌광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레닌광장에서 아무르강변에서 가까운 콤소몰 광장까지는 동유럽 분.. 2019. 1. 18. 고려인들의 마음의 고향 / 우수리스크 장장 9288킬로미터의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시작되는 블라디보스톡역.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의 건물이 이곳에 스민 역사를 느끼게 했어요. 안중근 의사가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이동했지요. 역 안에는 자매 결연을 맺은 한국철도공사의 작은 표지판도 보였고요. 철로 사이에는 개통 당시 운행되었던 증기기관차도 전시되어 있는데, 이건 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었어요. 당시 러시아와 미국은 적대국이 아니었지요. 블라디보스톡역에 온 건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아니라 우수리스크로 가는 로컬 기차를 타기 위해서예요. 역에는 아침부터 한국 관광객들로 미어터졌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패키지 관광은 다 이리로 온 것 같았어요. 우수리스크행 로컬 기차는 패키지여.. 2019. 1. 13. 순결한 자연, 극동의 캄차카 / 러시아 캄차카 반도 '03 순결한 자연, 극동의 캄차카 ▲ 설원에서 바라본 까략스키 북쪽으로 가고 싶어 택한 곳이 러시아였다. 냉전 시대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동토의 땅이었지만 이제 우리의 시야에 나날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는 곳. 드넓은 러시아 땅 가운데 내가 택한 여행지는 가장 극동에 위치한 캄차카 반도.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아름답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연해주의 중심 도시 하바롭스크까지는 불과 두 시간 반의 거리였다. 블라디보스톡이 외곽에 치우쳐 있어서 구 소련 시절, 극동 지역의 거점 도시로 개발한 곳이 하바롭스크라 했다. 하바롭스크의 저녁은 건물마다 온통 백열등의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어서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러시아에서는 형광등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다음날, 하바롭스크 공항에서 만난 대부분의 여행자들.. 2004. 7.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