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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톡역 / 블라디보스톡 (5)

by 릴라~ 2019. 12. 1.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장장 9288킬로미터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 블라디보스톡역은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역사 건물에서부터 이곳에 스민 시간의 자취가 느껴졌다. 안중근 의사가 1907년 바로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이동했다. 역 안에는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철도공사의 작은 표지판도 있다. 역사 밖에는 철로 옆 한 곳에 개통 당시 운행되었던 증기기관차도 전시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었다. 당시는 소비에트 연방 수립 전이라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적대국이 아닐 때다.      

유럽 근처에 수도를 두고 있던 러시아 제국이 아시아, 그곳도 극동의 변방까지 세력을 확장한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17세기부터 러시아 탐험가들이 하바롭스크 일대를 샅샅이 조사했으며, 19세기 이르러 청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러시아는 드디어 이 지역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1891년, 황제의 칙령으로 수도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을 연결하는 철도망이 건설된다. 9288km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에서 형편없는 철도망으로 물자 수송이 안 되어 연전연패를 당한 러시아 황실이 제국의 통치를 위해 의욕을 보인 사업이었다. 1916년 드디어 전구간이 개통되지만, 1917년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내가 블라디보스톡역에 온 건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아니라 우수리스크로 가는 로컬 기차를 타기 위해서였다(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우수리스크에서 탈 예정이었다). 역에는 아침부터 한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미어터졌다. 러시아인보다 한국 사람이 훨씬 많다.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패키지 관광팀은 다 이리로 온 것 같았다. 아마도 우수리스크행 로컬 기차는 패키지여행의 필수 코스인  듯했다. 길게 줄을 섰다가 기차에 오르니 기차 안도 한국인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러시아 승객은 전체의 20분의 1도 안 될 것 같다.      

관광객들이 내리는 장소는 조금씩 달랐다.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톡 사이에 라즈돌노예역이라는 곳이 있다. 스탈린 시대에 17만 명의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를 당해 시베리아 열차에 오른 비극의 현장이다. 아마도 그리로 가는 관광객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37년, 그렇게 중앙아시아로 쫓겨나 말 못할 고초를 겪은 고려인들은 1990년대 고려인 명예회복법이 통과되면서 다시 연해주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 고려인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우수리스크다.      

우수리스크 도착을 40여 분 남겨두었을 때에야 관광객들이 다 사라졌고 한국인은 우리만 남았다. 그제야 자리에 편히 앉았다. 나무좌석이라 딱딱했지만 그래도 살 것 같았다.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톡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만나는 극동 러시아의 도시다. 우수리스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알 수 없는 기대로 설레기 시작했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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