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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러시아

이토록 가까운 러시아 / 블라디보스톡 (1)

by 릴라~ 2019. 10. 26.

블라디보스톡행 비행기는 밤 12시에 대구국제공항을 출발했다. 저가항공이라 출발 시각이 별로였지만 블라디보스톡까지는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한국과 한 시간 시차가 나서 도착 시간은 새벽 3시경. 자동로밍을 신청해서 러시아 여행에 필수라는 막심 택시 어플은 깔지 않았다(러시아 유심이어야 이용 가능). 다행히 그 시간에도 공항 택시 사무소가 운영 중이다. 사무소는 시내까지 가는 택시를 연결해주었고 15분 정도 기다리면 택시가 올 거라고 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한여름인데도 공기가 선선하다. 한국보다 위도가 약간 높은데 날씨 차이가 많이 났다. 공항청사는 새 건물처럼 보였다. 건물 전면에 푸른 불빛의 '블라디보스톡'이라는 글자가 위풍당당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주변 분위기는 시골 버스정류장 같아서 택시정류장을 따로 찾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선 곳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평온한 분위기였다. 한밤이었지만 위험해 보이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낡은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기사는 영어를 몰랐지만 러시아어로 인쇄한 호텔 이름을 보더니 어딘지 금세 알아차린다.      

이번 러시아 여행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수리스크를 거쳐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9일의 여정이다. 그 가운데 첫 나흘을 블라디보스톡에서 보냈다. 블라디보스톡은 패키지 여행상품이 선전하듯 두 시간 만에 만나는 유럽은 아니었다. 정직하게 말해 두 시간 만에 만나는 "러시아"다.      

도시 전체가 건물 노후화가 심해 도심을 제외하고는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철근이 노출된 건물이 많이 보였다. 노면 상태도 좋지 않았다. 겨울이면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공사를 해도 한 해 겨울 지나면 도로가 엉망이 된다고 들었다. 차선도 거의 지워진 상태였다. 사람이 차로를 건너면 차가 알아서 멈춰주는데 그때에야 나는 이곳이 유럽 문화권이구나 하고 느꼈다. 도시는 퇴락했지만 광장과 공원을 중심으로 도시 설계가 이루어진 점도 유럽적이라 할 만했다.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톡은 군사 요충지이지 관광지는 아니다. 블라디보스톡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루스키섬의 자연이 아름답다고 들었으나 도심에 특별한 볼거리를 가진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내게 블라디보스톡은 여느 관광지보다 몇 배나 더 흥미로운 도시였다. 먼저 비행기로 불과 두 시간 밖에 안 걸리는 곳에 이토록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평소 거의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중국 국경인 훈춘까지 가면 거기서 연길로 가는 버스 편이 연결되고, 북한 접경지대에 국경도시 핫산이 있다.      

북한 때문에 육로가 막혀 있다 보니 바로 곁에 있는 이웃나라를 멀리 유럽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은 서울에서 북경과 도쿄보다도 가까운 거리인데도. 바로 곁에 러시아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놀라움에서 9일간의 연해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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