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40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11월 말에 오랜만에 Y대에 갔었다. 아는 교수님 부탁으로 특강이 있어서. 사진엔 일부만 찍혀서 그리 넓어보이지 않지만, 꽤 넓은 소강당이었다. 포인터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다소 당황했다. 구석에 위치한 컴퓨터가 놓인 단상에서 PPT를 넘기다보니 학생들 반응이 잘 안 보여서 헤맸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이라 장악이 쉽지 않았다. 강의실에서 강의해본 적은 있어도 강당은 처음이라 처음부터 공간에 쫄았던 면도 있다. 미리 공간을 둘러보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고. 11월 말, 계절은 겨울로 옮겨가고 있지만 교정엔 단풍이 있었다. 여태 남아있는 가을의 자취가 뭉클했다. 강의는 완전 말아먹었지만 이제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봐서일까, 마치고 돌아와 일상을 사는데, 자꾸 옛기억이 하나씩 솟았다. 방.. 2024. 12. 13. 대통령(내란수괴)의 가장 큰 문제는 상상력의 빈곤이다.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체포, 구금, 고문, 언론 자유 박탈…그런 것을 꿈꾸고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그의 내면엔 전쟁 대신 평화, 품격 있고 아름다운 문화, 합리적 분배에 바탕을 둔 국가의 번영…이런 것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단 말인가..성장 환경도 교수 부친 아래 엘리트 상류층인데어쩜 저리 천박하고 척박한 정신세계를 지녔을까..지금 들리는 증언으로는 원래 성정이매우 포악하다고 한다.지난 대선이 생각난다. 짜증나서 티비는 전혀 안 보다가그래도 어떤 인물인지 확인은 해야지 싶어3차 토론회 때 비로소 후보를 보았다.와… 그가 구사하는 문장과 단어들이 너무 무식하여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훤씬 충격적이라곧 채널을 돌려버린 적이 있다.역사를 모르고 문학을 모르고 예술을 모르면저렇게 된다.상상.. 2024. 12. 11. 인연, 의붓어머니 같은 수녀님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이가 부모인 건 틀림 없다. 내게 무슨 일이 닥칠 때 가장 진심으로 염려하고 목숨을 걸고나를 구할 이도 부모나 남편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은 많은 부분 걱정으로 표현된다. 사랑하는 만큼 걱정을 표현하고 그것이 자녀의 성장을 방해할 때도 많다.불안은 쉽게 전염되니까,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불안이 자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다른,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걱정이 포함되지 않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이가 바로 스승이리라. 그런 스승을 만나기란 쉽지 않지만, 때론사려 깊은 친구가 그 역할을 한다. 오랜만에 레아 언니를 만났다. 대학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언니,지금은 수도자의 길을 걸은 지 오래다. 이분들이 세속의 사람들과 다른 지점은 딱 하나다. 걱정.. 2024. 11. 20. 논산 씨튼 영성의 집, 개인 피정 1. 한 번 다녀가라는 친구의 초대에 신청했던 일박이일 개인 피정. 동대구역에서 오송역, 오송역에서 공주역 도착. 역사에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 서울서 보고 근 일년 만. 20여 분 차를 달려 공주와 논산의 경계를 살짝 넘어간 곳에 씨튼 영성의 집이 있었다. 계룡산 자락이 환히 보이지만 산과 거리가 있어 햇살이 아늑하게 스며드는 자리, 지금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안온한 공간으로 가꾸어져 있지만 주변에 워낙 굿당이 많아 처음엔 좀 심란했다고 한다. 계룡산이 무속의 본산인 줄 이제 알았다. 수녀원 주변에 단군성전을 비롯 굿당 간판이 여럿 보였고, 바로 근처에 신원사가 있는데 신원사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가 산신각이 있다 한다. 조선시대 국가 산신각은 북쪽(북악)에 묘향산, 중앙(중악)에 계룡산, 남.. 2024. 11. 20. 가족 관계, 흐름과 고착 사이 집에 들르니 모친이 고민이 있다 하신다. 감 수확은 다 끝났지만 가지치기 등 밭 정리가 남아 있었다. 뒷정리도 일이 꽤 많다고 한다. 근처 농사짓는 노부부가 오셔서 해주셨는데 당연히 일당 드릴려고 도움 받은 건데 한사코 거절하는 바람에 일당 못 드리고.. 뭘 선물해야 하나 고민중.. 떡 할까? 당뇨 있으면 안 드실텐데? 홍삼엑기스 어때? 그거 안 먹는 사람은 안 먹을텐데, 블라블라.. 올해 감 농사는 풍작이었다. 시월엔 매주 감을 땄다. 내가 일손을 거들지 않았다면 모친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을 게다. 일을 쉬어서 올해만큼 감따기에 열중한 해가 없었는데 와, 몸살 날만큼 힘들더라. 아파트 대단지 바로 옆 그린밸트 이 양지바른 좋은 땅을 사놓고 아빠는 다음 해 돌아가셨다. 이 땅에 씨 한 번 못 뿌린 채.... 2024. 11. 17. 자기를 안다는 것 자기를 아는 건 타인을 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의 많은 부분은 나 자신에게 마치 타인처럼 겹겹의 베일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생각을 아는 건 접근이 좀 더 수월하다. 생각은 객관적으로 검토 가능하니까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하기를 시도해볼 수 있다. 비록 그 물러남이 순간 그치고 우리는 금세 예전의 생각으로 돌아가버리지만. 생각도 그럴진데 감정을 아는 건 더 어렵다. 사실 감정이 진짜 생각인데 감정은 생각보다 더 밀착되게 내 존재와 딱 들러붙어 있어서 나에게서 떼놓기가 더 어렵다. 감정은 진짜 나 같아 보여서 객관화가 어렵다 다시 말해 나의 견해들보다 나와의 동일시가 더 강력하다. 감정도 의견처럼 변화무쌍한 것으로 불교에선 그러한 성질을 무상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 2024. 11. 13. 어린왕자와 장미 꽃 선물을 그리 반기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며칠 안 가면 시들시들 결국 버려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활짝 피는 건 잠시, 시들어가는 과정이 더 길고 지루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20~30대엔 그랬다. 잠깐 기쁨을 주고 시들어가는 꽃보다는무언가 영원한 것들이 좋았다. 젊음 너머도 상상하지 못했다.살아온 시간이 길지 않기에 '시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고 무르익지 못한 시절이었다. 물론 때로 지난 날을 추억하고, 아 왜 이렇게 한 해가 빨리 가지 투덜대곤 했지만그래도 그땐 시간이 '계속되는 현재'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이 아니라열대에서 여름이 계속되는 것처럼. D가 결혼기념일에 맞춰 세 종류의 장미를 보냈다. 장미 꽃다발과 장미 장식품과 장미 화분들... 내 선물은 .. 2024. 10. 28. 한숨 쉬며 적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후기 평소 관현악은 좋아하지만 오페라는 즐기지 않는다. 아주 옛날, 유명한 프라하 팀 공연의 기억, 가수들이 다 훌륭했음에도 3시간이 너무 길고 스토리 또한 공감이 안 갔기 때문이다. 진짜 오랜만에, 한 이십 년만?? 대구 오페라축제를 보러 감. 아마 휴직해서 여유가 있어서인 듯하다. 오랜만에 한 번 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한 편은 비발디 작품에다가 카스트라토 어쩌고 다양한 소리의 어울림이 있다는 광고에 속아서 티케팅, 또 한 편은 창작 오페라인데 '이육사 시인'에 관한 것이라 어떻게 내용을 구성했을지 궁금해서 선택했다. 결론. 두 편 다 대실망. 먼저 비발디의 . 하아... 광란의 오를란도가 아니라 좀이 쑤심의 오를란도다. 관현악 연주는 참 좋았다. 바로크 음악이라 더 차분하고 성가곡 느낌? 하지만 마.. 2024. 10. 20. 챗지피티 시대 인터넷에서 재밌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챗지피티 나오기 전 : 창의성만 살아남는다 챗지피티 나온 후 : 막노동만 살아남는다” 맞는 말이다. 웬만한 창의성으론 챗지피티를 능가하지 못한다. 장난으로 챗지피티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상식적인 답도 있으나 보통의 일반인보다는 훨씬 나음. 십 년 뒤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 ## — 나 지금 외롭고 심심해, 밤인데 뭐 할까 — 밤에 외롭고 심심할 때 할 수 있는 몇 가지 추천을 해볼게요: 1. 독서: 좋아하는 책이나 새로운 책을 읽어보세요. 마음에 드는 소설, 에세이, 또는 명상서가 있다면 잠시 몰입할 수 있을 거예요. 2. 음악 감상: 편안한 분위기의 음악이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들으면서 휴식을 취해보세요. 3. 명상: 조용한 곳에서 .. 2024. 10. 19. 구독자 이천 명 유툽 구독자 이천 명이 되는데 걸린 시간은?자그마치 4년이다. 사실 시간이 남아야만 하는 활동이라반 년 혹은 적어도 몇 달씩 쉬기도 하고방학 땐 한 달에 몇 개를 만들기도 하고 대중 없었다. 원래 유툽은 내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만드는 게 정답인데난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만들었다. 걷기나 트레킹 위주로 만들었다면 훨씬 빨리 성장했겠지만우리 역사나 문화 답사 영상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트레킹 영상에 비해 조회 수는 별로 안 나오지만... 그간 달라진 점이라면 처음엔 3분 짜리 만드는 것도 넘 힘들었는데지금은 같은 시간에 10분 정도 분량도 힘은 들지만 그럭저럭 만든다는 것. 그래도 편집에 오래 걸리기는 한다. 허리 아파서 하루 종일 붙들고 있지는 못하.. 2024. 10. 17. 가을빛이 스미다 가을비 오신 날. 빗줄기가 굵지 않고 가는 비가 자박자박 내렸다. 우산을 받쳐들고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천을산을 도는데 오늘 처음으로 초록 끝에 스미기 시작하는 노랑과 빨강을 보았다. 아, 드디어 단풍이 시작되는구나... 나뭇잎 몇 장은 이미 빨갛게 변색되어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길섶에서 나를 반겼다. 잎은 그저 자신의 시간을 충실히 살아갈 뿐 나무를 떠나 땅 위에 몸을 떨구어도 조금의 처연함도 내비치지 않는다. 자연의 순환과 변화는 그 자체로 완전해서 그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다 아름답다. 꽃의 계절이 지나고 지금은 낙엽의 계절... 한 계절이 한 생인 나뭇잎들, 이제 자신의 시간을 다하고 하나하나 지는데 그 지는 모습도 하나하나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가을의 전령이 되어준 붉은 잎사귀 몇 잎.. 2024. 10. 15. 캄보디아 안나스쿨 학생들과의 만남 얼마 전 동물병원 운영하는 동기로부터 연락이 왔다.내가 쉬는 걸 알고 잠깐 도와줄 수 있냐며... 프란체스카가 캄보디아 안나스쿨 학생과 교사 18명을 인솔해서 한국 견학을 15일간 진행하는데, 그 프로그램 중에자기 동물병원 견학도 있다면서... 대식구라 식당과 병원 오가는 게 불편해서 병원에서가든파티처럼 저녁식사 하기로 했다고... 음식은 다 주문하면 되니 연락이랑 상차림 좀 도와달라고.. 한국 견학 일정표를 보니 충격, 이박씩 전국 순례... 제주도까지...프란체스카에게 톡을 보냈다. "이 일정 누가 짰노?""내가 ㅋㅋㅋ""충격적인 일정임 ㅋㅋ""다들 그카더라, 무식이 용감이다 ㅋㅋ""거의 군대 강행군인데 ㅋㅋ"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가능하면 많이 보여주고 싶고시간은 부족하고 그러다보니 그런 일정이.. 2024. 10. 15. 한강 작가 노벨상, 마땅히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다 어젯밤 친구가 톡을 보내왔다.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아~~ 평소 한류에 상당히 시니컬한 나도(아이돌 양성 과정이 무슨 예술이냐고)정말 깜짝 놀라고 가슴이 벅찼다.이건 정말이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야…한국 근대사의 깊은 어둠 속,정치와 어긋난 욕망이 겹겹이 엉켜사회가 길을 잃고 혼탁할 때도한국문학은 언제나 살아있었다.언제나 시대를 정직하게 응시하고세파에 휩쓸려가지 않고어둠 속에서 올빼미눈으로 어둠을 갈라온수많은 작가들이 있었다.왜 한강이냐고?한국문학이 번역의 장벽 땜에 제대로조명받지 않은 탓도 있지만노벨상 선정위원회의 수상 이유가 핵심을 말해준다.“실험적인 문체, 시적 산문”가끔 이게 시인가, 소설인가 싶을 만큼섬세하고 은유가 풍부한 문장,과거와 현재, 산 자와 죽은 자를 넘다드는예상을 뛰어넘는 .. 2024. 10. 11. 희망의 싹, 아프리카 비닐하우스 D가 우간다로 간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사실 D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요번 방문 때 D가 관리하는 현장 중 한 곳에 들렀다. 우간다는 아직 종자가 확보되지 못했다 한다. 예칸대 우린 작물 중 우수한 종자가 확보되어 그걸 심어 재배하지만 우간다는 걍 대대로 써온 걸 그냥 심을 뿐 작물마다 우수한 종자가 선별되지 못했다고. 그래서 가장 많이 먹는 대표 작물 6개를 정해서 그 작물에 대해 가장 생산성이 높고 우수한 종자를 확보하는 뭐 그런 거라 한다. 즉 가장 우수한 씨앗을 확보해서 보급하는 게 우리 정부가 원조하는 프로젝트다. 국민의 70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하고 인구기 점점 늘어나는 우간다에서 생산성 높은 종자를 확보하는 건 우간다 농업의 미래 자체이기도 했다. 비닐하우스의 푸른 새싹이 .. 2024. 10. 10. 가을 첫 차크닉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하지만요즘 기상이변으로 4월부터 햇살이 따가울 때가 많다.올해 최고의 계절은 지금이다. 시월. 어제 오늘 날씨가 말 그대로 황홀했다.피부에 착 감기는, 아직 따스함을 머금은 시원한 날씨, 하늘은 높고 시야는 선명하고 여름내 자주 내린 비로 어디든 숲이 무성하고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동네 산들이 열대우림처럼 깊어졌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드라이브 한 번 해야지 했는데 시차 적응으로 오늘에야 시간을 냈다.출고하고 몇 달간 세워둔 차를 처음 끌고 간 곳은 내관지. 적당한 곳이 있으면 세우고 도시락 먹고 책 좀 읽고 오려 했는데청계사 가는 길에 차도 대신 산책로가 새로 생겼다. 아니, 여기가 지리산이야? 이끼 가득한 산책로 들머리 풍경에 빠져서길이 끝나는 곳까지 걷다 왔다. 왕복 20분 .. 2024. 10. 5. 이전 1 2 3 4 ··· 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