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1월 말에 오랜만에 Y대에 갔었다. 아는 교수님 부탁으로 특강이 있어서. 사진엔 일부만 찍혀서 그리 넓어보이지 않지만, 꽤 넓은 소강당이었다. 포인터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다소 당황했다. 구석에 위치한 컴퓨터가 놓인 단상에서 PPT를 넘기다보니 학생들 반응이 잘 안 보여서 헤맸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이라 장악이 쉽지 않았다. 강의실에서 강의해본 적은 있어도 강당은 처음이라 처음부터 공간에 쫄았던 면도 있다. 미리 공간을 둘러보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고.
11월 말, 계절은 겨울로 옮겨가고 있지만 교정엔 단풍이 있었다. 여태 남아있는 가을의 자취가 뭉클했다. 강의는 완전 말아먹었지만 이제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는 학생들을 봐서일까, 마치고 돌아와 일상을 사는데, 자꾸 옛기억이 하나씩 솟았다. 방문 당시는 넘 오랜만이라 별로 생각나는 게 없었는데...
2.
Y대는 학부 시절 모교는 아니지만 기억이 많은 장소다. 모교보다 Y대가 집에서 훨씬 가까워 임용시험 공부를 그곳에서 했기 때문이다. 시험 준비를 하는 일 년 동안 일요일을 빼곤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갔다. 학부 4년 동안은 심심하면 수업을 빼먹었던 터라, 아마 수험생 일 년과 학부 4년을 비교할 때 수험생 때 학교 방문일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내가 주로 서식했던 곳은 중앙도서관이 아니고 공대 도서관이었다. 지금도 이름이 같은지는 모르겠다. 당시는 리모델링 전이라 중앙도서관이 매우 열악했고 공대 도서관은 공간이 널찍할 뿐 아니라 자리 잡기도 쉬웠다. 점심은 학생 식당에서 먹었다. 점심 먹고는 항상 30분에서 길면 1시간까지 교정을 산책했다.
3.
수험생 생활 두세 달 정도가 지났을까, 문제가 생겼다. 당시만 해도 90년대 후반이라 혼밥이 어색한 시절이었다. 나 혼자 밥을 먹으려니 쑥스러웠고, 그러다보니 누가 나를 쳐다볼까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었다. 이십 몇 년 살면서 타인을 크게 의식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혼자 종일 생활하다보니 성격도 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급기야는 누가 나를 쳐다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증상이 생겼다.
초중고, 대학, 학창 시절을 통틀어보아도 남 앞에 나서서 이야기할 때 얼굴을 붉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앞에 나가 발표를 오히려 잘하는 편이었다. 말 한다고 얼굴이 붉어지다니, 그때까지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일인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특별한 상황에 얼굴이 붉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냥 나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별 일도 없는데,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자율신경 이상이었던 것일까. 이삼일에 한 번은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 매우 창피하고 당황스럽고 곤란했다.
4.
그 즈음 구세주가 등장했다. 누군가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자고 말을 붙였다. 내가 혼자 공부하는 걸 보고, 또 도서관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보고 임용시험 준비를 하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이 친구 이름은 미안하게도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부터 A라고 부르자. 가정을 전공한 활달한 여학생이었다. 살짝 파마를 한 머리를 묶었고, 화장 안 한 수수한 얼굴이 캠퍼스 어디서나 마주칠 듯한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눈은 장난기가 있어 살짝 빛이 났다. 얼 나와 같은 학번이었고, 이 친구도 타대 학생이었는데, 경산에 살아서 시험 공부를 Y대에서 하게 되었다 한다.
A는 사회성이 나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 같다. 이미 임용 공부를 하던 Y대 4학년 수학과 여학생 B와 친구가 되어 점심시간엔 둘이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 자기도 처음에 혼자 밥 먹는 게 힘들었는데, B가 혼자 공부하길래 말을 붙여 친구하면서 도서관 생활이 나아졌다고 했다. 이제부터 셋이 같이 친구하고,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자고 했다.
4학년이던 B는 굉장히 영특한 친구였다. 어떻게 도서관에 종일 있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조기졸업 대상자라 학점을 거의 다 땄다고 한다. 개판인 성적으로 학부를 졸업한 나는 와~ 대단하다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B는 얼굴이 하얬고 A보다 말수가 적었다. 전형적인 모범생으로 도서관에서만 파묻혀 살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5.
우리 셋 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어서 이 친구들과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따로 만나거나 하진 않았다. 도서관에 오면 이 친구들이 왔나 확인하고, 등을 두드리며 인사를 하고, 점심시간에 같이 수다를 떨었다. 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쪽은 A와 나였고, 우리보다 두 살 어렸던 B는 그저 맞장구를 쳤다.
A와 B는 늘 나보다 먼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길래 몇 시에 오냐고 물어보니 7시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때도 약골이라 일찍 일어나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 페이스대로 하기로 했다. 나는 대개 9시에 도서관에 도착했고 어떤 날은 10시였다. 공부를 해보니 오전에 하는 그 두세 시간이 하루에 공부하는 전부라는 걸 알았다. 점심 먹고 나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그저 오전에 공부한 걸 다시 복습하는 수준이었고 저녁 이후에 공부하는 건 엄두를 못 냈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짧았지만, 앉아 있다고 공부가 되는 게 아님을 알기에 나는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었다.
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는데, 예컨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점점 줄어들다가 이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는 데는 몇 년은 더 걸렸던 것 같다. 정신적인 문제는 정말 오랜 시간 잠복한다는 걸 알았다.
6.
A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것은 그해 겨울, 임용시험 1차 발표가 나고 나서이다. A에게 전화를 하니 안타깝게도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 B는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합격한 상태였다. 전화를 끊을 때 A의 목소리가 너무 어두워서 더 전화를 하지 못했다. 2차 면접 준비도 있었고.
도서관에서 늘 자리에 앉아 있는 A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 불안을 느꼈던 적이 있다. A는 너무 일찍 학교에 왔고 너무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물론 나보다 체력이 좋아 그랬겠지만, 내가 살짝 불안했던 이유는, 저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집중이 잘 안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두 시간 공부하면 머리 아파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관 쉼터에서 신문을 보곤 했는데, A는 결코 자리를 뜨지 않았으니, 내심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B 역시 자리를 잘 뜨지 않았지만 B는 달랐다. 가을이 넘어가면서 얼굴에 피곤의 그림자가 자주 드리워져 있던 A와 달리 지친 기색이 없었다.
마지막 통화에서 A의 목소리가 하도 어두워서 이후 연락을 못했다. 좀 피곤해 보이긴 했으나 A는 언제나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친구였기에... 그렇게 침울한 어조로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 어떡하지...' 한 마디가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1차 발표 직후여서 그랬던 것이고 A가 좀 마음을 추스리고 나면 다시 교류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나만 붙은 게 미안해서 전화를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으며, 혼자 속으로 생각했던 건 지금도 또렷이 떠오른다. A가 시험에 붙었더라면 누구보다 좋은 선생이 되었을 텐데,, 라고. 너무 성격 좋은 친구였고, 아이들한테도 참 잘해줄 사람이란 건 누가 봐도 분명했으니까. 나보다 훨씬 다정다감한 성격이란 걸 알기에 무척 마음이 아팠다.
7.
2차 준비를 하며 도서관에 갔을 때 B와는 우연히 한 번 마주쳤다. B도 A가 떨어져서 어떡하냐며 안쓰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를 엮어주었던 A가 없는 도서관이 썰렁했다. A가 자주 앉았던 자리에 그냥 눈길이 갔다. 갈색 잠바를 입고 웅크리고 있던 뒷모습이 겹쳐보였다. 나는 임용 준비를 하면서도 교사를 해야 하나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늘 있었지만, A는 정말로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기에 더욱 마음이 휭 했다.
이후 도서관을 찾지 않았고, 그 친구들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B는 아마도 학교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고, A도 또 다른 길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후 나는 교직을 발을 들이며 몇 년간 정신 없이 일에 빠져 지냈고, 이 친구들은 기억에서 멀어졌다. B는 후배라 그저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A는 동갑이어서 말도 잘 통하고 정말 많이 친해졌는데, 왜 A를 잊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발령 받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게 너무 힘에 부쳐서였을까, 남자친구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던 시절이라 여유가 없었던 걸까.
8.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엔 주인공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옛기억과 마주하는 순간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마들렌일 것이다. 홍차에 마들렌 조각을 적시는 순간, 작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이동을 하듯이 옛추억을 생생하게 마주하게 된다. 홍차와 마들렌의 향과 촉감 때문이었다. 그냥 머리로 떠올린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생생한 감각이 복원되면서, 사라졌던 모든 시간이 되돌아왔다고 느낀다.
나도 그랬다. 25년간 떠올린 적 없던 기억이 무의식 저편에서 갑자기 살아돌아왔다. A와 B의 얼굴도 분명하진 않지만 어렴풋이 윤곽이 떠올랐다. 그들이 앉았던 도서관 자리도. 대학원으로 Y대에 자주 들르면서도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이 특강을 마치고 샘솟듯이 솟아오른 이유가 무엇일까. Y대에 대한 내 기억은 골치 아팠던 남자친구의 기억과 한데 엮여 있었기에 어쩌면 그 시절 기억 전체를 내가 억압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대학생들과 잠깐 호흡을 공유한 시간이 내겐 어떤 색다른 감각의 마주침이었고, 내가 느낀 그 감각들이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오래된 기억과 공명하면서 그 기억을 부활시킨 것 같다.
그 시절 생각을 하며 밤거리를 걷는데, 겨울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와 내 뺨과 몸에 부딪혀 왔다. 추워서 움츠러들 만도 한데, 바람을 맞으며 갑자기 이유없이 행복해졌다. 아니, 왜 이렇게 즐겁지? 나 자신에게 되묻다가 곧 이유를 알아차렸다. 스물 몇, 대학생일 때 나는 교정을 걸으며 가을 바람 맞는 것을 좋아했다. 너무 차가워지기 전까지. 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이 그냥 이상하게 좋았다. 살에 부딪히는 바람의 감촉이 좋았고, 뭔가 이 세계 속에서 살아있는 듯한 생생한 기분이 들었다. 바람 부는 날,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바람을 맞으며 교정을 걷는 시간이, 살아있는 것 같아서 그냥 좋았다. 이십대 시절로 그때의 감각으로 돌아간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행복했다.
생각 속에서가 아니라, 생생한 감각 속에서 과거의 자신과 조우하는 것에는 매우 기이한 기쁨이 있다. 죽어 있었다고 생각한 우리 안의 한 부분이 되살아나서 그런 것일까. 현대 뇌과학의 설명 방식을 빌자면, 그 기억을 담은 뇌세포가 죽어가다가 다시 살아나서, 그것이 우리 생명 안에서 기쁨의 공명을 불러왔을 수도 있겠다.
9.
사람은 보통 마흔다섯 무렵부터 조금씩 단어를 까먹기 시작한다고 한다. 75세 무렵부턴 그 과정이 매우 급격하게 진행된다고. 얼마 전에 오십을 맞이한 나는 무언가가 내 안에서 죽어간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줄곧 나는 그것이 신체적 문제라고 생각했다. 체력이 바닥나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어쩌면 그건 내 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각과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에서 세포들이 조금씩 죽어가고 있기에 그런 것이 아니겠냐고.
프루스트는 마들렌 체험에서 감각이 새롭게 부활하는 것을 죽어있던 자아의 부활이라고 여겼다. 감춰져 있던 자아의 한 부분이 살아돌아오는 것이기에 그렇게 기쁜 것이라고. 이별이 슬픈 이유는 그 사람과 관련된 우리의 한 부분이, 다시 말해 한 개의 자아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그렇다고. 그리고 예술이야말로 잃어버린 우리들의 자아를, 우리들의 시간을 되살아나게 하는 원천이라고.
어떤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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