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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시와 소설86

사랑과 혁명 1~3 / 김탁환 1권을 보면서 다 읽는데 적어도 일주일 이상 걸리리라 생각했다. 말이 세 권이지 1권은 600페이지, 2권 3권도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라 보통 책으로 5권 분량은 족히 넘는다. 하지만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각 인물들의 개인사가 등장하는 1권만 다소 천천히 읽었을 뿐, 2권부터는 정신없이 읽었다. 이 이야기가, 각 인물들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라는 철학적이고 무거운 소재를 이토록 빠져들어 읽게 하다니 역시 대작가다운 필력이었다. 곡성을 배경으로 천덕산, 동이산, 순자강... 곡성 들판과 강줄기와 이름 모를 숱한 골짜기들을 내가 직접 보듯이 생생한 감촉을 느끼면서 19세기 삶의 공간 속에 흠뻑 빠져들었다. 옹기 굽는 덕실마을의 교우촌의 삶도 인상 깊었지만.. 2023. 11. 1.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 / 김응교 제목을 보고 글쓰기 책인 줄 알았다. 아니다. 문학작품을 그것의 첫문장을 바탕으로 해설하는 책이다.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의 장점은 첫문장과 함께 그 유명한 고전 하나하나를 개성 있게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 소설과 지금 인기 있는 작품도 몇 등장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에 나오는 첫문장을 발췌해둔다. ## 거기 누구냐? 아냐, 내가 묻는다. 거기 서, 너 누구냐. (셰익스피어, 햄릿) 그럼 여러분은, 이렇게 사람들이 강이라고 하거나, 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라고 하는 이 뿌옇고 하얀 게, 사실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하지만, 여러분은 말하시겠죠. 우리는 당신에게 여성과 픽션에 대해 강연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도대체, 제가 말하려는 '.. 2023. 10. 26.
[책] 자본주의의 적 / 정지아 그리 많은 글을 써온 것이 아닌데도 가끔 '나'라는 일인칭에 질릴 때가 있다. 가끔 '나'에서 벗어나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글쓰기는 일상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인데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나'란 놈이 너무 뻔해서 글을 쓸 의욕을 잃을 때다. 다른 자아를 내 안에 불러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정지아 작가의 작품은 반대다. '빨치산의 딸'이었던 작가의 삶 자체가 워낙 풍부한 스토리가 많고 특별해서였을까. 9편의 단편 중에서 저자의 자전적 목소리가 담긴 세 작품, 은 매우 잘 읽혔는데, 다른 작품은 위의 세 작품만 못했다. 위의 세 작품이 워낙 뛰어나서였을 수도 있지만. '나'가 드러나는 작품들이 훨씬 캐릭터가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나도 모르게.. 2023. 9. 18.
청소년 소설은 끝까지 읽기가 어려워 청소년 소설을 썩 좋아하진 않는데 수업 자료를 찾기 위해 가능하면 읽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끝까지 힘있게 읽어낼 작품이 흔치는 않다. , 국어교사들이 너무 좋은 책이라 해서 읽었는데 역시 문학은 개인 취향. 참신한 아이디어와 SF적 상상력은 돋보이나 장면에 대한 충분한 묘사가 부족하고, 주제 또한 모호하여 결국 다 못 읽었다. 문장이 좀 헐거운 감이 있었다. , 이것도 나름 괜찮아 보였는데 결국 끝까지 못 읽음. 가족 문제, 사회 문제 등이 교차하는 점이 좋아 보였으나 캐릭터가 현실감이 좀 떨어져서 잘 못 따라갔다. 청소년 소설이면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본 작품은 , 정도. 이만한 작품이 잘 없는 것 같다. 은 작품은 좋지만, 너무 길어서 아이들이 잘 못 읽어냄. 불편한 편의점, 순례주택.. 2023. 9. 12.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_ 올해 최고의 책 오래 기다렸던 책이 드디어 내 손에 왔다. 도서관에서 항상 대출 중, 예약 중으로 떠서 책을 손에 받아보기까지 두 달은 넘게 걸린 것 같다. 그냥 사볼까 하다가, 집에 더이상 책을 놔둘 공간이 없어서 참았는데 걍 사야겠다 하는 찰나에 옆동네 범어도서관에서 책이 도착했다. 소설의 첫문장은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그림책, 가 생각났다. 어린이 화자가 겪는 어머니의 죽음, 그 상실의 흔적과 순간들이 너무너무 슬퍼서 읽으면서 펑펑 운 책이다. 는 정신없이 빠져들어 책장을 넘긴다는 점에서는 전자의 책과 비슷하지만, 내용과 분위기는 완전 다르다. 한때는 지리산 빨치산으로 혁명을 꿈꾸었으나 현실에선 생활 능력이 없는 아버지, 사람들에게 보증 서고 떼이고를 반복하면서도.. 2023. 9. 12.
[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경이로운 작품이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사람들을 매혹하는 힘은 개성 있는 시공간, 캐릭터의 매력, 튼튼한 서사, 그리고 주제의식에서 비롯된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평생을 생물학 연구로 보낸 저자가 70세에 쓴 이 소설은 놀랍게도 이 모두를 하나도 빠짐없이 꽉 채워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었다. 뉴올리안스의 광활한 습지를 배경으로 버림받아 홀로 살아야하는 여주인공 카야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정신적 성장 과정은 물론 가정폭력, 인종차별, 여성 인권, 사회적 편견, 자연보호 등의 다소 무거운 주제를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짜올린 작품. 특히 묘사의 힘이 대단하다. 작가는 습지의 생태계와 소녀의 내면의 고독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듯이 생생하게 전달하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은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 2023. 6. 25.
[책] 그 여름의 끝, 우리는 / 권재원 주말 오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난 후, 여운이 종일 간다. 무언가 찡하고 뭉클하다. 아마도 이 책이 와니와 써니, 두 여교사의 성장기를 다루었기 때문이리라. 두 인물들의 경험 세계가 나와 겹쳐지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들의 고군분투가 내 젊은 날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전혀 다른 성장 배경을 지닌 와니와 써니, 중학교 같은 반 친구인 둘은 교직에서 서로 만난다. 유복했던 와니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교사가 되었고, 형편이 어려웠던 써니는 기간제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몇 년 늦게 발령을 받는다. 그렇게 교단에서 만난 둘은 서로를 보듬으며 학교와 교실에서 맞닥뜨린 현실을 헤쳐나간다. 각각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면서도 사실적이고, 이들의 중학생 때의 이야기와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이야.. 2023. 5. 21.
[책] 정거장에서의 충고 / 박해현 외 기형도 시인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론을 모은 책이다.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사실 매우 듬성듬성 읽었지만) 여러 책 중에서 기형도 시인에 대해 대략적인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었던 유일한 책이다. 책장을 덮으며 한 청년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노래 부르기와 음악을 좋아했던 활달하고 유쾌한 청년, 그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속삭여오는 아픈 유년의 그림자, 가난과 가족의 병고로 인해 외로움으로 점철됐던 어린 날,,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아무도 알아줄 이 없어 종이배로 접어서 개천에 띄워버릴 만큼.. 중풍으로 드러누운 아버지, 비극적 사고로 죽은 누이, 여공으로 일한 다른 누이들과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던 채소장수 어머니... 그는 인생이 주는 실존적 물음에 그 자신이 해답을 찾는 .. 2023. 3. 19.
[책] 시인을 만나다 / 이운진 내일 반납인데 다 읽을 시간이 없다. 기형도 시인 수업을 해야 해서 이 부분만 캡처해둠.. 2023. 3. 13.
[책] 국어교과서 작품 읽기 (중3 시) / 김규중 외 엮음 2023. 3. 8.
[책] 국어시간에 세계시 읽기 / 전국국어교사모임 예쁜 시가 넘 많다. 꼭꼭 씹어읽고픈.. 2023. 3. 5.
다시, 헤세를 읽다 교과서에 헤르만 헤세 단편이 나온다. 작가 소개를 하려고 집에 있는 헤세 책을 찾아보니 5권이나 되었다. 유리알유희만 십 년 전쯤 다시 읽었었고, 나머지는 약 30년만에 펼쳐보는 책들이다. 종이가 누렇게 바랬다. 헤세를 잊고 산 지 오래되었는데 책장을 펼치니 이 작가의 어떤 점이 그토록 매혹적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하는 영혼, 성과 속 사이의 경계에 선 인간, 자기다움이란 무엇이며 사랑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작가가 자기 생애 전반에 걸쳐 묻고 또 물었던 '구도'의 과정이 크눌프와 데미안과 싯다르타의 입을 빌어 쓰여 있었다. 특히 데미안의 첫 문장은 지금봐도 후덜덜~~ "나는 정말 나의 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것이 그렇.. 2022. 11. 3.
하얼빈 / 김훈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p307 작가의 말에서) 그의 다른 작품보다 더 간결하고 절제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의 최후의 동선을 따라가는 여정. 거의 그들에 독백에 의지해 소설이 전개되는데 한 권을 순식간에 읽어버린 건 김훈 작가의 필력 때문일 것이다. 장편소설인데 마치 단편소설을 읽은 듯 이야기가 금방 끝이 났다. 다만 소설 전체가 ‘작가의 말’에 담긴 주제의식에 못 미친다. 좀 더 절절하게 묘사했더라면 하는 바람이 들 만큼 너무 소략한 대목이 많다. 이순신.. 2022. 8. 15.
태백산맥 3~4부(6~10권) 분단과 전쟁, 완독 소감 드디어 이 걸작을 다 읽었다. 3부와 4부는 6.25 전쟁에서 휴전, 그 사이 지리산 빨치산 투쟁과 소탕이 이야기의 줄기다. 스무 살에 읽었을 때는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른 채 그저 이야기의 흡입력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가 읽었다면, 지금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을 대부분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보도연맹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거제 포로수용소 등 굵직한 사건들을 대부분 알고 있고, 지리산의 주요 골짜기, 백무동, 뱀사골, 피아골, 빗점골, 주요 봉우리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인근 화엄사, 의신마을 등을 모두 알고 있기에 더 생생하게 읽혔다. 지리산이 지금 올라가도 얼마나 돌투성이고 힘든 길인지, 지리산 겨울이 얼마나 매섭고 추운지 잘 알기에 그곳에서 버틴 빨치산들의 고초.. 2022. 7. 25.
태백산맥 2부 (4~5권) 민중의 불꽃 방학하고 아침으로 빵을 먹다가 오랜만에 흰 쌀밥을 지어 밥을 한 그릇 푸는데 문득 뭉클했다. 소설 태백산맥 때문이다. 이 밥 한 그릇에 얼마나 많은 한과 눈물이 담겼던가. 수천 년간 이 밥 한 그릇에 삶의 모든 고락이 달려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 한 그릇을 보며 그저 무량했다. 문학의 힘이 실로 대단하다. 태백산맥 2부 4~5권은 해방 후 토지개혁을 둘러싼 갈등을 세세하게 다룬다. 국민의 8할 이상이 농민이었고, 그 농민의 다수가 또 소작인이었던 시절. 해방 후 사회갈등의 근본은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로 다 징수되고 춘궁기, 추궁기엔 굶기가 여사였던 시절, 소작 부치던 그 토지마저 없으면 굶어 죽어야 했던 시절, 땅은 사람들에게 꿈과 한의 결정체였다... 2022.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