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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시와 소설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 / 김응교

by 릴라~ 2023. 10. 26.

제목을 보고 글쓰기 책인 줄 알았다. 아니다. 문학작품을 그것의 첫문장을 바탕으로 해설하는 책이다.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의 장점은 첫문장과 함께 그 유명한 고전 하나하나를 개성 있게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 소설과 지금 인기 있는 작품도 몇 등장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에 나오는 첫문장을 발췌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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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냐?

아냐, 내가 묻는다. 거기 서, 너 누구냐.  (셰익스피어, 햄릿)

 

그럼 여러분은, 이렇게 사람들이 강이라고 하거나, 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라고 하는 이 뿌옇고 하얀 게, 사실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하지만, 여러분은 말하시겠죠. 우리는 당신에게 여성과 픽션에 대해 강연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도대체, 제가 말하려는 '자기만의 방'은 오늘의 주제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1771년 5월 4일

훌쩍 떠나온 것이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자네들 다시 다가오는구나, 희미하게 흔들리는 형상들아 (괴테, 파우스트)

 

아침, 눈을 뜰 때 기분은, 재밌다. (다자이 오사무, 여학생)

 

북쪽 바다의 곤이라는 물고기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몇 천 리가 되는지 모를 만큼 크다. (장주, 장자)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스스로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한 것을 알았다. (카프카, 변신)

 

나는 그 남자의 사진을 세 장 본 적 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인데, 팔십사 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한강, 채식주의자)

 

엄영숙 여사가 가방 안에 파우치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기차는 평택 부근을 지나고 있엇다.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찌는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나는 냉혹한 추위를 무릅쓰고, 2천여 리 떨어진 곳에서, 20여 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루쉰, 고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만기 치과의원에는 원장인 서만기 씨와 간호원인 홍인숙 양 외에도 거의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손창섭, 잉여인간)

 

몇 십만의 인간이 한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불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 버렸어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슬려 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새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이곳 도시에도 찾아들었다. (톨스토이, 부활)

 

별이 총총한 하늘이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들의 지도인 시대, 별빛이 그 길들을 훤히 밝혀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다락에는 제일강신이라, 부벽루라, 빛 낡은 편액들이 걸려 있을 뿐, 새 한 마리 앉아 있지 않았다. (이태준, 패강냉)

 

B3전선의 후방 기지인 깐 박 지역에 전쟁 이후 첫 건기가 고요하게 그러나 때늦게 찾아왔다. (바오 닌, 전쟁의 슬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까뮈, 이방인)

 

이 연대기가 주제로 다루는 기이한 사건들은 194x년 오랑에서 발생했다. (까뮈, 페스트)

 

시외버스는 끝없이 달렸다. (기형도, 영하의 바람)

 

토요일 오후, 그녀는 쇼핑센터의 작은 제과점으로 차를 몰고 갔다. (레이먼드 커버,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에 되뇌이고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매 순간 신념보다는 사실들의 힘이 훨씬 더 삶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세계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는 나의 욕망과 철학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을 만족시켜 준 것이 포로 생활이었따고 생각한다. (김수영, 내가 겪은 포로생활)

 

그 여름방학 내내 나와 줄리는 오키드 거리에 살다시피 했다. (김초엽,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아내는 알암이의 돌연스런 가출이 유괴에 의한 실종으로 확실시되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은 악착스럽게 자신을 잘 견뎌나갔다. (이청준, 벌레 이야기)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손원평, 아몬드)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소. (공자, 논어)

 

공자가 말하셨어요.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 갚고, 선하지 않은 것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재앙으로 갚는답니다. (범입본 명심보감)

 

이 책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개인적인 체험, 즉 수백만 명의 살마들이 시시때때로 겪었던 개인적인 체험에 관한 기록이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 임꺽정이의 이야기를 붓으로 쓰기 시작하겠습니다. 쓴다 쓴다 하고 질감스럽게 쓰지 않고 끌어오던 이야기를 지금부터야 쓰기 시작합니다. 각설, 명종대왕 시절에 경기도 양주 땅 백정의 아들 임꺽정이란 장사가 있어... (홍명희, 임꺽정)

 

옛날에 아주 살기 좋던 시절, 음매 하고 우는 암소 한 마리가 길 따라 내려오고 있었단다. 길을 걸어오던 이 음매 암소는 턱쿠 아기라고 불리는 멋진 사내아이를 만났어.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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