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책 이야기/시와 소설88

태백산맥 3~4부(6~10권) 분단과 전쟁, 완독 소감 드디어 이 걸작을 다 읽었다. 3부와 4부는 6.25 전쟁에서 휴전, 그 사이 지리산 빨치산 투쟁과 소탕이 이야기의 줄기다. 스무 살에 읽었을 때는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른 채 그저 이야기의 흡입력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가 읽었다면, 지금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을 대부분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보도연맹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거제 포로수용소 등 굵직한 사건들을 대부분 알고 있고, 지리산의 주요 골짜기, 백무동, 뱀사골, 피아골, 빗점골, 주요 봉우리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 인근 화엄사, 의신마을 등을 모두 알고 있기에 더 생생하게 읽혔다. 지리산이 지금 올라가도 얼마나 돌투성이고 힘든 길인지, 지리산 겨울이 얼마나 매섭고 추운지 잘 알기에 그곳에서 버틴 빨치산들의 고초.. 2022. 7. 25.
태백산맥 2부 (4~5권) 민중의 불꽃 방학하고 아침으로 빵을 먹다가 오랜만에 흰 쌀밥을 지어 밥을 한 그릇 푸는데 문득 뭉클했다. 소설 태백산맥 때문이다. 이 밥 한 그릇에 얼마나 많은 한과 눈물이 담겼던가. 수천 년간 이 밥 한 그릇에 삶의 모든 고락이 달려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 한 그릇을 보며 그저 무량했다. 문학의 힘이 실로 대단하다. 태백산맥 2부 4~5권은 해방 후 토지개혁을 둘러싼 갈등을 세세하게 다룬다. 국민의 8할 이상이 농민이었고, 그 농민의 다수가 또 소작인이었던 시절. 해방 후 사회갈등의 근본은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로 다 징수되고 춘궁기, 추궁기엔 굶기가 여사였던 시절, 소작 부치던 그 토지마저 없으면 굶어 죽어야 했던 시절, 땅은 사람들에게 꿈과 한의 결정체였다... 2022. 7. 24.
태백산맥 1부 (1~3권) 한의 모닥불 스무 살 때 읽고 이십 년 넘는 세월을 훌쩍 건너 뛰어 다시 손에 잡은 소설 태백산맥. 벌교 여행을 다녀와서 이틀 만에 3권까지 읽었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일단, 소설의 주요 장소인 벌교읍내, 현부자집, 술도가, 보성여관(옛 남도여관), 금융조합, 홍교, 중도방죽 등을 직접 보고 온 터라 읽으면서 장소가 환히 떠올라서 좋았고,, 주인공들이 오고가는 인근 선암사와 고흥, 순천 일대까지도 이번 여행을 통해 지리가 환히 그려져서 좋았다. 고흥 과역면은 3권에서 한 줄 나오는데 과역면에서 여행 중 가장 맛있는 밥을 먹어서 그것도 기억에 남았다. 가 진도가 잘 안 나가서 힘겹게 붙들고 있던 참이라 이 더 기대 이상인 듯도 하다. 조정래 씨 필력이 대단하다.스무 살 때만큼은 아니지만(그땐 밤새워가며 읽음).. 2022. 7. 22.
패배의 신호 / 프랑수아즈 사강 __ 프랑스 부르주아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네 오랜만에 읽는 프랑스 소설. 처음엔 프랑스 소설에서 흔히 보는, 부르주아적 생활상에 대한 묘사가 썩 와닿지 않았는데.. 캐릭터가 워낙 흡입력이 있어서 끝까지 몰입해 읽었다. 책장을 덮으니 루실, 샤를, 앙투안, 디온, 이 네 사람을 직접 곁에서 만난 것 같았다. 그 집에서 같이 생활한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탁월하다. 과연 천재 작가라는 말을 들을 만하구나 싶었다. 내일에 대한 계획이 없는, 오늘의 따스한 햇빛에서 삶의 모든 행복을 얻는 서른의 루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는 능력 있고 사려 깊은 오십의 애인 샤를. 사교계의 여왕이자 세련되고 아름다운 마흔의 디온. 디온의 애인이자 그녀의 경제적 후원을 받는, 작가 지망생이면서 진.. 2022. 5. 21.
중년 독서, 레미제라블 얼마 전 동기들 만났을 때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지금까진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젊음의 에너지로 버텨왔다면 그게 다 고갈되는 시기가 중년이라고.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다고. “나도 중년이 처음입니다” 예전에 서점에서 책 제목만 보고 읽지는 않은 책이지만 제목엔 공감이 갔다. 청년도 중년도 노년도 어떤 시기건 맞닥뜨리는 이들에겐 다 처음이다. 처음이라서 허둥대고 실수하고 자책한다. 중년에 지혜가 늘고 심리적 안정을 얻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오히려 번아웃이나 정신적 공허를 느끼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허기진 마음을 인스턴트식품이 아닌, 집밥 같은 걸로 좀 배부르게 채우고 싶다는 친구에게 소설 레미제라블을 권했다. 5권 짜리다. 중년이면 이것저것 잡다한 독서보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2022. 2. 7.
토지 4권, 용정촌의 삶과 서희와 길상의 사랑 4권은 용정촌에 이주한 평사리 사람들의 생활상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새로운 인물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교육운동을 하는 송장환, 줏대 없는 인물 윤이병, 그리고 평사리를 도망치듯 떠난 뒤 용정촌에 모습을 드러낸 김두수, 월선의 삼촌 공노인 등이다. 김두수는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하며 주변 사람들을 자기 이익을 위한 먹잇감으로만 삼는 간악한 캐릭터의 대표격이다. 뭐니뭐니해도 4권을 끌어가는 중심 이야기는 서희와 길상의 애증이다. 서희보다는 길상의 심리 상태가 더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평생을 모셔왔던, 수천 수만 번도 얼굴을 더 봤던 애기씨, 그러나 그 둘 사이에 늘 있었던 보이지 않는 벽. 신분 차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둔 그들 사이의 거리가 일순간에 허물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 2022. 1. 10.
토지 3권, 평사리를 떠나는 사람들 3권은 이동진의 눈에 비친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고 최재형 선생의 삶을 인상적으로 보았던 터라 재미있게 읽기를 시작했다. 3권에선 대기근으로 농민들이 아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먹을 게 없어 하나 둘 굶어죽으면서도 곡식을 쌓아둔 양반집을 털 생각을 못하는 저항의 dna가 아예 실종된 듯한, 체념에 가까운 삶을 산 농민들을 보며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의문이 들었다. 작가도 그 부분은 시원히 밝혀주지 못한다. 다만 그네들은 긴 세월 그렇게 살아왔노라고. 3권은 스토리가 긴박하게 전개된다. 역병으로 윤씨 부인, 김서방, 봉순네 등이 세상을 뜨고 서희는 천애고아가 되며 조준구는 최부잣집 재산을 날로 먹으려 한다. 고통 속에 살던 서희는 의병활동으로 평사리를 쫒겨난 농민.. 2022. 1. 2.
토지 2권, 평사리 사람들 2권을 다 읽은 지 2주가 지났다. 생각보다 속도가 붙지 않는다. 재미 있는데 띄엄띄엄 보다보니 그렇다. 2월까지 20권을 다 읽을 수 있으려나. 아무튼 천천히라도 꼭 완독할 예정. 2권에서는 사건이 굉장히 빠르게 전개된다. 최치수의 죽음, 윤씨 부인의 비밀(1권인지 2권인지 헛갈리네), 용이와 월선의 사랑이 주축을 이루면서 인물들의 캐릭터가 생생히 부각되고 그들의 내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김훈장, 몰락양반 김평산, 용이, 칠성 등 평사리 농민, 목수 윤보와 강포수, 함안댁, 임이네, 강청댁 등 여인들 각각의 성격과 개성도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물들의 다양한 욕망과 그들이 지키려는 가치관이 실감나게 전달된다. 최치수의 죽음은 한 시대의 몰락으로 읽혀졌다. 젊고 똑똑하고 냉철하며 시대 변화를 보면서.. 2021. 12. 13.
토지 1권, 말꽃으로 수놓은 거대한 화폭 요즘 유투브를 만들다보니 책에는 손을 놓고 있다. 이런저런 잡다한 책들은 이제 재미가 없고 긴~~ 장편소설을 한번 읽어야겠다 싶어 '토지'를 손에 들었다. 대학 때 3, 4권까지 보다 말았던 책이다. 그땐 딱히 재미있지도 재미 없지도 않았는데 바쁘다 보니 손을 놓게 되었다. 봄에 하동 최참판댁 다녀와서 꼭 봐야지 했는데 이제사 시작한다. 겨울까지 다 볼 수 있으려나. 중년에 다시 '토지'를 집어들며 소설 내용과는 별개로 한 문장, 한 문장을 읽는 것이 그냥 행복했다. 번역문이 아닌, 모국어 문장이 주는 감칠맛이다. 마치 음식을 꼭꼭 씹어먹는 것 같았다. 박경리 선생이 말로 된, 말꽃으로 거대한 화폭을 수놓으셨구나 싶었다. 그 말로 된 꽃들을 하나하나 음미해간다. 1권에서는 한가위를 묘사한 대목이 찡했다... 2021. 11. 8.
파친코 1~2 / 김민진 __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 "읽는 여러분을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이 소설을 썼어요." 유튜브에서 재미교포 김민진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기대가 컸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 소설을 읽는 사람을 이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독자를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소설을 썼다는 김민진 작가의 말은 탁월한 답변이었다. 소설 '파친코'를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한 달을 기다려서 '파친코' 1권을 받았다. 1권은 흡입력이 대단했다.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주인공 순자의 가족사와 일본으로 이주하기까지의 여정을 속도감 있게 그려내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가 인상적인데, 이것이 2권에 가서는 큰 약점으로 작용할 줄은 몰랐다. 1권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품격'이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들고 긴 여운을 남긴다. 순자의 .. 2021. 7. 6.
몽실언니 | 권정생 _ 아동문학을 뛰어넘은 20세기 한국문학의 걸작 대체 나는 예전엔 이 이야기를 왜 그리 건성으로 읽은 것일까? 올해 안동의 권정생 선생 생가를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권정생님 작품을 몇 개 다시, 제대로 읽으려고 방학 때 사둔 책이 다. 이렇게 몰입할 줄은 몰랐다. 저녁 나절에 잠깐 훑어보려고 펴들었다가 끝까지 다 읽었다. 228쪽에 접어들 땐 나도 모르게 엉엉~ 눈물을 훔치면서. 그리고 알았다. 권정생님이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가를. 는 아동문학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작품이다. 내가 읽은, 문학사적 평가를 높게 받는 그 어떤 한국소설보다도(많이 읽은 편이 아니라서 쫌 그렇지만) 못하지 않으며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해방 전후와 6.25 전쟁 시기의 삶을 너무 잘 그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시대 삶과 전쟁을 바라보는 작가의 윤리의식과 '몽.. 2021. 4. 19.
꽃들에게 희망을 | 트리나 포올러스 ㅡ 인생책 연말이면 책을 보내주는 지인이 있습니다. 올 겨울에 받은 책은 잘 알려진 고전, 리커버판입니다. 짧은 우화 속에 인간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삶의 위대한 가능성을 동시에 새겨넣은, 고전 중의 고전이죠. 이야기속엔 줄무늬, 노랑이, 이렇게 두 마리 애벌레가 등장합니다. 줄무늬 애벌레가 세상에 태어나 목격한 모습은 이렇습니다. 다른 애벌레들이 모두 줄을 지어 어딘가로 가고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 끝없이 이어진 애벌레들의 행렬, 그 행렬 끝에는 놀랍게도 거대한 애벌레 기둥이 있습니다. 애벌레들이 높은 데로 올라가려고 서로의 몸을 밟고 밟으며 만들어낸 기둥이죠. 기둥 위엔 뭐가 있는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줄무늬는 호기심에 기둥에 뛰어들지만 거기서 노랑 애벌레를 만납니다. 차마 노랑이를 밟고 올라서.. 2021. 1. 21.
심신단련 & 깨끗한 존경 | 이슬아 ㅡ 일상을 소설처럼 재미나게 이야기하기 세바시에서 이슬아 작가가 강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젊은 친구 치고는 글쓰기에 대한 철학이랄까 통찰이 놀랍구나 싶었다. 자신이 매일 쓴 수필을 이메일로 발송하고 한 달에 만 원의 고료를 받는다는 발상도 참신했다. 언젠가 기회 되면 이 분 책을 한 번 봐야겠다 싶었지만 이삼십대의 관심사가 나와 겹치는 부분이 크게 있을까 싶어서 책을 사진 않고 이름만 기억해둔 작가다. 마침 어제 후배가 이슬아 작가가 쓴 두 권의 책을 빌려주었다. '심심단련'은 수필집이고 '깨긋한 존경'은 인터뷰집이다. 한 권의 수필을 금새 읽으면서 놀랐다. 젊은 친구가 필력이 대단하구나 했다. 일상 이야기는 사실 공감을 불러오긴 쉽지만 그만큼 흔하고 우리의 주의와 관심을 크게 끌지는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일상의 작은 일들을 그만의 섬.. 2020. 10. 7.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꽂힌 한 대목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펼쳐든다. 재미로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보는 건 어릴 때 일이고,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공부하거나 논문 쓸 때, 내용을 다시 정확히 확인하려고 자료를 다시 찾을 뿐. 하지만 가끔은 예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의 신선한 느낌을 다시금 맛보고 싶어서 책장을 펼칠 때가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가 그날 그랬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때는 2004년, 갓 서른을 통과할 때다(블로그에 리뷰가 있어서 앎). 아직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움츠러들기 전이다. 그 시기에 이 소설은 주인공이 온갖 모험을 겪으며 자기만의 고유한 다르마를 찾아가는, 삶의 '지도'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그 지도는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언제부터인가 삶에서 더 나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점점 버.. 2020. 8. 28.
귤의 맛 | 조남주 ㅡ 청소년 소설로는 많이 아쉬운 작품 기대가 커서였을까. 의 작가, 조남주의 첫 청소년소설. 개인적으로 별 매력을 못 느낀 소설이다. 서사의 힘은 있어서 끝까지 다 읽기는 했지만. 일단 캐릭터의 개성과 매력이 약하다. 네 명의 여중생이 주인공인데, 중학생의 특징도 잘 드러나지 않고, 네 명이 가정환경과 성적만 다를 뿐 다 비슷비슷해서 구분이 잘 안 간다. 두 번째는 소설의 플롯인데, 또래집단인 여중생 넷이 같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벌이는 사건들이 다분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자연스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소설의 주제. 성장소설을 기대했는데, 그 성장의 구체적 내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체리새우'가 훨씬 좋았다. 제목이 왜 '귤의 맛'인지도 모르겠고, 문장이 썩 매끄러운 편도 아니다. 넘 혹평했나. 아무튼 내게 '.. 2020.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