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여러분을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이 소설을 썼어요."
유튜브에서 재미교포 김민진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기대가 컸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 소설을 읽는 사람을 이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독자를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소설을 썼다는 김민진 작가의 말은 탁월한 답변이었다. 소설 '파친코'를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한 달을 기다려서 '파친코' 1권을 받았다. 1권은 흡입력이 대단했다.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주인공 순자의 가족사와 일본으로 이주하기까지의 여정을 속도감 있게 그려내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가 인상적인데, 이것이 2권에 가서는 큰 약점으로 작용할 줄은 몰랐다.
1권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품격'이 잔잔하게 가슴을 파고들고 긴 여운을 남긴다. 순자의 조부모, 그리고 부모 모두 가난하지만 품위 있는 인물들이다. 순자의 남편 백목사와 그의 가족 또한 순자를 미혼모라는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사랑한 인물들이었다. 순자를 곤경에 빠트린 한수마저도 악인으로 등장하지 않고 나름의 책임감을 갖고 있다.
예약 걸어 놓은 책이라 다시 한 달을 기다려 '파친코' 2권을 받았다. 1권이 시대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특정한 삶의 자리, 일본 오사카에 자리잡게 되기까지의 인과적 과정을 스케치했다면 2권은 작가의 주제의식이 본격적으로 구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권은 재일조선인으로서 겪는 '정체성'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지 못하고 있다.
그 부분을 다루려면 인물들의 내면에 좀 더 심도 있게 파고들어야 하는데 2권은 인물들의 내적 갈등에 집중하지 않고 새로운 인물들을 계속 등장시켜 이야기를 채워나간다. 노아가 왜 죽는지도 설득력 있게 묘사되지 못하고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인물들도 이야기 속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2권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마치 줄거리 혹은 요약본을 읽는 기분이었다. '대하소설'이라 부르기엔 너무 엉성하다. 미국에서 곧 드라마로 제작되고 윤여정 씨가 출현한다고 하는데 '파친코'는 드라마의 줄거리를 가볍게 읽는 느낌이 강했다. 소설의 빈 부분을 잘 채운다면 드라마가 더 나은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 등장인물들이 다 가족관계로 가깝게 얽혀 있기 때문에 드라마로 만들기 좋은 작품이었다.
제목은 참 잘 붙였다고 생각한다. 재일조선인들은 그가 똑똑하건 그렇지 못하건 그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통로가 '파친코' 사업 밖에 없었으니까. 이주 3세대인 솔로몬까지 결국 파친코 사업에 뛰어드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재일조선인의 삶을 소설의 테마로 삼은 것도 의미 있다.
하지만 소설의 배경이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로부터 그 시절에 있을 법한 한국적인 정서나 토속적인 색채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매우 아쉽다. 공간만 조선과 일본이고 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마치 현대인 같았다. 이들의 정신 세계는 한국적이라기보다는 기독교적이다. 번역문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 외국 소설을 읽는 느낌이 강했다.
우리 사회는 그간 재일조선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고 생각한다. 먼 나라의 인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긴 세월, 고통 받으며 살아온 그들의 삶에 너무 무지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이 재일조선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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