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하고 아침으로 빵을 먹다가 오랜만에 흰 쌀밥을 지어 밥을 한 그릇 푸는데 문득 뭉클했다.
소설 태백산맥 때문이다. 이 밥 한 그릇에 얼마나 많은 한과 눈물이 담겼던가. 수천 년간 이 밥 한 그릇에 삶의 모든 고락이 달려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밥 한 그릇을 보며 그저 무량했다. 문학의 힘이 실로 대단하다.
태백산맥 2부 4~5권은 해방 후 토지개혁을 둘러싼 갈등을 세세하게 다룬다. 국민의 8할 이상이 농민이었고, 그 농민의 다수가 또 소작인이었던 시절. 해방 후 사회갈등의 근본은 지주와 소작인의 대립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소작료로 다 징수되고
춘궁기, 추궁기엔 굶기가 여사였던 시절, 소작 부치던 그 토지마저 없으면 굶어 죽어야 했던 시절, 땅은 사람들에게 꿈과 한의 결정체였다.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처음으로 내 땅을 갖게 된다는 희망은 법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땅을 빼돌리려는 지주들의 협잡으로 인해 거대한 분노로 바뀌고 비극적인 사건이 연이어 터진다. 지주들은 김범우와 서민영 등 집안을 제외하면 대다수 친일 전력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쌓여온 한이 폭발한 것이다. (술도가집 정현동은 염전 땅은 몰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걸 알고 멀쩡한 논에 바닷물을 대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해방 후 줄곧 친일 전력이 있는 지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던 이승만 정부가 토지개혁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토지개혁 없이 국가 유지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원칙으로 토지개혁이 이루어졌기에 유상몰수 유상분배라는 한 걸음 후퇴한 정책이라도 토지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기대엔 못 미치지만 그래도 토지개혁으로 내 땅 한 조각을 갖게 된 농민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귀속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듯 새 나라 세우기에 가장 중요한 과제가 토지개혁이었다.
태백산맥 2부는 이 토지개혁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을 통해 땅과 더불어 살아온 민초들의 삶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고 당시의 역사적 정황 또한 훌륭하게 돌아보게 해준다.
<토지>를 6권까지밖에 못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태백산맥>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마도 20세기 우리 문학에서 한 작품만을 고르라면 이 작품을 능가할 작품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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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이 대립적 갈등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란, 내가 보기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원칙에 따른 농지개혁밖에는 없네. 보게, 지금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농토문제만 해결된다면 그 어떤 주의든 지지하고 따르게 되어있는 상황이네. 이건 바로 갑오란 때와 똑같은 상황이란 말일세.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동학이라는 종교 사상이 갑오란을 일으켰느냐, 농민들이 그 종교사상을 행동의 계기로 삼았느냐가 문제인 것이네. 다시 말해, 어떤 사상이 다수의 사람을 의식화로 무장을 시키는 것이냐, 아니면 다수의 사람이 공동으로 처한 생활의 악조건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사상을 필요로 하느냐 하는 점일세. 그건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호작용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보통이지만, 갑오년 농민항쟁의 경우에 있어서나 지금 우리의 상황에 있어서는 후자의 경우가 분명하네. p21-22,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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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특히 기차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 그들은 그 신기한 기계를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영토에 미친 듯이 설치해 나가기 시작했다. 본토와 한반도는 물론이고 만주대륙에까지 일본인인 가설한 철도는 뻗어나갔다. 결국, 서구라파 제국이 산업혁명의 겨로가로서 발전시켜 온 기차와 철도를 일본인들은 1차적으로 효과적인 식민지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했고, 2차적으로 대륙침략의 무기로 활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였고, 2차대전이 일어나게 되자 그 순서는 완전히 뒤바뀌어, 기차는 중국대륙을 본격적으로 침략하는 전투무기가 되었다. 일본은 본래 섬나라이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 수많은 항구를 개발해 해상교통을 극대화시켰지만, 만약 철도시설이 없었거나 빈약했더라면 조선의 수탈을 그렇게 잔인할 만큼 철저하고도 효과적으로 해질 수 있었을 것인가는 결코 상상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일본이 그 짧은 기간 동안에 그렇게 중국대륙 깊숙이 침략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철도 시설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는 사실이다. p23-24,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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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가 든 사람들은 거기에 논리와 이론이 없으니 이데올로기나 사상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건 식자층의 상투적인 용업니다. 그건, 불교나 예수교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경전을 가졌으니 종교고, 무속은 그런 것을 갖추지 못했으니 미신이다, 하는 식과 똑같은 발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절대적인 삶이 생활로 살아가는 것이지 어디 이론으로 살아가는 겁니까. 제가 왜 이런 말을 길게 늘어놓느냐 하면, 이 지방에 사는 절대 다수의 가난한 농민들은 자기들이 왜 가난한지, 가난을 면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고, 더구나 해방이 되는 것을 계기로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길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일정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끊임없이 소작쟁의를 벌여 그 길을 뚫으려 했고, 해방이 되자 이제야 때가 왔다 생각한 그들은 다같이 힘을 모아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게 바로 1946년 10월에 전국 규모로 일어난 농민항쟁 아닙니까. 그 항쟁은 결국 폭력 앞에 피만 뿌리고 좌절되었습니다만, 지금 그들은 침묵하고 있을 뿐 그들의 욕구를 포기하거나 망각한 게 아닙니다. 그들은 행동하는 이데올로기의 덩어리고, 사상의 덩어리인 겁니다. 그런 그들은 자기네들이 원하는 길을 뚫을 수 있는 그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그들은 그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삶을 찾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환영하고, 선택합니다. 그들의 그런 행위를 우익적 식자들은 또 부회뇌동이니 비이성적 감정주의니 하는 유식한 문자를 써가며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일축하려 할 겁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삶의 절박함과 절실함 속에서 나오는 가장 이성적이고 현명하고 순수한 판단이고, 그들이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생존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치상황은 그들이 원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습니다. p88-89,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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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나눠받느라고 사람들이 일으키는 소란의 한구석에서 이지숙은 먼발치로 소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고운 여자가 간직하고 있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무엇일까. 내가 혁명에 쏟는 열정과 어떻게 다를까. 혁명이 성취된 땅에서 혁명은 저 여자가 담당하고 있는 몫까지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의 질문에 이지숙은 멋쩍게 웃었다. p139,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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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눔에 새끼덜이 있는 좌익얼 잡는 것이 아니라 웂는 좌익얼 맹그니라고 그 염병이제 워째. p212,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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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어디까지나 행정관리의 책임 아래 농지개혁을 시행하도록 방침을 정해놓고 있었다. 왜냐하면 농지개혁의 성패는 바로 정부의 존립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대다수 소작인들은 좌익의 선전선동에 쏠려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소작인들을 좌익으로부터 떼어내 그 위기를 넘기는 방법은, 비록 이북에서 이미 행한 조건에는 못 미친다 하더라도 농지개혁밖에는 없는 실정이었다. 미군정이 자기네들의 점령지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가 되어버릴 위기를 막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귀속농지를 분배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의 계속이었다. 군정이 그때 동척 소유의 귀속농지만이 아니라 모든 농지를 분배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지주들의 조직적인 반대와 방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형편은 많이 달라져 정부는 농지위원회의 권리를 형식적인 면에서 허용하고 있을 정도로 지주들은 현실적인 권력의 버림을 받아가고 있는 처지였다. 정부권력이 튼튼해야만 자기 자리도 튼튼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농지개혁에 대한 태도 결정을 진작에 끝내놓고 있었다. 눈치 빠른 지주들은 벌써 반 이상, 그렇지 못한 지주라 하더라도 평균 3할씩은 매각했거나 명의변경을 한 것을 생각하면 읍장 이병주의 마음은 편하지가 못했다. 농지개혁은 하나마나 실패가 아닐까 하는 회의가 생겼던 것이다. p216,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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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쏘가 우리를 어떤 형태로든 제약하고 있고, 우리가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이념을 하나씩 나눠갖고 사회문제나 민족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그것이야말로 환상이네. 미쏘 두 나라가 맞서 있기 때문에 우리의 어느 쪽 시도든 무위로 끝나는 환상이 될 수밖에 없고, 만에 하나 미쏘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하거나 포기를 해서 그런 문제를 해결했다 해도 나머지 한 나라의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는 한, 민족은 노예적 속박에서도 벗어날 수 없을 거네. 내가 파악하는 건 지금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은 볼셰비키의 혁명상황도 아니고, 중공의 혁명상황도 아니라는 점이네. 로서아에도 중국에도 그들을 제약하거나 속박하는 막강한 두 외국세력은 없었다는 사실이네. 그들이 지금 우리와 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혁명을 성취시킬 수 있고, 민족의 문제를 생각대로 해결할 수 있었겠나를 묻고 싶네. 그래서 난 외국세력의 배격이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거네. p355,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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