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p307 작가의 말에서)
그의 다른 작품보다 더 간결하고 절제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의 최후의 동선을 따라가는 여정. 거의 그들에 독백에 의지해 소설이 전개되는데 한 권을 순식간에 읽어버린 건 김훈 작가의 필력 때문일 것이다. 장편소설인데 마치 단편소설을 읽은 듯 이야기가 금방 끝이 났다.
다만 소설 전체가 ‘작가의 말’에 담긴 주제의식에 못 미친다. 좀 더 절절하게 묘사했더라면 하는 바람이 들 만큼 너무 소략한 대목이 많다. 이순신이 ‘칼의 노래’라면 안중근은 ‘총의 노래’인데 권총 한 자루로 시대의 폭압에 맞선 안중근의 내면에 작가가 충분히 다가가지 못했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난 다시 ‘작가의 말'로 돌아가서 그 말들을 음미한다. 오늘과 다르지 않은 약육강식의 시대, 큰 것이 작은 것을 무한히 삼키던,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한 그 시대에, 무직의 포수 안중근은 권총 한 자루로 그 시대 전부와 맞섰다. 그에겐 권총 한 자루와 총알 몇 개 밖에 없었지만, 그는 그것으로 온몸으로 시대와 부딪혔고, 그 총알은 동양평화를 위협하는 제국주의의 상징, 이토의 심장을 관통했다.
동양 전체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조선 또한 곧 일본에 병합되는 것이 당연시되던 1909년, 한 자루의 권총을 지닌 청년이 그 거대한 세계에 홀로 맞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의 총은 불꽃이었다. 청년의 패기와 시대의 정의로움을 표상하는 불꽃. 작가의 말대로 그의 '총'은 오늘날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ps. 광복절에 읽은 뜻깊은 소설이다. 블라디보스톡과 장춘은 가봤는데, 하얼빈에도 꼭 가봐야겠다.
ps. 이문열 작가의 '불멸'도 안중근 이야기라 한다. 싫어하는 작가지만 한 번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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