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펼쳐든다. 재미로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보는 건 어릴 때 일이고,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공부하거나 논문 쓸 때, 내용을 다시 정확히 확인하려고 자료를 다시 찾을 뿐. 하지만 가끔은 예전에 그 책을 읽었을 때의 신선한 느낌을 다시금 맛보고 싶어서 책장을 펼칠 때가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그날 그랬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때는 2004년, 갓 서른을 통과할 때다(블로그에 리뷰가 있어서 앎). 아직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움츠러들기 전이다. 그 시기에 이 소설은 주인공이 온갖 모험을 겪으며 자기만의 고유한 다르마를 찾아가는, 삶의 '지도'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그 지도는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언제부터인가 삶에서 더 나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점점 버겁다. 모험과 미지에 대한 동경은 점차 사라지고, 일상의 의무와 짐, 이루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좌절감이 중년의 시간을 차곡차곡 메워간다. 그런 한 주말에 이 책을 펼쳐들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낭만'이, 더 정확히는 그 시절의 내가 문득 그리워져서. 십여 년 만에 책장을 펼치며 이제 이런 내용은 시시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결론은 시시하진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한 장면이 마음에 꽂혔다.
이집트의 보물을 찾아 고향을 떠난 주인공 산티아고는 드디어 피라미드가 가까이 왔을 때, 탕헤르의 시장에서 아름다운 단검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것에 잠깐 눈길을 주는 순간, 여비를 포함하여 가진 모든 것을 도둑에게 잃고 시장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다. 울음이 터져나오고 절망이 엄습한다. 하지만 산티아고가 이것이 자기 삶의 이야기의 최종 결말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는 절망을 털어낸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응시할 힘을 되찾는다.
산티아고는 텅 빈 시장을 다시 한번 바라본 후, 조금 전 느꼈던 절망을 털어냈다. 이곳은 더이상 낯선 곳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였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야말로 그가 원하던 일이었다. 그는 진정 새로운 세상을 알고 싶어했다. 아직 피라미드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다른 어떤 양치기보다도 먼 곳까지 와 있었다.
새로운 세계는 텅 빈 시장의 모습을 하고 그의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광장이 삶의 활기로 가득차 있던 순간을 이미 보았고, 그 살아 숨쉬던 광경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었다. 그난 단검을 떠올렸다. 잠시 바라보기만 하는 데에도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것은 그가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야.'
혼곤한 잠 속에 빠져들면서 그는 생각했다. pp70-71
산티아고는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일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일까? 그리고 우리는, 더이상 싱싱하지도 않고 여기저기 탈이 나기 시작한 불완전한 육체로, 여전히 부족한 경제적 기반으로, 직장을 언제까지 다닐지 불안감을 갖고, 젊을 때와는 또다른 막막함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인가,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인가.
나는 후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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