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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408

늦게 피는 꽃 여름내 베란다를 환히 밝혀주던 봉숭아들이 지는 계절, 꽃은 예전에 지고 이제 잎도 다 떨어져 한 해 살이를 마감하는 이때, 뒤늦게 맡둥 근처 작은 가지에서 하얀 꽃이 피었다. ‘어머나! 넌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이제 가을인데, 날도 쌀쌀한데..’ 하얀 꽃은 말없이 햇살 아래 그저 수줍게 눈인사만 한다. 여름 다 보내고 이제서야 찾아온 꽃, 늦게 피는 꽃을 보고 자연은 이토록 넉넉하고 너그럽구나 했다. 이 녀석에겐 지금이 자신의 때다. 나는 왜 안 피냐고 주위와 비교하는 분이 있다면 이 자연의 넉넉함을 기억하시길. 한참 늦게 피는 꽃도 있다는 것을. 2023. 10. 5.
밀크티가 있는 아침 행복엔 많은 게 필요치 않다고 철학자들이 말하지만, 살다보면 부족한 것과 필요한 것 투성이다. 꼭 물질적 욕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재능이나 마음의 평화 등 정신적으로 아쉬운 게 더 많을 때도 많다. 어찌보면 24시간 인간은 온갖 결핍들을 껴안고 산다. 삶이란 게 그 결핍을 다 메울 수 없는 것임을 이성적으로는 잘 알지만,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에서 그렇게 탐진치를 경계한 게 아닌가 싶다. 가끔 사소한 물건 하나가 단순함의 미덕을 상기시켜준다. 내겐 휴일날 소박한 아침식사가 대개 그런 역할을 한다. 휴일 아침에 갓 구운 고소한 프렌치토스트 한 조각, 그리고 진한 밀크티... 책장이 술술 넘어가면서 지적 자극 가득한 책. 이 정도면 모든 게 다 갖추어진 것 같다. 커피 끊기 위해 사둔 '트위닝.. 2023. 10. 3.
기다림의 선물 아침에 깜짝 놀랐다. 빨래를 걷으려고 베란다 창문을 열다가 알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손님이 오셨음을. 올해는 못 볼 줄 알았는데... 교실에서 키우던 화분을 집으로 옮겨온 게 8월 어느 날이었다. 그 후 나팔꽃 덩굴손이 베란다 벽에 설치한 줄을 따라 천장까지 올라갔지만, 잎만 무성하고 꽃 소식은 없었다. 모든 건 때가 되어야 하나보다. 여름 다 지나고 가을의 초입에 첫인사를 한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이 작은 꽃이 선물하는 생명의 기운에 난 잠시 몸을 떨며 감탄했다. 자연은 날마다 새롭지만 아파트에선 그 꿈틀거림을 느낄 수 없다. 샷시 때문인지 비가 와도 빗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우리 집은 19층 꼭지층이어서 먼 산과 하늘이 내다보이고 그 풍경으로 만족하지만, 소리와 냄새, 촉감은 느낄 .. 2023. 10. 2.
정지아 작가와의 만남 국어교사모임 등으로부터 작가와의 만남, 행사 문자가 가끔 오지만 저녁 시간이 피곤해 잘 가지 않았다. 이번엔 일부러 챙겨갔는데 정지아 작가였기 때문.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작가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더더욱. '아버지의 해방일지' 관련 사담은 유시민의 알릴레오 내용과 겹쳐서 가볍게 들었는데, 그밖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내용이 많았다. 말과 글이 달라서 작가들이 중언부언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분은 이야기를 정말 잘하셨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논리정연하게 전달하셔서 놀랐다. 계속 안 팔리는 작가이다가 60세에 떠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고 하셔서 다들 웃음..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MZ 세대에게 히트친 건 나는 작품의 힘 때문이라 생각한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매우 높기에.. 2023. 9. 22.
가까운 숲을 걷다 콘크리트 숲을 벗어나 진짜 숲에 들어서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로 20분을 달려온 L은 덕원고 옆 개울 앞에서 멈춰섰다. 욱수골에서 발원해 아파트 사이를 가로질러 금호강으로 흘러가는 욱수천이다. 전날 내린 비로 수량이 많아져서 물소리가 세찼다. 개울 양편으로는 그리 높지 않은 산등성이가 길게 이어졌다. L은 개울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깐 주위를 둘러보더니 징검다리를 건너서 덕원고 뒤편에 있는 비탈진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은 쾌청했고 오후의 그늘이 산에 드리워져 있었다. L의 눈동자에도 하얀 모니터 화면 대신에 산이 걸렸다. ‘눈이 다 시원하네.’ 숲속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가자 L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후각을 온통 사로잡는 흙 냄새였다. 그 냄새가 너무 강렬해서 L은 깜짝 .. 2023. 9. 19.
약령시의 근대건축물, 교남 YMCA에서 1. 대구 중심가 반월당 현대백화점 뒤에는 30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약령시가 있다. 대구 역령시가 번창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대구가 경상감영 소재지일 뿐 아니라 낙동강과 금호강에 접해 있어 약재 수송에 매우 유리했다 한다. 인접한 군현에 한약재의 명산지가 많았고, 대동법 실시 이후 원칙적으로 약재는 시장을 통해서만 조달해야 한 점도 이유의 하나라고 한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대구 역령시는 효종 연간에 생겨서 300년간 번창하였다 내 어릴 적 약령시는 진짜 한약방만 잔뜩 늘어선 거리였다. 길을 걸으면 한약 냄새가 자욱했다. 지금 이곳은 시내 중심가라 레스토랑과 카페, 가게가 더 많다. 염매시장 자리에 현대백화점이 들어선 이후 그 변화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젠 거리의 한약방은 명맥만 남.. 2023. 9. 17.
푸른 가을날, 저 나무처럼 [벌써 8년이네..] [7년 아니야?] [내년 1월이면 8년째지.] 그랬다.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다. 나는 사십대를 아주 혹독하게 시작했는데 바로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다. 첫 삼 년은 너무 힘들어서 시간이 어떻게 간 줄도 모르겠다. 결혼해서 새 삶에 적응하면서 어찌어찌 시간이 간 걸 게다. 아빠의 부재는 그래도 여전히 부재 그대로 남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 시간을 그래도 넘어간 것 같다. 형제가 추석 연휴에 외국에 간다고 해서 군위 가톨릭 묘원에 일찍 다녀왔다. 가을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돌아보면 수많은 죽음의 흔적이 침묵 속에 현존하는 곳. 이곳이 조금 위안이 되는 까닭은 아름답게 가꾼 주변 환경 덕도 있지만 죽음이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는 평범한 깨달음을 전해주어.. 2023. 9. 12.
아동보호기관이 이 지경이라니.. 오늘에야 알았다. 최근 생을 마감하신 대전 초등 선생님을 고소한 단체가 세이브더칠드0이라니.. 아동보호는커녕 학폭 가해자를 돕는 꼴이다. 세이브도칠드0, 굿네이버0, 초록우0 .. 모두 학교 창체활동에 들어와 편지 쓰기, 모자 뜨기 등을 많이 하는 곳인데 이런 단체인 줄도 모르고 얼마나 많은 쌤들이 협조했는지 .. 기막힌 현실이다. ## 그 뒤로도 10개월간 A씨는 혼자서 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아동학대 조사 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 결과 '정서학대'로 판단해 사건이 경찰서로 넘어가고,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 조사를 받은 뒤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아동학대 조사 기관은 교육 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며 조사 기관의 문제점도 지적했습.. 2023. 9. 10.
코코넛밀크 그만 먹어야겠네 가끔 기분 전환으로 태국산 미스터초이스 코코넛밀크 주문해 먹었는데 이젠 다시는 못 먹을 듯. 원숭이 강제노동이라니.. ㅠㅠㅠ https://v.daum.net/v/20230910175036556 “우유 대신 많이 마셨는데” ‘이 나라’ 코코넛 먹지 마세요 [지구, 뭐래?][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코코넛 우유 좋아했는데, 송곳니 뽑힌 원숭이가 딴 코코넛일 줄이야…” 아몬드,오트밀, 코코넛 등 식물성 대체 우유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우윳값 인상이나 유당v.daum.net 2023. 9. 10.
뜨거웠던 여름이 간다 올 여름은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보통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잠깐 트는데 올해는 하루 종일 에어컨을 튼 날이 2주는 되는 것 같다.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너무 더워 어디 갈 엄두조차 안 났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스노클링 하러 바다를 다녔는데.. 올해는 집에서만, 동네만 왔다갔다 보낸 여름이다. 계절만 뜨거운 게 아니었다. 뜨거운 아스팔트를 더 뜨거운 분노의 목소리로 채운 선생님들. 방학하는 날 쯤 벌어진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로 방학 내내 주말에 집회가 열렸고 그 수는 회를 거듭할수록 늘어서 어제는 20~30만의 선생님들이 국회 앞을 가득 채웠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주축이 된 행사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초등쌤들이 가장 능력 있고 사명감 있는 집단이라 생각한다. 내가 가르쳐본.. 2023. 9. 3.
오래된 것이 주는 편안함 아주 오랜만에 성김대건 성당에 갔다. 대학생 때는 매일 가서 살다시피 한 곳인데 떠난 지 벌써 이십 년이 넘어간다. 건물은 세월의 흔적이 좀 묻어야 기품이 생기나보다. 대건성당은 처음 세워졌을 땐 커다란 콘크리트가 덩그러니, 그리 멋스러운 공간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젠 주변 숲과 나무가 우거지고, 건물도 시간의 손길을 머금어서 예전보다 더 조화로운 분위기다. 어릴 때 자란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여기가 거긴가 싶을 때가 많다. 한 해 다르게 빌딩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생기고.. 특히 수성구 범어동과 만촌동 일대는 그 변화가 너무 심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속에서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건 이제 학교와 종교 건축물 뿐인 것 같다. 성당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모습 보니 반갑고.. 2023. 8. 29.
막걸리는 와인 잔이지 긴긴 여름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오늘이 처서. 가을의 문턱이다. 저녁엔 살짝 시원한 바람이 불지만 대기는 여전히 열기가 있다. 1994년과 2018년 더위가 기록적이었는데 올해가 더 더운 것 같다. 더워서 아무데도 떠나지 않은 여름은 올해가 유일하다. 에어컨 틀고 종일 집에 있는 게 피서가 되었다. 자주 갔던 포항 오도리도 올 여름엔 엄두가 안 났다. 지구 열대화,,란 말이 실감이 났다. 입맛 없는 계절이라 방학 동안 볶음요리를 많이 했다. 김밥도 가끔 말아먹었고. 맥주와 막걸리도 올 여름에 젤 많이 마신 듯하다. 숨막히는 더위가 끼니 때마다 캔을 뜯게 만들었다. 맥주건 막걸리건 난 다 와인 잔에 마신다. 모양도 맛도 젤 살아나는 공식. 특히 막걸리는 와인 잔과 잘 어울린다. 와인 잔에 막걸리를 따르.. 2023. 8. 23.
유튜브 수익 정확하게 예측하는 법 (구독자 천 명) 혹시나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을까 해서 올려본다. 내 경우 진짜 시간 날 때만 영상을 올리는 편이라 어떨 땐 3달씩 안 올리기도 하고 들쭉날쭉. 아무튼 항간에 조회 수 1에 1원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이 많은데, 그 말이 맞다. 조회 1번에 1원 정도다. 더 정확히는 조회 수 1에 0.001달러. 내 경우 지난 한 달 조회수가 14000회, 그리고 예상 수익이 14불. 지난 달도 얼추 비슷하다. 다른 활동 없이 광고 수익만으로는 이 정도. (공무원은 수퍼챗, 판매 등 다른 홛동은 당연히 안 됨) 그러므로 유튜브 수익은 생각보다 매우매우 적다. 한 달에 십만 원 나오는 분은 조회 수가 십만이고 한 달에 백만 원 나오는 분은 조회 수가 백만이라 생각하면 된다. 천만 원인 분은 조회 수가 천만일 수도 있고, 그밖에.. 2023. 8. 18.
두 개의 풍경 영화를 보러 시내에 간 날, 지하철 반월당역에서 낯설고 기이한 풍경과 마주쳤다. 문재인 구속, 주사파 척결, 미군철수 결사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자유통일 이룩.. 이 다섯 가지 의견이 왜 하나로 엮이는 지도 의문이지만 내게 이런 풍경은 마치 타임슬립 같다. 2023년을 살다가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1950년대에 도달한 그런 느낌이랄까. 어쩌면 이분들은 정신적으로 그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그 시대에 고착된 분들. 극장에서 영화 '살바도르 달리'를 보고 나오니 저녁 6시 반, 아직 어둠이 깔리기 전이었다. 웬 일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집에서 나올 때와 달리 날씨가 쾌적해졌다. 시내 한 바퀴 걷고 집에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무심히 걷다가 2.28공원에 닿으니 시국미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2023. 8. 15.
고산스마트도서관 신매시장 옆엔 내 단골 고산도서관이 있다. 그런데 알파시티에 새로운 곳이 생겼으니 이름하여 고산스마트도서관. 이거 의외로 편리하다. 밤에 산책하다가 자판기 음료를 뽑듯이 기계에서 책을 대출하는 시스템. 대출증은 핸드폰 모바일 대출증으로도 된다. 대출증 인증 되면 서가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내가 빼낸 책이 자동으로 대출 목록에 올라간다. 신간 위주로 있어서 의외로 괜찮은 책도 많다. 또 안은 무지 시원하고. 고산스마트도서관이 이 더운 여름날 밤산책의 좋은 동행이 되어주고 있다. 매호천 따라 여기까지 걸어가면 딱 왕복 1시간이다. **고산스마트도서관은 수성구 알파시티, SW융합테크비즈센터 건물 바로 앞에 있습니다. 2023.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