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성김대건 성당에 갔다.
대학생 때는 매일 가서 살다시피 한 곳인데
떠난 지 벌써 이십 년이 넘어간다.
건물은 세월의 흔적이 좀 묻어야 기품이 생기나보다.
대건성당은 처음 세워졌을 땐 커다란 콘크리트가 덩그러니,
그리 멋스러운 공간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젠 주변 숲과 나무가 우거지고, 건물도 시간의 손길을 머금어서
예전보다 더 조화로운 분위기다.
어릴 때 자란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지만
여기가 거긴가 싶을 때가 많다.
한 해 다르게 빌딩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생기고..
특히 수성구 범어동과 만촌동 일대는 그 변화가 너무 심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속에서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건
이제 학교와 종교 건축물 뿐인 것 같다.
성당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모습 보니 반갑고 편안하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것으로 이어서 생각하는 힘이 생긴다.
옛 모습 그대로의 성당을 보며 안도감을 느낀 이유는
나의 추억이 든든한 근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리라.
이런 사물은 불필요한 자극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해주며,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시간이, 우리 삶의 경험이 조각조각 나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관된 흐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건 이런 사물들이다.
늘 새로운 이슈가 스쳐 지나가는 스마트폰을 볼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변함 없는 사물들이 곁에 많다면
삶이 훨씬 단단하고 건강해질 것 같다.
한국 사람들에게 특히 결핍된 것도 이런 종류의 사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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