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년이네..]
[7년 아니야?]
[내년 1월이면 8년째지.]
그랬다.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다.
나는 사십대를 아주 혹독하게 시작했는데
바로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다.
첫 삼 년은 너무 힘들어서 시간이 어떻게 간 줄도 모르겠다.
결혼해서 새 삶에 적응하면서 어찌어찌 시간이 간 걸 게다.
아빠의 부재는 그래도 여전히 부재 그대로 남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 시간을 그래도 넘어간 것 같다.
형제가 추석 연휴에 외국에 간다고 해서
군위 가톨릭 묘원에 일찍 다녀왔다.
가을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돌아보면 수많은 죽음의 흔적이
침묵 속에 현존하는 곳.
이곳이 조금 위안이 되는 까닭은
아름답게 가꾼 주변 환경 덕도 있지만
죽음이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라는
평범한 깨달음을 전해주어서이다.
백 년 넘은 소나무 한 그루가 드리워준
시원하고 커다란 그늘 아래에서 잠깐 시간을 보냈다.
한 그루 나무가 드리워준 그 큰 그늘,
뙤약볕이 내리쬐어 휴식이 필요할 땐 그 그늘의 시원함이 느껴지지만
그저 앞을 향해 달려갈 때면 보이지 않는 곳이다.
나무처럼 그 자리에 굳건하게
결코 쓰러지지 않을 만큼 강인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이제 저물어간다.
45년생과 50년생, 해방과 6.25 때 태어나신 분들이다.
돌아보면 그 세대는 참으로 강인한 세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 다수의 정치 성향은 안타까움이 매우 많지만
언론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빠는 그렇게 꽉 막힌 분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일찍 가시다니.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마냥 좋은 시대로 여기지도 않았고.
초등 동창회에서 나도 나름의 정치적 자유가 있다며
어느 꼴통 분의 공격을 받아 열 받아 대판 싸우기도 하셨다.
70년대 중반 생인 우리 세대는 20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을까.
형제는 새로 산 고가의 포르쉐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왔지만
나는 한 그루 나무가 주는 그늘이 다만 위대해 보인다.
오래된 나무가 크고 넓은 그늘을 주듯이
나이 들수록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무가, 젊음의 힘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
그런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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