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우수리스크를 떠난 시베리아횡단열차는 9시간을 달려 다음 날 하바롭스크에 닿았습니다.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며 먼저 눈에 띈 것은 도심공원이었어요. 하바롭스크는 블라디보스톡과 마찬가지로 다소 퇴락한 느낌이었지만 곳곳에 푸른 숲이 있어 낡았으면서도 우아하고 기품 있는 도시였어요.
아무르강으로 가기 위해 지도를 보니 숙소 인근에서 아무르강변까지도 ‘가로수길’이라는 드넓은 공원이 있었습니다.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공원 숲을 통과하며 구소련의 영광을 짐작했어요. 도심 한가운데 이런 대규모의 공원이 자리할 수 있었던 건 사회주의 계획도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우리는 중간에 공원을 빠져나와 레닌광장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레닌광장에서 아무르강변에서 가까운 콤소몰 광장까지는 동유럽 분위기의 고풍스런 건물이 차지하고 있어요. 하바롭스크는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에 앞서 개척한 곳이고 그래서 유럽적인 색채가 더 짙었습니다.
아무르강변 일대도 잘 가꾸어진 공원이 이어집니다. 우초스전망대에 서서 드넓은 아무르강의 물결을 바라보니 이상하게도 가슴이 뜁니다. 광활한 시베리아의 자연을 마주해서일까요. 아무르강은 몽골의 오논강에서 발원해 시작해 동으로 흐르며 시베리아를 지나 오호츠크해로 흘러나갑니다. 사천 킬로미터가 넘는, 세계에서 8번째로 긴 강이죠. 생태계의 보고일 뿐 아니라 강줄기를 따라 신석기시대부터 수많은 유적이 출토되어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한 강이라고 해요.
하바롭스크는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어 여기서 보는 아무르강은 바다처럼 광대합니다. 강이 워낙 넓어 강 건너편 남쪽은 어슴푸레 시야에 들어왔어요. 그곳은 중국 영토예요. 중국에서는 이 강을 검은 용이 꿈틀거린다고 해서 ‘흑룡강’이라 부르지요. 아무르강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 경계선을 따라 흐르는 강이기도 합니다.
현재 중국령인 아무르강 이남 지역은 한때 고조선의 영토였으나 아무르강 북쪽 하바롭스크 일대는 우리가 한 번도 차지한 적이 없었어요(최근 논문에 의하면 발해가 아무르강 중류와 상류까지 진출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해요). 땅을 차지하고 말고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에요. 더 중요한 것은 왜 우리는 대륙을 넘나보지 못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곳으로 시선조차 돌리지 못했을까요. 관심조차 없었을까요. 아무르강에 와서 우리의 상상력과 호기심이 얼마나 왜소했나 생각하게 됩니다.
반면에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는 17세기부터 극동 지역에 눈독을 들여요. 하바롭스크역 앞에는 탐험가 ‘하바로프’의 동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하바롭스크라는 지명은 이 하바로프에서 따온 것이죠. 하바로프 일행은 아무르강은 물론 시베리아 구석구석을 강줄기를 따라 올라가며 탐사하고 캄차카 일대까지 갑니다. 당시 하바로프의 탐험 경로는 하바롭스크 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어요. 이 박물관은 영어 설명이 없지만 꼭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하바로프 시대로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당시 생활에 쓰이던 거의 모든 것을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전시해 놓아 하바롭스크의 생활사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이에요.
러시아는 이 지역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청의 세력이 강성할 동안에는 이곳을 넘보지 못해요. 하바로프가 1651년 하바롭스크에 요새를 건설한 이후 영토 분쟁을 하다가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으로 이 지역은 청의 영토로 공인되지요. 하지만 청나라가 1859년 아편전쟁으로 힘을 잃자 이때다 하고 냉큼 러시아령으로 만듭니다. 그때 청나라를 위협하여 아이훈 조약으로 이 땅의 영유권을 얻은 이가 무르비요프 아무르스키입니다. 그때부터 하바롭스크는 러시아의 도시로 개발되죠. 하바로프가 길을 열고 아무르스키가 정리할 때까지 결국 이백 년 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최종 승자는 러시아였고, 그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러시아가 여기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무르강의 우초스 전망대 부근, 작은 언덕에는 아무르스키 백작의 동상이 있어요. 러시아에서 인상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개성 있는 동상이에요. 각각의 인물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얼굴도 표정도 생동감이 있습니다. 동상만 잘 살펴봐도 그 도시의 역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긴 칼을 차고 팔짱을 낀 채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아무르스키 동상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의미심장하게도 강 건너편 중국 땅이었어요. 그는 이 땅을 점유한 공로로 백작이 되어 이후 아무르스키 백작이라고 불리죠. 아무르강 중간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 섬도 반으로 나뉘어 있어요(원래는 두 개의 섬이었는데 흙이 쌓이며 점점 붙었다 해요). 절반은 러시아령, 절반은 중국령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이처럼 오랜 각축을 벌이는 동안 왜 우리는 이곳을 몰랐을까요. 시선조차 돌리지 못했을까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이 있었던 고려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후 조선의 지배층은 감히 대륙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고대보다 시야가 더 왜소해진 셈이죠. 이곳이 다시 우리 역사의 주요 무대로 등장한 건 국권상실기에 와서입니다.
먼저 하바롭스크 역사박물관에서 두 명의 한국인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어요. 독립운동가로 비범한 행보를 보였던 김알렉산드라와 하바롭스크 인근에 부대를 두고 무장투쟁을 벌였던 88국제여단의 김일성이에요. 조선인 최초의 공산주의자이자 하바롭스크 외교위원이었던 김알렉산드라는 이동휘 선생 등과 함께 1918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조직합니다. 볼셰비키 측이 한인들이 러시아혁명에 참가하면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겠다고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몇 달 후 하바롭스크가 백군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김알렉산드라는 체포되어 순국합니다.
하바롭스크에서 활동하다 유명을 달리한 독립운동가 중에 ‘낙동강’의 저자 조명희 선생도 있어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일찍이 러시아로 망명한 조명희 선생은 우수리스크 사범학교를 거쳐 하바롭스크 대학에서 가르쳤는데 일본 첩자로 오인되어 1938년 소비에트정부로부터 총살당하고 맙니다. 이후 1950년대에 복권되죠.
일몰 시간이 가까워지자 우초스전망대 부근으로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운 좋게도 하바롭스크에 도착한 첫날, 아무르강의 장엄한 일몰을 보았습니다. 새하얗게 빛나는 우초스전망대는 김알렉산드라가 총살로 순국한 자리이기도 해요. 그녀의 시신은 강에 버려집니다. 아무르강을 붉게 물들인 시베리아의 태양이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지기까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아무르강은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그것을 넘어서는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었어요.
연암 박지원 선생은 ‘열하일기’에서 처음 중국 땅에 와서 동서남북 탁 트인 광야에 발을 디딘 소회를 이렇게 표현해요. 불혹을 넘긴 그가 그 여행의 기쁨을 어린 아기가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것과 같다고, 아기가 기쁨에 겨워 ‘한바탕 울 만한 자리’라고 감격에 겨워 외치죠. 블라디보스톡에서 아무르강에 이르는 이 여정이 제겐 그와 비슷했습니다. 답답한 가슴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죠.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가려진 민족사에 대한 지평이 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러시아가 이백 년 이상 공을 들인 도시이자 우리 독립투쟁사의 한 장을 차지하는 하바롭스크는 세계사에 대한 우리 생각과 시선의 한계를 일깨워주는 땅이었어요. 아무르강변의 아무르스키 동상은 오늘도 여전히 중국 땅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아무르강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주고 있었습니다.
*2018/7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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