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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러시아

연해주와 제2차 세계대전 /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롭스크에서

by 릴라~ 2019. 2. 27.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준비하며 몇몇 가이드북을 보았습니다. 볼거리로 꼭 등장하는 곳이 블라디보스톡의 '잠수함 박물관'이었어요. 검고 둥그스런 물체가 있는 사진을 보면 별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방문 장소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린이들이나 보러 가는 장소겠거니 했어요. 

 

바닷가를 따라 산책을 하며 걷다가 해양공원에 있는 잠수함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일단 그 길이에 깜짝 놀랐습니다. 잠수함이 이렇게 클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안을 들여다보기로 했죠. 안은 더욱 놀라웠습니다. 입구 쪽은 당시 관련 사진과 여러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고, 그 다음 칸부터는 잠수함의 실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각종 기계며 장병들의 침대, 당시 잠수함에 실려 있었던 미사일까지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어요.

 

러시아의 기술력에 놀랐습니다. 당시 이 정도 군사력을 갖고 있었다면 어떤 나라도 러시아를 상대하기란 어려울 듯 했어요. 2차대전 때 이 러시아와 붙은 나라가 일본이었죠. 당시 일본의 국력이 얼마나 강성했던가도 새삼 놀라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러시아에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세계 제2차대전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였어요.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연해주 일대의 세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 각각의 도시의 가장 중심가에는 항상 "1914~1945"라는 커다란 표석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을 추모하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과 함께 그 뒤로 전사자들의 명단이 모두 새겨진 거대한 벽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2차 세계대전 하면 제 머릿속에는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선이 우선 떠오르는데, 이 극동 전선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구나 했습니다. 

 

하바롭스크에는 '전쟁기념관'이 있어 당시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알게 되었어요. 기념관에는 이 전장을 책임졌던 네 명의 주요 장군들에 관한 각종 자료 및 수많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쟁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밀고 밀리는 싸움을 화살표로 보여주는 지도는 이 일대가 모두 전장이었음을 알게 했죠. 러시아 장교들의 사진 중에서 '김'이라는 성을 가진 한 명의 동양인도 발견했는데요(러시아 말로 표기되어 있어 이름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 한국인 같았습니다. 나중에 키릴 문자 발음을 맞춰가며 누군지 찾아보았지만 알 수 없는 인물이었죠. 

 

하바롭스크에는 전쟁기념관을 포함하여 세 개의 박물관이 있습니다. 자연사 박물관과 하바롭스크 역사 박물관인데요. 특히 역사박물관은 일상에 쓰는 생필품 하나하나까지 다 전시해 놓아서 마치 그 시대로 들어가는 착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자료가 정말 다채로웠죠. 극동 지역에서 본 박물관 중 가장 인상적인 장소입니다. 역사 박물관에 있는 주요 인물들의 사진 속에는 두 명의 한국인도 있습니다. 김알렉산드라와 김일성이었지요. 

 

현재의 러시아가 어떤 상황인지는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는 모습, 하바롭스크 역사 박물관의 수준을 보노라면 그들의 역사 의식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그들의 과거를 그런 방식으로 기억하는 한 그들 자신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러시아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2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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