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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기록/인도, 네팔20

[인도] 바라나시 바라나시엔 우리를 무장해제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의 고정관념, 편견, 각종 경계들을 사뿐히 무너뜨리는... 선과 악, 옳고 그름, 세상의 질서, 이 모든 것들이 혼돈에 빠져버리는 도시. 무겁게 내려깔린 안개, 독특한 질감의 공기, 불안 속에 깃든 편안함... 무언가가 우리 마음을 누르는, 동시에 뭔가가 우리 마음에서 스르르 풀려나가는 곳... 악령에 홀린 듯 짖어대는 개들, 시체 타는 연기, 당혹스런 눈빛의 여행자들, 무심한 현지인들, 체념으로 단단히 굳은 얼굴들... 그 물에서 씻고 양치질하는 하층민들, 사람, 차, 오토바이, 자전거, 릭샤, 소가 한 데 뒤엉켜 달리는 차로, 이 모든 것들이 모자이크처럼 엉켜 있는 도시, 바라나시. 바라나시엔 두 번째다. 8년 전에 비하면 가트(강가 계단)길이 많이.. 2008. 5. 20.
[네팔] 길을 걷는 것이 행복이다 - Annapurna Sanctuary 13 도반에서 여섯 번째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오전 시누아를 지나 촘롱까지 내려왔다. 이제 설산은 저 계곡 사이로 사라지고, 마을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약 이천미터 가량 내려와서인지 날씨도 따뜻해졌고, 저 높은 곳에서 보냈던 시간은 꿈결처럼 느껴졌다. 눈길 속을 힘들게 올라갈 때는, 하산할 때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내려오고 보니, 산속에 있었던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구나 했다. 촘롱에서 다시 마지막 밤을 보낼 지누단다까지 하산했다. 청년 한 명은 이렇게 내려가기가 너무 아쉽다고 발길을 돌려 산에서 하루 더 묵는 다른 길로 간다고 했다. 지누단다에는 작은 즐거움이 있었다. 산행의 피로를 단숨에 풀어줄 노천 온천. 세 개의 탕 중에서 제일 안쪽에 위치한 탕은 물 온도가 아마 40도 쯤 되었던 것 같다... 2008. 4. 21.
[네팔] 하산길, 설산을 뒤로 하고 - Annapurna Sanctuary 12 일어나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아침을 먹는데 다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한다. 이곳을 목표로 걸어왔는데 두통 때문에 아름다움을 즐길 겨를이 없었다. 식사를 끝마치자마자 모두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날씨가 좋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정신 없이 두 시간여 내려오니 두통이 씻은 듯이 없어졌다. 그제서야 우리 모두는 한숨 돌리고 베이스캠프를, 그곳에서 보았던 거친 산세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4130m에서는 숨쉬기가 힘들었다. 고소 증세와 두통으로 오래 머물 수 없는 곳...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잠깐 다녀갈 뿐이지만, 산은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한 인간이 체험하는 시간의 범위 안에서는 아마 영원히... 내려 오자 가슴 답답증도 사라진다. 심호흡을 했다. 생명이 살지 않는 곳에서 .. 2008. 4. 20.
[네팔] 베이스캠프에서, 산 그리고 나 - Annapurna Sanctuary 11 오후 내내 눈보라 속에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 끝에 저물녘, 우리는 드디어 ABC에 도착했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 다섯째 날이 되는 저녁이었다. 그런데 나를 감격케 한 것은, 도착했다는 그 사실이 아니라 저녁 식사 메뉴였다. 롯지의 네팔 청년이 웃으면서 '비빔밥'이 있다고 했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정말 비빔밥이 있었다. 포카라에서 듣기를 봄은 유럽 시즌이고 겨울은 한국 시즌이란다. (최성수기는 가을이다.) 겨울에 네팔을 찾는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한국인이라서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휴대용 즉석 비빔밥이 있었던 것. 지리산의 세석이나 장터목 대피소에서도 판매하는 것이지만 맛 없다고 한 번도 사먹은 적이 없는데, ABC에서 먹는 비빔밥과 된장 국물은 정말 구세주였다. 입맛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2008. 4. 20.
[네팔] 마차푸차레! 아, 마차푸차레! - Annapurna Sanctuary 10 고소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없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곳에는 믿을 수 없는 황홀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눈보라가 갑자기 물러나면서 마차푸차레가 그 장엄한 얼굴을 드러낸 것. 해질녘 푸른 하늘 아래 빛나는 설산 마차푸차레... 마치 신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앞서가던 이들을 소리쳐 불렀다. 묵묵히 앞만 바라보며 걷던 이들도 마차푸차레를 보고 풀쩍풀쩍 뛰며 기뻐한다. 우리 앞에서는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쳤지만 우리 뒤로는 다른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사진기를 꺼내는 동안 날씨는 점점 맑아졌다. 그간의 걱정과 두려움이 눈녹듯 사라지고 우리는 환희에 차서 베이스캠프를 향해 마지막 걸음을 내딛었다. *마차푸차레는 6993.. 2008. 4. 17.
[네팔] 눈보라 속에서 베이스캠프를 향하여 - Annapurna Sanctuary 9 3700m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서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까지 두 시간 반 걸리는 길은 (우리는 세 시간 넘게 걸었으나) 트레킹 코스의 하일라이트라 할 만했다. 어쩌면 이 몇 시간의 경치를 보기 위해서 일주일씩 걸어서 이곳에 당도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이곳의 풍광은 압도적이었다. 히말라야가 아니면 그 어떤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스케일. 눈보라 때문에 주위는 온통 희뿌연 안개 속이었으나 바람이 휙 몰아칠 때마다 나타나곤 하던 눈덮힌 황량한 벌판의 모습에 나는 몸을 떨었다. 여기에는 아무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 동물도, 식물도, 사람도 없다. 오직 눈과 비, 바람과 별빛만이 닿을 수 있는 곳. 그래서 인간의 땅이 아니라 신의 땅. 길은 완만한 경사였지만 고소 때문에 한 발짝 떼.. 2008. 4. 11.
[네팔] 사람을 짐승처럼 부리는 게 괜찮으면 - Annapurna Sanctuary 8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롯지 지붕 위로 눈이 두텁게 쌓여 있다. 함께 묵었던 일행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출발했다. 길을 갈수록 숲은 자취를 감추고 삐죽삐죽한 바위산이 우리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골짜기 뒤에서 구름이 우리를 향해 점점 다가온다 했더니 어느새 구름은 우리 걸음을 추월해 버렸다. 주위는 삽시간에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였고 눈 때문에 걸음은 두 배나 힘들어졌다. 맨몸으로 가도 이렇게 어려운데 배낭도 아니고 엄청난 짐을 머리에 매단 네팔인 포터도 있었다. 캠핑하는 사람들의 짐을 나르는 포터들이었다. 여행서 어디선가 본 구절이 생각났다. '사람을 짐승처럼 부리는 것이 괜찮으면 캠핑을 하라.' 이 모습을 보니 캠핑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가스통을 짊어진 네팔 소년도 몇 명 만났.. 2008. 4. 10.
[네팔] 새가 되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 Annapurna Sanctuary 7 촘롱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맞은 편 언덕 시누아까지 가는데 오전 내내 걸렸다. '렙상 삐리리 렙상 삐리리 우 데라 잠끼 다 라마 바썸 렙상 삐리리~~' 가이드가 민요를 흥얼거린다. 우리 나라의 아리랑처럼 유명한 산 노래란다. '새가 되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날아다니리....'라는 뜻이라는데, 노랫말이 내 마음과 꼭 같다. 날개가 있다면 저 건너편 언덕으로 훌쩍 날아갈텐데, 우리는 가파른 절벽을 내려와서 강을 건너고, 내려온 만큼 또 한참을 올라가야 건너편 언덕에 닿을 수 있다. 이곳을 오르내리던 네팔 사람들도 새가 되고 싶었으리라. 까마득한 언덕길..... 히말라야에서는 5000미터까지는 모두 언덕이다. 6000미터가 넘어야 비로소 산으로 대접 받는다. 점심을 들기 위해 시누아의 롯지에 들어섰을 때.. 2008. 3. 22.
[네팔] 가도 가도 끝없는 길, 고레파니에서 촘롱 - Annapurna Sanctuary 6 고레파니에서 촘롱에 이르는 길, 두 개의 큰 강과 계곡을 건너고 이삼천미터 쯤 되는 경사면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인 줄 알았다면 하루 만에 걸을 엄두를 내진 못했으리라. 푼힐에서 내려와 짐을 챙겼다. 따뜻한 난로가 있는 고레파니를 떠나자니 아쉬운 마음이 일었지만, 일정이 촉박해 바로 길을 나섰다. 능선길에서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다시 만났다. 우리의 마지막 도착지는 저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 사이의 베이스캠프. 그 관문격인 촘롱에 오늘 닿아야 한다. 숲길로 접어들자 간밤에 내린 눈으로 길은 얼어붙어 있다. 간간이 비치는 햇살에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길은 완전히 빙판이 되었다. 미끄러지기를 수 차례, 어렵게 눈길을 통과하자 깊은 정글이 펼쳐진다.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허파.. 2008. 3. 10.
[네팔] 푼힐, 구름 너머 안나푸르나 - Annapurna Sanctuary 5 새벽 다섯 시, 창밖을 바라보니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별빛이 쏟아진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번쩍이는 별들이었다. 해돋이를 볼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설렜다. 추위에 대비해 중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세상에, 간밤에 눈이 살짝 내렸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밟으며 푼힐을 향해 걸었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숨이 많이 찼다. 길을 가는 동안 구름과 안개는 점점 많아져서 3200m 푼힐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날은 밝아왔지만 산도 해도 볼 수 없었다. 날씨가 맑다면 이곳에서는 해가 떠올라 병풍처럼 죽 늘어선 설산을 하나하나 차례로 비추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겨울은 건기라서 대개 맑은 편인데 요즘 히말라야 날씨가 심상치 않다. 트레킹 하면서 눈을 밟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추워서.. 2008. 3. 9.
[네팔] 산을 믿는 사람들 - Annapurna Sanctuary 4 히말라야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혹시나 해서 차창을 돌아보니 그새 안개가 걷히고 달이 휘영청 빛나고 있었다. 달빛 아래로는 희고 푸른 기운을 내뿜는 설산이 고요히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검푸른 밤하늘 사이로 솟아오른 산의 기운이 너무 장대해서 마치 그가 잠들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네팔은 힌두교도가 많지만 티벳과 마주하고 있는 히말라야 일대는 대부분 불교도이다. 안나푸르나 인근 마을이 고향인 우리 가이드와 포터도 불교도였다. 옆에 앉은 드니스의 가이드에게 종교를 물어보았다. 종교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무엇을 믿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한다. “내가 믿는 것은 산이다. 보이지 않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것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나는 눈에 보이는 저 산을 믿는다. 자연을 믿는.. 2008. 3. 2.
[네팔] 여행과 현실 사이 - Annapurna Sanctuary 3 울레리에서 고레파니 가는 길. 가이드가 가장 쉬운 날이 될 거라고 말했는데, 그의 예상대로 네 시간 반이면 넉넉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고레파니'라는 입간판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이 뛴다. 7년 전 여기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병풍처럼 늘어선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보고 감격했었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 산이 바라다보이는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기대했던 풍광은 나타나지 않았다. 안개가 산 전체를 휘감아 버렸기 때문에. 숲과 계곡을 지나올 때는 조금씩 햇살이 비쳐서 기대를 좀 했는데 날씨는 쉬이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가이드가 선택한 롯지는 예전에 묵었던 바로 그 집. 전에는 이 집이 제일 높은 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위로 집이 한 채 더 들어섰다. 식당으로 들어가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난로를 보자 얼.. 2008. 2. 29.
[네팔] 침낭 때문에 하산을? - Annapurna Sanctuary 2 울레리에서 맞이한 첫새벽,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 때문에 잠에서 깼다. 밤공기가 워낙에 차갑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지 않고는 잠을 이루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깨까지 시린 것이 이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낭을 살펴보니 오리털이 아니라 그냥 솜 침낭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간밤에 피곤해서 바로 누웠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다. 포카라 현지에서 대여한 침낭이었다. 스스로 빌릴 수도 있지만 엄마가 염려스러워서 좋은 것을 빌리려고 일부러 여행사 매니저에게 대여를 부탁했었다. 내가 일일이 펴서 점검을 했어야 하는데, 한국 여행사라서 믿고 그러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예전에도 아무 문제없이 좋은 침낭을 빌렸던 터라 지금의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매니저가 우리를 속이고 오리털 대신 값싼 침낭을 빌린 것 같아서 화가 .. 2008. 2. 24.
[네팔] 다시, 안나푸르나에 서다 - Annapurna Sanctuary 1 "산이 거기 있기에 산에 오른다." 유명한 등반가 라인홀트 메쓰너의 말이다. 아마 당분간은 그 누구도 이보다 나은 대답을 들려주지는 못할 것 같다. 그 누가 산에 오르는 이유를 딱 집어 말할 수 있을까. 산이 그 깊은 존재감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말 밖에는. 그러니 우리는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르는 것이다. 큰 산은 저마다 특별한 혼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산에 사는 수많은 생명체가 한데 어우러져 내뿜는 아우라 때문인지, 아니면 산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땅의 기운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무 것도 없는 바위산에서도 웅대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은 우리에게 일정 부분 신비일 수밖에 없으리라. (산을 오르고 있는 가이드, 포터, 엄마) 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산맥 히말라.. 2008. 2. 22.
[인도] 델리에서 간디를 생각하며 '01 델리는 인도 여행의 종착지였다. 그간 인도에서의 익숙치 않은 경험을 가슴에 담고, 네팔 히말라야의 설산을 뒤로 하고 드디어 델리에 왔다. 델리는 수도답게 번화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뉴델리의 거리는 무척 화려해서 서구의 여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갑자기 대로에 등장하곤 하는 코끼리나 우마차 등이 이곳이 인도임을 때때로 확인시켜 주었다. 델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연, 우리는 회사 파견으로 델리에 머물고 있는 한 친절한 한국분을 만났다. 마침 귀국 날짜가 다가오니 한국이 더 그립다면서 우리를 그의 집에 초대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덕택에 '바산트 비하르'에서 며칠 머물렀다. 서울로 치면 압구정동 같은 곳이다. 거기는 또다른 인도였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수없이 마주친 가난과 비참함하고는 담 쌓.. 2001.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