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0m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서
413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까지
두 시간 반 걸리는 길은 (우리는 세 시간 넘게 걸었으나)
트레킹 코스의 하일라이트라 할 만했다.
어쩌면 이 몇 시간의 경치를 보기 위해서 일주일씩 걸어서
이곳에 당도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이곳의 풍광은 압도적이었다.
히말라야가 아니면 그 어떤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스케일.
눈보라 때문에 주위는 온통 희뿌연 안개 속이었으나
바람이 휙 몰아칠 때마다 나타나곤 하던 눈덮힌 황량한 벌판의 모습에
나는 몸을 떨었다.
여기에는 아무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
동물도, 식물도, 사람도 없다.
오직 눈과 비, 바람과 별빛만이 닿을 수 있는 곳.
그래서 인간의 땅이 아니라 신의 땅.
길은 완만한 경사였지만 고소 때문에 한 발짝 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온 천지가 진동하고 내 몸도 함께 떨렸다.
산의 소리가 모든 것을 뒤덮은 가운데
숨이 차서 내 작은 몸속의 심장이 쿵쿵 울렸다.
더는 빨리 걸을 수 없었다.
한계, 인간 육체의 한계, 넘을 수 없는 어떤 경계.
울음이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어 올랐다.
해발 4000m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눈보라 속에서 앞서간 일행의 모습은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들이 있어서 안심하고 길을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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