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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인도, 네팔

[네팔] 사람을 짐승처럼 부리는 게 괜찮으면 - Annapurna Sanctuary 8

by 릴라~ 2008. 4. 10.
간밤 눈이 많이 내렸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롯지 지붕 위로 눈이 두텁게 쌓여 있다. 
함께 묵었던 일행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출발했다.  
길을 갈수록 숲은 자취를 감추고
삐죽삐죽한 바위산이 우리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골짜기 뒤에서 구름이 우리를 향해 점점 다가온다 했더니
어느새 구름은 우리 걸음을 추월해 버렸다.
주위는 삽시간에 안개와 구름으로 뒤덮였고
눈 때문에 걸음은 두 배나 힘들어졌다.

맨몸으로 가도 이렇게 어려운데
배낭도 아니고 엄청난 짐을 머리에 매단 네팔인 포터도 있었다.
캠핑하는 사람들의 짐을 나르는 포터들이었다.
여행서 어디선가 본 구절이 생각났다. 

'사람을 짐승처럼 부리는 것이 괜찮으면 캠핑을 하라.'

이 모습을 보니 캠핑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가스통을 짊어진 네팔 소년도 몇 명 만났다.
커다란 가스통이 담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이 눈길 속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등산화를 신은 나도 계속 미끄러지는 이런 길을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채로...
슬리퍼가 벗겨질까봐 지푸라기로 슬리퍼를
어설프게 둥둥 묶은 채로...

아이의 발은 새빨갛게 얼어 있었다.

우리 가이드가 말했다. 정말 힘든 삶이라고.
롯지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가스는 이런 식으로 날라지고 있었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간혹 얌체 여행자들을 만나게 된다.
나이 많은 포터에게 짐을 잔뜩 지게 하는.
사람 한 명을 더 쓰면 될 텐데, 그것이 그리 어려울까 싶다.
한 명 더 고용해봤자 일당이 하루 8달러에 지나지 않는 것을.

오후 1시, 그야말로 간신히 3700m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닿았다.
더는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먹는 둥 마는 둥 점심을 들고 나니 벌써 2시,
그 사이 눈보라는 더 거세져서 윙윙 거리는 바람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이런 날씨 속에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갈 수 있을까.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러다가 저녁에 개기도 하고
히말라야의 날씨는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리는데
동행했던 한국 청년들이 자기들이랑 같이 가자고 재촉한다.
다 떠나는데 우리만 여기 남아 있으면 심심할 거라고 같이 출발하잔다.

그들이 없었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
가이드도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마음 같아서는 한 시간쯤 쉬고 출발했으면 했지만
이들과 함께가 아니면 못 떠날 것 같아서 우리도 일어섰다.

 

-> 마차푸차레


->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



-> 캠핑하는 사람들의 짐이 담긴 바구니. 가운데 검푸른 배낭을 매고 서 있는 사람이 우리 포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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