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파니에서 촘롱에 이르는 길, 두 개의 큰 강과 계곡을 건너고 이삼천미터 쯤 되는 경사면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인 줄 알았다면 하루 만에 걸을 엄두를 내진 못했으리라.
푼힐에서 내려와 짐을 챙겼다. 따뜻한 난로가 있는 고레파니를 떠나자니 아쉬운 마음이 일었지만, 일정이 촉박해 바로 길을 나섰다. 능선길에서 안나푸르나 연봉들을 다시 만났다. 우리의 마지막 도착지는 저 멀리 보이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마차푸차레 사이의 베이스캠프. 그 관문격인 촘롱에 오늘 닿아야 한다.
숲길로 접어들자 간밤에 내린 눈으로 길은 얼어붙어 있다. 간간이 비치는 햇살에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길은 완전히 빙판이 되었다. 미끄러지기를 수 차례, 어렵게 눈길을 통과하자 깊은 정글이 펼쳐진다.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허파에 맑은 숨을 가득 채우며 인적 없는 정글숲을 빠져나오니 타다파니가 나온다.
구름이 몰려오고 날은 점점 추워지고... 타다파니 롯지에서 점심 식사를 기다리는데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입맛이 없어 삶은 감자를 시켜 껍질을 벗기는데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 눈물이 다 났다. 눈물은 전염성이 강하다. 마주 앉아 있던 엄마도 눈가에 이슬이 번진다. 내가 물었다. 여기서 그만 내려갈까? 이 나이에 이 어려운 길을 다시 오겠냐면서 끝까지 가자신다.
길은 더욱 험해졌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으로 난 돌 계단길을 얼마나 많이 오르고 내렸는지 모른다. 올라간 만큼 내려가야 했고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의 힘을 이 때만큼 여실히 느낀 적이 없는 것 같다. 저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오르나 했는데, 어느 순간 우리는 언덕 꼭대기에 있었고, 이 길을 어떻게 다 내려가나 했는데, 어느 순간 우리는 계곡 아래에 닿아 있었다. 발 아래 내려다보이던 독수리떼는 계단길을 다 내려오면 저 하늘 높이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였다.
오후 네 시. 체력은 바닥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흩뿌리기 시작해 마음이 무거웠는데 오래지 않아 다행히 그친다. 어떤 상념도 없었다. 다만 우리는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산과 산을 넘는 동안 저녁이 찾아오고 마을에선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녁 6시, 모롱이를 도는데 저녁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는 마차푸차레가 보였다. 마차푸차레의 붉은 빛이 가슴 한가운데 쿵 들어와 박힌다. 지친 와중에도 심장이 더워짐을 느꼈다. 가이드가 촘롱이 바로 앞이라며 격려한다.
도착하자마자 깜깜해진다. 어두워지기 전에 롯지에 닿은 것이 다행이었다. 롯지 주인에게 한국 청년 둘이 혹시 지나가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 촘롱까지 못 오고 중간에 여장을 풀었구나 했다.
롯지 주인에게 가스 곤로를 피워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서부터는 난로가 없다. 밤공기부터가 달랐다. 풍요롭고 사람 사는 동네 같았던 고레파니 일대에 비해 더 척박하고, 산의 거친 숨결이 우리를 긴장시키기 시작한 곳. 산과 한결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이 길은 머지 않아 베이스캠프로 이어질 것이다.
엄마는 아무 것도 드시지 못했다.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몇 술 들었다. 열 시간 넘는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가이드와 포터는 우리를 위해서 마을에 오리털 침낭을 빌리러 갔다. 한 시간이 넘는 밤길을 왕복해서 돌아온 두 사람은 우리를 향해 활짝 웃었다. 마을에 딱 두 개가 있었다고,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한국에서는 좀체로 보기 어려운 미소, 계산 없는 맑은 눈빛에 많이 고맙고 또 미안했다.
늦은 밤, 두 사람은 환한 표정으로 저녁을 들었다. 롯지 주인이 트레커들 식사를 먼저 준비하기 때문에 이들은 언제나 우리가 식사를 다 끝낸 다음에야 저녁을 먹을 수 있다.
긴 하루였다.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동안에 가장 많은 산과 언덕, 마을과 마을을 넘고 또 넘은 날. 눈을 감으면 그 길의 모든 풍광이 하나씩 머리를 스쳐간다. 두 발로 뚜벅뚜벅 걸은 길이기에 그 모든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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