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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569

[헤아려본 슬픔 / C. S. 루이스] __ 슬픔을 헤아리면 헤아리다, 이 단어를 생각케 한 책이다. 슬픔을 헤아리다… 우린 대개 슬픔에 압도되거나 눌릴 때가 많지 슬픔을 곰곰 헤아리기란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엄청난 슬픔과 상실 속에서도 그 슬픔을 헤아리고 기록한다. 그래서 작가겠거니 했다. 문학은 인간을, 인생을 탐구하는 과정이므로.  슬픔을 헤아릴 때, 슬픔 속에서도 희미한 빛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 책은 슬픔에 대한 이야기면서 슬픔의 후면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가녀린 빛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2023. 11. 17.
[사랑과 혁명 1~3 / 김탁환] — 19세기 천주교인들을 만나다 1권을 보면서 다 읽는데 적어도 일주일 이상 걸리리라 생각했다. 말이 세 권이지 1권은 600페이지, 2권 3권도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라 보통 책으로 5권 분량은 족히 넘는다. 하지만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각 인물들의 개인사가 등장하는 1권만 다소 천천히 읽었을 뿐, 2권부터는 정신없이 읽었다. 이 이야기가, 각 인물들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라는 철학적이고 무거운 소재를 이토록 빠져들어 읽게 하다니 역시 대작가다운 필력이었다. 곡성을 배경으로 천덕산, 동이산, 순자강... 곡성 들판과 강줄기와 이름 모를 숱한 골짜기들을 내가 직접 보듯이 생생한 감촉을 느끼면서 19세기 삶의 공간 속에 흠뻑 빠져들었다. 옹기 굽는 덕실마을의 교우촌의 삶도 인상 .. 2023. 11. 1.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이다 / 김응교] __ 유명 고전들의 첫문장 제목을 보고 글쓰기 책인 줄 알았다. 아니다. 문학작품을 그것의 첫문장을 바탕으로 해설하는 책이다.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의 장점은 첫문장과 함께 그 유명한 고전 하나하나를 개성 있게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 소설과 지금 인기 있는 작품도 몇 등장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책에 나오는 첫문장을 발췌해둔다.  ## 거기 누구냐?아냐, 내가 묻는다. 거기 서, 너 누구냐.  (셰익스피어, 햄릿) 그럼 여러분은, 이렇게 사람들이 강이라고 하거나, 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라고 하는 이 뿌옇고 하얀 게, 사실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하지만, 여러분은 말하시겠죠. 우리는 당신에게 여성과 픽션에 대해 강연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도대체, 제가 말하려는.. 2023. 10. 26.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 파울 페르하에어] __ 신자유주의가 바꾼 세상의 기준 저자의 전작, 에 비해서는 가독성이 떨어졌지만, 권위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십분 이해할 만하다.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권위의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권위는 우리가 속한 모든 사회적 관계들을 조율하고 통제하며 사람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끈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경제'를 제외한 모든 전통적인 권위가 힘을 상실했다는 것인데, 저자는 그 전통적인 권위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 권위들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영구히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권위의 상대성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과거의 권위에 무조건적인 향수를 가질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 권위들은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화하고 사회를 안정시켰으나 여성을 비롯하.. 2023. 10. 19.
[사물의 소멸 & 리추얼의 종말 / 한병철] __ 스마트폰은 지배체제의 디지털 성물 에리히 프롬이 우리 시대를 봤다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소유' 대신에 '존재'를 설파했던 철학자가 지금을 봤다면 '소유' 대신 '이상한 존재'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았으리라.  사물 대신에 정보가 우리를 지배하는 시대. 사물은 삶을 안정시키지만 정보는 우리를 정처없이 배회하게 한다. 정보는 사물과 타자에 깃든 시간, 촉감,  불가해성이 없다. 정보가 넘쳐나고 모든 게 명료하지만  세계는 점점 멀어지는 역설의 시대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세계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말을 건다.   리추얼은 또 어떤가. 공동체의 의례 혹은 시간적인 형식으로 번역할 수 있는 리추얼은  흘러가는 시간에 마디를 맺어줌으로써 시간을 우리가 거주할 수 있는 집으로 만들어준다. 리추얼이 사라진 시대에는 개인의 자기 표현과.. 2023. 10. 18.
[백년 동안의 증언 / 김응교] __ 간토대지진과 그 이후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에 발생한 진도 7.9의 간토대지진. 같은 날 오후 3시부터 학살극이 시작된다.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일본어 발음 중 까다로운 것을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이 가해진다. 자연이 초래한 어마어마한 재앙은 그 이상의 참혹한 비극을 낳는다.  지금도 일본 정부는 유언비어 때문에 벌어진 학살이었다고 이야기할 뿐 그 유언비어의 진원지는 말하지 않는다. 불안과 두려움을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분출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막으려 했다는 것을. 그래서 학살된 사람 중에선 일본인도 포함되었다. 일본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이 주요 표적이 되었고, 도쿄 발음을 잘 못하는 오사카 사람도 끼어 있었다. 평소 국.. 2023. 10. 10.
[고통 없는 사회 / 한병철] __ 우리 앞에 도래한 '좋아요'의 사회 십여 년 전부터 저자의 책을 꾸준히 보고 있다. 투명사회, 시간의 향기, 피로사회, 에로스의 종말, 심리정치, 타자의 추방, 권력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의 구원 등...    100여 쪽 남짓한 얇은 책이지만 다양한 철학적 개념이 촘촘히 박혀 있고,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그 안에 담긴 사유의 깊이도 남다르다. 이분의 관심사는 모두 '현대인' 우리 자신의 현 모습과 우리 자신이 처한 생태계이다.  동일한 문제의식을 조금씩 다른 측면에서 조명하는 책들을 썼다. 철학적 개념을 반복적으로 동원하여 세상을 거울처럼 명료하게 보여준다. 철학자의 글이 왜 가치있는가를 보여주는 시리즈.  최근 출판된 것은 못 읽었는데, '고통 없는 사회'에서 읽기를 시작한다. 리추얼의 종말, 서사의 위기, 폭력의 위상학.. 2023. 10. 7.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 신이현] __ 농사 지으러 한국에 온 프랑스 농부 여기, "땅이 노래하게 하라"를 외치는 농부가 있다.  농사를 너무 짓고 싶어서 엔지니어를 때려치고 한국 충주에서 와인을 만드는 프랑스 남자. 왜 한국이냐고? 파리에서 생활하는 것도 향수병으로 힘들었는데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프랑스 농촌에서 늙어갈 게 두려운 한국인 아내가 한국을 택했다. "농부만 되면 되는 거지?" 하면서.  대책 없이 프랑스 생활을 다 정리하고 한국에 와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다가 직접 땅을 사고 와인을 만들기까지 고군분투한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꿈 하나만을 믿고 모두가 만류하는 농사를 짓기까지 그들은 많고 많은 산을 넘었는데, 어찌어찌 지금도 생존에 성공해 있다. 프랑스 농부의 아내 신이현 씨는 전직이 작가다. 글솜씨가 뛰어난 이라 이야기 하나하나가 유머러스하고 실감나.. 2023. 10. 6.
[결혼, 여름 / 알베르 까뮈] __ 까뮈의 젊은 날을 엿보다 우리 문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정서가 있다. 다름 아닌 '세계에 대한 찬미'다.  식민지 이후 지금까지 근대가 고통으로 점철되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신의 축복이라 할 만한 태양이 사시사철 내리쬐는 풍요로운 지중해의 환경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날씨 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색깔도 형형색색으로 다채로운 땅이니까.  그 알제(알제리)의 자연에 대한 순수한 경탄과 찬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내게 그 곁에 있는 듯 묘사는 생생하고 감성은 풍요롭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거장의 필력을 아낌없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초반 에세이들은 까뮈가 20대 청춘에 쓴 글들이라 문장 곳곳에서 젊음의 열정이 짙게 배어 있다. 그곳에서 첫결혼을 했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알제의 바다와 바람, 언덕과 페허,  생에 대.. 2023. 10. 4.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파울 페르아에허] __ 걍 최고임 이 책은 단지 심리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에는 반드시 타자 맟 집단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의 서사가 깃들어있다. 뇌의 작용과 신경 호르몬 등 개인적인 성향이 당연히 영향을 미치지만, 정체성의 본질적인 내용은 반드시 외부 세계로부터 온다. 그리고 오늘날, 그 외부 세계가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 인간의 이타심이 아니라 이기심만을 극도로 강조하는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왜 이런 모양과 이런 지향으로 살고 있는지, 특히 젊은이들이 왜 그러한지 이 책보다 더 잘 설명하는 책은 없을 듯하다. 종교는 사라졌지만 이제 성공이 그 자리를 대체했고, 종교적 신념 대신에 외부의 '평가'가 그 권위를 대체했다. 사람들은 과거 종교에서 죄책감을 느꼈듯이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 2023. 10. 2.
[다큐의 기술 / 김옥영] __ 다큐멘터리는 발견의 예술 저자의 메시지 전달력이 대단하다.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좀 참고하려고 빌린 책인데,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아니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다큐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었고, 다양한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엿보는 재미도 있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불편한 지점에서 문제 의식을 찾아내고 그것을 많은 이가 공감하도록 설득력 있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다큐다. 따라서 다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문제의 발견에서도 그것의 전달에 있어서도 제작자의 '관점'이 가장 중요한 장르다. 그가 바라본 것을 타인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내가.. 2023. 9. 21.
[자본주의의 적 / 정지아] __ 정지아 작가의 매력 넘치는 단편들 그리 많은 글을 써온 것이 아닌데도 가끔 '나'라는 일인칭에 질릴 때가 있다. 가끔 '나'에서 벗어나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글쓰기는 일상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인데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나'란 놈이 너무 뻔해서 글을 쓸 의욕을 잃을 때다. 다른 자아를 내 안에 불러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정지아 작가의 작품은 반대다. '빨치산의 딸'이었던 작가의 삶 자체가 워낙 풍부한 스토리가 많고 특별해서였을까. 9편의 단편 중에서 저자의 자전적 목소리가 담긴 세 작품, 은 매우 잘 읽혔는데, 다른 작품은 위의 세 작품만 못했다. 위의 세 작품이 워낙 뛰어나서였을 수도 있지만. '나'가 드러나는 작품들이 훨씬 캐릭터가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나도 모르.. 2023. 9. 18.
[철부지 사회 / 가타다 다마미] __ 진상 민원인들의 심리를 가장 잘 설명한 책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에 사람들은 가장 불만이 많고 참을성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상식적이라면 민원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진상 짓을 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많아진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일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이미 이천년 대 초반부터 그걸 겪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흐름은 전세계적이라는 것, 그중에서 일본과 한국 사회는 특히나 매우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대상 상실'이다. 현대인들이 가장 취약한 것이 대상 상실이다. 이 대상 상실에는 죽음과 같은 큰 상처만 자리하는 게 아니다. 현대인들은 유아기적 만능감, 즉 환상 속에 구축된 자기 이미.. 2023. 9. 17.
청소년 소설은 끝까지 읽기가 어려워 청소년 소설을 썩 좋아하진 않는데 수업 자료를 찾기 위해 가능하면 읽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끝까지 힘있게 읽어낼 작품이 흔치는 않다. , 국어교사들이 너무 좋은 책이라 해서 읽었는데 역시 문학은 개인 취향. 참신한 아이디어와 SF적 상상력은 돋보이나 장면에 대한 충분한 묘사가 부족하고, 주제 또한 모호하여 결국 다 못 읽었다. 문장이 좀 헐거운 감이 있었다. , 이것도 나름 괜찮아 보였는데 결국 끝까지 못 읽음. 가족 문제, 사회 문제 등이 교차하는 점이 좋아 보였으나 캐릭터가 현실감이 좀 떨어져서 잘 못 따라갔다. 청소년 소설이면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본 작품은 , 정도. 이만한 작품이 잘 없는 것 같다. 은 작품은 좋지만, 너무 길어서 아이들이 잘 못 읽어냄. 불편한 편의점, 순례주택.. 2023. 9. 12.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__ 올해 최고의 책 오래 기다렸던 책이 드디어 내 손에 왔다.도서관에서 항상 대출 중, 예약 중으로 떠서 책을 손에 받아보기까지 두 달은 넘게 걸린 것 같다. 그냥 사볼까 하다가, 집에 더이상 책을 놔둘 공간이 없어서 참았는데걍 사야겠다 하는 찰나에 옆동네 범어도서관에서 책이 도착했다. 소설의 첫문장은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그림책, 가 생각났다. 어린이 화자가 겪는 어머니의 죽음,그 상실의 흔적과 순간들이 너무너무 슬퍼서 읽으면서 펑펑 운 책이다. 는 정신없이 빠져들어 책장을 넘긴다는 점에서는전자의 책과 비슷하지만, 내용과 분위기는 완전 다르다. 한때는 지리산 빨치산으로 혁명을 꿈꾸었으나 현실에선 생활 능력이 없는 아버지,사람들에게 보증 서고 떼이고를 반복하면서도 얼마.. 2023.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