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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547

고통 없는 사회 / 한병철 __ 우리 앞에 도래한 '좋아요'의 사회 십여 년 전부터 저자의 책을 꾸준히 보고 있다. 투명사회, 시간의 향기, 피로사회, 에로스의 종말, 심리정치, 타자의 추방, 권력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의 구원 등... 100여 쪽 남짓한 얇은 책이지만 다양한 철학적 개념이 촘촘히 박혀 있고,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그 안에 담긴 사유의 깊이도 남다르다. 이분의 관심사는 모두 '현대인' 우리 자신의 현 모습과 우리 자신이 처한 생태계이다. 동일한 문제의식을 조금씩 다른 측면에서 조명하는 책들을 썼다. 철학적 개념을 반복적으로 동원하여 세상을 거울처럼 명료하게 보여준다. 철학자의 글이 왜 가치있는가를 보여주는 시리즈. 최근 출판된 것은 못 읽었는데, '고통 없는 사회'에서 읽기를 시작한다. 리추얼의 종말, 서사의 위기, 폭력의 위상학 등을 더.. 2023. 10. 7.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 신이현 __ 농사 지으러 한국에 온 프랑스 농부 여기, "땅이 노래하게 하라"를 외치는 농부가 있다. 농사를 너무 짓고 싶어서 엔지니어를 때려치고 한국 충주에서 와인을 만드는 프랑스 남자. 왜 한국이냐고? 파리에서 생활하는 것도 향수병으로 힘들었는데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프랑스 농촌에서 늙어갈 게 두려운 한국인 아내가 한국을 택했다. "농부만 되면 되는 거지?" 하면서. 대책 없이 프랑스 생활을 다 정리하고 한국에 와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다가 직접 땅을 사고 와인을 만들기까지 고군분투한 기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꿈 하나만을 믿고 모두가 만류하는 농사를 짓기까지 그들은 많고 많은 산을 넘었는데, 어찌어찌 지금도 생존에 성공해 있다. 프랑스 농부의 아내 신이현 씨는 전직이 작가다. 글솜씨가 뛰어난 이라 이야기 하나하나가 유머러스하고 실감나게 .. 2023. 10. 6.
결혼, 여름 / 알베르 까뮈 __ 까뮈의 젊은 날을 엿보다 우리 문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정서는 '세계에 대한 찬미'이다. 식민지 이후 지금까지 근대가 고통으로 점철되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신의 축복이라 할 만한 태양이 사시사철 내리쬐는 풍요로운 지중해의 환경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날씨 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색깔도 형형색색으로 다채로운 땅이니까. 그 알제(알제리)의 자연에 대한 순수한 경탄과 찬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치 내게 그 곁에 있는 듯 묘사는 생생하고 감성은 풍요롭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거장의 필력을 아낌없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초반 에세이들은 까뮈가 20대 청춘에 쓴 글들이라 문장 곳곳에서 젊음의 열정이 짙게 배어 있다. 그곳에서 첫결혼을 했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알제의 바다와 바람, 언덕과 페허, 생에 대한 사랑. 그 모든 것.. 2023. 10. 4.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파울 페르아에허 __ 걍 최고임 이 책은 단지 심리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에는 반드시 타자 맟 집단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의 서사가 깃들어있다. 뇌의 작용과 신경 호르몬 등 개인적인 성향이 당연히 영향을 미치지만, 정체성의 본질적인 내용은 반드시 외부 세계로부터 온다. 그리고 오늘날, 그 외부 세계가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 인간의 이타심이 아니라 이기심만을 극도로 강조하는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왜 이런 모양과 이런 지향으로 살고 있는지, 특히 젊은이들이 왜 그러한지 이 책보다 더 잘 설명하는 책은 없을 듯하다. 종교는 사라졌지만 이제 성공이 그 자리를 대체했고, 종교적 신념 대신에 외부의 '평가'가 그 권위를 대체했다. 사람들은 과거 종교에서 죄책감을 느꼈듯이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고.. 2023. 10. 2.
다큐의 기술 / 김옥영 저자의 메시지 전달력이 대단하다.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좀 참고하려고 빌린 책인데,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아니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말았다. 다큐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었고, 다양한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엿보는 재미도 있었다. 저자는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불편한 지점에서 문제 의식을 찾아내고 그것을 많은 이가 공감하도록 설득력 있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다큐다. 따라서 다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문제의 발견에서도 그것의 전달에 있어서도 제작자의 '관점'이 가장 중요한 장르다. 그가 바라본 것을 타인도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저자는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내가 .. 2023. 9. 21.
자본주의의 적 / 정지아 그리 많은 글을 써온 것이 아닌데도 가끔 '나'라는 일인칭에 질릴 때가 있다. 가끔 '나'에서 벗어나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글쓰기는 일상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인데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나'란 놈이 너무 뻔해서 글을 쓸 의욕을 잃을 때다. 다른 자아를 내 안에 불러오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정지아 작가의 작품은 반대다. '빨치산의 딸'이었던 작가의 삶 자체가 워낙 풍부한 스토리가 많고 특별해서였을까. 9편의 단편 중에서 저자의 자전적 목소리가 담긴 세 작품, 은 매우 잘 읽혔는데, 다른 작품은 위의 세 작품만 못했다. 위의 세 작품이 워낙 뛰어나서였을 수도 있지만. '나'가 드러나는 작품들이 훨씬 캐릭터가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나도 모르.. 2023. 9. 18.
[책] 철부지 사회 / 가타다 다마미 _ 진상 민원인들의 심리를 가장 잘 설명한 책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에 사람들은 가장 불만이 많고 참을성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상식적이라면 민원 사항에 해당하지 않는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진상 짓을 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많아진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일본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이미 이천년 대 초반부터 그걸 겪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흐름은 전세계적이라는 것, 그중에서 일본과 한국 사회는 특히나 매우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대상 상실'이다. 현대인들이 가장 취약한 것이 대상 상실이다. 이 대상 상실에는 죽음과 같은 큰 상처만 자리하는 게 아니다. 현대인들은 유아기적 만능감, 환상 속에 구축된 자기 이미지의 상.. 2023. 9. 17.
청소년 소설은 끝까지 읽기가 어려워 청소년 소설을 썩 좋아하진 않는데 수업 자료를 찾기 위해 가능하면 읽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끝까지 힘있게 읽어낼 작품이 흔치는 않다. , 국어교사들이 너무 좋은 책이라 해서 읽었는데 역시 문학은 개인 취향. 참신한 아이디어와 SF적 상상력은 돋보이나 장면에 대한 충분한 묘사가 부족하고, 주제 또한 모호하여 결국 다 못 읽었다. 문장이 좀 헐거운 감이 있었다. , 이것도 나름 괜찮아 보였는데 결국 끝까지 못 읽음. 가족 문제, 사회 문제 등이 교차하는 점이 좋아 보였으나 캐릭터가 현실감이 좀 떨어져서 잘 못 따라갔다. 청소년 소설이면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본 작품은 , 정도. 이만한 작품이 잘 없는 것 같다. 은 작품은 좋지만, 너무 길어서 아이들이 잘 못 읽어냄. 불편한 편의점, 순례주택.. 2023. 9. 12.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_ 올해 최고의 책 오래 기다렸던 책이 드디어 내 손에 왔다. 도서관에서 항상 대출 중, 예약 중으로 떠서 책을 손에 받아보기까지 두 달은 넘게 걸린 것 같다. 그냥 사볼까 하다가, 집에 더이상 책을 놔둘 공간이 없어서 참았는데 걍 사야겠다 하는 찰나에 옆동네 범어도서관에서 책이 도착했다. 소설의 첫문장은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그림책, 가 생각났다. 어린이 화자가 겪는 어머니의 죽음, 그 상실의 흔적과 순간들이 너무너무 슬퍼서 읽으면서 펑펑 운 책이다. 는 정신없이 빠져들어 책장을 넘긴다는 점에서는 전자의 책과 비슷하지만, 내용과 분위기는 완전 다르다. 한때는 지리산 빨치산으로 혁명을 꿈꾸었으나 현실에선 생활 능력이 없는 아버지, 사람들에게 보증 서고 떼이고를 반복하면서도.. 2023. 9. 12.
[책] 새로운 창세기 / 에드워드 윌슨 _ 과학자가 설명하는 인간의 창조 동물행동학자로 우리 언론에 잘 알려진 분이 있다. 이화여대의 최재천 교수다. 쉽고 재미있는 책을 많이 펴낸 분이다. 이분이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그분의 지도교수가 바로 에드워드 윌슨이다. 진화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에드워드 윌슨의 책은 풍부한 과학적 사례를 담고 있어 늘 흥미진진하다. 그 사례들을 통해 논리적으로 도출하는 결론 또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다. 내가 과학 분야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 이분의 책은 챙겨보는 이유는 인문학 책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인간 문명에 대한 드넓은 비전 때문이다. 이 책 는 진화생물학자의 입장에서 인류의 기원과 인간 사회의 기원을 추적한 책이다. 생명의 기원에서 출발하여 사회와 언어의 기원까지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과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 2023. 9. 5.
[책] 학생이 질문하는 즐거운 수업 만들기 (놀이 편) / 정혜승 외 수업 준비를 할 때, 다룰 작품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서는 관련 주제의 책을 다 빌려보는 게 제일 확실하다. 시간이 부족해 꼼꼼하게 다 읽지는 못해도 발췌독으로도 도움이 많이 된다. 그 작가나 주제에 대해 내가 무엇을 얼마나 다룰 수 있을 지 머릿속에서 대강의 아우트라인을 잡는 과정이다. 수업에서 어떤 내용을 어느 수준에서 다룰 지 결정되었으면 그 다음 단계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내용을 학생들에게 조금 재미있게 전달할 방법을 찾는 데는 초등쌤들이 쓴 책이 상당히 유익하다. 내가 소화한 내용을 말로 그대로 전한다고 중학생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좀 아기자기한 방법들을 가져와야 한다. 이 책 에는 응용할 만한 아이디어가 잔뜩 들어 있다. 초등처럼 한 시간 내내 놀이 위주의 수업은 맞지 않지만 적절한 시간.. 2023. 9. 4.
[책] 망설임의 윤리학 / 우치다 타츠루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종합적인 문예 비평서. 일본에서 출판된 책에 대한 비평이 많다. 보통 모르는 책에 대한 비평서는 재미있게 읽기가 어려운데 선생의 책은 그렇지 않다. 그 책을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모양에 대한 선생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일본 사회가 고령화나 신세대의 변화 면에서 우리 사회와 비슷하게 가고 있어서 (아니, 우리가 일본 비슷하게 가는 걸 꺼다.)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이 우리를 좀 더 잘 보여주기도 한다. 페미니즘 등의 사상이 꼭 필요하다고 보지만 그것이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선생의 견해도 흥미롭다. 어떤 사상은 그 야생적인 면으로 사회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지만 지배 이데올로기가 될 때는 위험하다는 것. 모택동의 사상이나 히피 운동이 그 예가 되겠다. .. 2023. 9. 2.
[책] 스몰 트라우마 / 멕 애럴 '빅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대개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전쟁, 폭력, 이혼, 실직, 가족의 죽음 등 우리 생애를 뒤흔드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이런 큰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좀먹는 존재가 있으니 저자는 이를 '스몰 트라우마'라 부른다. 이 스몰 트라우마는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거나 별 것 아닌 일을 문제 삼는다고 생각해 타인에게 잘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댐에 작은 구멍이 나면 어느 순간 무너지듯이. 작은 상처는 시간에 따라 누적되면서 삶을 크게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이 책은 '스몰 트라우마'의 개념을 밝히면서 삶 속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할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것이 개념을 밝히는 부분이 소략하고 처방을 이야기하는 부분의 내용이 많다는 거다. 심리적 .. 2023. 8. 28.
[책]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다 / 홍소영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에 대해 가리워져 있던 속마음 한 가지씩을 보여준다. 이 작가가 그랬다. 두 번의 유산 끝에 결혼 7년만에 어렵게 아이를 가졌는데 출산 전에 남편은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져 이혼을 요구한다. 작가는 남편을 보내주고 홀로 아이를 기르기로 결심한다. 싱글맘이 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눈물 나는 일까지 당차게, 태생적인 유머 감각을 갖고 긍정 끝판왕으로 활기차게 풀어낸 글이 이 책이다.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내 친구들은 (대부분 공무원, 공기업, 전문직이다) 그닥 부럽지 않은데 난 홍소영 작가 같은 싱글맘이, 아니 싱글맘을 용감하게 택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부럽다. 그러고보니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항상 싱글맘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그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 2023. 8. 27.
[책]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 / 아라이 유키 어떤 책은 단 한 챕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설렁설렁 책장을 넘기다 한 부분에 꽂혔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일,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 말, 그런 일과 말을 생각한다. 수업시간에도 응용할 만한 질문이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일, 그건 가슴 벅찬 감동 그런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일, 그런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뭐가 있을까.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화장하기. 3분만에 끝내는 간단한 화장이지만. 자기 전에 누워서 좋아하는 음악 듣기. 산에 오르기. 언제나 가장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일. 책을 읽다 문득 멈추고 좋은 구절을 음미하기. D랑 포옹하거나 곤히 자다가 깨서 이야기하기. 식탁에서 .. 2023.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