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책 이야기/사회, 과학

은유란 무엇인가 & 은유가 만드는 삶 / 김용규, 김유림

by 릴라~ 2024. 5. 4.

은유 시리즈로 책을 세 권이나 내다니... 은유 수업 다 끝나고 읽고 있는데, 신세계다. 다음 은유 수업은 훨씬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은유 시리즈는 총 3권이다. 1편 '은유란 무엇인가'는 은유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하는 부분이어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2편 '은유가 만드는 삶'에서는 새롭고 다양한 은유 작품의 예시를 보아서 좋았고, 3편 '은유가 바꾸는 세상'은 제목 위주로 훑어보았으나 사회적으로 천박한 은유가 삶을 어떻게 천박하게 만드는지 확실히 이해하게 됐다. 
 
은유란 무엇인가. 저자들에 따르면 은유는 단지 수사법에 국한되지 않는다. 은유가 없다면 창의가 없고 우리 문명도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생각이다. 은유적 사고는 시와 노래뿐 아니라 회화, 조각, 음악, 무용 등 '비언어적 표현'에도 들어 있다. 스핑크스 같은 반인반수 조형물은 고대인들의 정신세계에서 개념적 혼성을 보여주는(카프레왕은 지혜롭고 용맹스러운 사자), 은유적 사고의 결과물이며 은유가 관여하지 않은 인간의 정신활동은 없다.
 
저자들에 따르면 은유는 언어적 표현의 문제가 아니 사고와 개념화의 문제이며 인간 정신의 보편적 형식을 뛰어넘어 "인간 정신만이 지닌 가장 중요한 시원적 사유 패턴이다. " 그리고 우리의 사고 패턴을 결정하면서 우리 삶에 실제로 마법 같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는 잘못된 은유가 우리 삶을 파괴할 수 있음을 동시에 의미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상품성 등의 단어로 물든 사회적 은유들을 바꿀 때 우리 삶도 사회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신념이다. 
 
<은유란 무엇인가>
 
##
 
한마디로 은유는 우리 정신이 세계를 이해하고 묘사하고 구성하고 재창조하기 위해 펼치는 신비한 마술이다. 달리 말하자면 은유가 우리의 삶을 만들고 세상을 바꾼다. "무엇보다도 위대한 것은 은유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그래서 나왔다. p83
 
##
 
우리가 지닌 정신의 가장 근본적인 사유법칙은 'A는 A다(산은 산이다)'라는 동일률과 'A는 A가 아니다(산은 산이 아니다)'라는 모순율이다. 이 둘을 기반으로 논리학을 구축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동일률와 모순률은 지난 2400년 동안 인간의 모든 이성적 사고와 학문을 지탱해온 확고한 기반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 어떤 창의적 사유도 발생하지 않는다. (...)
 
은유는 동일률, 모순률에서 벗어나는 사유방식이다. (...) 하지만 은유는 우리의 정신이 활동하는 모든 분야에서 작동하며, 바로 여기에서 창의적 사고가 나온다는 사실이 현대 인지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이 말은 만일 우리에게 은유라는 제3의 사유 패턴이 없었다면 우리의 정신 활동은 극히 제한되어 일부 고등동물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리라는 뜻이다. 개도 주인(A)과 주인 아닌 사람(~A)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개 또한 낮은 수준의 동일률과 모순률에 의해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개도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같은 은유적 사고를 하지 못한다. 은유가 사고와 언어와 행동을 '인간답게' 한다. 그럼으로써 인간적 삶과 세계를 구성하고 창조한다. 
 
##
 
A. 범죄는 맹수다.
B. 범죄는 바이러스다. 
 
범죄를 맹수로 표현한 은유가 들어 있는 글을 읽은  그룹  A 사람들은 범죄자 색출 및 검거를 가장 중요한 대처방안으로 제시했다. 대조적으로 범죄를 바이러스로 표현한 은유를 사용한 글을 본 B 참가자들은 빈곤을 포함한 각종 범죄의 근본원인을 제거하고, 사회가 그 원인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사전 예방조치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범죄 - 위험하다 - 맹수 - 가두어야 한다
범죄 - 위험하다 - 바이러스 - 예방해야 한다
 
(...) 은유가 지닌 마법적 힘의 비밀은 모두 보조관념으로 형상화된 이미지에서 나온다. (...)  은유는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정신을 강하게 사로잡아 다른 비판적 반성적 사고가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다. p97-99
 
##
 
그것이 언어적이든 비언어적이든 은유는 이미지의 강력하고 빠른 힘을 백번 이용하는 표현방식이다. 은유는 보조관념으로 형상화된 이미지가 지닌 마법 같은 힘을 통해 우리의 이해를 돕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상대를 설득하여 사회규범을 정하고 구성원들을 통합하는 일을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내 모든 창의적인 정신 활동이 가능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을 확장하고 바꾸며 또한 풍요롭게 만든다. 은유는 이미지 언어다. p122-123
 
##
 
밑바닥 흙에서는
붉은 콧수염의 
당근이 잠을 잤고,
포도밭은 
포도주가 타고 올라오는
덩굴들을 말라비틀어지게 했다.
양배추는
오로지 스커트를 입어보는 일에만 
마음을 썼고,
박하는 세상에 향기를 뿌리는 일에 열중했다. (네루다, '엉겅퀴에 바치는 송가' 중)
 
어떤가? 대단하지 않은가? 이처럼 따분한 일상과 사소한 식자재마저 새롭고 아름다운 어떤 것으로 바꿔놓는 네루다의 기막힌 은유들이 마리오(영화 일포스티노)에게는 마술 같았다. 그리고 시란 마치 흑백영화를 총천연색영화로 바꾸어놓듯이 진부한 일상과 낯익은 세계에 새로운 색깔을 덧입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p133
 
##
 
이 집 이름을 책임진 칼국수는 머리를 곱게 빗은 채 상 위에 올라온다. 부글부글 힘이 끓는 국물에 얌전한 면발이 들어앉아 있다. 그 둘은 서로를 꽉 껴안은 듯 따로 놀지 않는다. (정동현 셰프) p215 
 
(...) 보조관념과 원관념을 다른 정신 영역에서 가져온다는 점에서 의인화와 의비인화는 모두 은유다. 전업 시인들도 이 같은 은유적 사고를 통해 시를 쓴다. 다만 그 같은 개념화 작업을 더 다양하고 과감하게 할 뿐이다. 시인들은 의인화 또는 의비인화뿐 아니라, 사물이 아닌 것을 사물로 개념화하는 '의사물화'와 자연현상이 아닌 것을 자연현상으로 개념화하는 '의자연화'도 활용한다. 당연히 그 역으로도 개념화한다. 
 
날이 저문다. / 먼 곳에서 빈 뜰이 넘어진다. / 무한천공 바람 겹겹이 / 사람은 혼자 펄럭이고 / 조금씩 파도치는 거리의 집들 / 끝까지 남아 있는 햇빛 하나가 / 어딜까 어딜까 도시를 끌고 간다 (강은교, 자전1 중)
 
 
<은유가 만드는 삶>
 
당신은 인간의 삶을 진정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차프스키가 전한 이야기에서('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보듯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을 짐승의 그것과 구분하게 하는 것은 시이고 소설이고 학문이고 건축이고 예술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최소한 인간답게 만든다. 
 
그런데 이제 곧 본문에서 확인하겠지만, 우리들이 노상 접하는 일상 언어는 물론이고 시, 소설, 노래, 동시, 동요, 회화, 조각, 건축 그리고 각종 공연예술 등 이들 모두는 은유적 사고의 산물이다. (...) 그렇다면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은유적 사고다. 은유가 언어와 학문과 예술을 통해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든다. p13-14
 
##
 
효모는 혼자 번식한다 / 여자 친구도 / 남자 친구도 / 아무 필요 없다 // 나도 효모인가 보다 (초3 작품)
 
##
 
산새가 숲에서 울고 있는데 / 바위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 바람이 구름을 밀고 있는데 / 하늘은 가만히 보고 있었다 (동요 '서로가 서로를')
 
##
 
인생 -> (       ) -> (        ) -> (         )
 
첫째, 당신은 먼저 원관념인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둘째, 그다음 당신은 자신이 생각해낸 인생의 본질을 무엇으로 형상화할지 궁리해 보아야 한다. 
셋째, 이제 당신은 그 보조관념에서 어떤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낼지를 생각해야 한다. 
 
인생 -> 길고 고되다 -> 마라톤 -> 참고 견뎌라, 포기하지 마라 p130-132
 
 
<은유가 바꾸는 세상>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십자군', '순례자들', '십자가로 서명한 사람들', '성전'과 같은 은유적 표현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가를. 이 은유들이 한낱 평범한 농민과 민중에 불과하던 사람들이 "신의 뜻이시다"를 외치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남자를 학살하고, 여인을 강간하고, 가옥을 방화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한낱 말에 불과한 이 은유들이 거리와 광장에 사람의 머리, 팔, 다리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성전과 회랑은 물론이요, 말 탄 기사가 잡은 고삐까지 피로 물들게 하지 않았는가. 
 
"은유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레이코프가 한 말이다. 얼핏 보면 "은유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라는 이 글의 주제와 상반되는 것 같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상 같다. 둘 다 은유가 지닌 가공할 만한 사회적 영향력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렇다. 은유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천국으로 만들 수도 있다. 
 
본문에서 소개한 리그니 교수도 바로 그 때문에 은유가 단지 사회현실을 묘사하는 데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창조하거나 구성하는 데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그래서 위험하면서도 불가피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어서 지금 북미에는 '사회는 시장', '사회는 게임'이라는 은유 모델이 자본주의, 소비물질주의사회를 구성해,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사회를 이기심을 지닌 개인의 총체, 달리 말해 비용과 보상에 대한 이기적 계산이 이뤄지는 장소로 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우려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그들과 다른가? 우리는 어떤 은유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가?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에서 나익주 교수가 지적한 대로, 우리도 다를 바가 전혀 없지 않은가? (...) 그래서 입시를 '전쟁'으로, 교육을 '상품'으로, 결혼을 '상거래'로, 여성을 '음식'으로, 사랑을 '굶주림'으로, 세금을 '폭탄'으로, 정치과 국제관계를 '적대관계'로 파악하는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가 이룬 위대한 학문적 성취, 발명과 발견,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적 표현, 때로는 수백 수천 년에 이르는 지속성을 갖는 사회적 변화, 각 부문의 혁신가들이 절망과 고독을 이기고 도달한 통찰, 세상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계로 한 걸음씩 나아가게 만든 창의적 상상력, 혁신적 해결책, 혁명적 발명품, 자유와 개혁과 변화로 가는 돌파구가 모두 음유로부터 나왔음을 함께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다. 은유는 발이 빠르고 힘이 세다. 우리는 은유를 통해 우리가 살 지옥을 상상하고 만들고 이끌고 갈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야 하는 천국을 창안하고 구축하고 견인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은유가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이 일을 하는 데 당신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p346-347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