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절대 빈곤층이 사는 재개발지역, 그 재개발지역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몰리는 여인숙의 0.8평 짜리 달방.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고, 부엌도 없고, 좁고 불편한 공동 세면장과 공용 화장실이 딸린 집. 모기장을 치지 않으면 잠을 못 잘 만큼 바퀴벌레가 들끓고 폭우라도 오는 날이면 하수구가 넘쳐 오수가 방을 덮치는 집. 11가구가 모여 사는 그 대덕여인숙에 저자는 365일을 입주한다. 시대의 기록, 다큐 사진을 찍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사진보다 그들의 일상을 도와주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을. 작가는 사진은 잠시 잊고 그분들을 도와주면서 여인숙의 진짜 식구가 되고 친구가 된다. 그렇게 그들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작가는 비로소 사진을 찍게 되고, 365일이 다 끝나고 나서도 그들을 돕기 위해 종종 그곳을 찾게 된다.
겨울에는 생수병이 방에서 그대로 얼어버리는 집. 일 년을 살면서 저자는 이빨이 세 개나 빠졌다 한다. 그런 심란한 환경이 월세가 15만원이나 한단다. 입주민들은 모두 기초수급자로 정부에서 받는 돈에서 월세를 제하고 남은 돈은 다 빚을 갚는데 쓴다. 하루 세 끼는 엄두도 못 내고 한 끼 먹으며 살아간다.
바보 같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솔직히 우리나라에 이토록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줄 몰랐다. 그들 대다수는 장애가 있고 몸이 아프고 나이가 많고 알콜 중독도 많기에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수급비는 연명만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이지만 그거라도 없으면 다들 노숙자가 될 판이었다. 세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일하기엔 장애가 있고 늙고 병든 이들이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은 다들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랄 겹겹의 생의 스토리들을 갖고 있다. 어찌어찌 생의 고비를 넘다보니 지금의 상황에 도달해 있었다.
여인숙 달방에서 365일 산 것도 대단하지만 저자에게 또 감탄한 이유가 있다. 저자가 전직 국어교사라는 사실이다. 명퇴를 해서 몇 년 빨리 교단을 떠났는데, 은퇴 후에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계시구나 했다. 나도 은퇴 후에는 사회에 좀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책 제목이 '인간의 시간'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겸허해지고 인간의 시간은 어떤 것인지 되묻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풍요 속에서 서로 돕는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나만 잘살겠다는 '짐승의 시간'을 살고 있구나 하는깨우침이 뒤따라온다. '인간의 시간'을 촬영하기 위해 그들 삶 속으로 용감하게 성큼 들어간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올해 괜찮은 에세이를 많이 읽었는데, 연말에 읽은 이 책이 단연 최고다. 소재의 깊이와 내용을 다른 책이 따라오기는 어렵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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