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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사회, 과학

백년 동안의 증언 / 김응교 _ 간토대지진과 그 이후

by 릴라~ 2023. 10. 10.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에 발생한 진도 7.9의 간토대지진. 같은 날 오후 3시부터 학살극이 시작된다.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일본어 발음 중 까다로운 것을 발음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이 가해진다. 자연이 초래한 어마어마한 재앙은 그 이상의 참혹한 비극을 낳는다. 
 
지금도 일본 정부는 유언비어 때문에 벌어진 학살이었다고 이야기할 뿐 그 유언비어의 진원지는 말하지 않는다. 불안과 두려움을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분출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막으려 했다는 것을. 그래서 학살된 사람 중에선 일본인도 포함되었다. 일본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이 주요 표적이 되었고, 도쿄 발음을 잘 못하는 오사카 사람도 끼어 있었다. 평소 국가 폭력에 억압받아 온 일본인들은 다른 대상에게 똑같이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그 분풀이를 했다. 

이 책의 가치는 간토 대지진의 경과를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책장을 넘기다가 간토대지진이 우리 문학사에 끼친 영향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간토대지진으로 많은 조선인 작가들이 일본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하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그것이 한국문단의 문예 전성기를 불러왔다고 한다. 대표적인 작가가 김동환, 김소월, 박용철, 양주동, 이기영, 채만식, 이상화 등이다. 이기영은 이 비극적 사건을 '두만강'이라는 소설로 기록했고, 이상화 시인이 1925년 쓴 시 '통곡'에는 간토대지진의 영향이 드리워져 있다.
 
하늘은 홀기니
울음이 터진다
해야 웃지 마라
달도 뜨지 마라 (통곡 / 이상화)
 
이상화 시인은 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 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더이상 일본에 머물지 않고 귀국해 버린다. 이후 이상화의 시에 경향성이 두드러지는 것도 간토 대지진의 경험을 빼놓을 수 없다. 이기영, 김동환, 이상화, 김용제 등 귀국 작가들은 간토대지진을 기점으로 신경향파와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참여한다. 
 
책의 후반부는 간토대지진과 자이니치 문제에 대해 양심적 목소리를 내온 일본 작가와 연구자들에 대한 내용이다. 박열을 변호했던 후세 다쓰지의 삶이 매우 인상 깊었고, 윤동주 연구자로 잘 알려진 오무라 마스오 교수가 등장해 반가웠다. 저자의 스승이라 한다. 이분들은 국적에 한정되지 않는, 진정한 인간이었다. 그 노력이 계속되어왔기에 '백년 동안의 증언'이다. 2010년대 일본을 강타한 헤이치 스피치에 맞서 야쿠자들이 일으킨 카운터스 운동도 인상적이었다. 
 
아쿠타가와 문학상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의 글도 발췌해둔다. 반어와 풍자로 가득한 이 글을 보며 '선량한 시민'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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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량한 시민이다. 그러나 내 소견에 따르면, 기쿠치 칸은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

계엄령이 선포된 후, 나는 담배를 입에 문 채, 기쿠치와 잡담을 주고받았다. 잡담이라고 해봤자, 지진 외의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그 가운데 나는 대화재의 원인은 ○○○○○○○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기쿠치는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그건 거짓말이야! 자네." 하고 다그쳤다. 나는 물론 그렇게 듣고 보니, "그럼 거짓말이겠네" 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왕에 한번 더 "아무래도 ○○○○는 볼셰비키의 앞잡이인 것 같아" 라고 말했다. 기쿠치는 이번에는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거짓말이라니까, 자네, 그런 말은."라며 다그쳤다. 나는 다시 "헤에, 그것도 거짓말인가?" 하고 금세 스스로 한 말을 철회했다.

다시 나의 소견에 따르면, 선량한 시민이라는 것은 볼셰비키와 ○○○○의 음모론을 믿는 자이다. 만약 믿지 않는 경우라면, 적어도 믿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어야만 한다. 하지만 야만스런 기쿠치 칸은 믿으려고도 믿는 척조차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완벽히 선량한 시민의 자격을 포기했다고 봐야만 할 것이다. 선량한 시민이 됨과 동시에 용감한 자경단의 일원인 나는 기쿠치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장 선량한 시민이 된다는 것은, 어찌하든 고심할 필요가 있다. 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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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기영 소설 '두만강'의 한 대목. '고향'은 대학 때 읽었는데 '두만강'은 못 읽었다. 기회 될 때 봐야겠음.

우리도 어젯밤에 '조센징' 을 죽였소. 어제 낮에는 조선 노동자들이 떼를 지어서 몰려다니는 것을 붙잡아다가 새끼줄로 한데 엮어서 다마가와  강물에다 집어 쳐넣었소. 그 놈들이 물 위로 떠서 헤엄쳐 나오려는 것을 손도끼를 들고 뛰어들어서 놈들의 대갈통을 모조리 까 죽였소.강물이 시뻘겋게 피에 물들도록…. (중략)

나는 어제 무고지마向島]에서 큰길거리를 지나가는데 길 한가운데에 '조센징'의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을 보았소. 무심히 그냥 시체 옆을 지나려니까 몽둥이를 들고 섰던 헌병 장교 한 사람이 나에게 몽둥이를 내주면서 “송장을 한 번씩 때려라!" 하겠지 -- 나는 웬일인지 몰라서 잠시 덩둘해 있었더니 그 장교가 말하기를 “만일 시체를 아니 때리면 그 대신 당신이 맞아야 한다." 하기에 어찌할 수 없이 나도 시체를 한 번씩 때렸고.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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