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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철학, 심리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파울 페르아에허 __ 걍 최고임

by 릴라~ 2023. 10. 2.

이 책은 단지 심리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에는 반드시 타자 맟 집단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의 서사가 깃들어있다. 뇌의 작용과 신경 호르몬 등 개인적인 성향이 당연히 영향을 미치지만, 정체성의 본질적인 내용은 반드시 외부 세계로부터 온다. 그리고 오늘날, 그 외부 세계가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 인간의 이타심이 아니라 이기심만을 극도로 강조하는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왜 이런 모양과 이런 지향으로 살고 있는지, 특히 젊은이들이 왜 그러한지 이 책보다 더 잘 설명하는 책은 없을 듯하다. 종교는 사라졌지만 이제 성공이 그 자리를 대체했고, 종교적 신념 대신에 외부의 '평가'가 그 권위를 대체했다. 사람들은 과거 종교에서 죄책감을 느꼈듯이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고 불안해한다. 좁게 말하면 시험 점수가 문화적 전통이나 종교적 신념을 대체한 사회가 현대이다. 그 과정을 철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을 관통해서 종합적으로 설명해주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부제는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 너무 좋아서 두 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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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설명은 보수 진영에서 나왔다. 왕따는 다른 많은 사회문제들이 그렇듯 우리 사회에서 규범과 가치가 실종된 결과라는 것이다. (...) 두 번째 설명은 정신의학 분야에서 제시했다. 범죄자는 '장애인'이다. 병이 아니라면 어떻게 엄마가 제 자식을 학대할 수 있겠는가? (...) 세 번째 설명은 앞서 내놓은 의학적 설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의 분성, 우리 안에 숨은 짐승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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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외부 세계가 우리 몸에 새겨 넣은 관념의 집합이다. 정체성은 하나의 구조이며, 이는 사실은 과학 실험과 상당히 유사한 방법으로 입증할 수 있다. 그 방법은 바로 입양이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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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존재보다 성장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고, 성장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탄생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전세계적으로 관찰되며, 유전적인 근거를 갖는다. 예전에는 이를 두고 '동화'라고 불렀지만, 거울 뉴런이 발견된 이후엔 '미러링', 즉 반영이라 부른다. 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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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및 반영과 나란히 또 하나의 과정이 진행된다. 바로 자율성, 타인과 구분하기, 분리를 향한 노력의 과정이다. (...) 이런 거리 취하기를 통해 우리가 '혼동할 수 없는 독자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소위 '반항기'를 다 겪어보았을 것이다. (...) 
 
사춘기가 되면 다시 한 번 넘치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반항기가 찾아오고, 이번 반항은 독립의 망상을 동반하지만 청소년기의 반항은 결국 대안의 내용, 즉 다른 동화를 선택하는 쪽으로 흘러갈 뿐이다. 정체성은 항상 일치와 분리의 상호작용이 낳은 일시적인 결과물이다. 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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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소위 신경의 가소성이다. 즉 우리에겐 특정 요인의 영향을 받으면 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특징이야말로 인간 종의 성공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다. 어떤 사람을 아무 장소에나 갖다 두어 보아라. 어디든 상관없다. 아마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하여 잘 헤쳐나갈 것이다. 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태어나는 순간 인간의 뇌는 아직 신경학적인 관점에서 완벽하지 않다. 따라서 차후 전반적인 발달 과정을 거쳐야만 하며 이 과정에서 주변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심리적 정체성에 적용해보면, 정체성(소프트웨어) 형성의 과정을 결정하는 특정 조직(하드웨어)을 우리 뇌가 갖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거울 뉴런이 없다면 정체성도 없다. 하지만 무엇이 거울에 비칠 것인가는 환경이 결정한다. 출생 이후 뇌의 물리적 발전에도 환경은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는 화학세포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내용은 외부 세계가 채워나간다. 
 
그러니 유일하게 정확한 학문적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뇌(조금 넓게 보아 유전자, 신경, 호르몬의 기초)와 우리 환경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낳은 결과이다. 탄생 직후에는 소위 본성과 양육을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외부 세계 요인의 영향은 심지어 뇌 구조까지도 바꿀 수 있다. p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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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역사와 신념, 우리가 속한 사회계층, 우리의 문화,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성장 질서를 형성한다. 더 큰 집단과 공유하는 서사적 전체의 상위개념인 거대서사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서사에서 어느 정도 공통된 정체성이 탄생한다. 어느 정도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집단의 크기 차이 역시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출발점은 항상 '진짜' 사건이다.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모호해지고 점차 신화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정체성은 로마에게 저항한 바타비아 사람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며, 플랑드르인의 정체성은 1302년 프랑스 귀족들을 무찌른 도시 길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두 사건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바 없는 낭만적 상상의 결과물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들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에 광채를 더하는 이야기들이다.
 
이것들이 커다란 의미가 있는 이유는 서로 공유하는 서사가 우리에게 실존적 문제의 해답을 주기 때문이다. (...) 여러 가지 대답, 때로 매우 다양한 대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정체성도 다양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진짜 함부르크 사람이나 진짜 뮌헨 사람은 뭄바이나 도쿄 사람과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자라는 청소년이라 해도 어떤 환경, 어떤 사회계층에서 성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대답을 들을 테고 다른 정체성을 키울 것이다. (...) 또 문화가 풍성할수록 선택할 수 있는 대답도 더 풍성하고 당연히 정체성도 더 다양할 것이다. p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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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타인들이 우리의 몸에 새겨 넣은 특성들의 집합으로 대개 우리의 출신과 운명에 관한 견해들의 총체이다. 이는 동시에 우리가 우리의 몸, 이성의 몸, 그리고 권위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정해준다. 몸은 외적인 것, 음식과 섹스, 고통과 질병, 죽음을 대변한다. (...) 이런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든 즉각 '너답다', '전형적이다'라는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대답은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고정 메뉴인 것이다.  (...)
 
이런 비교에서 끌어낸 결론은 놀랍다. 우리의 정체성은 개인의 특성들을 모아놓은 중립적인 단일체가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습득하거나 습득하지 않은 규범 및 가치와 더 관련이 깊다. 규범과 가치를 둘러싼 오늘날의 사회적 논란은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
 
모든 정체성은 서로 연관된 이데올로기에서 발원한다. 나는 여기서 이 개념을 매우 넓게 사용할 것이다. 즉 인간관계 및 이를 규제하는 최고의 방버에 대한 각종 견해들의 전체로 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다른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응이다. 그 결과 나름의 규범과 가치를 갖춘 "우리는 다른 서사에 반대한다"가 탄생하고, 이는 '전형적인' 사회주의자, '전형적인' 가톨릭교도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 및 각자의 정체성이 다른 이유는 신체 및 타인을 대하는 '정상적' 태도, '옳은' 태도가 무엇이냐에 대한 견해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질병과 죽음을 대하는 무신론자의 자세가 종교인의 자세와 다를 가능성은 매우 크다. (...)
 
물론 방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모든 이데올로기는 향락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규제한다. 나아가 모든 이데올로기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자신의 규정을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데올로기는 원시적이고 낡았고 타락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p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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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의 입장에서 보면 정체성 발달은 이중의 위험을 안고 있고, 이는 항상 공격성으로 귀결된다. 한 사회에서 첫 단계, 즉 동화가 너무 일방적으로 진행되면 똑같은 사람으로 구성된 집단이 탄생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는 권위자가 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든 공격성이 바깥을, 다른 집단을 향하도록 조절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 (...)
 
두 번째 위험은 정체성 발달에서 집단 형성의 측면이 너무 약해 구분과 개인주의가 너무 강조되는 경우에 나타난다. 경쟁심, 사회적 고립, 고독이 초래된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를 두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보았다고 생각하는 거울상을 향한 나르시시즘적 공격성이라고 부른다. 결과는 질투를 유발하는 끝없는 좌절이며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격성이 가까운 주변의 타인을 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차리를 보이는 사회는 완벽한 동화를 꿈꾸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기 힘들다. 두 가지 형태 모두 폭력을 촉진한다.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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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타인과 나누는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 혹은 넓은 의미의 환경과 문화에 달려 있다. 우리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환경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이 과정은 일생 동안 지속되며 우리의 '나'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물론 성인의 변화는 센세이셔널한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뉘앙스의 차이, 강조점의 이동 및 확대에 그치지만 그럼에도 쉰 살의 우리와 쉰 두 살의 우리는 다른 사람이다. 그 사이 손주가 태어나 할머니 할아버지라도 된다면 정말로 많이 달라질 것이다. p41
 
정체성을 형성하는 메시지가 타인이나 집단에서 오기에 한 집단 내부에 있는 개인의 정체성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런 의미에서 집단 정체성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다. 뮌헨 사람, 네덜란드 사람, 유럽 사람,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포괄적 정체성 역시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다. 즉 원초적 버전은 없다. 하나의 신화적 버전만 있을 뿐이다. 집단 정체성 역시 상호작용을 기초로 형성된다. 물론 더 확장된 환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형성된다. 그럼에도 이런 집단 정체성 역시 완성되는 법이 없다.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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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사회는 세분화된 풍성한 이야기들을 제공하여 구성원들이 나름의 정체성을 창조하도록 도와준다. 이런 맥락에서 '가득 찼다'는 말은 큰 우물에서 실존적 질문의 해답을 마음껏 길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물에 물이 없다면, 아무리 거울을 들여다봐도 틀에 박힌 이미지 밖에는 건질 수 없을 것이다. 심한 검열로 구성원들에게 규격화된 서사만 제공하는 사회는 틀에 박힌 인간만 생산한다. 이 둘의 양극단 모두 전형적인 정체성 장애를 일으킨다. (...)
 
열린 사회에서는 다양한 서사가 공존하기에 선택 가능성이 넓고, 이런 열린 성격의 반영인인간은 더 열린 정신의 소유자로 커나간다. (...)
 
마지막으로 안정된 사회와 불안한 사회가 있다. 이런 특징은 무엇보다 지배 서사와 관련이 있다. 지배 서사가 강할수록 교류는 안정되고 더 불어 정체성의 형성도 안정된다. 하지만 너무 과도하게 안정되면 사회가 굳어 권위적으로 변할 수 있다. (...)
 
물론 오늘날엔 이런 위험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저울추는 오히려 반대쪽으로 너무 쏠려 있다.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유동적 현대에서 명확한 서사가 없을 경우 이를테면 유동적 정체성이 탄생한다. 이렇게 흔들리는 정체성은 정해진 경계를 넘어 경계성 인격장애로 치닫는다. 불안한 정체성이 쉬지 않고 감정의 변화를 야기하는 질병 말이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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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앚는 것은 다른 형태를 띠고 다시 떠오르게 마련이다. 소위 규범과 가치의 상실 이후 역설적으로 우리 곁엔 생명 윤리, 언론 윤리, 의학 윤리, 계약 윤리, 간병 윤리 등 온갖 윤리가 넘쳐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 
 
우후죽순으로 솟아나는 온갖 윤리는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기괴한 기계장치를 낳았다. 수많은 규칙과 방침이 있다. (...) 안 그래도 잡무가 많아 죽겠는데 온갖 위원회들이 생겨나면서 수업 준비에 쏟을 시간만 줄어든다. 그렇게 본다면 윤리는 과학과 기술 바깥에 있다. 심지어 과학 및 기술과 대립되며, 넓은 의미의 노동 세계와도 대립된다. 그러니까 마침내 우리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최대한 빨리 윤리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것이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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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힘들게 하는 온갖 구질구질한 규정들 탓에 우리는 윤리의 원래 의미를 놓치고 있다. 정확히 말해 규범과 규범과 가치는 자신의 신체 및 타인의 신체를 대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기에 우리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로 보아야 한다. (...)
 
우리가 정체성을 우리의 일부로 보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에 들어서이다. 더불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보다 훨씬 덜 독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반면 규범과 가치는 외부 세계의 것이기에 이를 우리의 일부로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는 윤리에 깃든 평가의 성격 탓이다. 지금 같은 정치적 올바름의 시대에 도덕적 비판을 포함한 가치판단이란, 모두가 애당초 의심스럽기에 그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윤리를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항상 부담스러운 외부의 규칙 체계로 바라보는 오늘날의 입장은 우리에게 정확히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특정 변화의 결과이다. 변화된 사회는 일련의 새로운 규범과 가치를 우리에게 부과했고, 우리는 즉각이를 규범과 가치로 인식한다.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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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목표는 자신과 가족이 최대한 행복해지는 것이며, 자신이 공동체의 우수한 구성원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두 가지 목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보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조온 폴리티콘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보통 '사회적 존재'라고 번역하지만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폴리티콘은 폴리스에서 왔고 당시의 도시국가와 동시에 서양 민주주의의 전신을 지칭한다. 따라서 더 정확한 번역은 '공동체적 동물'일 것이다. 한 인간이 가장 바람직하게 발전하여 자기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깨닫는다면 그는 완벽한 가치를 지닌 사회 구성원이 될 테고 이를 통해 행복해질 것이다. p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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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윤리를 고유한 성격의 발달, 즉 자아실현과 동일하게 보았다. 이런 본질주의적 인간관은 개인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기독교 시대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 윤리는 밖에서, 신의 심급에서 우리에게 부과되는 것이다. 공동체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그리스 시민 쪽에서 내세의 구원을 바라며 스스로 고행을 택하는 신심 깊은 기독교인 쪽으로 바람직한 인간상이 이동한 것이다. 자아실현이 자기부정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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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우리의 자아상을 얼마나 바꾸어놓았는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덕을 비교해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고대의 윤리는 관습과 성격을 하나로 본다. 그래서 자아실현을 높이 평가한다. 인간의 본성은 하나의 목표를 추구한다. 자신을 보살피고 자제하여 훌륭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최고의 지도자는최고의 자기인식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
 
기독교는 윤리를 인간을 능가하는 것, 인간을 '초월하는' 것, 즉 신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일부로 본다. 나아가 인간의 본성은 나쁘기 때문에 선한 것, 신적인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부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짜피 신적인 것은 내세에서나 얻을 수 있다. (...)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일해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편이 더 낫다. 최후 심판의 날에 결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위해서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니다. 신앙인은 신에게만 의무를 진다. p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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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인들이라면 인간이 자연 바깥에, 심지어 자연 위에 군림하며 따라서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더한 오만과 교만을 알지 못할 것이다. (...) 호모 사피엔스는 완벽하게 자연의 일부이다. 우리의 교만으로 인한 벌은 우리가 이 자연을, 우리의 생활공간을 우리가 살아가기 어려운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p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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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화론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유기체와 똑같이 진화를 겪는다. (...) 다윈이 말한 적자는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한" 자였다. 그런데 스펜서를 거치면서 "가장 성공한"., "가장 강한" 자로 의미가 변했다. 특정 집단이나 계급은 다른 것들보다 더 강하고 모든 것을 습득한다. 더 약한 것들은 점차 멸종하는데, 이는 세계의 자연적 흐름에 부합한다. (...) 
 
이런 단순한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종양 같은 질병을 막는 비법은 명확하다. 약한 집단은 방해물이며, 심지어 전염의 위험까지 있으므로 자연도태를 통해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 한다. 사회진화론의 실행판이라 할 우생학은 그렇게 탄생했다. p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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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장에서 나는 서구의 종교가 정체성과 윤리를 어떻게 새로운 내용으로 채웠는지 설명했다. 그 사이 종교의 기능은 학문(과학)으로 넘어갔고, 이제 우리의 궁금증은 학문이 정체성과 윤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향한다. 그 책임은 자연과학의 원칙과 방법을 거의 모든 분야에, 심지어 인문과학에게까지 적용해버리는 지극히 특정한 변종 학문에 있다. 이런 변종을 우리는 '과학주의'라 부른다. 이 과학주의가 현재의 무대를 지배하고 있다. p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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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담당하던 기능이 "이성의 성전"으로 넘어가면서 프랑스 공화국의 이데올로기가 과거 종교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 역시 과거의 종교가 그러했듯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할 경우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여러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서로 자기만 옳다고 싸움을 시작하면 종교나 이성의 이름으로 종교전쟁 혹은 이데올로기 전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세속화된 종교들 역시 빠른 속도로 교체되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그리고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이라 선언했던 최후의 변종 자유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지금보다 더 나은 새로운 세상을 약속했다. (...)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성이냐 믿음이냐를 선택하는 데서 갈린다고 한다. 과연 정말 그럴까? p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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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리에 학문(과학)이 들어섰다. 그리하여 학무은 앞에서 우리가 던졌던 질문을 제기한다. 이 사실은 우리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우리가 종교로부터 배운 사실과 어떻게 다른가? 학문을 과학주의 모델로 축소하면 종교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 불쾌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진실이다. 차이보다는 일치하는 점이 훨씬 더 많다.
 
종교와 과학주의는 둘 다 개인에게 분열된 정체성을 안겨준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쁘고 죄가 많다. 혹은 비합리적이고 우매하다. (...) 종교도 과학주의 학문 모델도 현재의 인간을 불완전하다고 본다. (...) 두 경우 모두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다. p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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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주의는 다른 견해들에 비해 극도로 비관용적이다. 둘 다 자신의 시각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신에게서 오기 때문에, 과학주의는 자연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기에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다. 둘 다 무지한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기네가 더 우월하다고 믿는다.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마침내 이데올로기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 인위적으로 완벽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라는 관념은 고물상에 처박혔다. 변화와 형성 가능성은 여전히 열쇳말로 남아 있지만 이제는 새로운 적용 영역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개인이다. 지난 세기의 종말은 동시에 급진적으로 새로운 정체성 개념이 등장했음을 알린다. 너는 너 자신을 창조해야 하고, 바로 그 일을 해내야 한다.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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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보면 심리학의 찬란한 개화기였다. 개인은 해방되었고 아무 방해 없이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유는 극도로 상대적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최신 버전의 사회진화론이 귀환했기 때문이다. 다만 '자연도태'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개인을 노린다. 다른 남자들과 여자들을 희생시켜 성공을 일구어내는 자가 가장 강한 남성 혹은 가장 강한 여성이다. 판단의 기준은 성공이다. 이 버전 역시 과거 버전의 사회 진화론처럼 서둘러 사이비 과학적 하부 구조를 구축한다. 이번에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비유를 반드시 거론한다. (...) 따라서 반칙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반칙도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글자이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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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인간의 본성은 환경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언어이다. 언어는 두말할 것 없이 유전적 기초이다. 하지만 어떤 유전학자도 영어 유전자, 프랑스어 유전자, 독일어 유전자가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하지 못한 아이는 절대 말을 배울 수 없다. 실현되는 환경에 따라 본질적인 특성들이 전혀 다른 현상 형태를 띨 수 있는 것이다.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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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심리학자인 드 발은 점진적 변화와 여러 동물 종의 차이, 특히 인간과 영장류의 차이에 주목한다. (...)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언어이며, 이와 결합된 사고력과 의식, 이로부터 나온 의지의 자유를 들 수 있다. 둘의 차이는 대단하다.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을 연구하기 위해 영장류를 연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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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상황에서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같이 느낀다. 실험 대상자의 뇌에서 비록 같은 강도는 아니라 해도 같은 부위가 활성화된다. 하짐나 게임을 할 때 우리를 속인 상대가 고통을 느끼면 소위 말하는 쾌감 센터에 불이 들어온다. 남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좋아한다는 신경학적 증거이다. 게다가 이런 반응은 거의 남성에게만 나타난다. p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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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연구는 정체성 문제의 답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몇 가지 확실한 결론을 허용한다. 인간은 안정과 협력을 보장하는 사회적 서열이 필요한 무리 동물이라는 결론 말이다. (...)
 
또 모든 문화는 무엇보다도 교환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다라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 모든 정체성은 그것이 발달하는 공동체의 영향을 받으며, 따라서 이 특정 공동체 내의 전형적인 교환 방식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말이다. 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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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을 시작할 때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유전자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경쟁하는 개인들이며 최신 버전의 사회진화론이 주장하는 대로 강자가 승리를 거둔다는 생각 역시 널리 퍼져 있다. 이런 생각은 틀렸다. 정체성은 대부분 환경에 의해 결정되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동체 동물이다. 또 인간의 진화론적 유산에는 협력과 이기주의, 두 가지 성향이 모두 들어 있다. 어느 쪽이 우선권을 쥐느냐는 환경에 달려 있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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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하게 말하면 당시의 평균적인 플랑드르 사람이나 네덜란드 사람은 오늘날의 플랑드르 사람 혹은 네덜란드 사람보다는 오히려 오늘날의 무슬림들과 더 비슷할 것이다. 규범과 가치가 타락했고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요즘의 한탄은 규범과 가치가 변했으며, 더불어 정체성도 변화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애써 외면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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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68세대에게 손가락질을 해댄다. (...) 좌파 복지국가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란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런 구호를 앞세운 우파 정당과 극우파 정당들이 서유럽 곳곳에서 호응을 얻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가 오늘날 경험하는 것들은 새로운 규범과 가치로 새로운 정체성을 빚어내는 새로운 사회 모델의 결과이다. 나는 이것을 '엔론 사회'라 부른다. 도발하려고 내가 의도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빚으로 산 우울한 향락이다.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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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광기로 인해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문제로 고민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날로 늘어나는 심리장애를 치솟는 이혼율과 달라진 교육 모델 탓으로 돌렸다. (...) 몇몇 사람들은 경제 위기 역시 실제 원인보다는 가상의 원인 탓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 가 사는 서구 사회가 반세기 전부터 이미 '상상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고'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이거야말로 우리 시대가 처한 최고의 역설이다. (...) 한마디로 지금의 서구인들은 역사상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이 나쁘다.(...) 우리의 한탄은 무엇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간이 무기력하다는 점에 집중된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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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림프 같은 저술가들이 모든 악의 원인으로 꼽는 복지국가는 탄생지인 영국에서 이미 1990년대에 공중분해되었다. 특히 의료 부문의 현 상황은 극도로 암울하다. (...) 
 
두 번째 설명은 조금 먼 과거에서 원인을 찾는다. 1968년 5월의 아이콘인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아이러니하게도 거대 서사의 실종을 이야기한다.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수세기 동안 공동체의 정체성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이 논리의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그들의 영혼 없는 도구적 합리성에 모든 책임이 돌아간다. 리오타르는 이제 현대인이 믿을 수 잇는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정체성도 기댈 언덕이 없다.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이다. 해결책은 새로운 거대 서사의 구성에 있다. 우리가 함께 믿을 수 있고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길러낼 수 있는 거대서사 말이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그런 풍요로운 서사를 어떻게 완성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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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설명은 첫 번째보다 토대가 튼실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한동안은 이를 믿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두 설명이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의 결론은 하나다. 옛날이 더 좋았어! 이런 생각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가슴이 아프다. (...)
 
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의 정체성에 극도의 불만을 품고서 과거의 정체성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면 이는 단 한 가지 의미가 있다. 즉 새로운 정체성이 주도권을 쥔 것이다. 나아가 새로운 정체성의 방향을 잡아주는 새로운 지배 서사가 권위를 얻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그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생크림 효과이다. 정체성을 형성하는 서사는 강제성을 잃었을 때 비로소 정체가 드러난다. 서구에서는 최근까지도 종교가 그런 서사였다. 기독교 서사가 강제성을 띠었을 때는 서사와 현실이 동일했다. 강제성을 잃고 나자 비로소 종교를 서사로 볼 수 있게 되었다.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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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경제가 종교, 윤리, 사회의 조직들로 이루어진 전체 조직에 끼어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에선 그렇지가 않다. 윤리와 사회가 '시장'에 복종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 이론으로 그치지 않는, 훨씬 더 포괄적인 이데올로기이다. (...)
 
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방만함과 과도함을 지적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꾀한다. 즉 자유시장의 자체 규제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국가 기능을 은행과 다국적기업의 보호자로 전환시키려 애쓰는 것이다. 개인 영역과 관련된 모든 것, 학교, 의료, 보안은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 일에는 국가가 단 한 푼도 지출해서는 안 된다. (...)
 
지난 3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정체성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이 시스템은 우리의 모든 개인적, 집단적 욕망을 거스르면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사고를 식민지화했나? 두 번째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먼저 신자유주의의 무화과 잎사귀, 그 정당화 수단을 조금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메리토크라시, 능력주의이다. p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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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단계엔 능력주의도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전통과 연줄, 연공서열을 기초로 작동하던 사회나 기관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마침내 능력에 따른 임금 수령이 가능하다. 마침내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잠시 안정된 단계가 찾아오지만 결국 시스템은 정반대로 바뀌고 만다. 나는 능력주의가 3장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던 이론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야 이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그 이론은 바로 사회진화론이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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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긍정적 효과는 채 한 세대를 넘기지 못했다. 오늘날의 젊은 학자들은 자신의 경력을 자신이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자기가 일하는 대학과 일체감도 없는 데다 동료의식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원인은 능력주의 평가 시스템이 신자유주의 평가 시스템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내가 신자유주의라고 굳이 명시한 이유는 그 평가 시스템이 생산의 양적 측면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
 
이런 발전은 우연이 아니다. 구조에 따른 변화이며, 따라서 피할 수가 없다. 능력주의는 중앙에서 조종하는 꽉 짜인 시스템에서만 가동된다. '생산'과 각자의 개별적 기여를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시스템 특성상 한정된 숫자의 '승자'만 있을 수 있다. (...) 결국 소수의 몇 사람만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로 인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며, 성공의 기준은 다시 더 높아지고 엄격해진다. 이런 경쟁은 개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각종 순위들이 주식시세처럼 쏟아지면서 대학 총장들의 밤잠을 앗아간다. p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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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체적으로도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 중산층이 자취를 감추고 다수의 하류층을 디딤판으로 삼아 소수의 상류층이 혜택을 누린다. 사회관계는 날로 공격적으로 변한다. (...) 하지만 가난한 자들은 계속 가난해야 한다. 도움은 물질적 궁핍을 줄여주는 데 국한된다. 사회적 해방은 절대 안 된다. 자선 사상이란 사회문제를 빈곤의 문제로 바꾸어 정의한다. 기회의 빈곤 같은 개념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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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인물이 단단한 애착 관계를 조성해주는 안정된 환경에서 최고로 발달한다. 조금더 쉽게 설명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일관성 있게 그들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느낀다. 형식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내용은 반영 과정을 거쳐 순식간에 전달되고, 아이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키우게 된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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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성공한 정체성의 형식적 조건보다 내용적 특징을 따지는 질문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거울을 내미는가? 그 거울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것은 모순돼 보이지만 서로 관련이 있는 두 가지 비판에서 도출될 수 있다. 첫째는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성공만 추구하는 개인주의자로,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비난이다. 두 번째는 정확히 반대로, 요즘 젊은이들이 노력하지 않고 일도 안 하려고 하고 과실만 따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 번째 집단이 도출된다. 장애라는 꼬리표가 붙은 집단이다. 이 세 집단은 우리에게도 거울을 들이민다. 이들이 우리를 키운, 우리와 함께 성장한 지배 서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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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숙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든 교육은 때가 되면 언젠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에 도달한다. 내가 약간 비장한 마음으로 '결핍'이라 부르고 싶은 힘든 상태를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 순간이다. 엄마가 항상 옆에 있지는 않고 아빠도 슈퍼 대디가 아니다. 설사 부모가 곁에 잇어도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애정을 갖고 자식을 대한다 해도 필연적으로 실망하는 순간이 온다. 어떤 현실도, 어떤 제품도 우리의 욕망과 욕구에 대한 완벽하고 확정된 대답은 줄 수 없다. 교육의 질은 한 아이가 이 피할 수 없는 실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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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실존적 문제들과 마주치는 순간 전형적인 인간의 특징이 고개를 들이민다. 가능한 모든 대답을 생각해내는 창조성 말이다. 인간은 집단일 때도 창조성을 발휘한다. 따라서 결핍의 해소를 위해 점점 더 큰 단위가 형성된다. 이중에서 종교와 예술이 가장 오래된 형태이며, 학문이 가장 최근의 형태이다. 물론 이 단위들 중 무엇도 최종 해답을 줄 수는 없다. 때문에 우리는 꼐속하여 대답을 찾는다.
 
결핍 상황에 대한 확정된 대답이 없다는 인식은 물론이고, 그럼에도 대답을 찾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은 성공한 교육의 징후이다. 부모가 자신들이 줄 수 있는 것에는 물질적인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의 모든 소망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자식에게 가르친 것이다.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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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모니터에서, 모든 광고판에서 익숙한 모토가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 모든 결핍은 해소될 수 있다. 모든 것에는 안성맞춤인 제품이 있다. 무한히 즐기기 위해 굳이 내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삶은 큰 잔치판이다. '성공'이라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조건이 고무젖꼭지 아이들에겐 낯설다. 그동안 모든 실망, 모든 고통, 모든 결핍을 부모가 제거해주었기 때문이다. (...) 그런 젊은이들은 절대 복지국가의 산물이 아니다. 미친 듯한 속도로 복지국가를 목 졸라 죽이는 소비사회가 쓰다 버린 쓰레기이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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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과 공산주의의 후과로 인해 권위에 대한 과도한 의심이 자란 나머지 교실에서도 서둘러 권위를 추방했다. 가치나 권위를 강조하지 않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가르쳐라! 그럼 저절로 청렴한 성년 국민이 될 것이다. (...) 
 
능력 지향적 수업의 출발점은 직장에서 필요한 자질의 양성이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의미 있는 개념 확장이 시작된다. 강조점이 실질적인 능력(예를 들어 언어나 소통)에서 인성 특징(유연성)으로, 결국엔 인성 자체(자기 인생의 경영자로서의 인간)로 이동한다. 출발은 희망에 찬 이념이었다. 재미있고 현실에 가까운 환경에 놓아두면 아이들은 저절로 배운다. (...) 요즘엔 적절한 학습 환경에서 학습 과정 동반자가 코치의 임무를 다하여 학습 과정을 촉진시킴으로써 학생들의 자질을 자본화할 수 있어야 한다. p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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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교육 이념과 비교해보면 차이를 더 심각하게 느낄 수 있다. 과거의 '교육 모델'은 젊은이들이 나이 든 권위자에게 광범위한 지식과 문화를 전달받는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당연히 가치와 규범도 교육 내용을 구성하는 성분이었다. 어른들은 권위를 바탕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지식을 전달했다. 그러나 요즘의 자질 모델은 개인을 타인을 이용하여 능력을 키우는 자유로운 경영자로 본다. 신자유주의의 득세는 일상의 언어를 바꾸어놓은 것은 물론이고 다음과 같은 어법들도 양산했다. "지식은 인적자원이다" "경쟁력은 자본이다" 우리 젊은이들은 이런 자본을 획득하고 늘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학습은 장기 투자다"(...)
 
오늘날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기관리'와 '기업가 정신'이다. 젊은이는 자신을 미니 기업으로 보아야 하며, 경제적 의미 차원에서 지식과 능력이 처음이자 마지막 심급이다. 이로써 자신의 시장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p17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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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연대감이라고는 모르는 경쟁적인 개인주의자로 자란다면 이는 경쟁과 개인주의를 장려하는 교육의 결과물이다. (...) 첫째, 아이들이 알아서 '올바른' 규범과 가치를 체득할 거라는 생각은 틀렸다. 아이들은 주변 환경의 윤리를 받아들인다. 둘째, 가치에서 자유로운 학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모든 형태의 수업은 가치를 전달한다. 셋째, 권위가 쓸모없다는 말은 교단에 서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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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에는 뒷면이 있다. 이 시대의 동전에도 피할 수 없는 이면이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는 현실이다. 열 살만 되어도 벌써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향후 정체성은 패배감 위에 세워진다. (...) 요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들을 수 있는 최악의 욕설이 '루저'이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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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이런 관점의 기본 사상은 누가 봐도 뻔하다. 성공이 새로운 도덕의 기준이라면 새로운 비도덕적 인간은 실패자이다.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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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만인을 위한 자유와 자율의 이념에서 시작되었다. 능력주의 정책도 초기엔 긍정적 결과를 낳는다. (...) 그러나 불과 몇 년 안에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선다. 최고의 인력, 즉 가장 생산적인 인력들만 보상을 받는다. 이런 목적을 위해 평가 시스템이 개발되고, 이제 이 시스템이 품질 기준을 하달한다. (...) 창의성과 자율성은 사라지고, 품질 검사와 직원 면담, 회계감사가 도입된다. 그러고나면 모든 것이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기결정권의 상실은 노동자의 참여 의욕을 떨어뜨리고 책임의식을 약화시킨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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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숫자가 늘어나면서 도덕은 사라지고 카메라의 숫자는 많아진다. 도덕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동기로의 후퇴이다.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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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존중이 공격을 당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자기존중은 대부분 타인의 인정에서 얻는다. (...) 
 
그러므로 모두가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외쳐대는 사회에서는 굴욕감과 죄의식,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 죄의식은 상황을 내가 좌우할 수 있다고, 실패를 막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노력이다. 진실은 그게 아니다. 진실은 더 단순하다. "당신은 중요하지 않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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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 수 있고 향상시킬 수 있는 인간이라는 관념과 더불어 자유는 현대가 주장하는 최대의 거짓말이다. 사회학자 바우만은 우리 시대의 역설을 아주 정확히 짚어냈다.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꼈던 적도 없었다."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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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유전자에는 두 가지 상반되는 기본 행동 모델이 숨어 있다. 하나는 매우 이기적이어서 분배와 지배를 추구하며, 다른 하나는 매우 이타적이어서 주고받기에 역점을 둔다. (...) 현재의 경제체제는 우리의 가장 나쁜 측면을 지원하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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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 혹은 한 지역 내의 소득 격차가 클수록 심리장애, 10대 임신, 영아 사망률, 가정 폭력 및 일반 폭력, 범죄, 마약 및 피임약 소비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불평등이 클수록 건강 상태, 교육의 결과, 사회적 유동성은 나빠지고 안정감과 행복은 줄어든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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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항상 유연성과 신속성, 효율성과 투지, "나 자신을 팔 수 있다"는 의미의 성숙함 같은 전형적인 특징들이 따라 붙는다. 과거엔 겸손이 미덕이었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덕목은 일탈행위다.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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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 정상적인 정체성의 판단 기준이라면 실패의 판단 기준은 장애 증상이다. 오늘날의 심리 진단은 다양한 형태의 실패를 반영하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사이비 과학이나 다름없는 '등수 매겨 내쫓기' 시스템으로 발전한다. 거의 모든 아동 장애를 학교에서의 실패와 연관 짓는 판단 기준의 문제는 앞 장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학습장애의 경우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ADHD, 일반 행동장애, 공격적-적대적 행동장애, 실패에 대한 공포까지를 학교와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대부분 이런 진단의 판단 기준은 사회의 과도한 기대의 다른 표현이며, 결국 학교에는 두 종류의 학생만 남게 된다.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과 장애아들. '정상' 아동은 보기 힘든 희귀 자원이 되고, 과거의 평균은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할 터부이다.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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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은 성인의 장애 중 상당수가 사회의 이상을 너무 잘 따랐기 때문에 생긴다는 점이다. 즐겨야 한다는 의무는 섹스 중독, 거식증, 쇼핑 중독 같은 잘못으로 이어진다. 열정적인 성격이 직장에서는 어느 정도 효율적이겠지만 일정한 한도를 넘어서면 치료하기 힘든 일탈로 돌변한다. 자기 관리 역시 마찬가지다. 과도한 자기관리는 나르시시즘적 인격장애라 부른다. 이 모든 경우에서 '성공'과 '장애'의 경계는 무척 가깝다. 반대편에는 공포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실패한 어른들이 있다.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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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수준을 너무 높이려고 하면 노이로제에 걸린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왜 나왔겠는가. 따라서 심리치료는 사람들에게 너무 엄격한 규범과 이로 인한 죄책감 및 수치심과 거리를 두라고 가르쳤다. 
 
그 사이 우리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든 것이 허용되고 소비가 의무인 매우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란다. 문제는 자력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서둘러 장애나 게으름의 꼬리표가 붙는다. 정체성은 확정되지 않고 탈선은 더 잦아진다. (...) 오늘날엔 훈육이 너무 적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정신과 의사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한다. 과잉을 잘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다. 따라서 치료 형태 역시 탈선한 기차를 다시 제 궤도로 올리기 위한 기초 행동치료와 심리 교육으로 이동한다. p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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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육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내재한다. 신자유주의가 상징적 권위 및 이에 대한 신뢰를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만인은 만인을 불신하고, 이는 지속적인 통제와 평가로 이어지며, 규제 철폐와 '자유'시장을 주장하는 온갖 외침에도 끝없는 규제와 날로 늘어나는 계약을 낳게  된다.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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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해방심리학은 개인이 규범과 가치를 갖춘 사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오늘날의 훈육 심리학은 개인과 그의 장애가 이 사회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보지 않으려 한다.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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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하지만, 정체성의 발달은 두 가지 기본 방향, 즉 타인과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과 자율을 지향하는 욕망에 의해 결정된다. 바람직한 경우 이 두 가지 욕망이 균형을 이룬다. 첫 번째 방향은 동일성의 욕망, 즉 집단 형성과 복종의 욕망이며, 두 번째는 차이, 즉 개인주의와 독립의 욕망이다. 사회 집단이 너무 약하게 형성되면 개인은 타인에게 다가가고픈 욕망을 강렬하게 느낀다. (..) 반대로 집단이 너무 강하게 형성되면 개인의 욕구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고, 조금이나마 자율을 얻기 위해 부과된 규칙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
 
공동체 의식이 실종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부상한 주요 원인은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서로 반목하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오늘날의 경제 모델이다. 따라서 동일성과 차이, 공동체 의식과 자율성의 균형을 되찾고 싶다면 오늘날의 노동환경을 바꾸고 경제를 다르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 과도한 평등은 과도한 차이 못지 않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으며 둘 다 전형적인 형태의 공격성과 공포를 불러온다. 이상적인 노동환경은 경제적 보상을 남발하지 않는, 품질 평가에 기초한 능력주의 체제를 발판으로 삼는다. 신경제 지지자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질적 지속성을 위하여 양적 성장의 이념을 최대한 빨리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다. '성장 이념'은 '더 많이, 더 높이, 남들보다 높이'를 추구하는 자연의 사다리가 물려준 최악의 유산일 것이다. p23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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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동기란 무엇인가? 펑크는 세 단어로 요약했다. 자율성, 장인의 기술, 목표. (...) 자율성과 장인의 기술은 ㄴ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립적인 조직에서 자기 일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으면 동기와 참여가 급상승한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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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프를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다는 원칙"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의 문제에 도달했다. 숫자가 주연을 맡는 평가의 연극은 노동의 만족도와 의욕, 충성ㅅ힘, 회사와의 일체감에 치명적이다. 나아가 일체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짓밟고 모욕감을 주고 자존감을 훼손시킨다.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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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만연한 냉소주의를 버려야 한다. 냉소주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배타적 진리로 생각하게끔 유혹한다. 대안이 없다는 동화, 즉 TINA 신드롬은 오늘날의 위기가 환상의 위기이기도 함을, 아니 무엇보다도 환상의 위기임을 잘 보여준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러고 살다 죽지 붜""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자" 같은 식의 숙명론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기주의, 경쟁의식, 공격성은 당연히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악의 평범함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타주의, 협력의지, 연대감, 요컨대 선의 평범함 역시 똑같은 우리의 본성이며, 이중 어떤 특징이 주도권을 잡느냐는 환경이 결정한다. 우리는 영장류에 대한 드 발의 연구로부터 이런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우리와 영장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인정을 받을 때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행복감이야말로 오늘날의 전형적인 상태, 즉 우울한 쾌락주의, 우울한 향락과 극명하게 대립된다.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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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시민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에게 공익을 실천할 의무가 있다면 우리 역시 공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자면 물질을 포기하고, 다시금 새로운 윤리를 키어나가야 한다. 이 윤리는 항상 자율과 연대, 개인과 집단의 균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권위와 권위의 실천 방식이 접착제 역할을 할 것이다. 시민 의식이란 민주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권력을 부여한 사람들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상황이 요구한다면 우리 스스로 용기를 내 권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도 있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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