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심하군요! 영혼이 생긴 겁니다."
영혼? 고대에 사용하다 오래전에 사라진, 이상한 단어. '영혼을 일깨워', '영혼 없이'라는 표현은 종종 사용해도, '영혼'은?
"몹시... 몹시 심각한가요?"
내가 중얼대자, 가위가 매섭게 자른다.
"치유 불가능."
(...)
"하지만 영혼이 갑자기 왜, 왜 나오나요? 나는 지금까지 영혼이 없었는데, 갑자기... 왜... 아무도 없는 영혼이 왜 나만...?"
(...)
"상상력을 잘라내야 한다고. 누구든... 상상력 박멸. 오로지 수술, 철저하게 수술하는 방법으로..."
1.
이 훌륭한 소설을 이제야 읽다니... 조지 오웰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보다 영감이 더 풍부하다며 극찬한 책이다. 그의 '1984'에 깊은 영향을 주기도 했고. 1894년생 자먀찐은 볼셰비키에 입당하여 소비에트 사회에 열정적으로 동참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는 자유로운 예술을 탄압하는 당국을 비판하다가 가택연금 되고 1931년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 정착하지만 극단적으로 궁핍한 말년을 보내며 1937년 세상을 뜬다.
1920년 출판된 자먀찐의 <우리들>은 이후 출간되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원조가 되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그는 200년 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우리 앞에 그려보인다. 대전쟁으로 모든 국가가 통합된 지 200년 뒤 사회. 그 사회는 과학기술이 전체주의 체제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며 이전 사회를 '고대'라고 부른다.
새로운 사회는 '고대'와 어떻게 다른가. 모든 사람은 일련 번호가 붙여져 있다. 주인공은 D-504, 우주선 '통합체' 완성을 지휘하는 수학자이자 과학자다. 그의 주변엔 당국이 정해준 연인 O-90이 있으며, 친구이자 국가 시인인 R, 체제의 수호자 S와 U 등이 있다. '녹색 담벼락' 안의 거주지에서만 살아가는 그들에겐 사생활이 전혀 없다. 투명한 유리로 모든 것이 비추어보이는 집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성관계를 할 때는 당국의 분홍색 쿠폰을 미리 발급 받아서 그 시간 동안 커튼을 내리는 것이 허용된다. 아침부터 밤까지 당국이 정해준 시간표에 따라 생활하고 움직이며, 다른 일이 있거나 아파서 쉴 때는 늘 당국의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매트릭스 같은 삶이다. 사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은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케 한다.
체제의 법과 질서를 내면화한 주인공 D-504의 삶에 균열이 일어난 건 I-330의 출현 때문이다. 주인공은 그녀로부터 소용돌이치는 감정과 깊은 격정을 느낀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면서 자신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녀를 향한 감정을 제어할 수 없다. 결국 주인공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체제의 질서를 조금씩 어기고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녹색 담벼락' 밖의 세계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I-330은 반체제 조직 '매피'의 리더다. 주인공에게 감정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존재로서 '통합체' 우주선의 설계자인 그를 혁명에 끌어들여 지금 세계를 끝장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시도는 실패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적 혼란을 여기저기에서 들키고 체제는 그를 줄곧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U에게 자신의 내적 혼란을 털어놓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반란이 들켰을 때 주인공은 본능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그의 내면에서 사랑과 자유에 대한 갈망보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승리를 거둔다. 그 세계의 모든 이가 그렇듯이 어머니도 가족도 없는 그는 결국 '은혜로운 선생님'이라 불리는 체제의 수호신에게 모든 걸 자백하고 체제에 협조한다. 이후 대뇌 절제 수술을 받아 감정을 완전히 잃게 되고, 사랑했던 I-330이 고문 받고 사형 당하는 모습을 아무 감정 없이 바라본다.
2.
죽어가는 I-330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 이 소설의 결말은 내가 깊은 슬픔을 느꼈던 <1984>의 결말보다 한층 더 먹먹한 절망과 아픔을 느끼게 했다. 예전엔 영혼이 있어서 아팠는데 지금은 아프지 않다는 주인공의 독백, 사랑했던 주인공의 배신을 지켜보면서 홀로 끝까지 체제를 거부하고 죽어간 I-330의 고독 때문에. 그들이 기계적인 좀비들로 가득찬 세상에서 몰래 나누었던 뜨거운 사랑과 그것이 한줌 재처럼 사라진 현실 때문에...
<우리들>의 훌륭한 점은 전체주의 체제가 단지 인간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성 자체를 박탈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작가가 보기에 인간성의 가장 깊은 본질은 수학적 논리성과 합리성이 아니라 날씨처럼 변덕스럽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의 감정 그 자체다. 감정을 제거할 때 인간은 사라지고 체제의 하수인만 남는다. 우리가 감정을 배우는 첫 번째 공간은 가족이다. 그래서 체제는 가족을 해체하고 인간 하나하나를 일련 번호 속 기계로 만든다. 감정을 지배함으로써 체제는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소설은 훌륭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에서 또 하나 의미 있는 지점은 과학 기술이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억압하는 체제 유지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녹색 담벼락' 안에 갇혀서 모든 것이 수학적 계산에 의해 돌아가고 그것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세계. 그 틀에서 벗어난 모든 것이 야만으로 간주되는 세계. 그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힘은 수학과 과학 기술에서 나온다. 그 계산에서 벗어나는 '감정'을 가진 이는 '병들었다'고 간주되며 수술을 받거나 아니면 '물'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형에 처하게 된다. 개인이 이 전체주의 질서에 저항할 수 없는 이유는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그 기술을 누가 독점하느냐에 따라 디스토피아는 언제든지 도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3.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D-503의 독백 즉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내용 전개가 다소 산만할 때도 있고, 무슨 상황인지 바로 짐작이 안 되어 읽다가 앞으로 몇 번 돌아가기도 했다. 독백이 많고 현실과 주인공의 공상이 교차하다보니 독자가 스토리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 구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의 자아 위기와 내적 혼란을 기술하는 데는 독백이 가장 적합한 방식일 수도 있겠다. 자아의 위기를 겪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역동적이면서 생생하게 잘 묘사되어 읽는 내내 내 마음도 요동 쳤다.
인간의 내면적 위기를 다루어서일까, 1920년 작품인데 매우 세련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래 공상 과학, 전체주의 체제 비판, 인간의 심리 분석, 이 모든 걸 종합적으로 버무린 작품이 1920년대에 나왔다는 게 놀랍다. '멋진 신세계'가 1936년작, '1984'가 1949년작이고, 읽다보면 '우리들'의 문제의식을 이 두 작품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확장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소설 '우리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 두 작품도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격동의 시대를 맞아 비운의 삶을 살다간 한 천재가 우리에게 남겨준 훌륭한 유산이다.
책 이야기/소설, 시
[우리들 /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__ 디스토피아 소설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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